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없는 회담, 뮌헨과 한반도

1938년 뮌헨 회담에서 네 강대국 정상이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할양 협정에 서명하는 빈티지 흑백 사진
1938년 9월, 당사국인 체코슬로바키아 없이 개최되어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언했던 뮌헨 회담 현장.

당사자 없는 회담, 뮌헨과 한반도

훈련은 줄고, 회담은 다가온다 — 한반도는 대화의 당사자인가

2026.08.22 · 정치·외교 · 경제·국방

훈련장은 비었고, 외교의 언어가 오간다

한미 연합훈련의 규모가 축소됐다. 대통령은 이를 “한반도의 평화”라 불렀다.

같은 시각 태평양 건너편에서는 다른 말이 오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을 다시 꺼낸 것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모색하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두 발언의 진앙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훈련이 줄어드는 것과 평화가 다가오는 것은 과연 같은 일인가.

앞선 글에서 우리는 정책의 확신이 시장의 시간을 앞지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확신이 안보의 영역으로 옮겨간 순간을 들여다본다.

1938년, 당사자 없는 회담

1938년 9월, 뮌헨에서 네 나라의 정상이 모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였다.

회담의 의제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인 주데텐란트의 운명이었으나, 정작 당사국인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는 초대받지 못했다.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협정에 서명한 뒤 귀국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를 선언했다¹.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점령했고, 이듬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물론 지금의 한국을 1938년의 체코슬로바키아와 그대로 겹쳐 볼 수는 없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자국을 방어할 외교·군사적 수단이 부족했던 신생국이었으나,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국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이 외교 무대의 주도권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뮌헨이 남긴 유의미한 질문이다. 스스로 동력을 가졌음에도 강대국의 외교 셈법에 밀려 소외될 수 있다는 위험은, 무력한 약소국이 겪는 위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실리주의의 두 얼굴

上兵伐謀 (상병벌모) — “최상의 용병은 적의 계략을 미리 깨는 것이다.”²

손자는 『손자병법』 모공편에서 무력 충돌에 앞서 상대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승부라고 강조했다.

투키디데스 역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멜로스 대화’를 통해 강자는 할 수 있는 바를 행하고 약자는 견뎌야 하는 바를 견딘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논리를 제시했다³.

두 사유의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결국 명분이 아닌 계산으로 움직이는 실리주의(Realpolitik)라는 하나의 축으로 수렴한다. 트럼프에게는 중간선거를 앞둔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고, 김정은은 러·중과의 밀착을 발판 삼아 협상에서 비교적 느긋한 입지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⁴. 이 구도에서 어느 쪽이 ‘강자’이고 ‘약자’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협상의 절박함으로 본다면 오히려 미국 측의 셈법이 복잡할 수 있다.

철학은 모든 현상을 단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비슷한 조건에서 유사한 오판이 반복될 때 그 구조적 이유를 물을 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리는 회담

훈련 축소에는 나름의 명분이 존재할 수 있다.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완화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수사적 명분이 실질적인 대비태세(Readiness)의 공백을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무겁다⁵. 훈련 감소가 곧 위협의 감소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평화’라는 언어가 실제 억지력의 공백을 가릴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국력을 갖춘 한국일지라도, 동맹의 내부 시계와 강대국의 외교적 셈법이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는 회담의 결과를 통보받는 위치로 밀려날 위험을 배제하기 어렵다. 뮌헨의 교훈은 회담 자체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당사자의 주체적 목소리와 결단이 빠진 자리에서 합의된 평화는 당사자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경고에 있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체임벌린은 종이 한 장을 흔들며 “우리 시대의 평화”라 장담했으나, 그 평화는 1년을 넘기지 못했다.

현재 한반도 주변에서 오가는 언어들 — 평화, 축소, 만남 — 이 담고 있는 실제 의미는 회담의 막이 내린 뒤에야 선명해질 것이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오늘의 언어들을 조용히 채록하며 묻는다. 이 회담이 끝났을 때, 한반도는 국면을 주도한 당사자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결정된 결과를 전달받은 관조자로 남을 것인가.


* 참고할 말씀: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자랑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 시편 20:7

각주

1. 뮌헨협정(1938.09.30) 체결 및 체코슬로바키아 배제: 위키백과 ‘뮌헨 협정’
2. 손자, 『손자병법』 모공편, 상병벌모(上兵伐謀)
3.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멜로스 대화(기원전 416년)
4. 김정은 위원장의 러·중 관계 및 협상 입지 관련 평가: 2026년 8월 보도 종합
5. 한미 연합훈련 규모 축소 및 대통령 발언,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 회동 가능성 언급: 2026년 8월 보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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