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는 웃고, 지갑은 운다
성장률은 오르는데, 청구서는 왜 내게 오는가
2026년 7월 9일 · 정치·외교 / 경제·국방
같은 주에 던져진 두 개의 숫자
2026년 7월, 두 개의 발표가 같은 주에 나왔다.
IMF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2.6%로 올려 잡았다. 4월 전망보다 0.7%포인트 오른 수치이자, 조사 대상 30개국 중 상승폭이 가장 컸다. 반도체와 AI 하드웨어 수출 호조가 그 배경으로 꼽혔다.
같은 시기 OECD도 한국 경제보고서를 내놓았다. 성장률 전망은 IMF와 비슷한 2.6%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정작 힘주어 짚은 대목은 성장률이 아니라 세금이었다. 한국의 GDP 대비 부동산 관련 세금 비중이 OECD 평균의 두 배에 이르고, 그마저도 보유세가 아닌 거래세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장률은 오르는데, 정작 그 성장의 청구서는 자산을 움직이는 순간마다 날아든다.
이 어긋남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앞선 글에서 우리는 미국 백악관까지 번진 쿠팡발 사태를 통해, 시장의 균열이 결국 정치의 언어로 소환되는 과정을 살펴본 바 있다.
이번에도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 도쿄, 억제책으로 잡으려던 땅값의 최후
1990년 6월, 일본 대장성은 부동산 관련 대출 총량을 규제하는 이른바 ‘총량규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지가세(地価稅)까지 도입했다. 세금과 대출 규제라는 강력한 행정적 억제책을 동시에 꺼내 든 것이다.
의도는 명확했다. 폭등한 부동산 가격을 힘으로 눌러 앉히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의도와 달랐다. 시장은 서서히 식지 않고 붕괴했다. 은행은 부실채권에 짓눌렸고, 일본 경제는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로 들어섰다.
그리고 2026년 7월,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198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시장에 개입 신호를 보내도 엔화 약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오랜 기간 이어진 재정 확대의 청구서가, 지금 통화 가치로 돌아오고 있다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행정적 억제책으로 시장을 다스리려던 나라가, 30여 년 뒤 통화 가치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읽힐 수 있다.
공교롭게도 엔화 약세는 원화 약세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 7월 1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60원 선에 근접했다. 기축통화가 아닌 나라의 통화는, 옆 나라의 위기에도 함께 흔들린다.
군주는 몰라도, 사람은 재산을 잊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도, 자신의 재산을 잃은 기억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고.
권력을 다루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백성의 소유물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일이라는 뜻이다.
공자 역시 비슷한 경고를 남겼다.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은 『예기(禮記)』에 전하는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던 백성이 차라리 호랑이가 사는 산속에 살겠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다.
동양과 서양, 시대와 체제를 달리하는 두 사상가가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권력이 재산과 세금을 다루는 방식은, 그 어떤 정책보다 빠르고 깊게 민심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청구서는 누구에게 가는가
성장률은 상향됐지만, 그 성장이 향하는 곳과 청구서가 도착하는 곳은 서로 다른 주소지에 있는 듯하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개인 투자자 다수가 특정 종목에서 큰 폭의 손실을 감내했다는 집계가 있다.¹ 외국인과 기관이 비중 조절 차원에서 매도세를 이어가는 동안, 그 반대편에서 개인이 매수세를 떠받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거시적 금융 불확실성이 밀려들 때, 가계의 가장 취약한 주거 사다리부터 먼저 해체된다. 전세는 줄고 월세는 늘고 있다.² 고금리와 고환율이 겹치는 국면이다. “월세 살면 어떠냐”는 정책 언어는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자산 형성 경로인 ‘전세’가 조용히 무너진다는 신호를 다소 가볍게 다루는 것일지 모른다.
성장률 숫자와 별개로, 그 성장이 모두에게 도달하지 않는 이른바 K자형 구조는 지표 위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현장에서는 선명하게 만져진다. 마침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뉴욕 증시를 흔들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대외 충격이 시장을 강타할 때, 방어막이 가장 얇은 고리인 자영업자와 가계부채 가구부터 먼저 흔들릴 소지가 다분하다.
성장률을 올리고, 금리를 만지고, 예산을 확장하는 모든 결정에는 청구서가 따라붙는다. 문제는 그 청구서가 결정을 내린 곳이 아니라, 결정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배달되기 쉽다는 점이다.
다음 청구서는 누구 앞으로 올까
1990년의 도쿄도, 2026년의 서울도, 억제책과 통화 정책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 믿음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역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손쉬운 해법일수록, 그 대가는 가장 늦게,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착한다는 것을.
다음 세대는 어떤 사다리를 딛고 오를 수 있을까.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다만 묻기를 멈추지 않을 뿐이다.
* 참고할 말씀: “가난한 자를 학대하여 자기의 재산을 늘리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궁핍하게 될 뿐이니라” — 잠언 22:16
2.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전월세 거래량 추이
3. IMF, 2026년 7월 세계경제전망(WEO) 수정 발표
4. OECD, 2026 한국경제보고서 (2026.7.2 발표)
5. 도쿄외환시장 엔/달러 환율, 서울외환시장 원/달러 환율 (202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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