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와 ‘하늘 탓’의 문법
아일랜드 대기근, 1845
2026. 10. 02. · 세계사 · 세계사-물자-④
하룻밤 사이 검게 변한 밭
1845년 9월, 아일랜드의 농부들은 밭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전날까지 푸르던 감자 잎이 하룻밤 사이 검게 말라 있었다. 캐낸 덩이줄기는 손에 쥐자마자 물컹하게 짓물렀다. 아메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감자역병균이 아일랜드에 닿은 것이다.
한두 해의 흉작이었다면 역사는 이 장면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밭의 주인들에게 감자는 여러 반찬 중 하나가 아니었다. 소작농과 농업 노동자 수백만 명에게 감자는 사실상 유일한 주식이었다. 뿌리가 썩자 식탁이 사라졌다. 이후 몇 해 동안 약 100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고, 100만 명 넘는 사람이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이 사건을 흔히 병충해의 비극으로 기억한다. 그러면 정작 물어야 할 것이 빠진다. 곰팡이 하나가 어떻게 한 나라의 식탁을 통째로 무너뜨릴 수 있었는가. 그 답은 1845년이 아니라, 그보다 300년 전 대서양 건너 안데스 고원에서 시작된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향신료 독점이 어떻게 제국의 회사를 만들었는지 살펴보았다. 향신료가 희소함이 권력이 되는 이야기였다면, 감자는 정반대에서 출발한다. 너무 흔하고 너무 넉넉해서 무너진 물건의 이야기다.
안데스의 뿌리는 어떻게 유럽의 식탁을 장악했는가
1492년 이후 대서양 양쪽의 작물과 가축과 병원균이 서로의 대륙으로 건너가 뒤섞였다.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는 이를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불렀다.¹ 이 교환의 가장 조용하고 가장 무거운 선물이 감자였다. 안데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길들여 온 이 뿌리는 16세기 후반 스페인을 거쳐 유럽에 들어왔다.
처음에 유럽은 감자를 반기지 않았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작물이었고, 땅속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불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감자에는 곡물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었다. 같은 면적에서 훨씬 많은 열량을 냈고, 척박하고 서늘한 땅에서도 자랐다. 무엇보다 땅속에 있었다. 곡물은 세금으로 거두어 가고 군대가 약탈하기 쉬웠지만, 뿌리는 숨겨 둘 수 있었다. 전쟁과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에게 감자는 빼앗기지 않는 식량이었다.
한 연구는 감자의 도입이 1700년에서 1900년 사이 구세계 인구 증가의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고 본다.² 유럽의 인구와 산업혁명의 노동력이 그 위에 쌓였다.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이 논리가 극단까지 간 경우였다. 17세기 이후 영국의 정복과 토지 몰수를 거치며, 아일랜드 땅의 대부분은 영국계 지주의 소유가 되었다. 그중 상당수는 아일랜드에 살지 않는 부재지주였다. 가톨릭 농민은 잘게 쪼개진 소작지에서 지대를 낼 곡물과 가축을 키웠다. 자기 식구를 먹일 땅은 손바닥만 했고, 그 땅에서 가장 많은 열량을 내는 작물은 감자뿐이었다.
1841년 인구 조사에서 아일랜드 인구는 800만을 넘었다. 그중 가장 가난한 수백만 명은 하루 식사의 거의 전부를 감자에 기대고 있었다. 게다가 재배 품종마저 ‘럼퍼’라는 한 가지에 쏠려 있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같은 유전자는 같은 병에 함께 쓰러진다.
병이 오자 국가는 어떻게 움직였는가. 1845년 말 필 정부는 미국산 옥수수를 들여왔고, 1846년 6월 곡물법을 폐지했다. 그러나 이어진 러셀 정부는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구호의 책임은 아일랜드의 지주와 구빈세로 넘어갔다.
기근이 절정에 이른 1847년에도 아일랜드의 항구에서는 곡물과 가축이 영국으로 실려 나갔다. 식량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식량을 살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해 구빈법 개정으로 들어간 ‘그레고리 조항’은 4분의 1에이커가 넘는 땅을 가진 사람에게 구호를 주지 않았다. 굶주린 농민이 빵을 받으려면 먼저 땅을 내놓아야 했다. 땅을 잃은 사람들은 ‘관선(棺船)’이라 불린 이민선에 올랐다.
같은 역병은 1846년에서 1847년 사이 유럽 대륙도 덮쳤다. 벨기에 플랑드르처럼 큰 피해를 입은 곳도 있었다. 같은 곰팡이가 유럽 대륙을 덮쳤지만 아일랜드만큼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대륙의 식탁에는 감자 곁에 곡물과 다른 작물이 있었고, 한 뿌리에 이토록 극단적으로 기댄 곳은 아일랜드가 유례없는 경우로 알려져 있다. 병원체는 같았고 구조가 달랐다.
하늘이 보낸 병, 사람이 만든 굶주림
맹자는 양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狗彘食人食而不知檢,塗有餓莩而不知發;人死,則曰:非我也,歲也。
(구체식인식이부지검, 도유아표이부지발; 인사, 즉왈: 비아야, 세야.)
“개와 돼지가 사람의 먹을 것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고,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른다. 사람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라 한다.”³
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非我也,兵也。
(시하이어자인이살지, 왈: 비아야, 병야.)
“이것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가 아니라 칼이 그랬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흉년 탓’이라는 말과 ‘칼 탓’이라는 말은 같은 문법을 쓴다. 2,300년 전 전국시대의 이 문장이 1847년 아일랜드의 항구를 가리킨다. 당시 영국 관료들 사이에 기근을 섭리로 설명하는 어휘가 오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⁴ 역병은 실제로 하늘에서 왔다. 그러나 그 병이 어디서 사람을 죽이고 어디서 죽이지 않는지는 하늘이 정하지 않았다.
현대의 언어로 같은 통찰을 세운 사람은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다. 그는 1943년 벵골 기근을 분석하며, 기근이 식량의 절대량이 모자라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기근은 특정 집단이 식량에 닿을 수 있는 권리가 무너질 때 온다는 것이다.⁵ 기근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식량에 닿을 권리가 무너질 때 온다. 곡물이 항구를 떠나는 동안 그 곡물을 살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졌던 아일랜드는 이 문장의 가장 오래된 증거 중 하나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당시 정책에 악의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 그 판정은 사료를 다루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그러나 패턴의 문제는 의도와 무관하게 성립한다. 악의가 없어도 구조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세 겹의 쏠림
아일랜드의 밭에는 세 겹의 쏠림이 겹쳐 있었다.
첫째는 작물의 쏠림이다. 한 품종, 한 뿌리에 식탁 전체가 기대었다. 평상시에 이 구조는 효율의 다른 이름이었다. 좁은 땅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먹였으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감자는 풍요의 작물이자 의존의 작물이었다. 효율은 병이 오기 전까지만 효율이다.
둘째는 권리의 쏠림이다. 식량은 있었으나 그 식량에 닿을 권리는 소수에게 있었다. 땅은 지주에게, 시장의 선택은 자본에게, 구호의 조건은 국가에게 있었고, 소작농의 손에는 감자밖에 없었다. 그 감자가 썩는 순간 그들이 가진 것은 모두 사라졌다.
셋째는 담론의 쏠림이다. 재난이 닥치면 사회는 원인을 찾는다. 원인을 병충해나 하늘, 시장의 법칙처럼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찾으면 대응은 기다리는 일이 된다. 인재(人災)에 천재(天災)라는 옷을 입히는 언어다. 원인을 하늘로 돌리는 순간, 책임의 주소도 함께 사라진다.
이 시리즈가 세계사의 물자를 따라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향신료도 감자도 물건 자체는 중립적이다. 운명을 가르는 것은 그 물건을 둘러싼 구조다. 그래서 재난의 크기는 병원체가 아니라 구조가 정한다. 그 구조는 병이 오기 전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 식탁 위의 감자는 무엇인가
곰팡이는 이번에도 어딘가에서 오고 있을 것이다. 다만 어느 밭에 닿을지 알지 못할 뿐이다.
아일랜드의 농부들이 감자를 선택한 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 그 선택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였던 시대가 있었을 뿐이다. 효율과 최적화라는 이름 아래 취약성을 키워 가는 모습은 오늘의 시스템도 다르지 않다.
지금 한국의 식탁 위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가장 한국적인 반찬인 김치부터 그렇다. 수입 김치는 대부분 중국산이고, 배춧값이 오를 때마다 중국산 배추와 절임배추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식당 밥상에 오르는 김치도 상당 부분 같은 길을 거친다. 특정 나라를 탓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값이 싸고 물량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한 공급처에 식탁의 가장 깊은 곳을 맡겨 온 선택이 질문의 대상이다.
한 공급처에 기댄 식탁, 소수의 품목에 기댄 수출, 하나의 자산에 몰린 가계를 우리는 오늘 효율이라 부른다. 소수의 뿌리에 기댄 채 효율이라 부르는 사이, 병은 이미 바다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병든 잎이 아니라, 그 잎이 자란 땅이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땅에 대해 묻는다.
* 참고할 말씀: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 이사야 58:7
¹ Alfred W. Crosby, The Columbian Exchange: Biological and Cultural Consequences of 1492 (Greenwood, 1972).
² Nathan Nunn and Nancy Qian, “The Potato’s Contribution to Population and Urbanization: Evidence from a Historical Experiment,”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26(2), 2011.
³ 『孟子』 「梁惠王上」.
⁴ Cecil Woodham-Smith, The Great Hunger: Ireland 1845–1849 (1962); Cormac Ó Gráda, Black ’47 and Beyond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Christine Kinealy, This Great Calamity (Gill & Macmillan, 1994).
⁵ Amartya Sen, Poverty and Famines: An Essay on Entitlement and Depriv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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