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죽음을 세어 본 왕

칼링가 전쟁 뒤 검을 내린 채 강 건너 포로 행렬과 불타는 마을을 바라보는 아소카왕을 묘사한 이미지
칼링가 전쟁 이후를 상상한 장면. 검을 내린 왕 너머로, 삶의 터전을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남의 죽음을 세어 본 왕

『아소카』(2001)와 칼링가 전쟁, 칙령이 남긴 숫자

영화로 떠나는 세계사 · 시네마-④ · 인도

2026.11.01 · 세계사 · Watchman


칼은 물속으로 떨어진다

2001년 10월 26일 개봉한 인도 영화 『아소카』¹는 칼 한 자루로 시작해 칼 한 자루로 끝난다. 첫 장면에서 늙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자이나교에 귀의하며 칼을 물에 던진다. 어린 손자 아소카에게는 이 칼이 피를 요구한다고 일러 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손자는 칼링가의 전장에 서 있다. 사랑하는 여인 카우르와키는 부상을 입었고, 그녀의 어린 동생 아리아가 아소카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영화는 아소카가 적과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자신이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 것으로 그린다. 그는 할아버지가 섰던 물가에서 칼을 던진 뒤 불교에 귀의한다.

이 장면에서는 누구의 죽음이 아소카를 변화시키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칼링가는 얼굴 몇 개로 줄어들어 있다. 공주 카우르와키, 어린 왕자 아리아, 수호자 비마. 영화는 전쟁의 고통을 주로 이 세 사람을 통해 보여 준다. 반면 아소카의 칙령이 전하는 칼링가에는 개인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피해의 규모를 나타내는 숫자가 먼저 나온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사극 『미월전』이 사료의 빈칸을 사랑으로 채우는 방식을 살폈다. 나라를 세운 어머니, 사랑이 된 정치에서 본 그 장치가 이번 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영화 『아소카』는 빈칸을 채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참회의 이유 자체를 사랑으로 바꿔 놓는다. 왜 왕은 칼을 놓았는가. 영화는 사랑하는 이들이 죽었기 때문이라 답하고, 아소카 자신은 전혀 다른 문장으로 답했다.

두 가지를 먼저 밝혀 둔다. 하나, 아소카에 관한 자료는 층위가 다르다. 왕의 이름으로 공표된 칙령은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이지만, 왕이 자신을 어떻게 보이고자 했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이기도 하다. 후대 불교 문헌은 아소카가 죽은 지 수백 년 뒤에 쓰였고,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신앙의 서사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두 자료군의 성립 시기와 성격을 구분해 살핀다.

둘, 사료에 없다고 해서 영화의 장면을 곧바로 거짓이라 단정하지 않는다. 역사극은 사료가 침묵한 곳을 상상으로 메우는 장르다. 여기서 살피려는 것은 그 상상이 사료의 어떤 대목을 대신하고,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이다.

돌이 말하는 것 — 칙령 제13장

아소카는 제국의 바위와 돌기둥에 자기 목소리를 새겼다. 인도 아대륙에서 해독되는 가장 이른 대규모 문자 기록군이고, 왕의 이름으로 직접 말하는 거의 유일한 자료다. 바위에 새긴 것이 마애법칙, 돌기둥에 새긴 것이 석주법칙이다. 칼링가를 다루는 것은 대마애법칙 제13장이다.²

데바남피야 피야다시 왕이 대관한 지 여덟 해가 되었을 때 칼링가가 정복되었다. 그곳에서 십오만 명이 끌려갔고, 십만 명이 죽임을 당했으며, 그 여러 배가 죽었다.

그때 칼링가에서 죽고, 죽임을 당하고, 끌려간 사람들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지금 데바남피야에게는 깊이 아픈 일이다.

— 아소카 대마애법칙 제13장, 샤흐바즈가리 판본 (필자 의역)

이 짧은 문장들에서 영화와 어긋나는 지점이 셋 보인다.

첫째는 순서다. 끌려간 사람이 맨 앞에 온다. 십오만이라는 숫자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끌려간 사람의 수다. 영화가 보여 주는 것은 학살뿐이고, 강제 이주는 화면에서 지워졌다. 끌려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칙령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는 아픔의 대상이다. 칙령이 죽음의 숫자보다 더 가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끊어진 관계다. 바라문과 사문을 비롯해,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며 벗과 친척, 종을 아끼던 사람들이 그 대상으로 나온다. 칙령은 전쟁이 이들의 삶을 지탱하던 관계까지 무너뜨렸다고 말한다. 아소카가 헤아린 것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영화는 거꾸로 간다. 왕이 사랑한 사람이 죽어야 깨달음이 온다. 칙령의 윤리는 낯선 이의 고통이 내 것이 되는 길이고, 영화의 윤리는 내 고통이 낯선 이의 고통을 대신하는 길이다.

셋째는 후회가 무장 해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칙령에서 왕은 용서할 수 있는 일은 용서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면서도 영토 안의 숲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참회하고 있더라도 처벌할 권한이 있음을 경고한다. 법으로 이기는 것이 으뜸가는 승리라는 선언도 이 칙령에 있다. 이 승리가 남쪽의 촐라와 판디아, 그리고 육백 요자나 밖 안티오코스와 그 너머 네 왕의 땅까지 닿았다는 주장이다. 안티오코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안티고노스 고나타스, 마가스, 알렉산드로스로 비정되는 이름들이다.³

이 왕들의 이름은 칙령의 작성 연대를 좁히는 단서가 된다. 대관 8년째라는 기록과 함께 검토하면 칼링가 전쟁은 기원전 261년경으로 추정되고, 262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만 아소카의 사절이 그 궁정들에 실제로 닿았다는 기록은 그리스 쪽 사료에서 알려져 있지 않다. 법의 정복이라는 말에는 사실의 보고와 자기 홍보가 함께 들어 있다.

회한은 형벌 제도도 없애지 않았다. 석주법칙 제4장은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에게 사흘의 유예를 주라고 명한다.⁴ 사형제가 남아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쓰일 수 있는 문장이다.

사상자의 규모를 가늠할 외부 단서도 드물다. 메가스테네스의 보고를 전한 후대 기록이 칼링가 왕의 상비군을 보병 6만, 기병 1천, 코끼리 700으로 적었을 뿐이다.⁵ 칙령의 사상자 수는 왕 자신의 자기 보고이고, 독립적으로 검증할 길은 마땅치 않다.

그리고 정작 칼링가에는 이 칙령이 없다. 옛 칼링가 땅인 돌리와 자우가다의 바위에는 제13장 대신 별도의 칙령 두 편이 새겨져 있다. 거기서 아소카는 “모든 사람은 내 자식”이라고 말하고, 자식에게 바라는 복락을 모든 사람에게 바란다고 한다.⁶ 참회의 칙령은 먼 곳에 서고, 피해자가 사는 땅에는 아버지의 문장이 선 것이다.

이 칙령이 칼링가에 새겨지지 않은 이유를 두고는 학자들의 설명이 엇갈린다. 피정복민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라는 설도 있고, 칙령 몇 편이 한꺼번에 새겨져 보내지던 작업 사정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결과는 분명하다.

불교에 귀의한 과정도 영화처럼 한순간의 사건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제13장이 말하는 것은 ‘담마(법)에 대한 열의’이지 불교 개종이 아니다. 불교 귀의를 직접 말하는 것은 소마애법칙인데, 아소카는 재가 신자가 된 지 2년 반이 넘었고 처음 1년은 열심이지 않았으며 그 뒤로 승가에 가까워졌다고 적는다.⁷ 이 칙령에는 칼링가가 나오지 않는다. 두 사건을 하나로 묶는 것은 후대의 읽기이고, 그 선후와 간격은 학계의 논쟁거리다.

전승이 덧붙인 것, 영화가 채운 것

칙령에 없는 이야기는 전승이 한다. 스리랑카의 『디파밤사』와 『마하밤사』, 북방의 『아소카바다나』는 아소카가 죽은 뒤 수백 년이 지나 쓰인 불교 문헌이다.⁸ 이 문헌들에서 아소카는 즉위 무렵 ‘찬다쇼카’, 곧 사나운 아소카였다. 왕위를 위해 이복형제들을 죽였고, 불교에 귀의한 뒤에야 ‘다르마쇼카’, 곧 법의 아소카가 되었다.

숫자가 갈린다. 『마하밤사』는 아흔아홉, 『디파밤사』는 백, 『아소카바다나』는 수시마 한 명을 말하고, 티베트의 타라나타는 여섯을 전한다. 칙령 제5장에는 왕의 형제자매가 언급된다. 형제를 모조리 죽였다는 서술이 그대로 사실이기는 어려운 이유다.

전승이 필요로 한 것은 정확한 사망자 수가 아니라 대비였다. 이 전승들에서 개종의 서사는 죄인을 필요로 한다. 개종 이전의 죄가 클수록 이후의 변화가 더 극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서사조차 귀의 이후의 폭력 일화를 함께 담고 있다. 『아소카바다나』에는 이단을 박해하다 동생 비타쇼카가 오인되어 살해된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영화는 이 ‘사나운 아소카’를 지운다. 계승 다툼의 악역은 형 수시마다. 음모와 암살 시도를 되풀이하는 쪽도 그이고, 아소카의 폭력은 늘 방어나 응징으로 그려진다. 그렇다고 영화의 아소카가 순한 것은 아니다. 연인이 죽었다고 믿은 뒤 그는 웃자인에서 가혹한 진압을 벌이고, 칼링가에서는 그의 군대가 학살에 이른다. 다만 그의 폭력에는 언제나 이유가 붙어 있다.

영화의 아소카는 두 번 변한다. 연인을 잃었다고 믿고 사나워지고, 연인의 동생이 품에서 죽자 순해진다. 두 번 다 상실 때문이다. 사랑은 칼을 들게 한 이유이자 칼을 놓게 한 이유가 된다.

역사가 알렉스 폰 툰첼만은 가디언의 연재 ‘리얼 히스토리’(2008년 8월)에서 이 영화의 파완·카우르와키 로맨스는 통째로 환상이지만 그 밖의 부분은 알려진 사실을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고 평했다.⁹ 사건의 목록만 보면 수긍할 만한 평가다. 그러나 사건을 잇는 이유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와 사료가 맞닿거나 어긋나는 지점을 세 갈래로 나누어 본다.

첫째는 맞닿은 뼈대다. 자이나교 전승은 찬드라굽타가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고 전한다(다만 학계는 이 전승에 신중하다).¹⁰ 비디샤의 데비는 스리랑카 연대기에서 마힌다와 상가미타의 어머니로 나온다. 젊은 아소카가 타크샤실라와 웃자인에 파견되었다는 이야기, 형 수시마와의 계승 다툼도 전승에 있다. 칼링가 전쟁과 참회는 칙령과 전승이 함께 받치는 뼈대다. 이 점에서 영화는 허공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둘째는 이름만 실재하는 것이다. 카우르와키는 아소카의 칙령에 이름이 나오는 유일한 왕비 ‘카루바키’에서 온 이름이다. 알라하바드 기둥의 왕비 칙령에는 ‘둘째 왕비이자 티발라의 어머니인 카루바키’가 등장한다. 이 칙령은 그녀가 베푼 망고 숲과 보시의 집(시주소) 등을 그녀의 공덕으로 기록하라고 관리들에게 지시한다.¹¹ 칙령은 그녀의 출신을 말하지 않고, 칼링가와의 관계도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이름을 가져와 칼링가의 공주로 만들고 ‘파완’이라는 가명의 연인 서사를 얹었다. 칼링가를 여왕이 이끄는 민주적 공동체처럼 그린 것도 뒷받침하는 사료가 확인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칙령에 이름을 남긴 단 한 명의 왕비가, 영화에서는 전쟁의 이유가 되었다.

셋째는 재배치다. 영화의 전쟁은 형제 수기트라의 망명 비호와 연인을 향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칙령은 전쟁의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학계가 거론하는 것은 지정학이다. 칼링가는 마가다 바로 남쪽에서 세 방향이 마우리아 영토에 둘러싸인 채 독립을 유지하던 해안 왕국이었다. 교역로와 남쪽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도 거론되지만 이는 추정이다. 귀의의 시점도 재배치되었다. 영화는 전장의 한 장면에 회심을 압축하지만, 칙령은 몇 해에 걸친 과정을 보여 준다.

영화의 장면사료·전승이 말하는 것성격
칼을 물에 던지는 찬드라굽타자이나교 전승에 만년의 출가가 있으나 칼의 장면과 대사는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전승 +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 설정
카우르와키와 파완의 사랑‘카루바키’는 칙령에 이름이 나오는 유일한 왕비이나 출신과 칼링가와의 관계는 미상이름만 실재
여왕이 다스리는 민주적 칼링가이 글에서 검토한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음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 설정
형제 비호와 복수가 낳은 전쟁칙령은 전쟁의 이유를 말하지 않음동기는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음
학살을 본 아소카의 각성제13장이 대규모 사상·강제 이주와 왕의 회한을 기록전쟁과 회한은 칙령에 기록됨
전장에서의 즉각적 귀의와 칼 던지기관련 칙령은 신앙 실천이 몇 해에 걸쳐 깊어진 과정을 전하며, 처벌권과 사형은 유지됨압축과 변형

힘은 사람을 사물로 만든다 — 베유, 그리고 베버

이 글이 빌리는 렌즈는 둘이다. 시몬 베유는 힘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가를 묻고, 막스 베버는 힘을 쥔 쪽이 무엇으로 통치하는가를 묻는다. 고전은 사실을 대신하는 증거가 아니라, 확인된 사실을 다시 묻게 하는 렌즈다.

베유는 『일리아스』를 읽으며 이 서사시의 진짜 주인공이 영웅이 아니라 힘이라고 보았다.¹²

La force est ce qui fait de quiconque lui est soumis une chose.

“힘이란, 그것에 복종하는 누구든 사물로 만드는 것이다.”

— 시몬 베유,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베유에게 힘은 사람을 시체로 만들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사물로 만들기도 한다. 칼링가의 십오만은 후자에 가깝다. 죽지 않았으나 더는 자기 삶의 주어가 아닌 사람들, 끌려간 사람들이다. 베유는 이 힘이 그것을 휘두르는 쪽에도 가차 없다고 보았다. 승자는 자기가 힘을 쥐었다고 믿지만 실은 힘이 그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 틀로 보면 제13장은 힘에 짓눌린 사람들을 다시 고통받는 인간으로 바라본 문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숫자는 차갑지만, 세는 행위가 곧 사람으로 다시 부르는 일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것은 이 글의 해석이다.

여기서 영화와 칙령의 차이가 선명해진다. 영화는 얼굴을 통해 연민을 이끌어 내고, 칙령은 피해의 규모와 무너진 관계를 기록하며 고통을 전한다. 얼굴을 얻은 사람은 카우르와키와 아리아였고, 얼굴을 얻지 못한 십오만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다만 여기서 살핀 베유의 논의만으로는 힘이 어떤 통치 제도로 이어지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 질문은 베버가 던진다.

베버에게 국가는 일정한 영토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을 주장하는 공동체다.¹³ 이 정의를 따르면 국가가 폭력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바뀌는 것은 칼의 주인과 칼이 쓰이는 절차다. 칙령의 아소카가 한 일이 그것에 가깝다. 후회를 문장에 새기되 처벌의 힘은 남기고, 형벌은 절차 속에 묶었다. 사형수에게 사흘의 유예를 주는 것, 대관 13년째에 법의 실천을 살피는 관리 ‘담마마하마타’를 새로 두는 것이 그렇다.⁴

베버는 윤리를 둘로 나누었다. 결과를 따지지 않고 신념에 따르는 신념윤리, 행위의 결과에 책임지는 책임윤리다.

Gesinnungsethik und Verantwortungsethik sind nicht absolute Gegensätze, sondern Ergänzungen, die zusammen erst den echten Menschen ausmachen.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절대적 대립이 아니라, 둘이 합쳐져야 비로소 진정한 인간을 이루는 보완 관계다.”

—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이 구분을 적용하면 칼을 물에 던지는 영화의 장면은 신념윤리의 몸짓에 가깝고, 칙령은 책임윤리의 기록에 가깝다. 다만 칙령에는 폭력을 줄이려는 뜻과 통치를 유지하려는 요구가 함께 담겨 있어, 어느 한쪽으로만 나누기는 어렵다.

베버는 또 지배가 힘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하고, 지배받는 이들이 그 지배를 정당하다고 믿을 근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여기에 이 글의 해석을 덧붙인다. 칼링가의 별도 칙령 “모든 사람은 내 자식”은 정복자를 백성을 돌보는 아버지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문장으로 보인다. 정복으로 얻은 것은 복종이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얻으려는 것은 신뢰일 것이다. 베버가 가부장적 지배라 부른 틀과 닮았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제 만드는 사람의 자리를 본다. 『아소카』는 스타 배우가 제작에 참여한 2001년의 인도 주류 상업영화다. 이 영화가 놓인 나라는 아소카의 사자 기둥머리를 국장으로, 그의 법륜을 국기 한가운데에 둔 나라다. 이러한 국가적 상징을 고려하면, 비폭력의 아소카는 영화가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익숙한 해석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익숙한 아소카를 주류 영화의 문법으로 옮기면 사랑과 복수와 상실이 필요해진다. 그 과정에서 영화가 키운 것은 사랑이고, 줄어든 것은 얼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제작 배경을 살피면, 영화가 어떤 고통을 부각하고 어떤 고통을 덜 보여 주는지 물을 수 있다.

칼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칼의 자리를 옮긴 것

이제 패턴을 적는다.

첫째, 정복은 지배를 주지만 정당성을 주지 않는다. 칼링가를 얻은 날 아소카가 얻은 것은 땅과 복종이었다. 칙령이 그 뒤에 쏟아 낸 문장들, 곧 법에 의한 정복, 모든 사람은 내 자식이라는 선언, 법을 살피는 관리는 모두 정복 다음 날의 문장이다. 정복자의 진짜 시험은 이긴 날이 아니라 이긴 다음 날에 시작된다.

둘째, 참회가 새겨진 곳과 피해가 일어난 곳은 달랐다. 제13장은 서북 변경에서 남쪽까지 여러 곳에 새겨졌지만 칼링가의 바위에는 없다. 그 이유는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참회를 공표한 장소와 피해자가 살던 장소의 차이는, 그 고백이 누구를 향했는지 묻게 한다.

셋째, 영화는 얼굴을 통해 연민을 이끌어 낸다. 칙령은 숫자와 관계의 단절을 기록해 고통을 전했다. 얼굴을 준 대가는, 얼굴 없는 십오만이 화면에서 사라진 것이다.

넷째, 칼을 버린 뒤에도 통치의 힘은 남는다. ‘칼을 내려놓은 정복자’는 영화와 전승이 즐겨 그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칙령에 나타난 아소카의 참회가 처벌권의 포기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사형은 유지되었고, 무력에 의존하던 통치에는 칙령과 관리, 사절을 통한 법의 전파가 더해졌다. 칼이 사라졌다기보다, 그 힘을 행사하고 정당화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읽을 수 있다. 이를 위선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쟁에 대한 회한과 제국을 다스려야 하는 필요가 함께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회가 제도로 이어지면 일시적인 감정을 넘어 지속될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개별 피해자의 고통이 행정의 언어로 정리되며 흐려질 위험도 있다.

여기서 오늘의 권력에도 던질 질문이 생긴다. 권한의 주체와 배분 방식이 바뀌었을 때, 그 행사를 정당하다고 판단할 기준은 무엇인가. 2026년 10월 형사사법체계 개편 직후, 경찰의 야당 의원 소환 조사를 두고 국민의힘은 정치 수사라는 비판을 제기했다.¹⁴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했다. 두 사건의 배경과 혐의가 다른 만큼, 공방의 언어가 닮았다는 이유로 수사의 성격까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권한의 정당성을 살필 때에는 어느 정당이 항의하는지를 넘어, 수사의 근거와 절차, 대상 선정의 일관성을 함께 따져야 한다. 법적 다툼은 사법 절차에서 가려지겠지만, 권한을 행사한 기관이 그 판단의 근거를 설명하고 견제를 받는 일도 그때까지 미뤄 둘 수는 없다.

새 권한은 첫 사용으로 평가받고, 그 첫 장면을 가장 먼저 크게 읽는 쪽은 대개 반대편이다.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아소카』를 다시 본다면 무엇이 달리 보일까. 칼이 물에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 뒤로, 영화에 얼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칙령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채 끌려간 십오만, 그리고 그 몇 배의 죽음.

아소카가 돌에 새긴 것은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수였다. 이름 없는 수가 이천 년이 넘도록 남아 우리에게 닿았다는 사실은, 얼굴 없는 사람을 세는 일도 기록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가까이서 보아야 드러나는 한 사람의 고통이 있고, 시야를 넓혀야 비로소 헤아릴 수 있는 피해도 있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을 적는 이유다. 우리가 오늘 읽는 승리의 이야기에서, 아직 세어지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 참고할 말씀: ‘그들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며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 이사야 2:4


¹ 『아소카(Asoka)』(2001), 감독 산토시 시반, 주연 샤룩 칸·카리나 카푸르, 힌디어. 베니스·토론토 영화제 상영, 필름페어 촬영상 수상, 흥행은 부진.

² 아소카 대마애법칙 제13장(샤흐바즈가리 판본). E. Hultzsch, 『Inscriptions of Asoka』(Corpus Inscriptionum Indicarum, vol. I, 1925) 영역 참조. 본문은 필자 의역.

³ 같은 칙령의 그리스 왕 비정과 연대 문제. Romila Thapar, 『Aśoka and the Decline of the Mauryas』(Oxford University Press, 1961; 개정판 1973).

⁴ 아소카 석주법칙 제4장(사형수의 사흘 유예), 대마애법칙 제5장(담마마하마타 임명).

⁵ 메가스테네스 계통의 칼링가 군사력 보고(플리니우스 『박물지』 등을 통해 전함). Thapar, 앞의 책.

⁶ 돌리·자우가다의 별도 칼링가 칙령. Nayanjot Lahiri, 『Ashoka in Ancient India』(Harvard University Press, 2015).

⁷ 아소카 소마애법칙 제1장. 재가 신자가 된 시점과 칼링가 전쟁의 선후 논쟁은 Thapar, 앞의 책 참조.

⁸ 『디파밤사』, 『마하밤사』, 『아소카바다나』(『디비야바다나』 수록). John S. Strong, 『The Legend of King Aśoka』(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3).

⁹ Alex von Tunzelmann, 「Reel History」(『The Guardian』, 2008.8); 『Reel History: The World According to the Movies』(Atlantic Books, 2015).

¹⁰ 찬드라굽타의 출가를 전하는 자이나교 전승과 이에 대한 학계의 신중론. Thapar, 앞의 책.

¹¹ 알라하바드-코삼비 기둥의 왕비 칙령(소석주법칙 II).

¹² Simone Weil, 「L’Iliade ou le poème de la force」(『Cahiers du Sud』, 1940~41).

¹³ Max Weber, 『Politik als Beruf』(1919). 한국어판 『직업으로서의 정치』.

¹⁴ 파이낸셜뉴스·YTN 2026.10.6, YTN 2026.10.25(국정감사 일정), 서울신문 2022.10.20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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