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행은 있는데 지분은 없다 — K-콘텐츠가 두고 온 질문
세계가 열광할수록, 만든 이들은 왜 웃지 못하는가
2026.09.14 · 사회·문화
흥행은 있는데 지분은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상위권이 한국 드라마로 채워지는 일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오징어게임, 더 글로리, 폭싹 속았수다가 연이어 전 세계 차트를 장악했고, 폭싹 속았수다에는 600억 원, 공개를 앞둔 무빙 시즌2에는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됐다고 알려졌다.4 그런데 정작 이 흥행을 만든 국내 제작사들의 주가는 올해 들어 두 자릿수로 떨어졌고, 주가순자산비율은 저평가 국면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이유는 계약 구조에 있다. 넷플릭스는 이른바 ‘코스트 플러스’ 방식을 채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2,3 제작비의 110~120%를 선지급해 제작사의 재정적 위험을 완화해 주는 대신, 완성된 콘텐츠의 지식재산권 전체를 귀속시키는 구조다. 제작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보장된 마진 3~10%뿐이다. 작품이 세계적으로 흥행해 2차 판권, 굿즈, 리메이크 권리 같은 부가가치가 발생해도, 그 수익은 계약 시점에 이미 플랫폼 쪽으로 넘어가 있다. 제작사는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든 작품의 미래 가치에서 배제된다.
세계는 한국 콘텐츠에 열광하는데, 그 열광이 만드는 지분은 한국 제작사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 어긋남은 낯설어 보이지만, 앞서 한 번 있었던 궤적과 닮아 있다.
1948년 5월, 할리우드가 무너진 자리
1948년 5월 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파라마운트를 비롯한 5대 메이저 영화사에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렸다.6 뿌리는 1921년 연방거래위원회가 스튜디오들의 ‘블록 부킹’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고, 1938년 법무부가 정식으로 소송을 걸며 본격화됐다. 당시 메이저 스튜디오는 영화를 만들고(제작), 자신들이 유통하고(배급), 자신들이 소유한 극장에서 상영하기(상영)까지 전 과정을 수직 통합 형태로 독점하고 있었다. 극장주들은 스튜디오가 정해준 영화를 통째로, 심지어 보지도 않고 계약해야 했다.
지금의 OTT 구조를 이 틀에 겹쳐보면 병렬성이 뚜렷해진다. 넷플릭스는 제작비를 선지급해 사실상 제작 단계를 지배하고(과거의 ‘제작’), 완성된 작품을 자사 플랫폼에서만 독점 공개한다(과거의 ‘배급’과 ‘상영’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 1948년의 스튜디오가 극장을 소유해 상영을 통제했다면, 지금의 플랫폼은 스트리밍 화면 자체를 소유해 노출을 통제한다. 계약서의 언어는 다르지만, 제작과 유통을 한 회사가 동시에 쥐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것은 같은 형태의 반복이다. 다만 1948년의 통합은 법정에서 강제로 해체됐고, 지금의 통합은 아직 그런 전환점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먼저 주는 자가 가장 크게 가져간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했다.9
“将欲取之,必固与之(장욕취지, 필고여지)” — 장차 빼앗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넷플릭스가 제작비의 110~120%를 선지급하는 방식은 얼핏 후한 조건처럼 보이지만, 결국 먼저 내어줌으로써 더 크게 가져가기 위한 구조다. 위험을 대신 짊어져 주는 손이 동시에 결과물 전체를 가져가는 손이라는 사실이, 이 구조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 ‘먼저 주고 나중에 가져가는’ 전략이 가능한 이유는, 애초에 그 관계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10
“抱法处势则治,背法去势则乱(포법처세즉치, 배법거세즉란)” — 법을 안고 세를 취하면 다스려지고, 법을 등지고 세를 버리면 어지러워진다.
여기서 ‘세(勢)’는 곧 제작비를 먼저 내어줄 수 있는 자본력이며, 그 자본력이 계약서의 조항을 정하는 힘이다. 세를 쥔 쪽이 먼저 내어주는 행위조차 전략인 것은, 협상의 출발점부터 이미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자가 짚은 ‘먼저 주는 지혜’와 한비자가 짚은 ‘세를 쥔 자의 계산’은, 이 계약 구조 안에서는 같은 행동의 두 얼굴로 겹쳐진다.
서양에서는 토크빌이 비슷한 구조를 경고한 바 있다. 그는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이 폭력이 아니라 행정과 자본의 중앙집중을 통해, 조용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소수에게 모여들 수 있다고 보았다. 개인은 저마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은 결국 소수의 손에 놓인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세계로 나가는 문과 국내에 남는 문은 다르다
할리우드의 교훈은 명확하다 — 문화가 국경을 넘어 흐르는 힘과, 그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구조는 자동으로 함께 오지 않는다. 1948년의 붕괴 이후에야 할리우드는 독립 프로듀서와 배우들이 직접 수익을 배분받는 시대로 넘어갔고, 그 재편을 거치고 나서야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방송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 드라마 평균 제작비는 2018년 10억 원 수준에서 2023년 30억 원을 넘어섰다.5 5년 사이 세 배로 뛴 것이다. 텐트를 지탱하는 기둥처럼 플랫폼 전체 라인업의 흥행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텐트폴’이라 불리는 대작 드라마는 이미 회당 20~30억 원, 총 제작비 500~600억 원대에 이른다. 그런데 그 상승분을 감당하는 쪽은 제작사이고, 완성된 작품이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가장 크게 수익화하는 쪽은 제작비를 먼저 내어준 플랫폼이다.
이것은 판단이 아니라 관찰이다. 세계화가 먼저 오고, 그 세계화를 만든 이들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구조의 재편은 언제나 뒤늦게 따라온다 — 이 순서는 1948년의 할리우드에서도, 지금의 K-콘텐츠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정당한 수고에 상응하는 대가가 배분되지 않는 구조를 경계해 온 고전의 지혜 역시, 글 말미에서 되짚어볼 만하다. 이 순서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다음 국면에서 무엇을 주시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우리가 아직 던지지 않은 질문
이 비대칭은 흥행작 한 편의 정산 문제로만 좁혀 볼 사안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은 구조적으로 선투자형 산업이다. 배우 출연료, 인건비, 세트, CG 등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고정비가 흥행 여부가 결정되기 훨씬 전, 기획 단계에서부터 투입된다.11 회계상 이 비용은 ‘콘텐츠 개발비’라는 무형자산으로 계상되지만, 실제 가치는 공개 이후 시장의 반응에 따라 사후적으로 정해진다. 문제는 이 회계 처리가 실제로 촬영·제작에 들어간 프로젝트에만 해당한다는 점이다. 기획 단계에서 검토되고도 편성을 받지 못해 사장되는 프로젝트는 훨씬 더 많고, 그 개발비는 자산으로 남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제작사의 손실로 흡수된다. 플랫폼이 코스트 플러스 계약으로 위험을 대신 짊어져 주는 지점은, 이 긴 손실의 구간을 이미 통과해 편성이 확정된 극소수의 작품뿐이다. 위험의 총량으로 보면 제작사가 감당해 온 몫이 훨씬 크고 훨씬 오래됐다는 점에서, 이 계약은 겉보기보다 비대칭적이다.
할리우드가 자기 안의 독점을 법정에서 깨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스튜디오 시스템이 자리 잡은 뒤로도 이십여 년이었다. K-콘텐츠가 세계 시장을 얻은 지는 이제 겨우 몇 년, 국내 계약 구조의 재편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다만 물길을 다시 파려는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자국·역내 콘텐츠 30% 할당을 의무화하고 있고,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거쳐 매출의 4%를 자국 영상산업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이른바 ‘넷플릭스세’를 도입했다.7 국내에서는 CJ ENM이 미국 제작사 피프스시즌을, SLL이 윕을 인수해 IP를 직접 보유하는 우회로를 시험하고 있다.8
* 참고할 말씀: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 야고보서 5:4
1. 재주는 한국이, 돈은 넷플릭스가…’화려한 하청’의 그늘, 아시아경제, 2026.01.11.
2. 웹툰 IP가 드라마가 되는 순간, 자산은 넷플릭스 것이 된다, 메일리
3. 넷플릭스가 바꾼 한국 드라마와 영화 시장, KB의 생각, 2026.06.
4. 제작비 뛰고, OTT에 치이고…K드라마 제작사 주가 주르륵, 한국경제, 2026.04.07.
5. 방송 제작 구조 바꾸는 OTT…”치솟는 개런티·제작비”, 프라임경제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방송산업백서」 인용)
6. United States v. Paramount Pictures, Inc., 334 U.S. 131 (1948) — 미국 연방대법원, 1948년 5월 3일 판결
7. OTT 규제 현황: 캐나다의 OSA를 중심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EU 30% 할당제·스위스 넷플릭스세)
8. 핫 트렌드 2: 한국 제작사가 해외 드라마를 만든다고?, 한국콘텐츠진흥원 (CJ ENM 피프스시즌, SLL 윕 인수)
9. 노자, 『도덕경』 36장
10. 한비자, 『한비자』 難勢편
11. 드라마 제작비의 회계처리 — ‘흥행 실패’의 원가는 어떻게 계산되는가, 인사이트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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