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은 성역 없이, 정책은 성역 안에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
정치·외교 · 경제·국방 | 2026.08.10
국민 눈높이라는 말이 도착하지 못한 자리
지난 6일,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라도 국민이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거나 도리어 국민의 삶에 피해를 준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옳은 말이 매번 미묘한 시점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곤 한다.
이틀 전엔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사흘 전엔 2026년 세제개편안이 발표됐다.1,2 고령자 1주택 처분 특례에는 “65세 이상, 6개월 내 이주, 5년 이상 보유, 2년 연속 거주”라는 조건이 겹겹이 걸렸다. 정책에 우호적이던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3 이 발언이 형소법이나 부동산 등 특정 정책을 염두에 둔 것이었냐는 질문에,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정한 정책이나 법안, 부처를 가리켜서 한 말씀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1
특정 정책을 겨냥한 게 아니라면, 그 선언은 대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가. 겨냥 대상이 없는 반성은 진정한 성찰이라기보다, 반성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경기도 재정 비상, 그 청구서는 결국 누구에게 갈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청구서가 도는 방향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05년, 선언은 도착하지 않았다
1905년 10월,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10월 선언’을 발표했다.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두마(의회)를 통한 국민 대표의 참여 — 혁명적 열기를 잠재우기 위한 파격적 약속이었다.
문제는 선언 이후였다. 약속된 자유는 관료 조직을 통과하며 절차 속에서 지연됐다. 두마의 권한은 시행령 수준에서 조금씩 축소됐다. 백성은 선언을 들었지만, 삶에서는 그 선언을 체감하지 못했다.
황제가 거짓말을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이 실행을 거듭 배신하는 순간, 그 시차 자체가 이미 중대한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었다. 선언의 지연이 반복되자 백성이 의심한 것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황제의 말 그 자체였고, 그 불신은 훗날 제국의 정통성을 갉아먹는 뿌리가 됐다는 해석으로 읽힌다. 그 뿌리는 단번에 뽑히지 않았다. 12년에 걸쳐 서서히 곪았고, 1917년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이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선언 하나가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선언과 실행 사이의 거리를 방치한 시간이, 무너짐의 조건을 조금씩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이름과 실제가 어긋날 때
한비자는 형명참동(刑名參同)을 말했다. 名(말)과 刑(실제 성과)이 일치해야 하며, 일이 말과 맞지 않으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본래 신하를 겨냥한 통치술이었지만, 위로도 똑같이 작동한다고 읽을 수 있다. 형명참동을 스스로 어긴 군주는 신하와 백성 모두에게서 서서히 힘을 잃는다는 것이 한비자의 경고였다.
노자는 다른 각도에서 같은 문제를 짚었다. “백성이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위에서 인위적으로 일을 만들기 때문이다(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형소법 개정, 세제개편, 자산시장 규제가 한꺼번에 쏟아질 때, 국민이 체감하는 것은 방향이 아니라 혼선과 피로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서양에서는 토크빌이 이 역설을 정확히 짚었다.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에서 그는, 혁명은 가장 억압적인 시기가 아니라 개혁이 선언된 직후에 터지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개혁의 말은 기대를 끌어올리지만, 실행이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그 기대는 실망으로, 다시 분노로 옮아갈 수 있다.
성역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겼다
성역 없이 고치겠다는 말은 정책의 결과로만 증명될 수 있다. 말로는 증명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공급 확대를 말하면서, 세제 조건으로 시장을 다시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법 절차에서는 검찰권 견제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경찰의 사건 처리 지연과 부실 수사에 대한 우려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권력기관 개편이라는 명분이, 정작 사건 당사자인 국민의 실질적 피해로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산시장에서는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변동성 확대의 책임론이 정책 설계 자체를 향하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4
이 각각의 사안은 서로 다른 부처, 서로 다른 법안의 일이다. 그러나 국민이 체감하는 것은 부처 단위의 설명이 아니라, “정부의 말과 정부의 결과 사이의 거리” 하나뿐이다. 앞서 청와대가 내놓은 “특정 정책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은, 논란을 잠재우기보다 또 다른 책임 회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겨냥한 것이 없었다면, 국민은 왜 그 발언을 듣는 순간 형소법과 세제개편을 동시에 떠올렸겠는가.
한비자의 형명참동, 토크빌의 기대-분노 구조, 니콜라이 2세의 10월 선언 — 시대와 체제는 다르지만 패턴은 같다. 성역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에서 실행으로, 정책에서 해명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정책은 언제나 좋은 의도로 시작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준 것은, 정책의 실패가 의도의 문제라기보다 말과 실행 사이의 거리를 방치하는 국정 운영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정부는 이 거리를 알고 있다. 6일의 발언 자체가 그 증거다. 그런데 안다는 것과, 그 거리를 좁히는 것 사이에는 또 하나의 간극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참고할 말씀: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마태복음 7:20
1. 이재명 대통령, 8.6 수석보좌관회의 발언 (경향신문·오마이뉴스, 2026.08.06)
2. 형사소송법 개정안(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국무회의 의결·공포, 2026.08.04
3. 2026년 세제개편안 발표, 2026.08.03 및 시장 반응 (시사저널, 2026.08.07)
4. 레버리지 ETF 관련 자산시장 변동성 및 책임론 보도 (오마이뉴스,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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