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이라고 불린 날
글자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이가 있었다.
2026년 07월 25일 · 역사·철학 · 한국현대사 · 한국현대-행복 ④
올해 고용노동부는 ‘AI+역량 業UP 프로젝트’를 통해 근로자 15만 명에게 인공지능 활용 훈련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1만 명은 AI 엔지니어로, 중소기업 재직자 11만 명은 현장에서 AI를 쓸 수 있는 인력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1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곧 새로운 일자리로 가는 문이 된다.
오십여 년 전에도, 이 땅의 어린 여공들에게 그 문은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글자였다.
밤 열 시, 칠판 앞에 앉은 얼굴들
구로공단은 1967년경부터 조성되어 1970년대에 급속히 팽창했다. 노동력이 몰려들자 공단 측은 어린 여성 근로자들을 수용할 기숙사·생활관을 독려하는 한편,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체 부설 학교 체계를 세워 나갔다.2
1971년부터 1977년까지는 초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중학교 과정을 이수시킨 뒤 검정고시로 이어 주는 고등공민학교가 운영되었다. 1977년에는 이를 대체하여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교실에서 배우는 산업체특별학급이 문을 열었다.3
그러나 제도가 다 감당하지 못한 배움의 자리는 야학이 메웠다. 1970년대 서울에는 200여 개에 달하는 야학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 상당수가 구로동 일대에 몰려 있었다.3
당시 야학 교사로 참여했던 한 대학생 — 훗날 정치인으로 활동한 원희룡도 그중 한 명이었다 — 은 남긴 회고에서, 쭈뼛거리며 교실 문을 밀고 들어오던 여공들의 앳된 얼굴이 자신을 “황홀케 했다”고 적었다.3
작가 신경숙 역시 1970년대 후반 구로공단 현장에서 일하며 산업체특별학급을 다닌 경험을 자전적 소설에 담아낸 바 있다. 낮의 노동과 밤의 배움이 겹쳐지던 그 시절의 삶은, 훗날 한국 노동문학의 한 기록으로 남았다.4
이 교실들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경계는 종종 흐릿했다. 대학생 출신 야학 교사가 있는가 하면, 먼저 글을 깨친 동료 여공이 다음 사람을 가르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자격이 아니라 관계가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내던 시절이었다고 읽힐 수 있다.
브라질의 사탕수수밭, 그리고 구로동의 밤
1968년,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자신의 저작에서 기존의 교육 방식을 ‘은행 저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이라 명명하며 비판했다. 교사가 지식을 예금하듯 학생의 머릿속에 일방적으로 집어넣는 방식으로는, 배우는 이가 스스로 세계를 해석하는 힘을 기를 수 없다고 본 것이다.5 그가 내세운 대안은 ‘대화적 교육’이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세계를 읽어 나가는 방식이다.
그는 1963년 브라질 앙지쿠스 지역에서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에게 45일 만에 글을 가르친 실험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군사 정권의 압박 속에서 칠레로 망명해 1970년대 초까지 라틴아메리카 농민·노동자 문해 운동을 이끌었다.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 구로공단의 좁은 야학 교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먼저 글을 깨친 이가 다음 사람의 손을 잡고 자음과 모음을 짚어 주던 그 방식은, 완성된 지식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구조가 아니었다. 자격을 갖춘 자가 갖추지 못한 자를 가르치는 구조가 아니라, 조금 먼저 안 사람이 조금 늦게 온 사람과 나란히 앉아 세계를 함께 읽어 나가는 구조였다. 훗날 이 공간이 노동자 의식과 연대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다. 국가기록원은 구로공단을 1970년대 후반 “대학생들의 의식화 현장”으로 기록하고 있다.2
브라질의 사탕수수밭과 한국의 봉제 공장은 언어도, 체제도, 위도도 달랐다. 그러나 글자를 먼저 쥔 손이 그다음 손을 붙잡아 주는 방식으로 배움이 번져 나갔다는 점에서, 두 풍경은 같은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유사한 환경 속에서 동일한 선의나 한계를 되풀이할 때 그 까닭을 집요하게 되묻고자 함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가르친다는 것, 배운다는 것
야학의 언니도, 프레이리도 완성된 교사는 아니었다. 배움의 길 위에서 한 걸음 앞서 걷고 있던 동행자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뒤따르던 이들은 평생 그를 “선생님”이라고 기억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스승과 제자의 정의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역사는 이 지점에서 던진다.
가르침이란 이미 갖춘 자가 미흡한 자에게 베푸는 시혜라기보다, 상대에게 받은 빛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순환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과정에 가까울 수 있다. 먼저 배운 동료에서 다음 동료로, 그리고 또 다른 동료에게로 이어졌을 그 흐름은, 소유되는 지식이 아니라 통과되는 지식이었다고 읽힌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게 선생님인가
50여 년 전 구로공단 여공들의 갈증과 오늘 우리의 결핍은 이름은 같지만 결이 다르다. 그때는 세상을 읽어 낼 도구, 곧 문자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문자도 정보도 차고 넘치지만, 그 안에서 맥락과 의미를 길어 올리는 힘이 옅어지고 있다. 문자의 부재와 읽기의 소외는 서로 다른 결핍이지만, 둘 다 스스로 세계를 해석할 힘을 잃는다는 지점에서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고 읽힐 수 있다.
2024년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한국 성인의 언어 능력 평균 점수는 249점으로, OECD 평균 260점에 못 미쳤다. 서울의 한 조사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가운데 문해력 ‘기초 미달’ 학생 비율이 전년 대비 6.8퍼센트포인트 늘어난 13.8퍼센트로 나타났다는 결과도 있었다.6
글자를 몰라 밤마다 야학 문을 두드리던 세대와 글자를 알아도 긴 문장 앞에서 멈춰 서는 세대. 이 두 모습을 대조해 보면, 배움의 통로가 줄어든 사회와 배움의 의지가 흐려진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위태로운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정부가 15만 명에게 AI 역량을 가르치겠다는 오늘의 계획도, 결국은 그 시절 야학 칠판 앞에서 시작된 질문의 다른 얼굴일지 모른다. 도구는 문자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뀌었지만, 먼저 배운 이가 다음 사람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고 읽힌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사건을 사건으로 남기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누구의 손을 잡아 주고 있는지, 혹은 누구의 손을 놓아 버렸는지를 오래도록 바라보려 한다.
[이전 글 보기] 열두 시간 미싱 앞에 앉았던 소녀들이 새벽마다 견뎌 낸 이야기 — 「새벽 네 시의 재봉틀」
* 참고할 말씀: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디모데후서 2:2
각주
1. 2026년 ‘AI+역량 業UP 프로젝트'(15만 명 지원) — 고용노동부 2026년 업무보고 보도자료
2. 구로공단 조성 및 산업체 부설 학교 체계, 1970년대 후반 “의식화 현장” 기록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구로공단」
3. 고등공민학교(1971~1977)·산업체특별학급(1977~) 연혁, 야학 현황 및 야학 교사 회고 — 디지털구로문화대전, 「주경야독의 터전, 야학과 직업 학교를 아시나요」
4. 신경숙 산업체특별학급 재학 이력 — 디지털구로문화대전, 「노동문학의 산실, 구로공단과 가리봉동」
5. 파울로 프레이리의 은행 저금식 교육 비판 및 브라질·칠레 문해 운동 — 『페다고지』(1968) 관련 일반 기록
6. 2024년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2025년 서울 고1 문해력 조사 결과 — 트리플라잇, 「2026년 상반기 사회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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