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시에 나가야 탈 수 있는가 — 만원버스가 가르친 셈법
1970년대 안내양부터 오늘 9호선까지, 몸으로 통과한 압축성장
역사 · 한국현대사 · 한국현대-줄-④ · 2026.09.12
문이 닫히지 않는다
아침 8시, 지하철 9호선 승강장에서 사람들은 문이 완전히 닫히기를 포기한다.
패딩 점퍼 자락이 문틈에 끼이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누군가의 가방이 문 사이에 걸려 열림 버튼이 다시 눌린다.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와 등을 밀치면서도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한 채다. 감정 없는, 거의 기계적인 몸짓이다.
안내 방송은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를 반복하지만, 아무도 다음 열차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장면을 처음 만든 것은 지하철이 아니었다.
1970년대 서울의 새벽, 정류장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은 버스 한 대가 완전히 찰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버스가 이미 가득 찬 상태에서 억지로 몸을 밀어 넣는 쪽을 선택했다.
제때 타지 못하면 그날 하루의 일정이 늦어질 수 있었고, 그렇게 늦어진 하루가 쌓이면 한 달의 생계까지 흔들릴 수 있었다.
정시 출근이라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아끼려 할수록, 한 사람이 점유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반대로 압축되었다. 시간의 셈법은 결국 몸을 구겨 넣는 공간의 셈법으로 바뀌었다.
줄은 순서를 기다리는 행위가 아니라, 순서를 포기하는 훈련이었다.
안내양이 등을 떠밀던 시절
1961년 6월 17일, 교통부는 버스에 여성 차장, 이른바 ‘안내양’ 제도를 도입한다.1 표면적인 업무는 요금 수납과 하차 안내였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이들에게 부여된 역할은 따로 있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버스 안으로 승객을 밀어 넣는 일, 그리고 문틈에 매달린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몸으로 막아서는 일이었다.
1971년 기준 안내양의 수는 3만 3,504명까지 늘었고, 1970년대 중반에는 5만 명 수준에 달했다.1 이 시기 버스 운수업 종사자들은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버스 안을 “콩나물시루”에 비유했다.2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내양을 단순히 승객을 밀어 넣는 가해자로만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대다수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십 대 여성이었고, 근무 중 몸수색을 당하거나 요금 계수를 의심받는 등 스스로도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다.3
밀어 넣는 손이면서 동시에 밀려나는 몸 — 안내양은 이중의 압축을 통과한 존재였다. 이들의 노동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구체적인 사례로 확인된다.
1964년 1월 16일 새벽 2시, 서울 영등포구 신대방동의 한 버스회사 소속 안내양 74명이 합숙소를 집단으로 뛰쳐나왔다.8 이들이 내건 요구는 소박했다 — 매질을 일삼는 감독을 해고할 것, 하루 18시간에 이르는 노동에 대해 일급을 50원 올려줄 것, 급식을 충분히 해줄 것.
당시 안내양의 평균 근무시간은 18~21시간, 이틀 근무하고 하루를 쉬는 방식이었다.9 회사 측은 이 요구에 폭력으로 대응했다.8
같은 해 서울 시내버스 업자들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입건·기소된 것은 ‘우리나라 노동사상 처음’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인 1965년 YWCA는 이들의 노동 실태를 별도로 조사했다.4
1970년 4월 1일, 서울시는 시내버스 노선번호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5 경인·경수 지역 공단으로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도시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방식 자체를 산업 동선에 맞춰 다시 설계한 조치였다.
이 위험은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안내양은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버스에 승객을 마저 밀어 넣는 동안, 정작 자신은 버스 출입구 손잡이 하나에 의지해 달리는 차 밖으로 몸을 반쯤 내놓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10 두 팔로 아직 올라타지 못한 승객을 밀어 넣는 사이, 몸의 절반은 이미 도로 위 허공에 걸쳐 있었던 셈이다.
이런 자세로 출퇴근길을 오가다 손을 놓치거나 몸이 기울어 추락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고가 드물지 않게 보도되었다.11 이들의 노동은 오늘날의 언어로는 산업재해였지만, 당시의 언어로는 그저 “밀어 넣는 일”이었다.
도쿄도 같은 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한국이 안내양을 통해 만원버스를 밀어냈던 그 시기, 도쿄 역시 이미 15년 전부터 같은 과열을 견뎌내고 있었다.
1955년 10월, 신주쿠역은 러시아워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여객정리계학생반’을 투입한다. 이들이 승객을 열차 안으로 밀어 넣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이들을 ‘오시야(押し屋, 미는 사람이라는 뜻)’라 부르기 시작했다.7
일본의 고도성장기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도쿄의 일부 노선에는 오시야가 남아 있다. 한국의 안내양 제도가 1989년 자동문 도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과 달리, 오시야라는 이름의 노동은 지금도 도쿄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다.
다만 두 존재의 위치는 정확히 같지 않다. 도쿄의 오시야는 철도회사가 외부에서 고용해 승객을 밀어 넣는 ‘시스템의 손’이었던 반면, 서울의 안내양은 시스템에 눌린 약자가 다시 다른 약자의 몸을 밀어 넣어야 했던 존재였다. 압축은 같았지만, 그 압축이 통과하는 몸의 위치는 달랐다.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은 두 도시 사이의 시간차다. 도쿄가 먼저 밀어 넣었고, 서울이 그 뒤를 따라 밀어 넣었다. 압축성장이라는 단어로 두 나라를 함께 부르는 순간, 이 시차는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산업화가 도시에 요구하는 것은 언제나 같았다. 더 많은 사람을, 더 짧은 시간에, 같은 문으로 통과시킬 것. 그 요구 앞에서 도쿄와 서울은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른 몸을 통해 같은 대답을 만들어냈다.
기다림이 아니라 밀림이었다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짚어온 것은 ‘무엇을 기다렸는가’였다. 그런데 만원버스 줄은 이 질문의 방향을 살짝 비튼다. 여기서 줄은 기다림의 형식이 아니라, 밀림의 순서를 정하는 형식이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배급 줄에서 무엇을 기다렸는지를 살펴보았다. 만원버스 줄은 다르다. 여기서 사람들이 기다린 것은 국가가 아니라 ‘자기 차례의 문’이었고, 그 문은 국가가 아니라 산업의 시간표가 정했다.
1970년대 한국의 버스 정류장, 1950~60년대 도쿄의 승강장, 그리고 오늘 아침 9호선의 승강장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언어를 쓰지만 같은 문법을 공유한다. 줄의 끝에서 사람이 결정하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 얼마나 밀려 들어갈 것인가다.
지금 우리는 무엇에 떠밀리고 있는가
안내양은 사라졌고, 만원버스는 콩나물시루라는 비유와 함께 흑백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문이 닫히지 않는 순간, 그 앞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 도시에는 밀어 넣을 안내양이 없다. 대신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자산 형성의 문이 좁아졌다는 불안 속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끌어 쓰는 모습이 그렇다. 일감이 줄어들까 두려워 스스로 노동 시간을 늘리는 플랫폼 노동자의 일상도 그렇다. 정치적 전환기마다 “이번에는 다르겠지”라며 다시 줄을 서는 유권자들의 행렬도 다르지 않다.
이 도시는 여전히, 문이 닫히기 전에 몸을 밀어 넣어야 무언가를 얻는 구조로 돌아간다.
역사가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묻는 것은 하나다. 문의 크기를 넓히는 방법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더 빨리 밀고 들어가는 방법을 계속 훈련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사회가 걸어온 궤적만큼은 분명히 읽힌다. 좁은 문 앞에서 밀어 넣는 기술만 정교해졌을 뿐, 문 자체를 넓히는 기술은 뒤처져 있었다.
* 참고할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적음이라’ — 마태복음 7:13-14
1. 「버스안내양」,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theme.archives.go.kr
2. 「70~80년대 활동했던 실제 버스안내양 등장」, 한강타임즈, 2011
3. 조민지, 「1960~70년대 버스안내원 직종의 여성화와 ‘여성적인’ 서비스의 의미」, 여성학연구 34권 1호, 2024
4. 「직장 내 성폭력에 선구적으로 저항했던 ‘버스안내원’」, 경향신문, 2024
5. 「1970년 서울시내버스 노선번호 개편」, 위키백과
6. 「푸시맨」, 위키백과
7. 「신주쿠역」 연혁, 위키백과
8. 「알몸수색에 매질… 18살 희진의 직장에서 벌어진 일」, 오마이뉴스, 2021
9. 「18시간, 만원 버스 그리고 몸 수색」,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10. 「[라떼는 말이야]버스안내양을 아시나요」, 강원일보, 2024
11. 「[여성과 산업] ⑩ ‘오라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그때 그 소녀들, ‘버스안내양’」, 우먼타임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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