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재정 비상, 청구서는 누구에게 갈까

경기도 재정 위기를 상징하는 텅 빈 지하 금고실 전경. 열려 있는 대형 원형 철제 금고 문 옆으로 빈 선열들이 보이며, 상단 현판에는 "TREASURY VAULT | 京畿道 곳간 | EMPTY SINCE 2026.08.08"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텅 비어버린 경기도 곳간(Treasury Vault). 2026년 8월 8일 자로 재정이 고갈되었음을 알리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기도 재정 비상, 청구서는 누구에게 갈까 — 이재명에서 추미애까지

재난기본소득에서 소비쿠폰까지, 반복되는 재정 회계의 구조

정치·경제 · 2026.08.08 · Watchman


마른 땅에 남은 풀 한 포기

앞선 글에서 우리는 나흘 사이 계기판이 두 번 뒤집힌 증시를 통해 정책 대응의 시차를 살펴보았다. 이번에 다룰 문제는 시장의 변동성이 아니라, 그 변동성 이전에 이미 흔들리고 있던 재정의 뿌리다.

8월 5일,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수원 경기도청 브리핑룸에 섰다. “오늘 이 시간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다.” 표현은 담담했지만 내용은 무거웠다.

민생 예산은 12개월이 아니라 9개월치만 편성되어 있었고, 노인장기요양비와 학교 급식비, 산후조리비가 10월이면 바닥을 드러낼 참이었다. 20년 만의 지방채 발행, 7,700억 원 규모의 감액 추경.1 추 지사는 경기도의 재정 형편을 “마른 땅에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곳간이 마른 데는 세입 쪽 사정도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취득세 수입이 줄어든 상황이 지출 구조의 고착화와 겹쳤다는 게 여러 보도의 공통된 진단이다.1 그러나 추 지사가 이날 화살을 돌린 곳은 직전 임기, 김동연 전 지사의 재정 운용이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수의 필수 사업을 9개월분만 편성해 놓고 그해그해를 지방채와 각종 기금으로 넘겨왔다는 것이다.

틀린 진단은 아니다. 다만 그 곳간이 왜 애초에 얇았는지를 한 걸음 더 거슬러 올라가면, 회견장에서 호명되지 않은 이름 하나가 함께 등장한다.

2010년 아테네, 감춰진 장부가 드러난 날

2009년 10월, 그리스에서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사회당(PASOK)이 총선에서 압승했다. 공공지출 확대와 복지 확충을 앞세운 선거였다. 집권 직후 새 정부가 국가 장부를 다시 열어보니, 재정적자는 이전 정부가 발표한 수치의 두 배가 넘는 국내총생산 대비 12.7% 수준이었다.2

여기에는 단순한 지출 관행을 넘어서는 문제가 있었다 — 2001년 그리스 정부는 골드만삭스와의 파생상품 거래(통화스왑)를 통해 실제 부채 규모를 통계상 감춘 전력이 있었다.2 회계적 착시와 비정직한 장부 작성이 누적된 지출 관행과 맞물린 결과였다.

2010년 5월, 그리스는 결국 EU와 IMF로부터 1,100억 유로 규모의 첫 구제금융을 받아들였다.2 위기를 공식 선언한 것은 파판드레우 정부였지만, 위기의 원인은 여러 정권을 거치며 오랫동안 축적되고 은폐된 지출·부채 구조 그 자체에 있었다.

경기도의 회계도 비슷한 결을 갖는다. 2020년과 2021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전 도민에게 세 차례에 걸쳐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총 3조 3,845억 원, 이 중 1·2차 재원 1조 5,043억 원은 상하수도·도로 정비 등에 쓰일 지역개발기금에서 빌려온 돈이었다.3 코로나19라는 위기 앞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상환의 시간표는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며 임기를 마친 뒤에 찾아왔다. 첫 상환 청구서는 2024년 김동연 지사 앞으로, 2029년까지는 해마다 3,000억~3,800억 원씩,4 그리고 이제는 추미애 지사의 책상 위로 이어지고 있다.

곳간과 명분 사이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倉廩實而知禮節,衣食足而知榮辱 (창름실이지예절, 의식족이지영욕)
“곳간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

관중에게 백성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통치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그 풍요는 국가의 곳간, 곧 지속 가능한 재정 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었다. 눈앞의 곳간을 비워 먼 훗날의 풍요를 약속하는 방식은, 관중이 세운 순서를 뒤집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경계한 것도 권력의 집중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그가 말한 ‘부드러운 전제’의 핵심은 강압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의 모든 필요를 대신 해결해 줌으로써 시민을 서서히 무기력하게 만들고 국가에 의존하게 만드는 후견적 권력이었다. 그 후견의 대가는 종종 재정적 부채라는 형태로 미래에 이월된다는 점에서, 부드러운 전제는 결코 무상이 아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도지사의 통장에서 대통령의 국고로

이와 같은 논리가 규모를 바꾸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대목이다. 2025년 6월 19일, 대통령이 된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첫 추경으로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을 의결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15만~55만 원, 국회 심사를 거쳐 12조 1,000억 원 규모로 확정됐다.5

같은 달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년간 80조 원 이상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고 올해도 상당한 결손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0조 3,000억 원 규모의 세입경정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6

물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재정 구조는 같지 않다. 국가는 통화·국채 발행 여력을 지니며, 경기 하강 국면에서 소비 진작 지출은 경기 조절 정책(countercyclical fiscal policy)으로서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 역시 세입경정을 통한 재정 정상화를 함께 추진 중이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국채 발행을 통해 오늘의 지출을 미래 세대의 상환 의무로 이월한다는 본질적 구조 면에서는, 경기도가 지역개발기금을 빌려 지급을 감당했던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곳간이 비어간다는 진단과 지출을 늘리는 결정이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다. 경기도가 겪은 재정 갈증이 국가 단위에서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는 누구의 다음 청구서를 기다리고 있는가

추미애 지사가 마주한 마른 곳간은 한 사람의 실책이 아니라, 여러 임기를 거치며 쌓여온 회계의 결과다. 그리고 그 회계의 문법은 지사실을 떠나 대통령실의 국고에서도 낯설지 않게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된다는 오래된 잠언처럼, 오늘의 풍요를 약속받은 세대는 결국 누군가의 상환 의무를 물려받는다.

경기도민이 지금 갚고 있는 것은 2020년의 청구서다. 우리는 2025년의 청구서를 누구에게 넘기고 있는가 — 이 질문은 아직 열려 있다.


* 참고할 말씀: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 잠언 22:7

[참고 통계 및 출처]

1. 경인일보·이투데이·한국일보·위키트리, 추미애 경기도지사 재정 비상 상황 선언 기자회견 및 취득세 수입 감소 관련 보도, 2026.8.5
2. 그리스 재정위기, 2001년 골드만삭스 통화스왑을 통한 재정적자 은폐, 2010년 5월 EU-IMF 1차 구제금융(1,100억 유로) 관련 보도
3. 경인일보, “이재명 재난기본소득 ‘부메랑’… 세수절벽 경기도 곳간 뒤숭숭”, 2024.6.20 / 재난기본소득 1·2차 재원 지역개발기금 차용 1조5,043억원
4. 다음뉴스(국정감사 보도), 2025.10.21 / 재난기본소득 총 3조3,845억원, 2029년까지 매년 3,000억~3,800억원 상환
5. 나무위키·언론 종합, 민생회복 소비쿠폰 추경 12조1,000억원 규모, 2025.7.4 국회 통과
6. 이재명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2025.6.27 / 2023~2024년 세수 결손 80조원 이상, 세입경정 10조3,0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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