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이 오기 전에 집을 비웠다
올림픽, 합동재개발, 그리고 세입자의 이삿짐
2026.10.15 · 역사 · 한국현대사 · Watchman
담벼락에 적힌 한 글자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앞둔 오래된 골목 후통(胡同)의 담벼락에는 동그라미 안에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헐 철(拆). 철거 대상이라는 표시였다.¹ 그 글자가 붙은 집에서 사람이 나가면 집이 허물렸고, 허물린 자리에는 손님에게 보여줄 도시가 들어섰다.
이 장면은 베이징만의 것이 아니었다. 2007년 6월 제네바의 주거권 단체 COHRE(주거권·퇴거센터)는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베이징에서만 이미 125만 명이 집을 떠났다고 추산했다.² 중국 정부는 이 수치를 근거 없다고 반박했고, 경기장 아홉 곳을 짓느라 철거된 6,037가구는 보상과 재정착이 이뤄졌다고 밝혔다.³
숫자는 끝내 맞춰지지 않았다. 다만 이 보고서가 기준점으로 삼은 도시는 베이징이 아니라 서울이었다. 1988년 올림픽을 준비하며 서울에서 72만 명이 강제로 집을 잃은 뒤로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문장이었다.²
앞선 글에서 우리는 학군을 따라 짐을 꾸리는 집들의 사정을 살펴보았다. 이번 글은 반대편의 이삿짐을 본다. 스스로 정한 이사가 아니라, 날짜가 정해진 도시의 사정으로 싸야 했던 짐이다.
이 시리즈가 따라온 이사의 이유는 시대마다 바뀌었다. 1980년대의 이유는 손님이었다. 이유는 바뀌어도, 짐을 싸는 쪽이 그 이유를 정하지 못한다는 점만은 바뀌지 않았다.
마감이 정해진 도시
1981년 9월, 서울이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다.⁴ 서울은 1986년 9월의 아시안게임에 이어 1988년 9월의 올림픽까지, 세계가 보러 오는 행사를 연달아 치러야 하는 도시가 되었다. 행사에는 날짜가 있다.
날짜는 옮길 수 없다. 그리고 날짜가 정해지면 도시를 정비하는 일에도 마감이 생긴다.
이 시기 서울의 재개발 방식도 바뀌었다. 1983년 목동에서 공영개발이 시작되었고, 1984년에는 합동재개발이 도입되었다.⁵ 합동재개발은 땅과 집을 가진 사람이 건설업체와 손잡고 아파트를 지은 뒤, 일반 분양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철거와 건축의 속도가 수익과 곧바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이 계산식 안에 땅도 집도 갖지 못한 세입자의 자리는 없었다.
서울 북동쪽의 상계동은 그 자체가 앞선 철거의 결과물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옮겨 와 만든 동네였다.⁶ 그 동네가 1980년대 중반 다시 재개발 대상이 되었고, 한 번 이삿짐을 쌌던 사람들은 다시 짐을 싸야 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명동성당 농성장에는 상계동 철거로 집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⁷ 이 투쟁을 기록한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목은 〈상계동 올림픽〉(1988)이다.⁸ 올림픽이 열리는 해, 올림픽이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 이삿날의 이름이었다.
투쟁은 제도를 조금 움직였다. 철거민과 공권력의 충돌이 격해지자 정부와 서울시는 재개발 보상의 세부 기준을 만들거나 고쳤다.⁵ 이동의 비용이 장부에 오르기 시작한 순간이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았다.
같은 일은 서울만의 것이 아니었다. COHRE는 서울 이후 20년 동안 올림픽이 200만 명 넘는 사람을 집에서 밀어냈다고 보았다.² 1992년 7월의 바르셀로나에서는 선수촌 부지 때문에 400여 가구가 옮겨야 했고,⁹ 1996년 7월의 애틀랜타에서는 공공주택 철거와 재개발, 임대료 상승이 겹쳤다. 이 과정에서 약 3만 명의 저소득 주민이 밀려났다는 추산이 나왔다.⁹
그리고 2008년 8월의 베이징이 있었다. 같은 축제가 어떤 도시에서는 수백 가구의 이주로, 어떤 도시에서는 수십만 명의 이주로 기록되었다. 이 격차는 올림픽의 성격이 아니라 그 도시가 이주의 비용을 사업 장부에 올렸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만들 수 없는 그릇, 지울 수 없는 골목
天下神器,不可爲也,不可執也。爲者敗之,執者失之。(천하신기,불가위야,불가집야。위자패지,집자실지。) “천하는 신령한 그릇과 같아서 억지로 만들 수 없고 움켜쥘 수 없다. 억지로 하는 자는 그르치고, 움켜쥐는 자는 잃는다.”¹⁰
노자가 그릇에 빗댄 것은 천하, 곧 정치 공동체였다. 그러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을 날짜에 맞춰 완성하려는 손에도 같은 경고는 닿는다. 도시는 도면처럼 한 번에 그려지지 않고, 서두르는 손이 먼저 닿는 곳은 늘 가장 약한 이음매다.
서양에서 같은 경고를 가장 집요하게 남긴 사람은 도시 사상가 제인 제이콥스다. 그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961)에서 낡은 동네를 한꺼번에 밀고 새로 짓는 대규모 재개발을 비판했다.¹¹ 그가 본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계획서가 아니었다. 거리를 오가는 이웃의 눈, 오래된 가게, 값싼 낡은 건물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여지였다.
철거는 이 보이지 않는 안전망을 한꺼번에 지운다. 손님의 눈에 달동네의 골목은 낡아 보인다. 그러나 짐을 싸는 쪽에게 그 골목은 월세와 일터와 이웃의 눈이 겹쳐 있던 생활의 지반이었다. 억지로 이루려는 자는 그르친다는 노자의 경고와, 이웃의 눈이 거리를 지킨다는 제이콥스의 관찰은 동서의 거리를 넘어 같은 곳을 가리킨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장부에 적히지 않은 이름들
서울 1988과 베이징 2008, 그 사이 20년의 간격에서 같은 장면이 되풀이된 데에는 세 겹의 패턴이 있다.
첫째, 마감이 생기면 줄어드는 것은 절차다. 올림픽의 날짜는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바뀌는 것은 협의, 보상, 대안 마련처럼 조절할 수 있는 쪽이다.
마감 자체가 악의는 아니다. 그러나 마감은 늘 가장 조절하기 쉬운 항목, 곧 사람의 시간부터 깎는다.
둘째, 계산서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곳의 짐이 된다. 세입자는 증발하지 않았다. 더 싼 동네, 더 먼 동네로 옮겨 앉아 그곳의 월세와 과밀 속으로 흡수되었다. 이동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전될 뿐이다.
셋째, 이동의 비용이 장부에 오를 때에야 속도가 조절된다. 상계동 이후 보상 기준이 고쳐진 것이 그 예다. 비용이 눈에 보이면 조절할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조절하지 않는다.
여기서 앞으로 한국 사회가 도시를 고쳐 가는 방식에 대한 방향이 나온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하나, 이주 대책을 사업 수지의 맨 앞줄에 올린다. 사업의 인가보다 거주자의 이주 경로가 먼저 계산되어야 한다.
둘, 속도를 정하는 마감과 사람을 정하는 마감을 분리한다. 행사와 목표가 정하는 날짜를 이주의 날짜로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셋, 성공의 지표에 얼마나 지었느냐와 함께 원래 살던 사람이 얼마나 남았느냐를 나란히 올린다. 재정착률이라는 숫자가 공개되지 않는 한 속도는 늘 지은 면적으로만 측정된다.
2026년 10월 현재, 이 질문은 국회 안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주택 공급을 늘리고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높이겠다고 보고했다.¹² 정부는 공공분양·공공임대를 주축에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야권은 민간 정비사업의 용적률 규제를 풀고 공공임대 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¹³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규제를 풀어 속도를 높일 때 기존 거주민의 이주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¹⁴ 어느 설명이 옳은지는 이 글이 가릴 일이 아니다. 다만 공공이 짓든 민간이 짓든, 속도를 정하는 모든 계획서에는 같은 칸이 비어 있지 않은지 물어야 한다. 이사 가는 사람의 자리다.
이삿짐을 싸는 쪽에서 본 계획서
계획서는 대개 위에서 아래로 읽힌다. 면적, 세대 수, 준공 연도. 도시를 설계하고 승인하는 자리에서는 자연스러운 순서이고, 이 숫자들이 틀렸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같은 계획서를 이삿짐을 싸는 쪽에서 읽으면 전혀 다른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사 날짜, 보증금, 새 동네까지의 거리, 아이가 다닐 학교 같은 것들이다. 출근길이 얼마나 길어지는지, 외상을 받아 주던 가게와 얼마나 멀어지는지, 이웃에게 맡기던 아이를 이제 누구에게 맡기는지도 그 숫자에 들어 있다. 제이콥스가 말한 이웃의 눈과 오래된 가게는 이삿짐 쪽에서 보면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의 다른 이름이다. 한 가구의 이삿짐은 그 가구의 하루 동선과 관계망이 통째로 옮겨지는 일이다.
1988년의 올림픽은 16일 만에 끝났다. 그 16일을 위해 비워진 집들은 16일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 서울에서 가장 열악한 달동네였던 상계동에는 1980년대 후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그 단지들은 이제 재건축 연한을 넘겨 다시 정비를 기다리고 있다.¹⁵ 한 번 지어진 도시가 다시 짐을 싸게 하는 순환 속에서, 이번에는 짐을 싸는 사람이 그 이유를 쓰는 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빈칸을 계속 바라볼 것이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 참고할 말씀: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 레위기 25:23
¹ 후통 철거 표시 ‘拆’와 베이징 올림픽 전후 철거: Michael Meyer, The Last Days of Old Beijing (Walker & Company, 2008).
² COHRE, Fair Play for Housing Rights: Mega-Events, Olympic Games and Housing Rights (제네바, 2007.06.05). 베이징 125만 명(2007.06 기준), 서울 72만 명, 최근 20년 200만 명 이상은 모두 COHRE의 추산이며 정부 공식 통계가 아님.
³ 중국 외교부 대변인 발언, AP 통신 2007.06.05 보도.
⁴ 1981년 9월 IOC 총회(바덴바덴)의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결정.
⁵ 주간경향, 「’압축적 재개발’ 땜질식 처방이 고작」(2010.01.28): 1983년 목동 공영개발, 1984년 합동재개발 도입, 철거민 투쟁 이후 보상 기준 마련·개정.
⁶ 상계동 형성 경위: 서울시 및 상계동 관련 자료(위키백과 ‘상계동’ 항목 등 참조).
⁷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명동성당 농성투쟁 상황일지」(노컷뉴스 보도 인용).
⁸ 김동원 감독, 〈상계동 올림픽〉(1988).
⁹ COHRE(2007) 및 Forced Migration Review 소개 기사: 바르셀로나 선수촌 부지 400여 가구, 애틀랜타 약 3만 명 추산.
¹⁰ 『도덕경』 29장.
¹¹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Random House, 1961).
¹² 국토교통부 국정감사 업무보고(2026.10.07), SBS Biz 보도.
¹³ 시대일보 2026.09.22; 뉴시스 2026.01.30(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발언).
¹⁴ 부동산 정책 토론회 발언 보도(쿠키뉴스).
¹⁵ 한경 매거진 「임장생활기록부 ⑭ 상계·창동」(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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