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사 · 혁명 시리즈 ② · 1848~1871
혁명의 전염 — 1848년 유럽과 파리코뮌의 꿈
혁명은 왜 결국 다른 권력을 낳는가 — 세계사-혁명 미니 시리즈 2편
광장의 함성은 국경을 넘는다
한 도시에서 시작된 봉기가 국경을 넘어 대륙 전체로 번지는 장면을, 우리는 낯설지 않게 목격한다.
검열도 국경도 그 확산을 막지 못한다. 누군가 광장에서 왕정의 퇴진을 외치면,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의 다른 광장에서 같은 언어가 되풀이된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자유의 언어로 시작해 결국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귀결된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혁명이 남긴 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전염 방식이었다. 반세기 뒤, 그 전염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유럽 전체를 동시에 흔들었다.
1848년, 유럽이 동시에 흔들리다
1848년 1월 12일,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시작된 봉기는 이례적일 만큼 빠르게 대륙 전체로 옮겨붙었다.1 1848년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파리에서는 정부의 개혁 집회 금지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되었고, 결국 루이 필립 국왕이 퇴위하며 제2공화정이 선포되었다.
파리의 소식은 전신과 철도, 신문과 선언문을 타고 단 며칠 만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848년 3월 13일, 빈에서 봉기가 일어나 재상 메테르니히가 사임하고 영국으로 망명했다.2 같은 달 15일, 헝가리 페스트에서는 코슈트 러요시를 중심으로 한 청년들이 자치와 헌법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1848년 3월 18일에는 베를린에서 봉기가 일어나 프로이센 국왕이 헌법 제정을 약속했고, 같은 날부터 22일까지 밀라노에서는 ‘5일간의 봉기’를 통해 시민들이 오스트리아군을 도시 밖으로 몰아냈다.
한 달 남짓한 사이, 유럽의 절반이 동시에 왕정에 도전한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감염이었다. 사람들은 파리의 성공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광장에서도 같은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전염된 것은 열망뿐이었다. 각국의 구체제는 시간을 벌며 반격을 준비했다. 1848년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파리에서는 정부가 실업 노동자를 위한 국립작업장을 폐쇄하려 하자 노동자들이 다시 봉기했다.3 이번에는 상대가 왕정이 아니라, 함께 왕정을 무너뜨렸던 온건 부르주아 공화파 정부였다. 광장에 나란히 섰던 이들이 계급의 경계에서 갈라선 셈이었다. 카베냐크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은 이를 유혈 진압했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혁명의 첫 번째 적은 구체제였지만, 혁명의 두 번째 적은 혁명 자신이었다.
그해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오스트리아·프로이센을 비롯한 각국의 구체제는 하나씩 권력을 되찾았다. 헝가리의 독립 정부는 1849년 8월, 러시아 군대의 개입으로 진압되었다.4 그리고 1848년 12월 10일, 프랑스 국민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1851년 12월 2일, 그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고, 이듬해 나폴레옹 3세로서 제2제정을 선포했다.5 자유를 요구하며 시작된 1848년의 봄은, 3년 만에 또 다른 황제의 즉위로 막을 내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년 뒤, 같은 도시 파리에서 혁명의 마지막 메아리가 울렸다. 1870년 9월,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 3세가 스당에서 포로가 되며 제3공화정이 선포되었다.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궁전에서는 독일제국의 선포식이 열렸다6 — 프랑스에게는 이중의 굴욕이었다. 1871년 3월 18일, 정부군이 파리 시민의 대포를 몰수하려 하자 국민방위대와 노동자들이 봉기했고,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킬 자치 정부, 즉 ‘파리코뮌’의 출범을 선포했다.
파리코뮌은 두 달을 채 넘기지 못했다. 1871년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이른바 ‘피의 일주일’ 동안 정부군이 파리로 진입해 코뮌을 진압했다.7 이 짧은 유혈 사태로 수만 명이 처형되거나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1848년의 봄과 1871년의 코뮌 사이, 22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결말의 문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당한 반란과 정당하지 않은 반역 사이
이 반복을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철학은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봉기를 정당한 저항으로 만들고, 무엇이 그것을 진압당해 마땅한 반역으로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다.
맹자는 이 질문에 대해 이미 오래전 답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폭군을 제거하는 것은 임금을 시해하는 것과 다르다고 보았다.8
闻诛一夫纣矣,未闻弑君也。(문주일부주의,미문시군야。)
“필부 한 사람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폭정을 행하는 순간 그는 이미 임금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필부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이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사상은 1848년 유럽의 봉기자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정당성과 그리 멀지 않다. 그들에게 왕정의 퇴진은 반역이 아니라 정당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는 상대편에게도 똑같이 되돌아온다. 파리코뮌을 진압한 정부 역시, 자신들이 무너뜨린 것은 정당한 권력이 아니라 무질서를 참칭한 반역이라고 규정했다.
정당성을 결정하는 기준은 대의의 순수함보다, 결국 누가 마지막까지 남아 서사를 쓰는가에 있을 수 있다.
헤겔은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이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 바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9
“한 번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笑劇)으로.”
마르크스가 이 유명한 구절을 남긴 대상은 다름 아닌 본문에서 다룬 1851년의 그 쿠데타였다. 그는 1848년의 봄이 어째서 3년 만에 한 독재자의 권력으로 되돌아갔는지, 그 구조를 파헤치고자 했다. 1789년의 비극이 1851년에는 소극으로 반복되었다는 통찰은, 이 시리즈가 다루는 혁명의 순환 그 자체를 요약하는 문장으로 읽힐 수 있다.
전염되는 것은 이상이고, 살아남는 것은 진압이다
1848년과 1871년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구조가 드러난다.
전염되는 것은 언제나 이상과 열망이었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진압하는 쪽의 조직력이었다. 파리의 봉기는 전신과 철도, 신문을 타고 며칠 만에 빈과 베를린, 밀라노로 번졌지만, 반격하는 구체제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시간을 벌고 병력을 재배치했다. 열망은 빠르게 퍼졌지만, 그것을 지켜낼 제도와 조직은 미처 갖춰지지 않았다.
1848년의 혁명가들은 낡은 왕정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할 안정적인 통치 구조를 세우지 못했다. 그 공백은 다시 한 사람의 강한 권력자에게로 수렴되었다. 파리코뮌 역시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자치의 실험을 시도했지만, 조직된 군대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혁명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지점은 이념의 순수성이 아니라, 승리 이후를 지탱할 구조의 부재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편에서 살펴본 프랑스혁명의 패턴 — 낡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공백을 채우지 못한다는 패턴 — 은 1848년과 1871년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다만 이번에는 한 나라가 아니라 대륙 전체가 동시에 같은 실험과 같은 실패를 공유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혁명은 국경을 넘어 전염되지만, 그 이후를 지탱할 제도와 인내는 국경 안에서 하나하나 쌓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848년의 봄이 유럽 전역에서 동시에 피었다가 3년 만에 시들었던 것도, 파리코뮌이 두 달 만에 진압되었던 것도, 결국은 이상의 속도와 제도의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 있다.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리듬을 목격하곤 한다. 광장의 열기가 빠르게 타오르고, 새로운 권력을 향한 기대가 순식간에 번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 열기가 가라앉은 뒤에도 남는 것은 무엇인지, 새로운 권력이 무너뜨린 것 이상의 것을 세웠는지를 묻는 일은 언제나 나중의 몫으로 미뤄지곤 한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무너뜨리는 데만 집중하고, 무엇을 세우는 일은 잊고 있는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반복해서 묻는 질문도 다르지 않다. 봄은 늘 빠르게 찾아오지만, 그 봄을 여름과 가을로 이어가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을 요구하곤 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 참고할 말씀: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 잠언 11:14
1. 팔레르모 봉기~프랑스 2월혁명: 1848년 1월 12일 ~ 2월 24일
2. 빈·베를린·밀라노 동시다발 봉기: 1848년 3월
3. 파리 6월 봉기: 1848년 6월 23일 ~ 26일
4. 헝가리 독립정부 진압: 1849년 8월
5. 루이 나폴레옹 쿠데타 · 제2제정 선포: 1851년 12월 2일 / 1852년
6. 독일제국 선포: 1871년 1월 18일
7. 파리코뮌 봉기 ~ 피의 일주일: 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8. 『맹자』, 양혜왕장구하
9.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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