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바다가 뒤집은 전쟁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좁은 해협을 통과하는 고대 그리스 삼단노선과 충돌하며 기동에 어려움을 겪는 페르시아 함대
살라미스 해전, 기원전 480년. 그리스 함대는 좁은 해협의 지형을 활용했고, 페르시아 함대는 제한된 공간에서 기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살라미스, 바다가 뒤집은 전쟁

약자의 지형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2026.10.18 · 세계사 · 영화로 떠나는 세계사 · Watchman


해협에 갇힌 거대한 함대

영화 〈300: 제국의 부활〉(2014)의 클라이맥스는 살라미스 해협의 해전이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페르시아 함대 앞에 그리스 연합 함대가 선다. 화면의 중심은 칼날과 피가 튀는 근접전이지만, 사료 속의 이 전투를 지탱한 것은 칼이 아니라 해협의 폭이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영화 〈공자〉를 따라 14년을 떠돌고도 끝내 쓰이지 못한 사람을 보았다. 그 길에서 군주들은 물었고, 따르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같은 장면을 바다로 옮긴다. 군주가 조언을 구하고도 따르지 않았을 때, 바다는 무엇으로 답하는가.

영화가 그린 살라미스는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핵심 구도는 사료와 가깝다. 수적으로 열세한 쪽이 싸울 곳을 골랐고, 큰 쪽이 자기 크기 때문에 무너졌다. 영화가 지운 것은 그 승리를 만든 사람들과, 같은 바다에 있던 다른 목소리들이다.

영화는 한 사람의 영웅과 한 사람의 복수자를 세워 승패를 개인의 서사로 압축한다. 이 글은 그 압축을 풀어 보려 한다.

나무 벽, 은광, 그리고 한 통의 전갈

기원전 480년 여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본토로 진격했다. 헤로도토스는 육군과 해군의 규모를 압도적인 숫자로 전한다. 현대 연구자들은 이 숫자를 상당히 줄여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세르크세스는 헬레스폰트 해협에 배를 이어 다리를 놓아 건넜다고 전해진다.¹ 시네마 첫 편에서 우리가 트로이를 ‘헬레네가 아니라 해협’의 전쟁으로 읽은 바로 그 해협이다.

육지에서는 테르모필레, 곧 영화 〈300〉의 무대에서 그리스 저지선이 뚫렸고, 북쪽의 도시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아테네는 도시를 비우기로 했다. 시민 상당수가 살라미스 섬과 아이기나, 트로이젠 등지로 피난했고, 도시는 곧 불탔다. 페르시아군이 아테네를 점령한 시점은 그해 가을 무렵으로 추정된다.²

아테네가 선택한 것은 성벽이 아니라 배였다. 델포이 신탁이 말한 “나무 벽”을 아테네는 함대로 해석했고, 그 해석을 밀어붙인 사람이 테미스토클레스였다. 그는 라우레이온 은광에서 난 수익을 시민에게 나눠 주는 대신 3단노선 건조에 쓰자고 설득한 인물로 전해진다.³

3단노선 한 척에는 노잡이만 170명 안팎이 앉았다. 이들 대부분은 중무장 보병의 갑옷과 무기를 갖출 재산이 없는 하층 시민, 이른바 테테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살라미스의 승리를 이끈 해군 대중이 민주정을 강화했다고 평했다.⁴ 아테네에서 함대는 군사력이면서 곧 정치 구조였다.

살라미스 해전 직전, 그리스 연합 함대 안에서는 이 해협에서 싸울 것인가, 코린토스 지협 쪽으로 물러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헤로도토스와 플루타르코스는 테미스토클레스가 크세르크세스에게 몰래 전갈을 보내, 그리스 함대가 도망치려 하니 지금 해협을 막으면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알렸다고 전한다.⁵ 이 일화의 세부는 후대의 윤색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 함대가 좁은 물길로 들어왔고, 그리스 측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큰 줄기는 여러 사료가 공유한다.

헤로도토스는 이때 그리스 연합 함대를 380척 안팎으로 전한다.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그리스 함대는 해협 안에서 전세를 뒤집었고, 페르시아 함대는 많은 배를 잃고 물러났다. 전투가 벌어진 시기는 기원전 480년 가을이며, 정확한 날짜는 학자들 사이에서 갈린다.⁶

이 전장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다. 그녀는 크세르크세스 편에서 군선을 이끌고 싸웠다. 그런데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해전을 앞둔 군사 회의에서 모두가 싸우자고 할 때, 그녀 혼자 해전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리스 함대가 바다에서 더 능하다는 경고였다. 크세르크세스는 그 말을 기뻐하면서도 다수의 뜻을 따랐다고 전해진다.⁷

물은 지형을 따라 흐른다

이 이야기에 가장 잘 맞는 문장은 동양에 있다.

水因地而制流,兵因敵而制勝。

(수인지이제류,병인적이제승。)

“물은 지형에 따라 흐름을 정하고, 군대는 적에 따라 승리를 만든다.”

— 『손자병법』 허실편⁸

물은 정해진 길을 갖지 않는다. 지형이 길을 정한다. 살라미스의 승부는 이 문장에서 거의 모두 설명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적을 바꾸지 못했다. 그가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싸움의 장소였다.

노자는 같은 이야기를 더 근본적인 곳까지 밀고 간다.

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強者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이공견강자막지능승。)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으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에는 물을 이길 것이 없다.”

— 『도덕경』 78장⁹

살라미스의 바다는 이 문장을 문자 그대로 실연한다. 크고 단단한 함대가 부드러운 좁은 물길에 갇혀 무너졌다. 강함이 곧 약점이 되는 순간이다.

서양에는 이 장면을 정반대 방향에서 비추는 사람이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 사람이었고, 에페소스는 당시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던 이오니아의 도시였다. 그는 대략 기원전 500년 전후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며, 이런 단편을 남겼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 어떤 이는 신으로, 어떤 이는 인간으로 드러내고, 어떤 이는 노예로, 어떤 이는 자유인으로 만든다.”

—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B53¹⁰

이 문장은 전쟁을 찬미하지 않는다. 대립하는 것들이 서로를 규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페르시아 제국 안에서 전쟁의 의미를 따지던 그리스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 글의 다음 단계를 열어 준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영화를 만든 자리를 짚어야 한다. 〈300: 제국의 부활〉은 미국 영화다. 감독 노암 머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출신이고, 각본에는 전편 〈300〉(2007)을 만든 잭 스나이더가 참여했다. 원작으로는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Xerxes』가 표기되었다.¹¹

전편은 2007년 3월 개봉 직후 이란 정부로부터 “문화적·심리적 전쟁”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이란 정부는 이 문제를 유엔에까지 가져갔다. 한편 이 반응을 국내 정치에 활용한다고 보는 관측도 당시 함께 나왔다.¹¹ 어느 해석이 옳은지는 이 글이 가릴 일이 아니다. 다만 구도 자체는 영화의 발명이 아니다. 자유로운 시민과 왕의 신민을 맞세우는 구도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도 이미 볼 수 있다. 어떤 자리에서 바라보면 어떤 선이 선명해지고, 어떤 선이 흐려지는가. 이 글이 묻는 것은 그 구조다.

영화가 노를 젓게 하지 않은 사람들

영화에서 살라미스를 이긴 사람은 테미스토클레스다. 그러나 사료에서 살라미스를 이긴 것은 수만 명의 노잡이다. 이들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배는 기동하지 못한다. 영웅의 검이 아니라 집단의 리듬이 승패를 갈랐다고 읽을 수 있다. 전쟁이 사람을 자유인과 노예로 가르는 세계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은 그 구분선 위에서 도시의 운명을 쥐고 있었다.

영화가 지운 두 번째 것은 페르시아 함대의 정체다. 영화 속 페르시아는 하나의 거대한 ‘동방 제국’처럼 보이지만, 크세르크세스의 함대는 여러 지역에서 모인 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력은 페니키아, 곧 지금의 레바논 일대 해안 도시들이 내놓은 배와 선원이었다. 이들은 바다에 능한 뱃사람으로 이름이 높았다. 여기에 이집트와 키프로스의 배, 그리고 이오니아 그리스인의 배도 섞여 있었다.¹² 이오니아는 지금의 튀르키예 서해안에 있던 그리스계 도시들로, 당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이 바다에는 그리스인이 그리스인과 마주 선 장면도 있었던 셈이다. 영화는 이 복잡한 구성을 ‘그리스 대 동방’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정리한다.

세 번째는 아르테미시아다. 그녀는 소아시아 남서쪽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왕으로, 페르시아 편에서 군선을 이끌고 참전한 인물이다. 영화는 그녀를 그리스에 대한 사적인 복수심으로 움직이는 지휘관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사료 속 아르테미시아는 조금 다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녀는 해전을 앞둔 회의에서 바다에서 싸우지 말라고 만류한 조언자였다. 그녀의 조언이 받아들여졌다면 전쟁의 모양이 달라졌을 수 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 조언을 기뻐하면서도 다수의 뜻을 따랐고, 전투 뒤에는 그녀의 판단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진다.⁷ 가장 먼저 경고한 사람이 영화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지휘관으로 그려지는 셈이다.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지우고 그 자리를 복수의 서사로 채웠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사각지대가 있다. 영화는 시종 승자의 눈으로 이 전쟁을 보지만, 패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 기록이 있다. 살라미스 해전으로부터 8년 뒤인 기원전 472년, 아테네의 극장에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이 상연되었다. 아이스킬로스는 살라미스에 참전한 군인이었다고 전해지고, 이 작품은 현존하는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¹³ 무대는 아테네가 아니라 페르시아 궁정이다. 왕의 어머니 아토사와 원로들이 전장의 소식을 기다리다가 패전을 전해 듣고 탄식한다. 승리한 도시의 시민들이 패배한 쪽의 비탄을 극장에 나란히 앉아 들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긴 쪽이 진 쪽의 슬픔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목소리를 쓰지 않았다.

이제 이 사실들을 하나로 묶어 보자. 노잡이, 페니키아 선원, 아르테미시아, 『페르시아인들』의 탄식. 영화가 지운 것들은 서로 달라 보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첫째는 약자가 이기는 방식이다. 약자가 이기는 순간은 약자가 강해졌을 때가 아니라, 강자의 강함이 지형 안에서 약점으로 바뀌었을 때 온다. 페르시아 함대의 크기는 넓은 바다에서는 힘이었지만 좁은 해협에서는 짐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는다. 지형을 읽는 일과 그 읽기를 따르는 일은 별개다. 아르테미시아는 읽었고, 크세르크세스는 물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둘째는 승리가 이야기가 되는 방식이다. 그 승리를 이야기로 옮기는 순간, 지형과 집단은 사라지고 영웅 한 명만 남는 경향이 있다. 살라미스를 만든 것은 해협의 폭과 수만 명 노잡이의 리듬이었지만, 이야기가 기억하는 것은 사령관의 이름이다. 이름 없는 다수는 이야기에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는 누가 이야기를 쓰는가의 문제다. 싸움의 장소를 정하는 쪽이 싸움의 의미를 정한다. 아테네는 해협을 정했고, 이 승리를 처음 극장 무대에 올린 것도 아테네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가 2,500년을 건너 영화관 스크린까지 이어진다. 서사를 쓴 쪽의 시선으로만 사건을 보면, 같은 바다에 있던 다른 사람들, 곧 노잡이와 이국의 선원과 조언자는 점점 배경으로 물러난다.

다시 본다면, 어디서 바라볼 것인가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무엇이 다르게 보일까.

해협의 불길은 여전히 장관일 것이다. 다만 이 글을 읽은 뒤에는 시선이 화면 한가운데에서 가장자리로 옮겨 갈 수 있다. 박자를 맞춰 노를 젓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페르시아의 깃발 아래 배를 몬 페니키아 선원들, 같은 그리스인과 맞서야 했던 이오니아 사람들도 떠오를 것이다. 모두가 싸우자고 할 때 혼자 말렸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조언자 아르테미시아의 표정도 새롭게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어떤 승리는 이긴 쪽의 용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패배는 진 쪽의 어리석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바다를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보는 전쟁은 달라진다.

우리가 오늘 마주하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이름 없는 다수의 호흡을 지우면 역사는 영웅 한 사람의 독백이 된다. 그러나 지도자의 안목을 지우면 역사는 우연이 겹친 결과로 흩어진다. 노를 저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살라미스의 승리는 없었겠지만, 싸울 곳을 고르고 그 노를 한 방향으로 모은 사람이 없었다면 그 힘은 흩어졌을 수 있다. 좋은 지도자는 지형을 먼저 읽고, 읽은 것을 사람들이 따르게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지도자라 부르고, 그 뒤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두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 참고할 말씀: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고린도전서 1:27

각주

1. 헤로도토스 『역사』 7권(군세; 7.33~36 헬레스폰트 배다리). 현대 연구의 규모 추정은 Barry Strauss, The Battle of Salamis (Simon & Schuster, 2004) 등 참조.

2. 헤로도토스 『역사』 8권(아테네 소개·점령).

3. 헤로도토스 『역사』 7.144; 플루타르코스 『테미스토클레스 전』.

4.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5권 4장(1304a).

5. 헤로도토스 『역사』 8.75; 플루타르코스 『테미스토클레스 전』.

6. 헤로도토스 『역사』 8.48(함대 규모); 전투 시기는 Strauss(2004) 등에서 이견.

7. 헤로도토스 『역사』 8.68~69, 8.87~88.

8. 『손자병법』 허실편.

9. 『도덕경』 78장.

10.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B53(Diels-Kranz). 그리스어 polemos는 “전쟁” 외에 “대립·투쟁”으로 옮기는 논의가 있다. 참조: C. Baracchi, “The Polemos that Gathers All: Heraclitus on War”, Research in Phenomenology 45(2), 2015.

11. 영화 제작 정보(감독·각본·원작 표기): 공개된 제작 정보 기준. 이란 정부 반응: RFE/RL, “Iran Condemns Hollywood Movie ‘300’”(2007.3.14); “Iran: Film On Ancient Persian-Greek Battle Angers Iranians”(2007.3.21).

12. 헤로도토스 『역사』 7.89~95.

13.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들』(기원전 472년 상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비극으로 알려져 있으며, 극의 인물 아토사는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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