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이라는 이름의 통보
140명이 모인 자리, 발언자는 28명, 결론은 이미 하나였다
정치·외교 · 2026.07.25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빚진 자가 채권자의 종이 된다는 잠언의 오래된 경고를 살펴보았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의 한복판에도 ‘근저당’이라는 채권·채무의 언어가 다시 등장한다.
지난 23일, 여의도 KBS 별관에는 140명이 모였다. 국토교통부와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관계자부터 부동산 유튜버와 맘카페 운영진, 공인중개사까지. 이름은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였다. 예정된 100분은 세 시간으로 늘어났고, 그 가운데 발언자는 28명이었다.1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하려면 최소 세 배는 올려야 한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지금 세 배를 올리면 아마 폭동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느냐.” 정책의 필요성과, 그 정책을 지금 실행하면 벌어질 국민의 저항을 같은 문장 안에 나란히 놓은 것이다.1 대토론회라는 이름 아래, 정작 국민이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요구 — 실수요자와 신혼부부 대출 완화 — 는 그날의 핵심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세금을 미룬 자, 세금에 발목 잡힌 자 — 로마 공화정의 그라쿠스 형제
기원전 133년, 로마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대지주에게 편중된 공유지를 재분배하려 했다. 논리는 단순했다. 소수가 독점한 토지가 공화정의 뿌리인 자영농을 무너뜨리고 있으니, 지금 손대지 않으면 로마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개혁을 서둘렀고, 원로원의 반발은 그보다 더 빨랐다. 같은 해, 그는 정적들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10년 뒤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개혁을 이어받았으나, 결말은 같았다.3
로마의 토지 문제는 그라쿠스 형제 이전부터 이미 알려진 병폐였다. 문제는 개혁의 방향이 아니라 타이밍이었다. 너무 늦게 손대면 기득권의 반발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정치적 기반 없이 서두르면 개혁 자체가 개혁자를 삼켜버린다. 2026년의 보유세 논의를 이 구도에 대입해 보면, “과거에 정상화했다면 이렇게까지 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진단은 그라쿠스가 원로원을 향해 던졌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읽힐 수 있다. 다만 그라쿠스는 그 말을 하고 죽었고, 대통령은 그 말을 하고 다음 토론회를 준비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
한비자는 권력을 쥔 자의 말에 대해 이렇게 경계했다.
夫欲攻人者,必先自治。(부욕공인자, 필선자치。)
“타인을 다스리거나 제약을 가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부터 정돈해야 한다.”
세제 개편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재산에 손을 대려는 자는, 그 손을 대기 전에 자신의 거래부터 의심의 여지 없이 투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최근 대통령 부부의 분당 아파트 매매 과정에서 근저당권 설정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고, 청와대는 “민사상 합의에 따른 통상적 거래”라고 해명했다.2 위법으로 확인된 사안은 아니나, 세제 정상화를 외치는 시점에 본인의 거래 방식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그의 개혁 언어에 설득력의 공백을 남겼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개혁은 옳음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그것을 추진하는 자의 신뢰가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고. 대토론회라는 형식을 빌려 국민 140명을 불러 모았지만, 정작 발언 기회를 얻은 것은 28명이었고, 대통령 자신의 진단과 전망이 대화의 대부분을 채웠다면,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경계했던 ‘군주의 독백’에 가까운 구도로 풀이될 여지가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형식은 의논, 내용은 결론 — 반복되는 패턴
그라쿠스의 로마와 2026년의 대한민국 사이에는 2천 년의 시간이 있지만, 한 가지 패턴은 겹친다. 개혁의 정당성과 개혁자의 신뢰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는 진단 자체에는 많은 전문가 역시 동의하는 바다. 문제는 그 진단을 내놓는 자리가 ‘의견을 듣는 자리’였는지, ‘결론을 통보하는 자리’였는지다. 대통령이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대비해야 한다”고 밝힌 순간, 정책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고 토론회는 절차적 형식에 그쳤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부동산은 그 어떤 정책보다 좌우의 이념이 무의미해지는 영역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며, 예측 가능성은 일방적 선언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우리가 아직 던지지 못한 질문
토론회라는 이름의 자리에서, 정작 국민이 무엇을 물었는지보다 대통령이 무엇을 답했는지가 더 크게 기록되었다. 세 시간의 자리 끝에 남은 것은 정책의 방향이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가 실제로 이 나라를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이다.
* 참고할 말씀: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 잠언 15:22
2. 분당 아파트 매매 및 근저당권 설정 관련 청와대 입장, 2026.7.20~21 (서울경제 종합)
3.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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