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펨과 여시, 그리고 서울행 기차
대한민국 청년들은 왜 신부족주의자가 되었나
이중의 수축: 한국의 현실로 읽는 세계 현대사의 구조 | 제1편 · 2026년 6월 · Watchman
어떤 사회가 무너질 때, 그 징후는 대개 큰 사건이 아니라 언어에서 먼저 나타난다.
“한남충.” “된장녀.” “지잡대.” “영끌.”
이 단어들이 처음 인터넷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것을 무례한 젊은이들의 일탈로 읽었다. 도덕의 문제이거나, 교육의 문제이거나, 혹은 인터넷이라는 익명 공간이 만들어낸 일시적 거품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이 언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교해졌고, 더 체계화되었으며, 이제는 하나의 세계관이 되었다.
이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성장의 엔진이 꺼진 사회에서, 파이가 줄어들기 시작할 때, 인간은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반응해왔다. 문을 닫고, 적을 정의하고, 부족을 만든다. 역사는 이것을 수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그 오래된 패턴이 다시 한번 작동하고 있다.
혐오라는 이름의 생존 무기 — 커뮤니티의 언어로 본 심리적 붕괴
에펨코리아(FM Korea)는 수백만 명이 드나드는 국내 최대 남초 커뮤니티이고, 여성시대는 그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여초 커뮤니티다. 두 공간은 표면적으로 대립한다. 그러나 이 두 공간을 오래 들여다보면, 구조적으로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두 커뮤니티 모두, 내부 언어가 극도로 배타적이다. 외부인이 침투했을 때 즉각적으로 감지되고 배제된다. 두 공간 모두 특정 유형의 인간을 “적”으로 규정하는 고도로 발달한 어휘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 공간 모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집단 정체화의 강도가 현실 생활의 어느 공동체보다 강하다.
사회학자들은 이것을 “부정적 연대(Negative Solidarity)”라고 부른다. 무언가를 함께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혐오함으로써 유지되는 연대. 공동의 적이 공동체의 접착제가 되는 구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사회심리학의 오래된 연구들은 일관된 답을 내놓는다. 자원이 희소해지고 경쟁이 심화될 때,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경계를 더 선명하게 긋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실험으로 반복 검증된 인간 집단의 생존 반응이다.1
2030 한국 청년 세대가 처한 조건을 보면, 이 반응이 왜 지금 이토록 격렬하게 나타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 노동시장은 한번 비정규직 트랙에 들어선 청년이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았다. 그런데 이 구도는 2020년대에 들어 더욱 복잡하게 파편화되었다. 배달 플랫폼, 프리랜서 마켓, 단기 긱 워크(Gig Work)로 생계를 잇는 청년들에게는 노동조합도, 사내 동료도, 조직적 연대의 기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불안 앞에서 집단적 연대의 기반을 잃은 이들이 찾아드는 곳이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다. 커뮤니티는 그 안에서 조직적 연대를 대신하는 심리적 피난처이자, 분노의 배출구가 된다.2
이 조건에서 젠더 갈등은 정서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문제의 다른 이름이다. 동일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집단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할 때, 가장 쉽게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계급은 불분명하고, 지역은 유동적이며, 학벌은 복잡하다. 그러나 성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 선명한 기준이다.
여기에 한 층이 더 얹힌다. 자산 형성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 청년 남성의 박탈감은, ‘여성 할당제’나 ‘군 가산점 폐지’에 대한 분노로 손쉽게 방향을 튼다. 취약한 노동·주거 환경에 노출된 청년 여성의 불안은, ‘남성 전반’을 향한 경계와 혐오의 언어로 응축된다. 젠더 갈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계급 불안과 자산 격차가 성별이라는 가장 선명한 경계선을 타고 흘러내린 결과물이다. 한남충과 된장녀는 이 시대의 욕설이기 이전에, 수축하는 사회에서 서로를 향해 쏘아올린 생존의 신호탄이다.
수도권이라는 단 하나의 탈출구 — 2030의 이주 잔혹사
한국의 지방 소멸은 통계의 언어로 이야기되지만, 그 실체는 구체적인 인간의 이동이다.
경북의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물두 살이, 서울 관악구의 4.5평짜리 고시원으로 들어간다. 월세 45만 원. 창문은 작고 환기는 안 된다. 그러나 그 고시원이 있는 반경 10킬로미터 안에, 이 청년이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의 절대 다수가 집중되어 있다.
지방에 남는다는 선택은, 점점 경쟁의 바깥에 서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국내 100대 기업의 본사 및 핵심 사업장의 수도권 집중도는 이미 압도적인 수준에 이르렀으며, 2020년대 중반 현재까지도 이 추세는 완화되기는커녕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의 공통된 진단이다.3 주요 대학병원, 법원, 미디어, 금융기관, 정부 핵심 부처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 구조 안에서 지방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사실상 두 가지다. 수도권으로 이주하거나, 혹은 지방에 남아 그 선택의 대가를 치르거나.
그런데 수도권으로의 이주가 해결책이 되는가.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다시 한번 제로섬의 구조다. 서울의 전세·월세 시장은 이미 한 세대 이상의 노동 소득으로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율(PIR)을 기준으로, 서울은 2020년대 중반 현재 홍콩·싱가포르와 함께 전 세계 최상위권의 주거 불가능 도시 반열에 올라 있다.4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거나, ‘영끌’로 대출을 최대한 끌어당기거나, 혹은 그것도 불가능한 이들은 전월세 시장의 하층부를 전전한다.
수축하는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이 물리적 투쟁은, 동시에 심리적 투쟁이기도 하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라 부모의 자산을 등에 업은 청년과, 고시원에서 출발해 모든 것을 스스로 쌓아야 하는 이주 청년 사이의 분열. 이 격차는 계급의 언어로는 아직 명확하게 발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노는 실재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가장 가시적인 출구 — 젠더, 지역, 학벌 — 를 향해 흘러든다. 지방에 남은 이들은 서울로 간 이들을 허세로 읽고, 서울로 간 이들은 지방에 남은 이들을 포기로 읽는다. 이것은 상호 이해의 단절이기 이전에, 협소한 선택지 안에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인간의 인지적 방어다.
소빙하기의 유럽과 조선, 그리고 현대
이 현상을 단순히 ‘한국의 특수한 사회 문제’로 읽는 것은, 패턴을 놓치는 일이다.
14세기 흑사병(1347~1353)이 유럽을 강타했을 때, 공동체들은 즉각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타깃은 유대인과 나병 환자였다. 이들은 우물에 독을 탔다는 혐의를 받았고, 논리적 근거 없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정한 희생양 사냥의 절정은, 또 다른 수축의 파고가 몰아쳤을 때 찾아온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중반, 유럽은 소빙하기(Little Ice Age)의 절정기를 맞았다. 기온이 하락하고, 수확이 줄어들고, 기근이 반복되었다. 이 극도의 자원 수축기에, 유럽의 광범위한 마녀사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역사경제학자 에밀리 오스터(Emily Oster)의 연구는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마녀사냥의 지리적 분포는 기후 스트레스와 경제적 고통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과 강하게 겹쳤다. 파이가 줄어드는 공동체는, 그 원인을 설명해줄 내부의 적을 필요로 했다.5
조선의 경우는 더욱 선명하다. 동일한 소빙하기가 동아시아를 강타한 17세기, 현종·숙종 연간의 경신대기근(1670~1671)과 을병대기근(1695~1696)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조선의 지배층이 찾아낸 출구는 집권 세력을 통째로 갈아엎는 정변, 이른바 환국(換局)이었다. 가용 자원이 줄어들자, 정파 간의 투쟁은 타협이 아닌 상대의 완전한 제거로 나아갔다.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면 서인의 씨를 말리고, 서인이 다시 집권하면 남인을 뿌리째 뽑으려 했다.6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파이가 커지는 시대에, 협력은 합리적이다. 오늘 내가 양보해도 내일 더 큰 보상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이가 줄어드는 시대에, 협력은 위험해진다. 오늘의 양보가 곧 영구적인 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빙하기 유럽의 농민이 이웃을 마녀로 고발하고, 조선의 사대부가 정적을 뿌리째 뽑으려 한 것은 그들이 특별히 잔인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축하는 조건에서 인간 집단이 선택하는 생존의 논리가, 시대와 문화를 가로질러 동일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 재편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서구 선진국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제조업의 공동화, 중산층의 해체. 래리 서머스(Lawrence Summers)가 이름 붙인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현상이 되었다.7 미국의 트럼프 현상, 유럽의 민족주의 포퓰리즘의 부상, 그리고 한국의 젠더 갈등은 서로 다른 문화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같은 경제적 뿌리에서 자라나온 현상들로 읽을 수 있다. 소빙하기는 끝났다. 그러나 수축의 구조는 다른 이름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왜 익명이어야만 솔직할 수 있는가
거시적 패턴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에펨코리아의 게시판에서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는, 여성을 향한 조롱과 분노의 글들. 여성시대의 익명 게시판들에서 반복되는, 남성을 향한 불신과 경계의 언어들. 이것들을 단순히 인터넷 문화의 일탈로 처리한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신호를 놓치게 된다.
이 언어들을 생산하는 청년들 중 상당수는, 현실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익명의 공간에서만 이 언어를 사용한다. 왜인가. 현실에서는 그 언어를 발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 언어를 발화하면, 직장을 잃거나 관계를 잃는다. 그러나 그 언어가 표현하는 감정 — 분노, 불안, 박탈감, 배신감 — 은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이것이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위험한 지점이다. 표출되지 못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억압된 공포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하로 내려가 더 천천히, 더 깊게 부식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형태로 표면 위로 폭발한다.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가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이단 재판 기록에서 그 시대 전체의 세계관을 읽어냈듯이, 오늘날 한국 청년의 온라인 언어는 이 시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 균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다.8 수치가 보지 못하는 것을 언어가 읽는다. 정책이 닿지 못하는 곳에 문화가 뿌리를 내린다.
연대(Solidarity)의 상실과 신부족주의(Neo-Tribalism)의 경고
한국이 고도성장기를 달리던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이 사회에는 하나의 공유된 서사가 있었다. ‘우리 함께 가난을 이겨내고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서사가 사실인지 아닌지, 누가 그 성장의 과실을 더 많이 가져갔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이 공유된 서사가 존재했을 때, 한국 사회는 내부의 갈등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다. 오늘의 희생이 내일의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개인을 집단의 서사에 붙들어두었다.
그 서사가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그 서사를 지탱하던 경제적 조건이 사라졌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GDP 성장률은 구조적 하락 추세에 있다. 인구는 2020년을 기점으로 자연 감소로 전환되었다. 합계출산율은 2024년 기준 0.75명 내외 수준으로, 인류 역사상 독립 국가가 평화시에 기록한 최저치에 근접해 있다.9 이것은 단순히 인구통계학적 위기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집단적 포기의 지표다.
이 조건에서 연대는 어떻게 되는가.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사회적 연대를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로 나누었다.10 기계적 연대는 동질성에 기반한다 — 나와 같은 집단에 대한 충성심. 유기적 연대는 차이와 상호 의존에 기반한다 —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이 하기 때문에 우리는 연결된다. 근대 산업 사회는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의 이행을 통해 더 복잡하고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것은, 그 이행의 역전이다. 나와 같은 성별, 나와 같은 출신 지역, 나와 같은 소득 계층. 이 닫힌 부족 안에서만 신뢰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경쟁자이거나 적이다. 그리고 이 신부족주의가 심화될수록 사회적 신뢰는 더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질수록 협력은 더 불가능해지며, 협력이 불가능해질수록 수축은 더 가속된다. 악순환은 스스로 먹이를 생산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소빙하기 유럽의 마녀사냥은 처음에는 소수를 향한 배제였다. 조선 후기의 환국 정치는 처음에는 이념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자원의 수축이 계속되고 제로섬의 논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 배제와 대립은 어디까지 나아갔는가.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성장의 서사가 끝난 자리에서 —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의미에서 경계선 위에 서 있다.
2025년 조기 대선을 거치며 극도로 양극화된 정치 지형, 0.7명대를 맴도는 출산율, 지방 소멸 가속화, 청년 자산 격차의 구조화. 그리고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도 거리는 다시 뜨거워졌다. 수축하는 사회일수록 정치는 더 뜨겁고, 민생은 더 차가워진다. 이 역설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다 — 한국 사회는 이미 수축의 임계점 안으로 깊이 들어섰다. 이것은 다음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문제다.
에펨코리아의 분노한 청년과, 여성시대의 경계를 치는 청년과, 서울 관악구 고시원에서 내일의 취업 공고를 들여다보는 청년은, 모두 같은 구조의 다른 얼굴들이다. 그들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같은 수축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다.
역사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수축기에도 연대를 유지하고 새로운 공동의 서사를 만들어낸 사회들.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했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의 한국에서 가능한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으려 한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거리를 확보할 때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다.
✦ 참고할 말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레위기 19:18
1 Muzafer Sherif, Intergroup Conflict and Cooperation: The Robbers Cave Experiment (1954). 자원 경쟁과 집단 간 적대감 형성에 관한 고전적 실험 연구.
2 한국노동연구원, 「플랫폼 경제와 청년 노동의 파편화」 (2024). 긱 이코노미 확산과 조직적 연대 기반 붕괴 분석.
3 대한상공회의소, 「기업 입지 환경과 지역 격차 실태 조사」 (2024). 수도권 기업 집중 현황 및 고착화 추세.
4 Demographia International Housing Affordability (2025). PIR 국제 비교 기준 서울 주거 가능성 지수.
5 Emily Oster, “Witchcraft, Weather and Economic Growth in Renaissance Europ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004). 소빙하기 기후 스트레스와 마녀사냥의 지리적 상관관계 분석.
6 이태진, 『소빙하기(1500~1750)의 위기와 조선』, 태학사 (2010). 기후 변화와 조선 후기 환국 정치의 연관성 분석.
7 Lawrence Summers, “U.S. Economic Prospects: Secular Stagnation, Hysteresis, and the Zero Lower Bound,” Business Economics (2014).
8 Carlo Ginzburg, Il formaggio e i vermi (치즈와 구더기), 1976. 미시사 방법론의 고전.
9 통계청, 「2024년 인구동향조사 잠정 결과」 (2025). 합계출산율 및 자연 인구 감소 현황.
10 Émile Durkheim, De la division du travail social (사회 분업론), 1893.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 이중의 수축 — 시리즈 전체 목록
제1편 에펨과 여시, 그리고 서울행 기차 — 대한민국 청년들은 왜 신부족주의자가 되었나 ← 현재 글
제2편 수(數)가 권력이 되는 날 — 노인 공화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표류하는가
제3편 부채 공화국의 탄생 — 가계부채 1,900조의 역사적 기원
제4편 수도와 변방 — 메트로폴리스 집중의 세계사와 한국의 선택
제5편 연애와 결혼의 소멸 — 친밀성의 시장화가 도달한 종착지
제6편 교육 인플레이션 — 학벌 사회의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순간
제7편 성장 없는 민주주의 — 파이가 줄어들 때 정치는 무엇을 하는가
제8편 이주와 배제 — 이민 사회로의 전환 앞에 선 한국의 딜레마
제9편 제국의 황혼과 변방의 선택 — 미·중 패권 전환기의 한국
제10편 수축을 넘어 — 역사가 보여주는 두 갈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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