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100조가 사라진다

경제·국방

2026년 5월 15일 · Watchman

파업은 권리다. 그러나 모든 권리에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 그것이 오늘 이 글의 질문이다.

거울 앞에 선 노동권

2026년 5월 21일. 삼성전자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했다. 조합원 찬반투표 93.1% 가결, 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조합원만 4만 명이 넘는다. 요구는 단순해 보인다. 영업이익의 15%를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지급하고, 그 상한을 폐지하라.

숫자만 놓고 보면 정당한 요구처럼 들린다. 삼성전자의 2025년 주주배당은 11조 원이었고, 같은 해 직원 성과급 총액은 약 6조 원이었다. 노조는 묻는다. “왜 주주는 저만큼 받는데, 우리는 이만큼밖에 못 받는가.”

그러나 역사는 이 질문이 단순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권리의 언어로 포장된 요구가, 실은 법이 그어 놓은 경계를 넘어선 것일 때 — 그 사회는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더 큰 규모로

1936년 6월, 프랑스. 레옹 블룸의 인민전선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전국적 총파업이 폭발했다. 20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했고, 사측은 마티뇽 협정에 서명했다. 임금 인상, 주 40시간 근무, 유급 휴가 — 당시로서는 혁명적 성과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기업들은 생산 비용 급등을 이유로 투자를 줄였고, 프랑스 경제는 1937년부터 다시 침체로 빠져들었다. 권리의 확장이 그것을 지탱해 줄 경제적 토대를 잠식한 역설적 순간이었다.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1993년 현대자동차 파업, 2005년 아시아나·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대한민국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건 지금까지 단 네 차례뿐이다. 1993년 현대자동차 파업 당시 노조는 72일 동안 22차례 파업을 이어갔고, 이로 인해 12만 1천 대, 2조 7천억 원 규모의 생산 차질이 빚어졌다. 정부는 그제야 긴급조정권을 꺼냈다. 당시의 현대자동차는 한국 GDP 대비 비중이 지금의 삼성전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였다.

삼성전자의 매출은 333조 원으로, 한국 GDP(2,663조 원)의 약 12.5%에 해당한다. 반도체 팹(fab)은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정밀 공정이다. 라인이 한번 멈추면 공정에 투입된 웨이퍼는 전량 폐기된다. 재가동까지는 다시 2~3주가 걸린다. 노조 측은 파업 기간 최대 30조 원의 손실을, JP모건은 최대 43조 원을 전망했으며, 직간접 피해를 합산하면 10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치 너머에 숨겨진 다섯 가지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신뢰 자산의 소멸, 전환비용에 따른 영구적 시장 상실, AI 반도체 패권 경쟁기의 기회비용 상실, 핵심 인재 이탈,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를 꼽으며 “한 번 이탈한 고객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미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과 한국의 투자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법의 경계, 그리고 명분의 문제

먼저 법적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 파업의 정당성은 그 명분에서 출발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파업의 목적을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한다. 이익잉여금이나 영업이익의 처분권은 주주총회와 이사회에 귀속된 경영 사항이다.

대법원은 2026년 1월과 2월에 관련 판결을 내놓았다. 삼성전자 퇴직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목표 인센티브(TAI)는 평균임금으로 인정했지만, 초과이익분배금(PS)은 평균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SK하이닉스 사건에서는 PI와 PS 모두 평균임금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단 기준은 명확하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배분하라’는 노조 요구가 단체협약에 명문화된다면, 지급 공식이 사전에 확정되고 매년 반복 지급되며 지급 의무까지 강해져 기존 대법원 판단의 전제 조건이 무너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역설이 여기에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주요 글로벌 테크기업 중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무조건 성과급으로 지급하도록 명문화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미 이 요구는 삼성전자 바깥으로 번지고 있다. 카카오에서 영업이익 10%,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영업이익 20%, 현대차에서 당기순이익의 30% 등을 요구하는 ‘이익의 N%’ 형태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이 선례가 되는 순간, 그 파장은 한국 산업 전체의 문제가 된다.

“법(法)이란 상(賞)과 벌(罰)이 명확할 때 비로소 기능한다. 그것이 흔들리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
— 한비자(韓非子), 『한비자』 「이병(二柄)」편

한비자가 2,300년 전 진(秦)나라의 법치를 논하며 꺼냈던 이 문장은, 2026년 한국의 노동 현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법이 그어 놓은 경계를 예외로 허무는 순간, 그 예외는 곧 새로운 기준이 된다.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느 쪽에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가는 언제나 정치의 핵심 질문이었다.”
—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 1762

루소는 공동 의지(volonté générale)와 개별 의지(volonté particulière)를 구분했다. 노조의 요구는 분명히 개별 의지에 해당한다. 그것이 공동 의지, 즉 공익과 충돌할 때 국가는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 루소조차 이 물음에 쉬운 답을 내놓지 않았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패턴: 권리의 언어가 경계를 넘을 때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정당한 권리의 언어로 시작된 요구가, 어느 순간 그 권리의 법적·사회적 경계를 넘어설 때 — 그 사회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갈라진다. 법과 원칙을 지키며 진통을 감수하거나,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허물거나.

이번 삼성전자 사태를 읽는 핵심은 ‘파업 찬반’이 아니다. 파업의 목적이 노동법이 보호하는 범위 안에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한국 사회 전체에 어떤 선례를 남기는가이다.

노동법은 파업을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규정한다. 영업이익의 배분은 주주총회와 이사회의 권한이며, 이익잉여금의 처분은 기업의 미래 투자와 주주환원 사이에서 경영진이 결정하는 사안이다. 노조가 이 영역에 개입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 안에 있는지는, 단순한 찬반을 넘어 법의 원칙이 요구하는 판단이다.

정부의 대응도 이 관점에서 읽혀야 한다. 긴급조정권이란 노동부 장관이 노조법 제76조에 따라 발동할 수 있는 제도로, 발동 시 30일간 파업이 금지되며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및 중재 절차에 착수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긴급조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하는 예외적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검토돼야 할 최후의 수단”이라고 반박한다. 양쪽의 논리는 모두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임시방편과 원칙 사이에서 정부가 어느 지점에 서야 하는지는,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던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법과 원칙은 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적용될 때 그 의미를 갖는다. 노조의 규모가 크다고, 기업의 중요성이 높다고, 그 원칙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동시에, 기업과 국가가 노동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해 온 역사 또한 이 방정식의 다른 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권리의 언어는 어디서 끝나고, 법의 언어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그리고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 누구의 역할인가. 멀리서 바라보는 자만이 이 두 질문이 사실은 하나임을 안다.


* 참고할 말씀: ‘공의로 재판하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위하여 정의를 베풀지며 약한 자와 빈궁한 자를 건질지며 악인의 손에서 구원할지니라.’ — 시편 82:3-4


¹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2026년 5월 21일~6월 7일 총파업 예고 (파이낸셜뉴스, 2026.05.15)

² 쟁의행위 찬반투표 93.1% 가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보도자료, 2026.03)

³ 대법원 2026.01.29 선고 — 삼성전자 TAI 평균임금 인정, PS 불인정 (MBC, 2026.01.29)

⁴ 대법원 2026.02.12 선고 — SK하이닉스 PI·PS 모두 평균임금 불인정 (시사저널e, 2026.02.12)

⁵ 파업 피해 규모: 노조 30조, JP모건 43조, 업계 최대 100조 추산 (뉴시스·파이낸셜뉴스, 2026.05.14-15)

⁶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안민정책포럼 세미나 발표 (2026.04.23)

⁷ 긴급조정권 발동 사례: 1969년 대한조선공사, 1993년 현대자동차, 2005년 7월 아시아나항공, 2005년 12월 대한항공 (위키백과·파이낸셜뉴스 검증)

⁸ ‘이익의 N%’ 요구 산업계 확산: 카카오 10%, 삼성바이오 20%, 현대차 당기순이익 30% (머니투데이, 2026.05.13)

⁹ 한비자, 『한비자』 「이병(二柄)」편 / 루소, 『사회계약론』, 1762

* 대표 이미지 출처: © Samsung Electronics 뉴스룸 (news.samsung.com/kr) — 보도 목적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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