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自淨)의 실패

자정(自淨)의 실패

한국 개신교,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가

2026년 5월 23일 | 사회·문화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언어가 어떻게 외교를 구성하고 또 파괴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시선을 국경 밖이 아닌 안쪽으로, 그리고 사원(寺院)이 아닌 예배당 안으로 돌린다.

2026년 2월 27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서울 성동구에서 ‘2026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발표회를 열었다. 장신대 성석환 교수는 발표를 마치며 이 조사 결과를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신뢰도 감소”라는 문구로 요약했다. 기윤실이 이 문구를 공식 발표 제목에 넣기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소한 3년 연속이다.

숫자보다 그 반복이 낯설다. 교회가 스스로 의뢰한 조사에서, 스스로 ‘신뢰 감소’를 확인하고, 스스로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같은 조사를 또 의뢰한다. 이 구조를 낯선 각도에서 읽으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진단을 반복하는 기관은 치료를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단 자체에 익숙해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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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과 자정 능력의 붕괴

2017년 11월,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담임목사직에 부임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2013년 헌법에 세습금지 조항을 명문화해 두고 있었다. 교단 헌법이 금지한 것을, 교단 소속 최대 교회가 실행한 것이다.

2018년 8월, 교단 재판국은 청빙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총회는 사실상 세습을 추인했다. 2019년 8월, 같은 재판국이 청빙 무효 판정을 내놓았으나 명성교회 측은 불복했다. 한 달 뒤인 2019년 9월 가을 총회는 이 교단 재판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수습안’ — 2021년부터 김하나 목사의 담임직 복귀를 허용한다는 내용 — 을 가결시켰다. 스스로 제정한 헌법을, 스스로 구성한 총회가 우회한 것이다. 이후 소송은 사회 법정으로 넘어갔고, 2025년 1월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명성교회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8년에 걸친 법적 공방의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한국교회개혁실천연대(교개연)는 대법원 판결 이후 기자간담회를 열며 “자정 노력을 포기한 교단”이라고 비판했다. 교개연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는 이미 2008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적지 않은 교회들의 불투명하고 부패한 재정운영에 대해 교회 자체 내의 자정 능력이 상실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발언으로부터 17년이 지났고, 같은 인물이 같은 언어로 같은 진단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이 단일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명성교회 —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세 교단의 1위 교회들이 각각 재정·건축·세습 논란에서 유사한 패턴을 반복했다는 것은, 이것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임을 시사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던 2017년에 명성교회 세습이 단행됐다는 사실이 역사적 아이러니로 읽힐 수 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 박은 것은 성직자 권력의 사유화와 면죄부 판매라는 구조에 대한 항의였다. 정확히 500년 뒤, 개신교 최대 교단 소속 교회가 헌법을 우회하여 교직을 세습했다.

역사는 왜 이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가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이 진보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진보는 직선이 아니라, 모순과 부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
— 헤겔,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역사는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출현하고, 그 충돌에서 합(合)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부정(Negation)’이다. 기존 질서의 모순이 극대화될 때 비로소 새로운 단계가 열린다. 헤겔이라면 오늘의 한국 개신교를 이렇게 읽었을 것이다. 신뢰의 붕괴는 재앙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전제다. 모순이 축적되고 있다는 것은, 전환의 압력이 쌓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헤겔의 도식이 한국 교회에 자동으로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모순이 축적된다고 해서 반드시 합이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자정 능력을 잃은 기관은 전환 대신 분열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소모적 침전의 상태 — 모순은 쌓이되 전환은 오지 않는 구간 — 를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 노자의 ‘고인 물’ 비유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8장

노자는 권력이 스스로를 낮출 때 비로소 오래간다고 보았다. 물은 높은 곳을 차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막힘없이 흐른다. 조직이 권력을 집중하고 투명성을 거부할수록 — 즉 낮아지기를 거부할수록 — 그 안에서 부패는 고요히 고인다. 노자의 시각에서 보면, 대형교회의 재정 불투명성과 담임목사의 절대 권위 구조는 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인 웅덩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썩는 데 오래 걸릴 뿐,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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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구조, 하나의 패턴

한국 개신교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가장 편리하면서도 가장 부정확한 해석이다. 같은 문제가 다른 교회, 다른 교단, 다른 시대에 반복된다면, 그것은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첫째, 재정 구조의 불투명성이다. 한국의 종교단체는 법인세법상 비영리법인으로 분류되어 상당 부분 세제 혜택을 받지만, 재정 공시 의무는 매우 제한적이다. 2018년 종교인 과세가 시행되었으나 교회 재정 전체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장치는 여전히 미비하다. 재정이 공개되지 않는 구조에서, 권력은 견제받지 않는다.

둘째, 담임목사 중심의 절대권위 구조다. 한국 대형교회의 의사결정 구조는 대부분 담임목사에게 고도로 집중되어 있다. 장로회 제도가 이론상 견제 기능을 갖지만, 수만 명 규모의 교회에서 장로회의 실질적 독립성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기사연(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2024년 말 개신교인 인식조사(2025년 발표)에서 개신교인 스스로가 교회 신뢰도 저하 원인 1위로 ‘부패(32.5%)’를 꼽았다는 사실은, 내부에서조차 이 구조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교단 재판 시스템의 실효성 부재다. 명성교회 사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교단 내 재판국은 최종 판결 기관이 아니다. 총회의 결의, 법원의 판결, 그리고 다시 교단 내부의 반발이 중첩되면서 어느 단계에서도 실질적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가 반복됐다. 이 구조는 자정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정 메커니즘 자체의 설계 결함으로 읽힐 수 있다.

개혁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2025년 정책협의회에서 “극우 개신교와의 절연과 새로운 민주주의 지향”을 핵심 정책문서 초안으로 채택했다. 기윤실은 해마다 신뢰도 조사를 공개하며 교계의 자성을 촉구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표면적으로는 개혁의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조 개혁과 선언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교계 내부에서 논의되는 개선 방향은 대체로 세 가지로 수렴한다. 재정 공시 의무화, 담임목사 임기제 도입, 교단 재판 시스템의 외부 독립성 확보. 이 세 가지는 각각 투명성·권력 분산·견제 복원이라는 원리로 읽힌다. 모두 옳다. 그리고 모두 20년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제안됐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제안이 반복된다는 것은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실행되지 않는가. 그 답의 일부는 헤겔이 이미 남겼다. 모순이 충분히 외화(外化)되지 않으면, 기존 구조는 변화보다 자기보존을 선택한다. 신뢰 감소가 숫자로는 보이지만, 의사결정자들의 생존 조건을 바꾸지 않는 한 그 숫자는 경보가 아니라 배경음으로 처리된다.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목회자 개인의 도덕성에 있지 않다. 도덕적인 개인도 부패한 구조 안에서는 구조의 논리를 따른다 — 이것은 헤겔이 아니라 역사가 반복적으로 증명한 명제다.

노자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비로소 막힘없이 간다고 했다. 권력이 스스로를 낮추고 투명하게 할 의지가 없을 때, 개혁은 외부의 압력으로만 가능해진다. 그 압력의 일부는 제도 밖에서 — 즉 매주 예배당 안에 앉아 있는 신자들 안에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자정은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각성에서도 출발한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압력이 충분히 쌓였는가 — 멀리서 바라보는 자는 그 임계점을 지금 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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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할 말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을 생각하라 — 육체로는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고린도전서 1:26


출처 및 각주

¹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2026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발표회」, 2026년 2월 27일. (cemk.org)

²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 「2024 사회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연구」, 2025년 결과 발표. 개신교인 신뢰도 저하 원인 1위 ‘부패’ 32.5%.

³ 평화나무, 「명성교회 세습 반대, 끝날 수 없는 싸움」, 2025년 1월 27일. 대법원의 명성교회 대표자지위 항소심 기각 및 2심 판결 확정.

⁴ 연합뉴스·뉴스앤조이, 명성교회 세습 관련 보도 (2017년~2019년).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 판결 경과.

⁵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 연합뉴스 인터뷰, 2008년 및 JTBC 뉴스룸 출연, 2017년. “교회 자체 내 자정 능력 상실” 발언.

⁶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2025년 정책협의회 문서 초안 — ‘극우 개신교 절연 및 새로운 민주주의 지향’, 2025년 3월.

⁷ G.W.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역사철학강의), 1837 (사후 출판).

⁸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8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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