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의 고래, 장부의 고래

새벽녘 사연댐 수면에 반쯤 잠긴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 고래 그림과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뒷모습
새벽 빛 아래 사연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반구천의 암각화. 물에 잠긴 바위 속 고래는 생명을 기록하던 눈과 치수(治水)의 계산이 마주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바위의 고래, 장부의 고래

포경 시리즈 ① — 바다의 생명을 연료로 바꾼 문명의 첫 장면

Watchman · 2026년 10월 8일 · 바다


물에 잠기는 바위, 유네스코가 인정한 그림

2025년 7월, 울산 대곡천 가의 바위 절벽,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¹ 길이 약 8미터의 바위면에 수백 점의 형상이 쪼아져 있고, 그 가운데 고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 독자에게 이 그림은 낯설지 않다. 교과서 사진으로 먼저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위에는 역설이 있다. 사연댐이 완공된 것은 1965년이고, 암각화가 학계에 알려진 것은 1971년이다. 그림은 발견되기 전부터 이미 댐의 수위 아래에 있었다. 이후 수위가 오를 때마다 물에 잠기고 마르기를 되풀이했고, 수천 년을 버틴 바위가 반세기 남짓한 사이 더 큰 위협을 받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댐은 고래를 지우려는 계획이 아니었다. 도시의 물을 확보하려는 계산이었고, 그 계산의 합계 안에 바위의 고래는 들어 있지 않았다. 고래를 새긴 바위가 물속에 서 있다. 인간과 바다의 관계를 이만큼 압축한 장면도 드물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베네치아가 물을 막으려고 세운 거대한 장치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바다를 본다. 물을 막은 문명이 아니라, 물에서 무언가를 꺼내 온 문명이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바다의 생명을 연료로 바꾼 문명은 왜 스스로 멈추었는가. 이 질문의 첫 장면은 인간이 고래를 처음 바라본 눈에 있다. 그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보아야 한다.

그림이 말하는 것, 장부가 말하는 것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들은 정교하다. 연구자들은 그림 속 고래를 귀신고래, 혹등고래, 북방긴수염고래 등으로 판독한다. 새끼를 등에 업은 어미 고래가 있고, 작살을 맞은 고래가 있고, 배 위에서 고래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다.

포경 장면을 구체적으로 새긴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² 제작 시기는 신석기에서 청동기 사이로 폭넓게 추정되며, 학계의 이견이 남아 있다.

이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점이 있다. 그림은 고래를 얼마나 잡았는지가 아니라 고래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말한다. 어미와 새끼를 구분하고, 종마다 몸의 윤곽을 다르게 그렸다. 바다에서 오래 고래를 지켜본 사람만 새길 수 있는 선이다.

이 그림이 사냥의 성공을 비는 주술이었는지, 잡은 고래를 위한 제의였는지, 공동체의 기억이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하나는 분명히 읽힌다. 사냥꾼의 눈과 관찰자의 눈이 아직 한 몸이었다는 점이다.

시간을 수천 년 건너뛰어 유럽의 비스케이만으로 가 보자.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 북부에 걸친 이 바다에서 바스크인들은 중세 초기부터 고래를 잡았다. 문헌에 포경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는 대체로 11~12세기로 본다.³

방식은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안 언덕의 망루에서 고래를 발견하면 신호를 보내고, 작은 배들이 일제히 출동해 작살을 꽂고, 끌고 온 고래를 해변에서 해체했다.

이 망루가 장면의 열쇠다. 스페인어로 atalaya, 바스크어로 talaia라 부르는 높은 자리에서 감시자는 수평선 위로 솟는 고래의 물기둥을 찾았다. 암각화에서 읽히는 눈이 한 마리의 고래를 오래 바라보는 눈이었다면, 망루의 눈은 물기둥을 발견하는 즉시 신호를 보내는 눈이다. 보는 목적이 이해에서 수확으로 옮겨 가 있었다.

주된 사냥감은 북대서양긴수염고래였다. 느리고, 해안 가까이 오고, 죽어도 물 위에 뜨고, 기름이 많은 고래다. 영어권에서 이 고래를 right whale, 곧 ‘잡기에 알맞은 고래’라 불렀다는 설명이 널리 전해진다. 이름 안에 사냥꾼의 계산이 들어 있는 셈이다.

고래를 둘러싼 제도도 이 무렵부터 자라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는 정해진 날(금육일)에는 짐승의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고 물고기만 허락했는데, 중세 유럽에서는 고래가 물고기로 분류되어 이런 날에도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포유류인 고래가 규율상 ‘물고기’가 된 것이다.

세금도 따라붙었다. 12세기 말 프랑스 남서부 비아리츠 같은 바스크 해안 마을의 헌장에는 고래의 일부를 영주에게 바치게 하는 규정이 등장한다. 헌장은 마을의 권리와 의무를 정해 둔 문서다. 바다에서 끌어올린 고래의 한 몫이 영주의 몫으로 정해진 것이다.

고래가 그림 속 개체에서 과세 대상이 되는 순간이다. 이 고래는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 항목이었다. 16세기에는 바스크의 배들이 대서양을 건너 래브라도 해안까지 나아가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룬다.

장자의 물고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

두 장면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동서양의 두 시선을 불러 본다.

『장자』 「제물론」은 이렇게 말한다.

天地與我並生,而萬物與我爲一。(천지여아병생,이만물여아위일。)
“하늘과 땅은 나와 함께 생겨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가 된다.”⁴

같은 책 「추수」에는 인간 중심의 눈을 경계하는 구절이 있다.

以物觀之,自貴而相賤。(이물관지,자귀이상천。)
“사물의 입장에서 보면 저마다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를 천하게 여긴다.”⁵

반대편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정치학』 1권에서 그는 자연의 질서를 목적론으로 읽는다. 식물은 동물을 위해 있고, 다른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있다고 본다.⁶

자연이 쓰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이 구도는 중세 유럽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등을 거치며 신학의 언어로 다시 읽혔다. 이 구도는 이후 오랫동안 서양의 상식으로 남았다.

반구대의 사냥꾼이 장자를 읽었을 리는 없다. 장자가 사냥 자체를 부정한 것도 아니다. 다만 사냥하면서 경외하고, 죽이면서 관찰하는 시선은 만물이 하나라는 감각과 닮은 데가 있다.

바스크의 장부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고래를 쓰임의 관점에서 헤아리기 시작한 순간,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은 철학이 아니라 실무가 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개체를 보는 눈, 합계를 보는 눈

두 장면을 겹쳐 보면 변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고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고래를 세는 단위다.

암각화는 고래를 한 마리씩 그린다. 어미와 새끼가 다르고, 종이 다르고, 몸짓이 다르다. 장부는 고래를 통(桶)으로 센다. 몇 마리가 아니라 기름 몇 통, 수염 몇 근이다. 같은 고래가 한쪽에서는 얼굴을 가진 존재였고, 다른 쪽에서는 단위가 없는 재고였다.

이 전환은 악의에서 나오지 않았다. 고래가 많고 도구가 단순한 조건에서는 어느 쪽 눈으로 보아도 바다가 비지 않았다. 문제는 조건이 바뀔 때 드러난다.

개체를 보는 눈은 멈출 때를 알고, 합계를 보는 눈은 멈출 때를 알려 주지 않는다. 한 마리를 그리는 손은 그 한 마리의 사라짐을 느끼지만, 통을 세는 손은 통이 모자랄 때만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모자람을 해결하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였다. 더 먼 바다로 가는 것이다. 비스케이만의 고래가 줄자 바스크의 배는 대서양을 건넜다.

이 반복은 이 시리즈 전체의 뼈대가 된다. 수확의 기술이 자라는 속도가 개체를 헤아리는 감각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빠를 때, 바다는 먼저 비워지고 규칙은 나중에 생겼다.

울산의 암각화가 오늘 물에 잠긴 채 보존 문제를 겪는다는 사실도 이 패턴의 작은 변주로 읽힌다. 도시의 물이라는 합계가 먼저 세워졌고, 그 아래에서 바위 위의 고래는 뒤늦게 한 마리의 얼굴로 돌아가라고 요구받는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이 글이 판정할 몫이 아니다. 다만 두 눈이 한 바위 앞에서 마주쳤다는 사실은 기록해 둘 만하다.

우리가 아직 그리지 못한 고래

반구대의 사냥꾼은 고래의 숫자를 알지 못했다. 알 필요가 없었다. 고래의 얼굴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고래의 개체수를 위성과 음향 장치로 센다. 숫자는 정확해졌는데, 고래의 얼굴은 어디서 보아야 하는가.

이 시리즈는 고래가 연료가 되고, 산업이 되고, 석유에 밀려 사라지고, 기술이 남획을 낳고, 금지가 선언되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래를 보러 배를 타게 되기까지의 긴 항로를 따라간다. 사냥꾼의 눈에서 관찰자의 눈으로 돌아오는 데 인류는 수천 년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잃은 것과 되찾은 것을 헤아리는 일은 다음 편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바다에서 꺼내 온 것들 가운데, 아직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바위에 새기는 대신 바라보는 자의 기록에 남긴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 참고할 말씀: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 창조하시고’ — 창세기 1:21

1.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반구천의 암각화」 등재 (2025년 7월). 국가유산청 자료 참조.

2.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해설 및 학계 연구.

3. Aguilar, A. (1986), “A review of old Basque whaling and its effect on the right whales of the North Atlantic,” Reports of the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Special Issue 10.

4. 『莊子』 「齊物論」.

5. 『莊子』 「秋水」.

6. Aristotle, Politics I.8 (125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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