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중’이라는 세 글자

비 온 뒤 웅장한 신전 양식 건물과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 외교적 지연과 비자 심사의 냉혹한 구조를 상징하는 시사 칼럼 이미지
닫힌 거대한 문과 흘러나오는 옅은 빛. ‘심사 중’이라는 침묵 뒤에 숨은 외교의 냉혹한 절차와 제도적 구조를 상징한다.

‘심사 중’이라는 세 글자

정청래 비자 보류와 동맹이라는 기대

2026년 10월 10일 · 정치·외교 · Watchman


허가도 불허도 아닌 상태

2026년 10월 8일 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해외 국정감사에서 미주반 대신 구주반으로 일정을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비자가 국무부에서 ‘계속 심사 중’ 상태라는 이유였다. 미주반은 10월 12일부터 주미대사관과 주유엔대표부를 찾을 예정이었다. 출국을 사흘 앞두고도 허가도 불허도 아닌 상태가 이어졌다. 미주반 의원 가운데 정 의원만 보류된 것으로 파악됐다.¹

정 의원은 4선 중진이자 직전 여당 대표다. 2012년에는 외통위원으로 미주 국감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 이력만으로는 이번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2013년 10월에도 같은 국감을 앞두고 비자를 받지 못해 유럽 감사팀으로 옮긴 적이 있기 때문이다.² 당시에는 거부를 통보받았고, 이번에는 결론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같은 주에는 국정원 소식도 있었다. 10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주미대사관에 파견될 국정원 직원들의 비자와 외교관 신분 승인을 보류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거부가 아니라 지연이라고 반박하며, 강화된 입국 절차에 따른 개인 신상 관련 비자 절차의 문제이고 한미 정보협력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³

두 사건을 하나의 원인으로 묶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둘을 잇는 근거는 지금까지 공개된 바 없다. 이 글이 묻는 것은 원인이 아니라 구조다. 사유가 공개되지 않는 제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이 장면을 읽는가.

이유를 말하지 않을 권리

1961년 4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은 근대 외교의 오랜 관행 하나를 조문으로 남겼다. 접수국은 외교관 파견에 대한 사전 동의(아그레망)를 거부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없고, 이미 부임한 외교관도 언제든 이유를 밝히지 않고 기피인물로 통보할 수 있다.⁴ 이유를 설명하게 하면 그 설명이 다시 다툼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라고 읽을 수 있다. 이 협약은 외교관을 대상으로 하지만, 입국의 문턱을 관리하는 국가의 태도를 압축해서 보여 준다. 외교에서 침묵은 결함이 아니라 설계일 때가 많다.

미국의 비자 제도도 같은 결을 지닌다. 2013년 연합뉴스의 질의에 미 국무부는 비자 문제가 미국법상 비밀 사항이라 특정 개인의 비자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⁵ 당시 일각에서는 정 의원의 1989년 대학생 시절 미국 대사관저 점거 관여 이력을 거론했다. 그러나 그 이력은 비자를 받아 국감에 참석했던 2012년에도 이미 과거였다. 이력 하나로는 엇갈린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개별 심사에서 여러 변수가 겹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그 변수가 무엇인지는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장면은 정권의 성향이나 신청자의 여야 지위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보도에 따르면 2001년에는 임종석 의원이, 2013년에는 야당 의원이던 정 의원이, 2026년에는 직전 여당 대표인 정 의원이 같은 종류의 일을 겪었다.² 비자는 직책이 아니라 개인을 단위로 심사한다.

문턱은 한미 사이에서도 낮아지지 않았다. 한 의원실이 미 국무부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인에게 발급된 비이민 비자는 6만 8,130건으로 전년보다 7.95% 줄었다.⁶

2025년 9월 조지아주 사업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이 구금되었다. 이후 한미는 비자 워킹그룹을 가동했고 12월 초 주한미국대사관에 대미 투자기업 전담 창구를 열었지만, 한국 기업을 위한 별도 비자 범주의 신설은 합의하지 못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것이 미 의회의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⁶ 정상 간 합의와 행정부의 의지가 닿지 못하는 층위, 곧 법이 있다. 동맹이라는 지위가 개별 심사의 예외를 뜻하지는 않는다.

같음을 기대한 자리에서 냉기가 생긴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이렇게 갈랐다.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소인동이불화。)
“군자는 어울리되 같아지지 않고, 소인은 같아지되 어울리지 못한다.”⁷

동맹은 화(和)의 관계이지 동(同)의 관계가 아니다. 이익과 법체계가 다른 두 나라가 공동의 목표 아래 조율하는 것이 동맹이고, 하나의 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같아지기를 기대하면 차이가 배신처럼 느껴지고, 어울리기를 기대하면 차이가 조율의 과제로 남는다. 우리가 냉기라 부르는 것은 상대의 온도가 아니라 기대의 낙차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기원전 416년,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패권을 놓고 맞서던 시기였다. 에게해의 작은 섬 도시 멜로스는 이 싸움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려 했다. 멜로스는 스파르타 이주민이 세운 도시여서 스파르타와 혈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테네는 함대를 보내 항복하고 아테네 세력권에 들어오라고 요구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협상 장면을 ‘멜로스 대화’로 남겼다(발언은 그가 재구성한 것이다). 멜로스인들은 두 가지에 기댔다. 혈연으로 이어진 스파르타가 도우러 오리라는 기대와, 정의로운 편을 신이 돕는다는 믿음이었다. 아테네의 대표는 정면으로 답했다. 스파르타는 자국에 이로운 것을 정의라 부르는 데 누구보다 능한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희망이 위험 속에서 사람을 위로하지만 때로는 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도 경고했다.⁸

결과는 아테네의 말대로였다. 스파르타는 오지 않았고 멜로스는 함락되었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성인 남성은 처형되고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한국과 멜로스, 미국과 아테네를 겹쳐 읽을 수는 없다. 한미동맹은 1953년 10월 서명된 상호방위조약과 70년 넘는 제도적 교류 위에 서 있고, 비자 한 건의 보류는 한 도시의 운명과 같은 무게가 아니다. 이 대화를 ‘강자의 논리가 옳다’는 교훈으로 읽을 수도 없다. 투키디데스는 바로 다음 권에서 아테네가 그 오만의 대가를 시칠리아 원정의 파국으로 치르는 과정을 기록했다. 시대를 건너 남는 것은 어느 쪽의 선악도 아니다. 동맹에 건 기대와 동맹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곧 각자의 이익과 절차 사이의 간격이라는 구조다. 기대는 전략이 아니다.

동맹을 같음으로 오해하지 않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비로소 상대의 법과 절차를 있는 그대로 읽는 시선이 열린다. 손자는 그 시선의 순서를 이렇게 말했다.

知彼知己,百戰不殆。
(지피지기,백전불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⁹

요지는 전쟁이 아니라 인식의 순서다. 감정에 앞서 상대가 어떤 절차로 움직이는지를 읽는 일, 그리고 우리의 의회 일정과 외교 채널이 그 절차와 어디서 어긋나는지를 아는 일이 같은 문장 안에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같은 사실, 정반대의 서사

보류 소식 직후 반응은 정확히 갈렸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직전 여당 대표의 비자 지연에 강한 유감을 표했고, 동맹국 국회의 정당한 의정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동맹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야권에서는 외교·정보·안보 전반의 이상 신호이자 공개적인 불신의 신호라는 평가가 나왔고, 일부 인사는 이를 ‘거부’로 규정했다.¹⁰

같은 ‘심사 중’이라는 세 글자를 한쪽은 동맹이 제도의 문턱에 걸린 일로, 다른 쪽은 동맹이 균열한 증거로 읽는다. 두 해석 모두 사유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같은 사실 위에 서 있다. 보도된 상태가 ‘보류’인데 ‘거부’라는 단어가 쓰이는 순간, 해석은 이미 사실을 앞질렀다. 사유가 침묵하는 곳에서는 해석이 사유를 대신하고, 해석은 언제나 해석하는 자의 기대를 닮는다.

보류의 실질적 비용은 결론이 아니라 불확실성 자체에 있다. 헌법에 뿌리를 둔 국회의 국정감사가 타국의 행정 절차 일정에 맞춰 사흘 전에 경로를 바꿨다. 13년 전에도 정 의원 측은 한국 외교부의 소극적 태도에 아쉬움을 표했다.² 그 사이 사전 조율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공개된 정보가 없다.

여기서 유감과 분석을 양자택일로 놓을 이유는 없다. 유감 표명은 자국 의회의 활동을 지키려는 정당한 외교 언어다. 다만 유감이 마지막 문장이 될 때 학습이 멈춘다. 동맹의 신뢰는 감정의 온도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으로 측정된다. 심사에 걸릴 수 있는 기간, 보류가 길어질 때 쓸 수 있는 경로,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채널을 일정 설계의 변수로 넣는 일은 기술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외교적인 일이다.

‘심사 중’ 뒤에 올 문장

이 글이 독자에게 읽히는 시점에 정 의원의 미주 일정은 이미 사라졌다. 비자가 뒤늦게 발급된다 한들, 오랫동안 주미대사관과 주유엔대표부를 겨냥해 송곳처럼 벼려온 질문들이 다시 상자에 담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정감사는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질문을 받아내야 할 대상과 장소 위에서만 비로소 국정감사가 된다.

해외 국감 준비는 사흘 만에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간이 작업이 아니다. 피감기관의 업무를 파악하고, 다수의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질의를 다듬어온 오랜 행정적 공력은 목적지가 바뀌는 순간 상당 부분 허공으로 증발한다.

사흘 전 경로 변경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헌법에 뿌리를 둔 한국 국회의 의정 활동이 타국의 비자 심사라는 행정 문턱 앞에서 너무나 손쉽게 제약되었다는 점이다. 해외 국정감사는 과연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앞선 글에서 우리는 호황이 가린 구조 문제를 짚으며, 제방은 강이 맑을 때에만 쌓을 수 있다고 썼다. 외교에도 같은 이치가 있다. 맑은 날에 쌓아 두는 것은 호의의 선언이 아니라 채널과 절차에 대한 이해다.

우리는 동맹을 ‘같아지는 관계’로 기대해 왔는가, ‘어울리는 관계’로 설계해 왔는가. 그리고 ‘심사 중’이라는 말 뒤에 어떤 문장이 오든 받아 낼 준비를, 맑은 날에 얼마나 해 두었는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문장이 쓰이기 전의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쓴다.


* 참고할 말씀: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 전도서 3:7

¹ 경향신문(2026.10.8), 한국일보(2026.10.8), 프레시안(2026.10.9) 보도 종합.

² 경향신문(2026.10.8), 연합뉴스(2013.10.22) 보도 종합. 2001년 임종석 의원 사례는 연합뉴스 보도 인용.

³ 위키트리(조선일보 인용, 2026.10.6), 코리아타임스(2026.10.6) 보도 종합. 국정원 입장은 같은 보도에 인용된 해명.

⁴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1961.4.18 채택) 제4조 2항(아그레망 거부 사유 설명 의무 없음), 제9조(기피인물 통보).

⁵ 연합뉴스(2013.10.22). 미 국무부 답변은 당시 연합뉴스 질의에 대한 회신.

⁶ 코리아중앙데일리(홍기원 의원실 분석, 미 국무부 비자 발급 통계), 노컷뉴스(2025.12.5) 보도 종합.

⁷ 『論語』 「子路」.

⁸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권 84~116장(멜로스 대화), 시칠리아 원정은 6~7권.

⁹ 『孫子』 「謀攻」.

¹⁰ 뉴스1, SBS Biz, 프레시안, 이로운넷(2026.10.8~9) 보도 종합.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