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막의 신호탄
적이 되어야 서로를 막아선 두 나라 — 24년의 균형
세계사-핵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세계사 · 2026.09.09
국경 너머로 날아간 미사일
2025년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파할감에서 관광객 26명이 목숨을 잃는 테러가 발생했다. 보름 뒤인 5월 7일, 인도는 ‘오퍼레이션 신도르’를 발동해 파키스탄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아홉 곳을 타격했다. 파키스탄은 ‘오퍼레이션 부니안 운 마르수스’로 맞대응했고, 양국은 서로의 본토 군사시설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을 주고받았다. 국경 분쟁지 카슈미르를 넘어 상대의 심장부를 겨눈 타격은 1971년 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7
세계는 이 장면 앞에서 숨을 죽였다. 두 나라 모두 핵을 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벼랑 끝까지 간 두 나라는 닷새 만인 5월 10일, 양국 군사작전국장 간 통화로 전격 휴전에 합의했다.7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핵을 쥔 적국끼리는 벼랑 끝까지 가고도 결국 멈춘다는 패턴이, 이미 24년 전 두 개의 사막에서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막, 스물네 해의 간격
1965년, 당시 파키스탄 외무장관이었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한 외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도가 핵폭탄을 만든다면, 우리는 풀을 뜯어 먹는 한이 있어도 우리 것을 가질 것이다.” 아직 인도가 핵을 갖기 9년 전이었다.1
이 발언은 1971년 12월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 파키스탄이 동파키스탄을 잃고 참패하면서 비로소 현실의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국토의 절반을 잃은 지 한 달여 만인 1972년 1월, 대통령에 오른 부토는 물탄에서 자국 과학자들을 불러 모아 핵무기 개발을 공식 지시했다.2
그로부터 2년 뒤인 1974년 5월 18일, 인도가 라자스탄 사막 포크란에서 첫 핵실험 ‘스마일링 부처’에 성공했다.3 인도 정부는 이를 “평화적 핵폭발”이라 불렀지만, 파키스탄에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같은 해, 압둘 카디르 칸이 부토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파키스탄 핵개발의 실무를 이끌게 된다. 그는 이후 카후타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세워 1982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IAEA 사찰 대상에서 제외된 쿠샤브(Khushab) 중수로가 완전 가동에 들어가며, 연간 10~15kg의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해졌다.4
다시 24년이 흐른 1998년 5월 11일과 13일, 인도는 같은 포크란에서 이번엔 공개적으로 핵실험 ‘샥티’를 실시했다. 보름도 지나지 않은 5월 28일, 파키스탄은 발루치스탄 차가이 언덕에서 다섯 차례의 핵실험 ‘차가이-Ⅰ’을, 이틀 뒤인 5월 30일에는 여섯 번째 실험인 ‘차가이-Ⅱ’를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파키스탄이 공표한 폭발력(약 40킬로톤 안팎)과 서방 지진관측망이 추정한 위력(8~12킬로톤 안팎)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며, 핵심은 단순한 실험 횟수보다 실질적인 폭발력의 크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5 그럼에도 파키스탄은 이 실험으로 세계 일곱 번째 공식 핵보유국이 되었다.
그리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99년 5~7월, 양국은 카슈미르 카길 지역에서 국지전을 벌였다. 핵을 쥔 두 나라가 벌인 최초의 무력충돌이었다.6 전면전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다만 국지적 충돌의 빈도는 줄지 않았다. 그 패턴은 2025년의 오퍼레이션 신도르까지, 26년째 반복되고 있다.
발톱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
한비자(韓非子), 『한비자(韓非子)·비내(備內)』편
虎豹之所以能勝人執百獸者,以其爪牙也。(호표지소이능승인집백수자,이기조아야。)
“호랑이와 표범이 사람을 이기고 온갖 짐승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그 발톱과 이빨 때문이다.”
한비자는 이어 경고한다. 호랑이가 발톱과 이빨을 잃는다면, 오히려 사람에게 제압당할 것이라고. 본래 이 문장은 군주가 상벌의 권한, 즉 통치의 “발톱”을 신하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통치술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국가 간 관계로 옮겨 놓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에게 핵무기는 바로 그 “발톱과 이빨”이었다. 1974년과 1998년, 두 나라가 각각 사막에서 확인한 것은 승리의 방법이 아니라, 발톱을 먼저 내려놓는 쪽이 상대에게 제압당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어느 쪽도 먼저 발톱을 거두지 않았다. 냉전기 미소 관계를 규정했던 “상호확증파괴(MAD)”의 논리가 남아시아라는 좁은 지리 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발톱을 서로 확인한 것은 승리의 조건이 아니라, 서로를 일방적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현실을 확인하는 결과로 귀결된 셈이다.
Thomas Hobbes, 『Leviathan』 Ch.13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13장)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 통치자 없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서로 다투는 근저에는, 무엇보다 자기보존을 향한 권리가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그런 절대자가 없다. 대신 양쪽 모두가 상대를 파괴할 대등한 능력을 확인함으로써, 자연상태의 공포 그 자체를 서로에 대한 억지 장치로 뒤바꾼 형국이다. 주권자가 공포를 독점해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대칭적으로 나눠 가짐으로써 자연상태를 임시로 통제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상호 억지가 자연상태의 공포를 완전히 잠재웠는지, 아니면 그 공포를 낮은 강도로 관리 가능한 수준까지만 눌러 놓았는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평화가 아니라 유예
세 개의 시점 — 1974년, 1998년, 2025년 — 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패턴이 분명하게 남는다. 핵균형은 전면전의 문턱을 확실히 높였지만, 저강도 분쟁의 빈도를 낮추지는 못했다는 패턴이다.
이 패턴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1974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은 1965년 이전과 같은 방식의 전면전을 다시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길 전쟁(1999)부터 2025년 오퍼레이션 신도르에 이르기까지, 국지적 무력충돌의 발생 빈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 현상을 “안정-불안정 역설”이라 부른다. 전면전 억지력이 강해질수록, 그 억지력이 만드는 안전판 아래에서 작은 충돌은 오히려 더 대담하게 벌어진다는 역설이다.
핵은 전쟁을 없애지 않았다. 전쟁의 크기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재배치했을 뿐이다. 이 비대칭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읽힌다. 상대를 완전히 파괴할 힘이 오히려 작은 도발에 대한 반격의 문턱을 낮추는 역설적 안전판이 되어버린 셈이다.
인간이 스스로 쌓은 이 구조적 균형이, 군대의 규모와 무기의 힘만으로 언젠가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항구적인 평화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는지는 아직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다음 신호는 어디서 울릴까
앞선 글에서 우리는 힘을 쥔 나라와 내려놓은 나라, 45년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그 글이 답한 질문은 “쥔 자와 내려놓은 자 중 누가 더 안전했는가”였다면, 오늘 이 사막의 기록이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쥔 자일 때, 그 균형은 평화인가 유예인가.
한반도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구조는 다르다. 인도-파키스탄은 자체 핵 대 자체 핵이라는 대칭적 균형인 반면, 한반도는 자체 핵 대 확장억제(핵우산)라는 비대칭적 균형이다. 이 비대칭이 안정-불안정 역설을 그대로 재현할지, 다른 방식으로 굴절시킬지는 아직 역사가 답하지 않았다. 다만 전면전의 문턱은 높이더라도 국지적 충돌의 가능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본 구조만큼은 한반도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어 보인다. 연평도와 카길은, 서로 다른 위도 위에서 같은 구조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막에서 터진 두 번의 신호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위도에서 계속 울리고 있다.
* 참고할 말씀: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그 큰 힘으로도 구하지 못하는도다’ — 시편 33:16-17
각주
1. 1965년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eat grass” 발언 (당시 외무장관, Manchester Guardian 인터뷰) (역사학계 자료 종합)
2. 1971년 12월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및 파키스탄의 동파키스탄 상실, 1972년 1월 물탄 회의에서 부토의 핵개발 공식 지시 (역사학계 자료 종합)
3. 1974년 5월 18일 인도 첫 핵실험 ‘스마일링 부처'(포크란-Ⅰ) (역사학계·위키백과 자료 종합)
4. 압둘 카디르 칸의 파키스탄 핵개발 참여, 카후타 우라늄 농축시설 1982년 가동, 1995년 쿠샤브 중수로 완전가동 (역사학계 자료 종합)
5. 1998년 5월 11·13일 인도 ‘샥티’ 핵실험(포크란-Ⅱ), 5월 28·30일 파키스탄 ‘차가이-Ⅰ·Ⅱ’ 핵실험. 공식 발표 위력과 서방 지진관측 추정치 사이의 간극은 지금도 논쟁 대상 (역사학계·위키백과·지진학계 자료 종합)
6. 1999년 카길 전쟁 및 “안정-불안정 역설” 논의 (국제정치학계 자료 종합)
7. 2025년 4월 22일 파할감 테러, 5월 7일 인도의 ‘오퍼레이션 신도르’, 파키스탄의 ‘오퍼레이션 부니안 운 마르수스’, 5월 10일 휴전 (외신 보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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