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정은 평등했고, 주소는 그렇지 않았다
학군을 따라 짐을 싸는 마음 — 맹모삼천지교에서 대치동까지
2026.10.13 · 역사 · 한국현대사 · 한국현대-이사-⑤
이삿짐보다 먼저 정해지는 것
신학기를 앞둔 겨울이면 한국의 전세 시장이 먼저 움직인다. 아이의 배정 통지서가 나오기도 전에 부모들은 ‘어느 학교로 배정될 주소인가’를 기준으로 계약서를 쓴다. 이 나라에는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는 뜻의 ‘초품아’라는 말이 있고, 만 네 살 아이가 입학시험을 치르는 ‘4세 고시’라는 말까지 생겼다. 아이의 학교보다 먼저 정해지는 것은 주소다.
이 장면을 요즘 부모들의 유난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이 이사에는 오십 년 가까운 이력이 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복덕방과 평수의 셈법이 만든 이사를 살펴보았다. 그보다 앞에서는 철거로 쫓겨나는 이사를 보았다.
이번 이사의 이유는 또 다르다. 쫓겨나서도, 오르려고도 아니다. 아이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들은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다. 옮기지 않으면 아이의 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계산이 그들에게 이삿짐을 싸게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동의 이유는 이렇게 계속 바뀌었고, 이동 자체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추첨이 평등을 가져오자, 격차는 동네로 옮겨갔다
1969년 서울에서 중학교 무시험 진학이 시작되었고, 1974년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고교평준화가 시행되었다. 입시 과열을 식히고 학교의 서열을 지우겠다는 취지였다. 학교는 이제 시험이 아니라 추첨과 학군이 배정했다. 한 줄로 서 있던 명문고의 서열은 제도로 지워졌다.
그러나 서열이 지워진 자리에는 새로운 서열이 들어섰다. 학교를 고를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배정 지도에서 좋은 학교와 맞닿은 주소를 골랐다. 학교를 고를 수 없게 되자, 학교가 있는 동네를 고르게 되었다.
여기에 도시 계획이 겹쳤다. 1970년대 서울은 강북 도심의 과밀을 풀기 위해 한강 이남 개발을 밀어붙였고, 1976년 학군 개편으로 강남·서초 일대는 제8학군이 되었다. 강북의 명문 고교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 무렵까지 줄지어 강남으로 옮겨갔다. 학교를 따라 집이 오고, 집을 따라 학원이 왔다.
1979년 대치동에 4,424가구 규모의 은마아파트가 들어섰고, 1980년대를 지나는 동안 그 일대는 학원가의 이름이 되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숫자로 남아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대치동의 학원은 1,296개로, 반포동(303개)의 네 배를 넘는다.¹ 8학군은 행정 구역의 이름이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표의 이름이 되었다.
대서양 건너에서도 같은 계산이 돌고 있었다
이 마음에는 이미 오래된 이름이 있다. 맹모삼천지교다. 다만 이 이야기는 『맹자』에 나오지 않는다. 한(漢)나라 유향이 엮은 『열녀전』이 전한다.² 맹자의 어머니는 처음에 묘지 가까이 살았고, 아이가 장례 흉내를 내자 시장 곁으로 옮겼다. 아이가 장사꾼 흉내를 내자 다시 학궁(學宮), 곧 학교 곁으로 옮겼다. 처음 두 집에서 어머니는 같은 말을 했다.
此非吾所以居處子也。(차비오소이거처자야。) “이곳은 내가 자식을 살게 할 곳이 아니다.”
이 문장은 주소를 정하는 것이 풍경이 아니라 부모의 계산이라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오늘의 부모가 갖지 못한 한 줄이 있다. 맹모는 세 번째 집에서 멈추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이 마음이 경제학의 언어가 되어 있었다. 1956년 찰스 티부는 시민이 지방정부의 서비스를 보고 거주지를 고른다는 ‘발로 하는 투표’를 이론으로 정리했다.³ 1970년대의 미국은 그 이론이 현실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 실험실이었다.
학교는 지역 재산세로 운영되었다. 집값이 높은 학군은 학교 재정이 풍부했고, 풍부한 학교는 다시 집값을 밀어 올렸다. 1971년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은 세라노 대 프리스트 판결에서 이 구조를 위헌으로 보았다. 그러나 1973년 연방대법원은 샌안토니오 교육구 대 로드리게스 사건에서 5대 4로 재산세 기반의 재정 격차를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974년 밀리켄 대 브래들리 판결 역시 5대 4로, 도시와 교외 학군의 경계를 넘는 통합 버스 배정을 막았다.⁴ 학군의 경계는 행정선을 넘어 계급과 인종을 가르는 선으로 굳어졌다.
1999년 경제학자 샌드라 블랙은 같은 학군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집들을 비교했다. 동네의 다른 조건을 걷어내고 나서도, 시험 점수가 5퍼센트 높은 학교 쪽 집은 대략 2.1퍼센트 비쌌다.⁵ 걷어내기 전의 단순 비교에서는 격차가 4.9퍼센트였다. 학교의 질은 집값에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미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영국의 공립학교는 지역 재산세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재원에 기대어 운영되는데도, 시험 성적이 좋은 초등학교 곁의 집은 값이 올랐다. 2006년 스티븐 기번스와 스티븐 매친은 학교의 성적이 주변 주택 가격을 유의하게 끌어올린다는 것을 보였다.⁶ 인기 학교의 배정 구역 안에 들어서는 일이 집값의 일부가 된 것이다.
한국은 이 대목에서 미국과 다르다. 한국의 학교 재정은 동네 집값에 그렇게 직접 묶여 있지 않다. 그런데도 결과는 같았다. 재산세로 학교를 먹이지 않는 나라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면, 원인은 세제가 아니라 계산의 형식에 있다. 부모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은 같은 계산을 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막힌 선택은 사라지지 않고 주소로 흘러든다
1980년 7월 30일의 교육개혁은 대학별 본고사를 없애고 과외를 전면 금지했다. 사교육 의존을 끊겠다는 취지였다. 이 금지는 2000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풀릴 때까지 이십 년 동안 유지되었다.⁷ 그러나 금지된 과외의 수요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수요는 학원으로, 그리고 음성적인 개인 교습으로 흘러들었다.
두 장면을 겹쳐 보자. 1974년에는 학교를 고르는 통로를 막자 선택이 주소로 옮겨갔다. 1980년에는 과외라는 통로를 막자 선택이 학원과 지하로 옮겨갔다. 두 번 모두 조정된 것은 선택의 통로였고, 한 줄로 서서 오르는 사다리 자체는 그대로였다. 사다리의 칸이 희소하면 그 칸으로 가는 길에는 값이 붙는다. 길을 하나 막으면 값은 다른 길에 붙는다. 막힌 선택은 사라지지 않고, 가격이 붙는 가장 가까운 통로로 옮겨 간다.
같은 문화권의 중국에서는 이 주소를 學區房(학구방)이라 부른다. 같은 현상에 이름이 따로 붙어 있다는 것은, 이것이 한 나라의 병이 아니라 사다리의 구조에서 나오는 모양이라는 방증이다.
이 이사에는 비용이 있다. 전학 서류 한 장, 아이가 사귄 친구, 부부의 출퇴근 시간. 학군을 따라 짐을 싸는 가족은 그 비용을 알면서 치른다. 알면서 치르는 이유가 사랑이라는 데서, 이 패턴은 더 단단해진다.
맹모는 세 번에서 멈췄다
맹모가 멈출 수 있었던 것은 기준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학궁(學宮) 곁이면 충분했다. 오늘의 학군에는 ‘충분’이 없다. 기준이 상대적이어서, 한 칸 오르면 다음 칸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한국의 이사는 종착이 없다.
같은 1970년대에 핀란드는 다른 길을 택했다. 당시 핀란드에는 아이들의 진로를 일찍 두 갈래로 나누는 학제가 있었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이 학제를 단계적으로 걷어내고, 모든 아이가 같은 9년제 종합학교에 다니도록 했다.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수준 차이가 크지 않도록 학교의 질을 고르게 끌어올리는 데 국가의 힘을 쏟았고, 교사 양성의 수준도 함께 높였다.⁸
한국도 같은 시기에 평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한국이 균등하게 만든 것은 학교의 질이 아니라 배정 방식이었다. 어느 학교에 배정되든 비슷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자리 잡지 못했고, 학교 바깥의 격차는 손대지 못한 채 남았다.
그래서 두 사회의 부모는 서로 다른 질문 앞에 섰다. 한국의 부모에게 먼저 던져진 질문은 ‘어느 학교에 배정될 주소인가’였지만, 핀란드의 부모에게는 그 질문의 무게가 훨씬 가벼웠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배정의 평등에 매달린 사회는 부모들에게 사실상 ‘주소를 사라’고 가르쳤고, 학교 자체의 질을 평준화한 사회는 주소에 붙는 값을 풀어냈다.
물론 핀란드의 길이 그대로 한국에 옮겨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같은 평등을 말하면서도 무엇을 평등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부모의 계산이 달라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방향은 여기서 갈린다. 첫째, 평등의 단위를 배정에서 학교의 질로 옮겨야 주소에서 가격을 뗄 수 있다. 학교 간 격차를 줄이는 일은 추첨 방식을 고치는 일과 다르다. 둘째, 사다리의 폭을 넓혀야 한다. 한 줄로 세우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통로를 막고 여는 정책은 값이 붙는 자리를 옮길 뿐이다. 이 구조는 한 세대에 걸쳐 만들어졌으니, 푸는 데도 한 세대의 시간이 든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이다.
이 패턴의 가장 최근 증거는 숫자에 있다. 합계출산율이 0.7명대(2023년 0.72명)로 내려간 사회에서 ‘4세 고시’가 통용된다. 아이가 귀해질수록 한 아이에게 거는 판돈은 커지고, 판돈이 커질수록 주소의 값은 내려오기 어렵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삿짐을 싸는 가족이 아니라 그 가족에게 계산을 강요하는 구조다. 맹모는 세 번에서 멈췄다. 우리는 지금 몇 번째 이사 중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질문을 되묻는 데서 시작한다.
* 참고할 말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잠언 22:6
¹ 헤럴드경제, 「2000만원이던 ‘대치 은마’ 어떻게 100억 펜트하우스 됐나」, 2026.1.13. (1,296개는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집계를 인용한 수치이며 ‘지난달 말’ 기준으로 보도됨. 반포동 303개는 별도 출처 표기 없음)
² 劉向, 『列女傳』 권1 「母儀傳」 鄒孟軻母.
³ Charles M. Tiebout, “A Pure Theory of Local Expenditure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64(5), 1956.
⁴ Serrano v. Priest, 5 Cal.3d 584 (1971); San Antonio Independent School District v. Rodriguez, 411 U.S. 1 (1973); Milliken v. Bradley, 418 U.S. 717 (1974).
⁵ Sandra E. Black, “Do Better Schools Matter? Parental Valuation of Elementary Education,”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14(2), 1999.
⁶ Stephen Gibbons & Stephen Machin, “Paying for Primary Schools: Admission Constraints, School Popularity or Congestion?” The Economic Journal 116(510), 2006, C77–C92.
⁷ 1980.7.30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헌법재판소 2000.4.27. 98헌가16 등.
⁸ Aho, Pitkänen & Sahlberg, Policy Development and Reform Principles of Basic and Secondary Education in Finland since 1968, World Bank,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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