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궁전이 무너진 날

세계사 · 혁명 시리즈 ③ · 1917~1924

겨울궁전이 무너진 날 — 권력은 사라지지 않고 이동할 뿐이다

혁명은 왜 결국 다른 권력을 낳는가 — 세계사-혁명 미니 시리즈 3편 (러시아혁명 1917~1924)


무너진 것은 왕좌였을 뿐, 왕좌를 향한 열망은 아니었다

역사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낡은 권력이 무너지는 장면과, 그 자리에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는 장면은 언제나 다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후자는 대개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되곤 한다. 그리고 그 완성된 모습이 처음의 약속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확인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 패턴이 가장 압축된 형태로, 가장 짧은 시간에 벌어진 사건이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였다.

황제의 자리, 그리고 그 자리를 둘러싼 셈법

1917년 3월, 페트로그라드의 빵 배급 부족에서 시작된 시위는 순식간에 제국 전체를 흔들었다. 3월 15일, 니콜라이 2세는 퇴위했다. 300년 넘게 이어진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열흘이 되지 않았다.

권력의 공백을 메운 것은 두 개의 축이었다. 하나는 자유주의 성향의 임시정부, 다른 하나는 노동자·병사들이 직접 조직한 소비에트였다. 이른바 ‘이중권력’ 체제였다. 임시정부는 전쟁을 지속하기로 했고, 이 결정은 지친 민중의 인내심을 다시 시험대에 올렸다.

1917년 4월, 봉인열차를 타고 스위스에서 돌아온 레닌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앞세운 4월 테제를 발표했다. 7월, 성급한 봉기가 실패하며 그는 핀란드로 도피해야 했다. 볼셰비키의 입지는 이때만 해도 뚜렷하지 않았다.

역사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오히려 반대편에서 왔다. 1917년 8월, 총사령관 코르닐로프가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페트로그라드를 향해 군을 움직였다. 케렌스키의 임시정부는 이 군부 쿠데타를 막기 위해, 불과 몇 주 전 진압했던 볼셰비키에게 다시 무기를 쥐여주었다. 오른쪽의 위협을 막아서려 한 선택이 도리어 다른 세력의 결정적 발판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 세력을 막기 위한 선택이 결국 그 대상을 대신할 세력을 키워냈다는 사실은, 권력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1917년 11월 7일 밤, 볼셰비키는 무장봉기를 일으켜 겨울궁전을 점령했다. 훗날 영화들이 그려낸 것처럼 총성과 함성이 뒤덮은 격전은 아니었다. 임시정부를 지키던 병력은 이미 흩어진 뒤였고, 궁전은 큰 저항 없이 넘어갔다. 권력은 거대한 전투가 아니라, 방어할 의지를 상실한 공간의 침묵 속에서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력을 쥔 볼셰비키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1918년 1월, 자신들이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제헌의회를 소집 하루 만에 해산시켰다. 3월 3일에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독일과 강화했다. 같은 해 7월 17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은 처형되었다. 낡은 권력의 상징을 완전히 지우는 작업이었다.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이어진 내전 속에서, 신생 정권은 전시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경제 전체를 국가 통제 아래 두었다. 곡물은 강제로 징발되었고, 사적 거래는 엄격히 단속되었으며, 이 모든 과정을 비밀경찰 체카가 관리했다. 전쟁을 이기기 위한 임시조치로 시작된 이 체제는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꺾었고, 도시는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의 삶이 통제 속에서 피폐해지면서, 정권을 향한 신뢰 역시 함께 무너져 내렸다.

1921년 3월, 정권을 지지했던 크론시타트 해군기지 병사들마저 “소비에트 권력은 원하지만 볼셰비키의 지배는 원하지 않는다”며 봉기했다. 정권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자신을 낳아준 세력을 향해서도 총구를 겨눌 수 있다는 것이, 새로 태어난 권력이 스스로 증명한 첫 번째 얼굴이었다.

같은 달, 정권은 방향을 바꿔 신경제정책(NEP)으로 일부 시장 기능을 허용했다. 생존을 위한 실용적 후퇴였다.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공식 출범했다. 그리고 1924년 1월 21일, 혁명을 설계했던 레닌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앞으로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는, 아직 아득한 상태였다.

필부가 된 임금, 그리고 역사의 간지

이 흐름을 단순한 폭력의 승계로만 읽으면, 러시아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벌어진 예외적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철학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되며, 그렇게 세워진 새 권력은 왜 그토록 빨리 낡은 권력의 방식을 다시 쓰게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맹자는 폭군을 향한 무력 저항을 이렇게 정당화했다.

賊仁者謂之賊,賊義者謂之殘,殘賊之人謂之一夫。聞誅一夫紂矣,未聞弒君也。(적인자위지적,적의자위지잔,잔적지인위지일부。문주일부주의,미문시군야。)
“어짊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로움을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한다. 잔적한 자는 이미 임금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필부일 뿐이다. 나는 필부인 주(紂)를 처단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맹자』, 양혜왕 하)

역성혁명론의 핵심은 명료하다. 임금이 도리를 저버리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니콜라이 2세를 향한 볼셰비키의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필부가 된 자를 처단한 이들 역시 스스로 언젠가 필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헤겔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을 ‘이성의 간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헤겔, 『역사철학강의』). 개인은 저마다의 열정과 야심으로 움직이지만, 그 행위들이 얽히며 결국 개인의 의도를 넘어선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레닌과 그의 동료들은 차르 체제를 끝내겠다는 신념으로 움직였지만, 그들이 세운 체제가 결국 체카와 강제 징발이라는, 자신들이 규탄했던 것과 닮은 통치 기술을 다시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 개념을 곱씹게 만든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질서를 요구하는 순간, 새 권력이 태어난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1848년 유럽을 뒤흔든 혁명의 물결과 파리코뮌이 남긴 짧은 자치의 실험을 살펴보았다. 러시아혁명은 그 물결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준다. 혁명이 무너뜨리는 것은 특정한 통치자이지, 통치라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혼란이 길어질수록 대중은 그 기술을 더 강하게, 더 빨리 발휘할 수 있는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준다.

차르의 비밀경찰 오흐라나가 사라진 자리에 체카가 들어섰고,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권한은 당이라는 조직에 집중되는 방식으로 형태만 바꾸었다.

겨울궁전의 문이 열린 것은 권력의 소멸이 아니라 권력의 이전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이전은 언제나, 처음의 약속보다 더 촘촘한 통제로 귀결되곤 했다.

역사를 지켜봐 온 독자라면 이 흐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낡은 세력’이라는 이름의 대상이 지목되고, 청산이라는 이름의 작업이 뒤따른다. 그 작업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청산을 수행하는 새 권력이 스스로에게는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을 때, 그 청산이 정의를 세우는 일인지 아니면 단지 자리를 바꾸는 일에 불과한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음을, 역사는 조용히 일러주는 듯하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새 권력을 세우는가

레닌이 눈을 감던 1924년 1월, 소비에트 연방은 아직 자신이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스탈린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는 몇 해가 더 필요했다. 혁명은 그렇게,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신의 다음 모습을 감춘 채로 남아 있다.

권력이 교체되는 순간의 함성은 언제나 크고 선명하다. 그러나 그 함성이 가라앉은 뒤, 새로운 권력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감시하기 시작하는지는 훨씬 조용히, 훨씬 천천히 드러난다.

높이는 것도 낮추는 것도 결국 사람의 손을 넘어선 곳에서 판가름 난다는 오래된 통찰이 있다.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남쪽에서도 아닌 곳에서, 재판장이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한다는 통찰은 권력의 자리를 스스로 영원하다 믿었던 이들의 역사와 묘하게 겹쳐 읽힌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거듭 묻고 싶은 질문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 낡은 권력을 걷어냈다는 이름으로 어떤 새로운 문지기를 세우고 있는가.

* 참고할 말씀: ‘이는 높이는 것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남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함이로다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 시편 7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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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및 주요 사건
1. 니콜라이 2세 퇴위 — 1917년 3월 15일
2. 레닌 귀국 및 4월 테제 — 1917년 4월
3. 7월 봉기 및 레닌 도피 — 1917년 7월
4. 코르닐로프 쿠데타 시도 — 1917년 8월
5. 볼셰비키 무장봉기(겨울궁전 점령) — 1917년 11월 7일
6. 제헌의회 해산 — 1918년 1월
7.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 1918년 3월 3일
8. 니콜라이 2세 일가 처형 — 1918년 7월 17일
9. 크론시타트 봉기 및 신경제정책(NEP) 도입 — 1921년 3월
10. 소비에트 연방 수립 — 1922년 12월 30일
11. 레닌 사망 — 1924년 1월 21일
12. 『맹자』, 양혜왕 하
13. 헤겔, 『역사철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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