혼수 전쟁 – 예단이 사랑의 값을 매기던 시절

1980년대 한국 전통 혼수 예물 상자를 상징하는 자개 보석함과 비녀, 반지
예단과 예물이 정성의 정표에서 계산의 항목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시절, 가풍과 체면을 담아 전달되던 고풍스러운 자개 보석함.

혼수 전쟁 — 예단이 사랑의 값을 매기던 시절

딸을 시집보내는 값, 1980년대와 1425년

역사·한국현대사 · 결혼 시리즈 ③ · 2026.08.15


이불 한 채가 가풍이 되던 밤

지난해 한 결혼정보업체가 내놓은 결혼 비용 보고서가 조용히 화제가 되었다. 신혼부부가 예단과 예물에 쓰는 돈이 평균 1,361만 원으로, 예식장 대여비(1,401만 원)나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1,406만 원)과 대등한 수준을 보였기 때문이다.1

숫자 자체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돈이 과연 무엇을 사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본래 예단은 감사의 표시였고, 예물은 서로의 정을 확인하는 정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둘은 견적서 위의 차가운 항목으로 변모했고, 액수의 크기가 정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언어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계산법이 어디서부터 본격화되었는지 추적해 올라가면 1980년대 한국 사회와 마주하게 된다. 혼수가 처음으로 ‘전쟁’이라는 거친 이름을 얻었던 시절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1970년대 산업화가 중매를 밀어내고 자유연애를 그 자리에 앉히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랑이 결혼의 정당한 자격을 얻자, 역설적이게도 이번에는 그 사랑을 입증하라는 새로운 요구가 뒤따랐다. 바로 자본의 언어였다.

1980년, 딸의 값을 계산하기 시작한 두 도시

1980년대 한국의 결혼은 급속히 거대한 산업으로 재편되었다. 전통 혼례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 빈자리를 상업 예식장과 예단·예물 시장이 빠르게 채워나갔다. 과도한 혼수 문제로 신혼 초부터 양가 갈등이 불거져 파경에 이르렀다는 소식도 이 무렵부터 언론에 빈번히 등장했다.2

당시 형성된 구도는 명확했다. 여자는 혼수를, 남자는 집을 마련한다는 원칙이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집값 상승세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이 구도가 크게 불평등하게 체감되지 않았을 수 있으나, 바로 이 공식이 이후 수십 년간 한국 결혼 문화를 규정하는 기본 문법으로 정착했다. 이불과 반상기 중심이던 예단 품목에 냉장고·세탁기·컬러텔레비전 같은 가전제품이 더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혼수는 점차 신소비사회의 욕망을 증명하는 진열장을 닮아갔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가 이러한 흐름을 방관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80년 10월, 신군부 정권은 민심 수습을 명분으로 호화 결혼식과 과잉 혼수를 규제하겠다며 단속반을 편성하고 가정의례준칙을 개정하여 호텔 예식장 이용을 금지했다. 축의금과 혼수 범위에도 제재를 신설했다.3 국가가 법 제도로 혼수의 규모를 규제하려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혼수 문제가 사적 영역을 넘어선 사회적 과시 경쟁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관제 단속은 오래가지 못했고, 시장은 규제의 빈틈을 타 지속해서 팽창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약 550년 전 피렌체에서도 국가가 거의 유사한 갈등에 직면하여 개입을 시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1348년 흑사병 파동 이후 피렌체 사회는 남녀 인구의 구조적 불균형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가문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다투는 신흥 상인 가문들의 과시 경쟁이 더해지면서 지참금(dote) 액수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기 시작했다. 딸을 명망 있는 가문에 시집보내는 일은 집안의 위신을 증명하는 결정적 계기였고, 그에 비례해 지참금 요구액도 부풀었다.4 감당하기 힘든 지참금 부담으로 아버지가 딸의 혼인을 아예 포기하는 사례마저 빈번해졌다. 피렌체 공화국은 1425년, 이 폐단을 완화하고자 ‘몬테 델레 도티’라는 국영 지참금 기금을 창설했다. 딸이 어릴 때 아버지가 정부에 목돈을 납입하면, 5년에서 15년 뒤 딸이 결혼할 때 이자가 가산된 지참금을 돌려받는 구조였다.5

이 제도가 처음부터 원활히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시행 첫해 가입자는 단 두 명에 불과했고, 이후 4년간 신규 가입이 정체되었다. 1433년, 최소 예치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고 딸이 결혼 전 사망할 경우 원금을 환급받도록 조건을 완화한 뒤에야 제도가 안착할 수 있었다. 이후 140여 년간 약 3만 명의 피렌체 여성들이 이 기금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눈길을 끄는 세부 조항이 있다. 지참금은 혼인이 실질적으로 성혼(성관계 및 첫날밤)에 이른 뒤에야 지급되도록 규정되었다. 그 결과 신랑이 예식을 마친 당일 밤 신부 집에서 첫날밤을 치르고, 이를 확인받은 뒤 지참금을 수령해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풍습이 정착되기도 했다. 국가의 재정 제도가 개인의 사적인 관습까지 재편했던 셈이다.

계산이 정을 대신할 때 — 예기와 베블런 사이에서

동양 고전 《예기(禮記)》7는 혼례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昏禮者,將合二姓之好
(혼례자, 장합이성지호)
“혼례란 장차 두 성씨의 우호를 합하려는 것이다.”

개인의 결합을 넘어 가문과 가문 사이의 동맹이라는 의미다. 예단과 예물은 본래 이러한 동맹을 확인하는 예(禮)의 상징이었으며, 액수의 크기보다는 절차에 담긴 정성이 핵심이었다.

반면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6은 1899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현상을 파헤쳤다. 그는 상류층이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고자 실용성과 무관한 소비에 열중하는 현상을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다. 물건 자체의 실용적 가치보다, 그 물건을 소유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소비 형태다.

《예기》가 말한 ‘우호의 예’가 공동체의 관계를 맺는 끈이었다면, 베블런이 가리킨 ‘과시적 소비’는 타인과의 격차를 확인하는 칼에 가깝다. 1980년대 한국의 예단과 15세기 피렌체의 지참금은, 관계를 위해 출발했던 예(禮)의 형식이 타인을 압도하려는 계산으로 전락한 지점으로 읽힐 수 있다. 절차가 셈법으로, 정성이 액수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다섯 세기를 건너온 같은 셈법

피렌체의 아버지는 국가 기금에 돈을 맡겼고, 1980년대 한국의 어머니는 장롱과 반지함에 돈을 묻었다.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관통하는 논리는 유사하다. 딸을 보내는 값을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혼인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다. 두 사회는 이 불안을 각각 국가 기금과 사회적 관습이라는 형태로 제도화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사례 모두 단순한 ‘성혼의 조건’을 넘어 ‘과시 경쟁’으로 변질되는 지점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피렌체에서는 지참금 인플레이션이 가문 간 서열 다툼으로 확장되었고, 한국에서는 예단과 예물이 사돈 간 자존심을 건 시험대로 작용했다. 혼수는 사랑의 증명을 넘어 집안의 체면을 판가름하는 지표가 되었다.

이러한 패턴이 오늘날 완전히 소멸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른바 “반반 결혼”을 합의했던 부부가 상견례나 예물 준비 과정에서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례가 여전히 보고된다. 형태는 바뀌었을지라도, 계산이 정을 대신하는 구조적 관성은 상당 부분 잔재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우리가 아직 값을 매기지 못한 것

오늘날 한국 사회는 1980년대와는 자못 다른 결혼 지형을 보여준다. 예단을 과감히 생략하는 부부가 늘고, 비용의 합리적 분담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갈등을 다룬 온라인 사연들이 지속해서 공감을 얻는 현상을 보면, 절차의 간소화와 그 내면에 깔린 계산의 논리를 걷어내는 작업은 서로 다른 문제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저출생과 만혼이 중요한 국가적 의제로 다루어지는 지금, 사회적 논의는 주로 주거비나 양육비 같은 직관적인 숫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피렌체와 1980년대 한국의 역사가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결혼을 계산 가능한 거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그 사회는 다음 세대에 한층 더 무거운 셈법을 물려주게 된다는 점이다. 예단 봉투의 두께로 정성을 증명해야 했던 세대는, 결국 전세금과 혼수 견적으로 사랑을 입증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한국 사회가 진정 다루어야 할 과제는 단순히 결혼 비용 항목을 줄이는 일인가, 아니면 그 항목들이 왜 정성의 척도가 되었는지 그 본질을 성찰하는 일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단편적 사건을 넘어 반복되는 패턴을 추적한다. 이불 한 채, 반지 하나에 찍혔던 숫자들의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그 계산이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 모습을 바꿀지, 우리는 아직 깊이 묻지 않았을 뿐이다.


참고할 말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 잠언 31:30


1. 듀오, 「2025 결혼비용보고서」
2. 대한민국 정부 정책주간지 K-공감, 「[일상의 역사] 광복 70년 한국인의 변화, ‘결혼 풍속’」
3. 경향신문, 「금지를 금지하라(15) 법으로 구속한 관혼상제, ‘과시 욕망’까지 가두진 못했다」, 2017.08.27.
4. Italian Renaissance Resources / National Gallery of Art, “Husbands and Wives”
5. Anthony Molho, 《Matrimonial Alliance in Late Medieval Flor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4
6.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
7. 《예기(禮記)》 혼의(昏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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