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의 꽃, 신용

정치·경제

2026년 5월 15일 · Watchman

신용이 무너지면 시장경제도 무너진다


숫자가 말하는 것

숫자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이 공시한 2026년 4월 취급 평균금리 기준이다. 하나은행에서 신용점수 951점 이상인 사람의 신용대출 금리는 4.86%다. 60점 이하는 3.73%다. 우리은행에서는 901~950점 구간이 5.17%이고, 601~650점 구간이 4.94%다. 농협은행도 마찬가지다. 901~950점이 5.00%, 600점 이하가 4.85%다.

신용점수가 높을수록 금리가 높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더 많이 낸다.

이 숫자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 자체가 뒤집혀 있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두 기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지금 이 숫자는 그 기둥 하나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비슷한 구조의 균열을 우리는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다. “멈추면 100조가 사라진다”에서 다룬 이야기다.



같은 실수, 다른 나라

신용(信用)은 라틴어 credere에서 왔다. “믿다”는 뜻이다. 시장경제는 이 믿음 위에 세워진다. 신용이 높다는 것은 약속을 지켜왔다는 기록이다. 시장은 그 기록에 보상을 준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문법이다.

그 문법이 흔들린 적이 있다. 일본은 2010년 6월, 다중채무자 보호를 명분으로 대부업 금리 상한을 연 29.2%에서 20%로 강제 인하했다. 선의였다. 결과는 달랐다. 여신금융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 조사에서 원하는 금액의 대출을 받지 못한 비율은 2010년 30.3%에서 43.2%로 늘었다. 불법 대금업 이용 경험자는 같은 기간 1.2%에서 8.8%로 7배 이상 급증했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보호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것이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2023년 1월,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HFA)은 저신용자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주택담보대출 수수료 체계(LLPA)를 개편했다. 신용점수 680~740점 구간 차주의 수수료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고신용자는 여전히 더 낮은 수수료를 냈다. 그러나 격차가 좁아지는 구조 자체가 역차별 논란을 불렀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와 모기지은행협회(MBA)가 공개 반대서한을 보냈고, FHFA는 결국 2023년 5월 10일 가장 논란이 컸던 DTI(부채비율) 기반 수수료 조항을 시행 직전 철회했다.

한국도 낯선 경험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7월 7일 법정 최고금리를 24%에서 20%로 인하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이미 불법사금융 유입자가 3만 9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최고금리 인하 이후 1년 동안 최대 3만 8000명이 대부대출 시장에서 배제돼 불법사금융으로 유입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은 2021년 51조 6000억 원에서 2023년 31조 8000억 원으로 급감했다. 보호하려 했던 사람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26년 5월 1일 오후 10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페이스북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시작하며’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신용등급은 그저 정교하게 요약된 과거의 잔상일 뿐이다.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 이재명 대통령도 같은 맥락에서 “금융이 가장 잔인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신용평가 틀을 흔드는 것이 취약계층을 보호하는가, 아니면 시장의 신호 체계 자체를 무너뜨리는가.


정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두 가지로 나눴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균등적 정의(iustitia commutativa)와, 각자의 기여와 역할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배분적 정의(iustitia distributiva)다. 시장경제는 배분적 정의 위에 선다. 기여한 만큼, 약속을 지킨 만큼, 신용을 쌓은 만큼 보상받는다는 원칙이다. 신용 금리를 역전시키는 것은 균등을 향한 것이 아니다. 배분의 원리를 해체하는 것이다.

“정의란 각자에게 그 몫을 돌려주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1835)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을 “연성 전제주의(soft despotism)”에서 찾았다. 정부가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점점 더 많은 결정을 대신 내리고, 개인은 그 편안함에 익숙해져 자율의 근육을 잃는 상태다. 신용의 결과를 정책으로 평탄화하는 것은 이 연성 전제주의의 금융판으로 읽힐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타락시키지 않는다. 다만 부드럽게, 그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능력을 빼앗는다.”
—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2권 (1840)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신뢰의 역전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은 1970년 10월, 전국 3만 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5포를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성과가 우수한 16,600개 마을에만 추가로 시멘트 500포와 철근 1톤을 더 지원했다. 모든 마을이 같은 보상을 받지 않았다. 열심히 한 마을이 더 받았다. 슬로건은 “근면·자조·협동”이었다. 그 원칙이 “하면 된다”는 신뢰를 만들었고, 그 신뢰가 경제 성장의 연료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그 신뢰의 역전이다.

고신용자에게 높은 금리를. 저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를. 정책의 언어로는 “포용”이라 부른다. 시장의 언어로는 “신호의 왜곡”이다. 성실하게 살아온 중산층이 이 구조의 비용을 부담한다. 구조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취약계층은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별도의 복지 설계와 정책금융으로 풀어야 할 정부의 몫이지, 금리 역전을 통해 중산층에 전가할 문제가 아니다.

취약계층의 문제를 금리 역전으로 해결하려 할 때, 시장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경험이, 미국의 철회가, 한국의 수치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보호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간다.


신용은 숫자가 아니다

신용은 단순한 금융 지표가 아니다. 약속을 지켜온 삶의 기록이다. 그 기록이 불이익의 근거가 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가.

시장경제의 꽃은 신용이다. 꽃을 꺾으면 나무도 흔들린다. 바라보는 자는 지금 그 나무의 뿌리를 본다.



✦ 참고할 말씀: “선한 일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로다.” — 갈라디아서 6:9


*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가계대출 금리 공시, 2026년 4월 취급 평균금리 기준 (portal.kfb.or.kr)

* 여신금융연구소, 장명현, 「일본 대금업 규제 강화 이후 10년간의 시장 변화」, 2020 / 서울경제 2020.10.19 재인용

* NAR(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 FHFA LLPA Rescission Statement, 2023.5.10

* 한국금융연구원, NICE평가정보 자료 분석,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부이용자 변화 분석」, 2023 / 서울파이낸스 2023.2.5 재인용

* 서민금융진흥원, 저신용자 신용대출 공급액 통계 / 이투데이 2025.6.6 재인용

* 경향신문, “이 대통령이 던진 ‘잔인한 금융’ 고민…김용범 실장 ‘신용, 인생 잘라내는 칼날'”, 2026.5.2

* 국가기록원, 새마을운동 기록물 (theme.archives.go.kr)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됩니다」 정책자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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