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과 국가의 계약

새벽 짙은 안개 속에 끝없이 이어진 비무장지대(DMZ) 철조망 라인과 그 앞에 멈춘 전투화 발자국 하나, 그리고 낡은 경고 표지판.
지뢰밭의 침묵: 국경에서 멈춰 선 위험의 흔적 (DMZ 새벽)

지뢰밭과 국가의 계약

국경에서 위험을 위임받은 자에게, 국가는 무엇을 갚는가

2026.09.28 · 경제·국방


금융시장에서 신뢰가 자금의 흐름을 결정하듯, 국경에서의 신뢰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결정한다. 지난 편에서 우리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보이지 않는 자금이 국가 간 신뢰 구조 위에서만 움직인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같은 질문을 국경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다시 던진다.

2026년 9월 19일, 비무장지대 안에서 지뢰가 터졌다. 보도에 따르면 사상자 규모에 대한 초기 집계가 몇 시간 만에 번복되었고, 군사분계선과의 거리에 대한 설명 역시 혼선을 빚었다. 사고 그 자체보다 오래 남은 것은 “군은 왜 뒤늦게, 그리고 엇갈린 설명을 내놓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낯설지 않다. 11년 전에도 같은 침묵의 구조가 있었다. 그때는 지뢰가 장병의 신체를 앗아갔다면, 이번에는 미흡한 설명이 국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15년 8월, 다리를 잃은 자리에 남은 질문

2015년 8월(경기 파주 DMZ 수색로) 하재헌 당시 하사가 목함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사건 직후 군은 대응 매뉴얼과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두고 발표를 여러 차례 수정했고, 정작 하 하사 본인은 이후 ‘전상(戰傷)’이 아닌 ‘공상(公傷)’ 판정을 받아 오랜 기간 다퉈야 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이 그 행위의 법적 성격마저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는 사실은, 이 사회가 위험을 위임한 개인에게 어떠한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2026년의 사고와 2015년의 사건은 폭발물이 아니라 설명의 리듬에서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사고 발생 → 불완전한 초기 발표 → 정정 → 정치적 공방 → 정작 당사자에 대한 예우는 뒷전이라는 순서다. 이 반복을 곧장 ‘의도적 은폐’로 단정할 근거는 없다. 국경 최전선의 사고는 통신·지형·작전보안이라는 조건 때문에 정보가 파편적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문제는 은폐냐 혼선이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그 공백을 메우는 절차가 매번 같은 자리에서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다.

법가와 사회계약, 신뢰를 증명하는 두 가지 문법

한비자는 상과 벌이 반드시 실행되어야 법이 선다고 말했다.

信賞必罰(신상필벌) — “상과 벌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법이 선다.”
— 한비자, 「한비자」 二柄편

그가 강조한 것은 상벌의 크기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었다. 이 원리를 사고 초기 발표에 대입하면, 중요한 것은 첫 발표가 완벽했는가가 아니라 이후의 정정이 일관된 기준을 따랐는가다. 발표가 몇 시간 만에 바뀌는 것보다, 왜 바뀌었는지를 설명하는 기준 자체가 매번 달라지는 것이 신뢰를 갉아먹는다.

토마스 홉스는 또 다른 시각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이 자연 상태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한다고 설명했다. 이 계약의 대가는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하나다. 여기서 홉스의 논리가 정확히 들어맞는 자리는 발표의 속도가 아니라 보상과 예우다. 국경에서 다치거나 죽은 이에게 국가가 신속하고 일관된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이는 국가의 신속한 의무 이행이라기보다 사회계약의 조건이 사후에 불리하게 재협상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일 수 있다.

이러한 계약 이행 방식은 다른 나라의 제도와 대비해 볼 여지가 있다. 미국은 전투 중 부상이 인정될 경우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하는 제도를 두고 있고, 국방부 브리핑은 현장 확인이 끝나지 않은 사안을 두고 “조사 중(Under Investigation)”이라는 표준 표현을 쓰는 관행을 유지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전상·공상 판정을 둘러싼 분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초기 발표 단계에서 불확실한 수치를 서둘러 확정하기보다 “확인 중”이라는 상태 자체를 먼저 공표하는 절차가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은, 발표의 정확성과 발표의 신속성 사이에서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참고점이 될 수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보의 공백이 만드는 정쟁의 자리

2026년 사고 이후 여야는 각각 ‘안보 정쟁화’와 ‘증거 인멸 의혹’을 주고받았다. 이 공방을 정치권의 습성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정치권의 책임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양방향의 문제다 — 군 행정의 정보 공백이 불신이라는 원료를 제공하고, 정치권은 그 원료를 정쟁의 언어로 소비한다. 둘 중 하나만 지목하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안보 사안의 정쟁화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패턴은 예외가 없다. 정보 공백이 먼저 있고,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정쟁이다. 11년 전 하재헌 중사의 판정이 수년째 다투어진 것도, 2026년 사상자 수가 몇 시간 만에 바뀐 것도, 결국 같은 뿌리 — 국가가 위기의 순간에 신뢰할 수 있는 속도와 기준으로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는 것 — 로 수렴한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국경의 지뢰는 눈에 보이지 않게 설계된 무기다. 그런데 이 사회가 진짜로 밟아온 것은 땅속의 지뢰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마다 반복되어 온 침묵과 정정의 패턴이었을지 모른다. 국가가 위험을 위임받은 이들에게 지는 책임을 사고가 날 때마다 새로 협상하듯 다뤄야 한다면, 그 계약은 애초에 얼마나 튼튼했던 것일까. 이 기록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매번 개별 사건만을 바라보았는가, 아니면 반복되어 온 체계적 패턴을 외면해 왔는가.

* 참고할 말씀: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 잠언 14:34

1. 뉴스1, “[팀장칼럼] DMZ 폭발 사고, 군은 의혹에 답해야 한다”, 2026.09.
2. 뉴스토마토, “DMZ 지뢰사고 놓고 공방… 여 ‘안보 정쟁화’ 야 ‘증거 인멸'”, 2026.09.
3. 한국경제, “[천자칼럼] 목함지뢰”, 2015년 사건 관련 기사.
4. 민들레, “‘DMZ 지뢰 참사’ 앞에서 진짜 물어야 할 것들”.
5. 한비자, 「한비자」 二柄편, 신상필벌 사상.
6.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사회계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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