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는 자의 시간, 쉬지 못하는 자의 시간
주4.5일제가 걸어오는 사이, 가게 문은 계속 닫힌다
2026년 7월 13일 / 경제·국방
같은 달에 발표된 두 장의 청구서
2026년 7월, 두 개의 발표가 같은 달에 나왔다.
2026년 6월 30일, 중소벤처기업부는 2025년 한 해 폐업한 사업자가 97만 6천 개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폐업률 8.64%. 그중 소상공인이 몰린 6대 업종(제조·도매·소매·음식·숙박·서비스업)의 폐업률은 11.08%로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폐업을 결심한 이들의 70.9%는 “수익성 악화와 매출 부진”을 이유로 들었고, 문을 닫을 당시 평균 부채는 8,531만 원이었다.
같은 시기, 고용노동부는 다른 숫자를 세고 있었다. 올해 예산 324억 원을 들여 추진하는 ‘주4.5일제 도입지원 시범사업’이다. 노사 합의로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줄인 기업에,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80만 원을 지원한다.
한쪽에서는 문을 닫는 가게의 숫자를 세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루 더 쉬는 데 드는 예산을 센다. 같은 정부가 같은 달에 발표한 이 두 통계는, 서로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문을 닫은 자영업자와, 금요일 오후 조금 일찍 퇴근하는 임금노동자는 같은 나라의 국민이지만, 정책이 이들을 호명하는 방식은 다르다. 근로시간을 둘러싼 이 논쟁에서, 누구의 시간이 먼저 셈해지고 있는가.
앞선 글 숫자는 웃고, 지갑은 운다에서 우리는 성장률은 오르는데 청구서는 엉뚱한 주소로 배달되는 한국 경제의 어긋남을 살펴본 바 있다. 이번에도 청구서의 수신인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000년 파리, 서른다섯 시간의 약속
2000년 2월 1일, 프랑스는 2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주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낮추는 이른바 ‘오브리법(Loi Aubry II)’을 시행했다. 조스팽 사회당 정부가 내건 “조금 덜 일하면 모두가 일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만들어진 법이었다.
문제는 20인 미만 사업장, 즉 프랑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부분이 속한 영역이었다. 이들은 애초 2002년부터 적용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2002년 노동법 개정으로 2005년까지, 이후 다시 2008년 말까지로 시행이 계속 미뤄졌다. 법이 그들을 기다려준 듯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 법은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고용한 사람’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장이자 동시에 노동자인 자영업자에게는, 애초에 ‘주 35시간’이라는 상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 중소자영업자 단체 ‘오다스’는 이 제도가 대기업의 논리로 설계되었을 뿐, 원가와 인건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소상공인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반발했다. 이후 프랑스 경영자총연합 계열 학계에서는 이 정책이 고용 창출보다 물가 상승 압력만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물론 반대로 삶의 질 향상을 입증하는 조사 결과도 있어, 이 법의 성패를 한 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26년 전 파리와 2026년 서울 사이에는 동일한 구조가 반복된다. 조직된 노동은 법의 설계 대상이 되지만, 자신을 고용한 노동은 법 바깥에서 시행을 기다릴 뿐이다.
너무 자주 뒤적이면, 살이 부서진다
노자는 『도덕경』 60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治大國,若烹小鮮 (치대국, 약팽소선)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일과 같다.”
작은 생선은 젓가락으로 자주 뒤적일수록 살이 부서진다. 노자가 이 비유로 경계한 것은, 다스리는 손이 세밀한 결을 무시한 채 큰 원칙만으로 밀어붙이는 태도였다. 정교한 것일수록 성긴 손을 타면 먼저 부서진다는 뜻이다.
‘사용자’와 ‘피고용인’이라는 큰 틀 위에서 설계된 근로시간 제도를, 그 구분 자체가 없는 자영업자의 결 위에 그대로 얹으려는 시도는, 노자가 경계했던 그 뒤적임과 닮아 있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른 위험을 짚었다. 그는 개인들이 서로 결사(結社)하지 못하고 낱낱이 흩어져 있을 때, 그 원자화된 개인은 거대한 행정 권력 앞에서 무력해진다고 보았다. 결사의 자유를 그가 민주주의의 방벽으로 여긴 이유다.
노동조합은 결사한 노동이다. 정책 테이블에 대표를 보내고, 목소리를 조직하고, 협상한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 수백만 명은 결사하지 못한 노동, 각자의 가게에서 각자 흩어진 노동이다. 이들의 얼굴 위로 토크빌이 말한 파편화된 개인이 겹쳐진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숫자 속의 두 나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3년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평균(1,752시간)보다 149시간 길다. 이 격차의 상당 부분은 야근하는 회사원이 아니라, 자영업자 비중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KDI의 결론이었다. 자영업자 비중이 1%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국가 전체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 10시간씩 늘어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3.9%로, OECD 평균(17.0%)보다 크게 높다. 이 수치는 몇 해 전 조사이지만, 자영업자 비중이 단기간에 낮아질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진단은 2026년 현재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오래 일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대부분, 사무실의 야근이 아니라 골목 가게의 불빛에 있다. 노동계가 ‘세계에서 손꼽히게 긴 근로시간’을 근거로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할 때, 정작 그 평균을 밀어 올리는 자영업자의 시간은 논의의 주어가 되지 못한 채 숫자로만 소비된다.
동시에 이는 반대 방향의 함정도 예고한다. 근로시간이 단축된 사업장의 인건비 상승분은 흔히 원자재 가격이나 임대료, 프랜차이즈 로열티에 얹혀 공급망 하류로 흘러간다. 정책의 설계 테이블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자영업자는, 그 정책이 만들어내는 비용의 최종 수신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책이 ‘노동자’라는 한 범주만을 기준으로 설계될 때, 노동자이자 동시에 사용자인 자영업자는 어느 쪽 범주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남는다.
지난해 폐업한 97만 6천 개 사업장 가운데, 사업부진을 이유로 든 곳의 비중은 2023년 48.9%에서 2025년 50.4%로 매년 상승했다. 이 숫자와, 하루 더 쉬는 데 들어가는 324억 원은 같은 정부가 같은 해에 써낸 서로 다른 청구서다.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설계도 위에 자영업자라는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역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시간표에 없는 이름
주4.5일제는 아직 시범 단계다. 취지 자체를 폄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제도가 누구의 시간을 기준으로 설계되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당일 품삯을 받지 못하면 하루를 살아낼 수 없는 품꾼의 처지와, 오늘 매출이 없으면 내일 문을 닫아야 하는 골목 가게 주인의 처지는, 이름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쉬는 자의 시간표는 갈수록 정교해지는데, 쉬지 못하는 자의 시간표는 여전히 통계의 바깥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시계를 기준으로 나라의 시간을 맞추고 있는가.
참고할 말씀: “곤궁하고 빈핍한 품꾼은… 그의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지기 전에 주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그 품삯을 마음에 두었음이라” — 신명기 24:14-15
1. 중소벤처기업부, 「폐업 사업자 현황 및 소상공인 실태조사」, 2026.6.30 발표
2. 고용노동부, 2026년 업무보고 보도자료 — 주4.5일제 도입지원 시범사업(324억 원)
3. 김민섭, 「OECD 연간 근로시간의 국가 간 비교분석과 시사점」, KDI FOCUS, 2023.12.19
4. 외교부, 「프랑스 주35시간 법정근무제 개편법안 통과」 국제경제동향 자료; Eurofound, “Law on the 35-hour week is in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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