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으로

폭격으로 불빛과 연기가 치솟는 2025년 이란 테헤란의 야경과 야간 대공 포화 현장
2025년 6월 공습 당시, 대공포화와 폭발 연기로 물든 테헤란의 밤하늘.

신의 이름으로 — 이란혁명과 종교 권력의 논리

세계사-혁명-⑤ · 혁명은 왜 결국 다른 권력을 낳는가

2026.07.31 · 세계사

45년 만의 균열 — 테헤란의 밤은 왜 다시 흔들리는가

2025년 6월, 이스라엘의 전투기가 나탄즈와 이스파한의 핵시설을 타격했다. 12일간 이어진 전쟁 끝에 미국까지 개입했고, 이란 군 수뇌부와 핵과학자 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리알화 가치가 폭락했고, 2025년 말부터 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번졌다. 2026년 1월 8일과 10일, 정부는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1979년 혁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저항이었다.

45년 넘게 버텨온 신정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 장면 앞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왕을 몰아낸 혁명이, 왜 또 다른 절대 권력을 세웠는가. 그리고 그 권력은 지금 왜 같은 자리에서 다시 흔들리고 있는가.


왕좌를 무너뜨린 자, 왕좌가 되다 — 1979년의 두 얼굴

1978년 하반기, 팔레비 왕정의 세속적 독재와 서구화 정책에 반발하는 시위가 이란 전역으로 번졌다. 국왕의 비밀경찰 사바크(SAVAK)에 대한 오랜 공포와 분노가 거리로 쏟아졌다.

1979년 1월,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이 국외로 도피했다. 같은 해 2월, 파리에 망명해 있던 호메이니가 테헤란으로 귀국했고, 며칠 만에 왕정은 완전히 무너졌다.

혁명 세력 안에는 자유주의자, 좌파, 이슬람주의자가 뒤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이 혁명이 이슬람 신정으로 귀결되리라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9년 3월, 국민투표로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됐고, 같은 해 12월 헌법 국민투표를 거쳐 ‘벨라야테 파키흐’ 체제가 확정됐다. 종교 최고위 법학자가 세속 정치의 최종 결정권까지 갖는 정교일치 개념이다. 대통령과 의회 위에 최고지도자가 서는 구조였다.

1979년 11월에는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벌어졌다. 444일간 이어진 이 사건은 신생 정권이 ‘반미’라는 명분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1980년 9월,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 8년간의 전쟁은 수십만의 사상자를 냈지만, 동시에 신정 체제가 ‘전시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1989년 6월, 호메이니가 사망하고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직을 승계했다. 이후 2022년 9월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 그리고 2025~2026년의 경제 위기와 전쟁, 유혈 진압까지 체제는 반복해서 흔들리면서도 아직 완연히 무너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왕정을 몰아낸 혁명이 또 다른 절대 권력을 세웠다는 점은, 혁명의 목적과 결과가 늘 일치하지만은 않음을 일깨워줄 법하다.


리바이어던은 왜 얼굴을 바꾸는가

토머스 홉스는 인간이 무질서와 폭력의 공포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절대주권, 곧 리바이어던에게 복종하기로 합의한다고 보았다. 왕정이 무너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주권자가 요구된다. 그 얼굴이 세속 군주이든, 인민의 이름이든, 혹은 신의 이름이든 말이다.

이란혁명이 흥미로운 지점은 그 리바이어던이 ‘신의 이름’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벨라야테 파키흐 체제는 정치적 정당성을 국민의 위임이 아니라 종교적 권위에서 끌어왔다. 이는 세속 권력보다 훨씬 강력한 복종의 근거를 형성해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는 두 자루의 칼을 이병(二柄)이라 불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二柄者,刑德也。(이병자, 형덕야。)
“군주가 쥔 두 자루의 칼이란, 형벌과 상(덕)이다.”

신정 체제 역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외부의 적(미국, 이스라엘)을 명분 삼아 내부 결속을 정당화하는 한편, 강력한 형벌 체계로 내부의 이견을 통제해왔다고 볼 수 있다.

명분이 권력을 정당화하고, 형벌이 권력을 유지한다. 이 구조는 혁명 이전의 왕정과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명분의 언어가 ‘근대화’에서 ‘신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혁명이 낳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질서였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신해혁명과 마오쩌둥의 공산화가 어떻게 두 번의 혁명을 거치고도 결국 또 다른 절대 권력으로 귀결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란혁명도 같은 궤적을 그린다. 왕정에 반대했던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은 혁명 성공 이후 가장 먼저 숙청당한 이들이었다. 프랑스혁명이 왕당파를 제거한 뒤 자코뱅이 서로를 단두대로 보냈던 패턴, 러시아혁명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을 숙청했던 패턴과 겹친다.

혁명은 권력의 부재를 만들지 않는다. 권력의 이름을 바꿀 뿐이다. 그리고 새 권력은 이전 권력보다 더 강한 정당화 논리를 필요로 한다. 인민이든, 계급이든, 신이든 말이다.

2025~2026년의 위기는 이 논리가 시험대에 오른 순간으로 읽힐 수 있다. 외부의 군사적 타격과 내부의 경제 붕괴가 동시에 명분의 정당성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분이 흔들린다고 해서 권력의 구조 자체가 곧바로 해체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명분을 잃은 권력은 무너지는가, 아니면 새로운 명분을 찾아내는가.


우리는 무엇을 권력이라 부르고 있는가

체제의 성격은 다르다. 이란의 신정 권력과 한국의 민주적 정권 교체를 같은 무게로 놓을 수는 없다. 다만 체제를 넘어 반복되는 성향 하나는 있다. 상대에 대한 반대와 과거의 명분만으로 스스로의 정당성을 조달하려는 성향이다. 새 권력이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정당화의 언어가 ‘반대편’을 딛고 서 있다는 구조는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이란의 신정 체제가 흔들리는 배경이나, 그것을 대체할 다음 권력이 과연 다른 언어를 가질 것인가 하는 의문도 결국 같은 맥락에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의 교체가 곧 권력 구조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라보는 자는 승자의 이름이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를 본다. 우리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은 이것이다. 다음에 오는 권력은, 정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다음 편, 혁명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한국 정치와 직접 마주하게 된다.

* 참고할 말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사사기 21:25


¹ 2025년 6월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및 12일 전쟁 관련 사실관계 (위키백과)
² 2026년 이란 반정부 시위 및 유혈 진압 관련 사실관계 (위키백과)
³ 이란혁명(1978~1979) 전개 및 이슬람공화국 수립 과정 — 공신력 있는 역사 자료 기준
⁴ 홉스, 『리바이어던』 / 한비자, 「이병(二柄)」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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