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

【세계사-중동】 이스라엘과 아랍 — 끝나지 않는 전쟁의 뿌리 ⑤ / 6편

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

— 1987~2023년, 그림자 속에서 싸우는 자들

2026년 6월 · 세계사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사다트가 서명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어떻게 중동의 세력균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집트라는 맹주가 전선에서 이탈한 뒤, 아랍 세계는 새로운 방식의 전쟁을 찾아야 했다. 그 방식은 놀라울 만큼 오래되고, 동시에 낯선 것이었다.

직접 싸우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를 싸우게 한다.

돌을 든 소년과 그 뒤의 손들

1987년 12월,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 이스라엘 군용 트럭이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탄 차량과 충돌했다. 네 명이 숨졌다. 분노한 난민촌 청소년들이 돌을 집어 들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던졌다. 다음 날, 같은 장면이 서안지구 곳곳에서 반복됐다. 그렇게 제1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가 시작됐다.

인티파다는 아랍어로 ‘떨쳐일어남’이다.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지도부가 기획한 것이 아니었다. 튀니스에 망명해 있던 아라파트는 이 봉기의 소식을 뉴스로 먼저 들었다. 난민촌의 아이들이 탱크 앞에 섰다. 손에는 돌뿐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자발적 봉기 속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조직이 태동했다. 이슬람 저항 운동, 하마스(Hamas).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에서 갈라져 나온 이 조직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다. PLO가 협상과 타협의 언어를 쓸 때, 하마스는 저항과 순교의 언어를 썼다. 같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분노에서 출발했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샤바크(Shin Bet)의 일부 요원들은 1980년대 초, 하마스의 전신인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의 활동을 묵인했다는 기록이 있다. PLO라는 세속적 민족주의 조직을 내부에서 분열시키기 위한 전술적 판단이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1 설령 이 해석이 불완전하더라도, 한 가지 패턴은 명확하다. 적의 내부를 분열시키기 위해 활용한 세력이, 결국 더 다루기 어려운 적이 됐다. 사다트가 이슬람 세력을 이용하다 그 세력에 암살된 것과 같은 구조가, 이번에는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성장했다.

오슬로의 악수, 그리고 남겨진 것

1993년 9월 13일, 워싱턴 백악관 잔디밭.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악수를 나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소 지었다. 세계가 환호했다.

그 악수가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은 잔디밭의 풍경과는 달랐다. 협상은 노르웨이 외곽의 한 별장에서, 공식 외교 채널 바깥에서, 극비리에 진행됐다. 이스라엘과 PLO는 외교적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8개월 동안 만났다. 대화의 언어는 영어였지만, 그 아래에는 30년의 증오와 상실이 침전돼 있었다.

오슬로 협정이 이룬 것은 분명했다. 이스라엘이 PLO를 팔레스타인 대표 기구로 공식 인정했고, PLO는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설립됐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일부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가 시작됐다.

그러나 협정은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뒤로 미뤘다. 예루살렘의 지위.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이스라엘 정착촌의 미래. “최종 지위 협상에서 결정한다”는 문구가 이 모든 것을 담았다. 그 최종 지위 협상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결론이 없다.

라빈은 이스라엘 강성 유대주의자들에게 배신자였다.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 평화 집회 연설을 마친 직후 그는 암살됐다. 총을 쏜 이갈 아미르는 이스라엘 법대생이었다. 종교적 유대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다고 믿었다.2 적의 총이 아니었다. 사다트가 자국 병사에게 죽은 것처럼, 라빈도 자국 청년에게 죽었다. 평화를 시도한 자들은 언제나 내부의 총구 앞에 섰다.

1979년이 만든 세계

5편을 이해하려면 잠시 1979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해에 세 개의 사건이 거의 동시에 중동의 지각을 흔들었다.

1979년 1월, 미국과 중국이 공식 수교했다. 그러나 이 외교적 전환이 중동과 맞닿은 것은 여유가 아니라 위기를 통해서였다. 같은 해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카터 행정부와 덩샤오핑의 중국은 소련이라는 공동의 위협 앞에서 곧바로 군사·정보 공조 체제로 돌입했다. 수교가 낳은 새로운 관계가, 돌발 악재를 계기로 즉각 대리전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었다. 중국제 무기가 파키스탄을 경유해 아프간 무자헤딘 전선으로 흘러들었다.3 그리고 그 거래의 부산물은 중동 전역에 축적됐다. 이후 수십 년간 이 지역을 뒤흔들 무장 세력들의 기원이 그 자금과 무기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같은 해 2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호메이니가 귀국했고, 친미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다. 1,400년의 이슬람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아파 신정국가가 탄생했다. 11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대성원 점거 사건이 일어났다. 순니파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 최성지를 무력으로 장악한 이 사건은 사우디 왕실의 정통성을 뿌리에서 흔들었다. 왕실은 이중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국내적으로는 와하비즘(Wahhabism, 18세기 무함마드 이븐 압드 알-와하브가 창시한 수니파 극단 보수주의 — 음악·혼성 교육·여성 사회활동을 금하는 엄격한 율법 해석으로 알려져 있다)의 적용을 강화해 종교적 권위를 다졌고, 대외적으로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아프간 무자헤딘에 오일머니를 대거 쏟아부었다. 이 자금의 흐름 속에서 훗날 오사마 빈 라덴이 등장한다. 1979년의 세 사건은 이렇게 하나의 인과 사슬로 엮였다. 이란 혁명이 시아파 신정국가를 낳았고, 메카 사건이 사우디의 수니파 원리주의 수출을 촉발했으며,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미·중·사우디의 자금과 무기를 한곳으로 모았다.4

이 세 사건이 만들어낸 것이 오늘 중동의 기본 구조다. 이란(시아파) 대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의 신(新)중동 냉전. 이란의 시아파 신정국가와 사우디의 수니파 왕정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제3의 영토에서, 제3의 사람들을 내세워 싸웠다. 이것이 대리전(Proxy War)이다.

보이지 않는 손들의 체스판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다. 표면적 목표는 PLO 소탕이었다. 부작용은 예상을 넘었다.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레바논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Hezbollah, ‘신의 당’)가 탄생했다.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이들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 이란이 원한 것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곳에, 자신들이 통제하는 무장 세력을 두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치면서 이란의 가장 강력한 대리인을 낳았다.

이후 중동 전쟁의 지도는 이렇게 완성된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들이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형성한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하마스,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하시드 알 샤비), 예멘의 후티(Houthi) 반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하마스는 수니파 조직이다. 시아파 맹주 이란이 수니파 하마스를 지원하는 것은 종교적 유대감이 아니다. ‘반이스라엘·반미’라는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종파의 경계를 넘게 만든 것이다. 명분은 저항이었지만, 본질은 형세(形勢)였다.

반대편에는 이스라엘과 걸프 아랍국들이 있다. 이들도 직접 이란과 싸우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이란의 무기 이송 경로를 수백 차례 공습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은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가 아니다. 이미 2024년,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이 이란 내부를 공습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양측 모두 그 교전을 확전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전면전의 문 앞에서 멈추는 능력, 그것이 대리전의 핵심 문법이다.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2,400년 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하면서, 전쟁의 세 가지 동인(動因)을 꼽았다. 두려움, 명예, 이익. 이 공식은 오늘의 중동에서도 작동한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핵 능력을 두려워한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 개발을 두려워한다. 사우디는 이란의 지역 패권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이 직접 충돌하면 너무 큰 비용이 든다. 그래서 대리인을 쓴다. 두려움은 있되, 책임은 지지 않는 전쟁. 그것이 1987년 이후 중동이 발명한 새로운 전쟁의 형식이다.

역사가 알고 있는 것 — 17세기 유럽의 거울

이 구조는 중동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다.

1618년 유럽에서 30년 전쟁이 시작됐다. 표면적으로는 신교와 구교의 종교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 본질이 드러났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가 신교 편에 참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오스트리아·스페인)의 패권을 막는 것이 프랑스 국익에 유리했다. 종교는 명분이었고, 지정학이 본질이었다. 30년 동안 독일 영토가 전쟁터가 됐다. 독일 인구의 약 15~30%가 전쟁, 기아, 질병으로 숨졌다. 강대국들이 자국 영토가 아닌 곳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동안,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죽었다.5

오늘의 시리아와 예멘이 그 자리에 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은 아사드 정권 대 반군의 싸움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란이 헤즈볼라와 혁명수비대를 보내 아사드를 지원했고, 사우디와 카타르, 터키가 반군에 자금과 무기를 댔다. 러시아가 아사드 편에서 공군력을 투입했고, 미국이 반ISIS 명목으로 쿠르드 세력을 지원했다. 시리아는 스스로의 내전인 동시에, 여러 강대국은 관람석에 앉아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비용을 대고 전쟁을 관람했다. 내전 사망자는 50만 명을 넘었다. 난민은 700만 명을 넘었다. 싸운 사람들은 대부분 시리아인이었다. 결정권은 테헤란, 리야드, 모스크바, 워싱턴에 있었다.

예멘은 더 직접적이다. 2015년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군사 연합을 구성해 개입했다. 이란이 후티에 미사일과 드론 기술을 제공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예멘 땅에서, 예멘인들의 피로, 자신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전쟁의 방식이 가장 현대적인 무기를 입고 돌아왔다.

아브라함 협정의 역설

2020년 9월, 또 하나의 악수가 이루어졌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에 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한 이 협정은 아랍 세계의 외교적 지형을 뒤흔든 사건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 협정에서 단 한 번도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은 이름이 있다. 팔레스타인이다.

서명국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삼지 않았다. 이란이라는 공동의 위협을 앞에 두고, 팔레스타인 문제는 협상 테이블 밖으로 밀어냈다. 더 결정적인 것은 협정 이후 급물살을 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이었다. 사우디는 수교의 대가로 미국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상호방위조약 체결, 그리고 민간 원자력 개발에서의 우라늄 농축 권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무기를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얻으려 한 것이었다.6 아랍 세계의 맹주인 사우디마저 이 거대한 판짜기에 합류하려 하자, 하마스가 직면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소외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아랍 세계의 의제에서 영구적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실존적 위기감이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악수하는 순간, 팔레스타인에게는 들어올 문이 없어지는 구조였다.

가자지구는 2007년부터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봉쇄 아래 있었다. 하마스가 지배하는 이 180㎢ 남짓의 땅에 230만 명이 살았다. 경제는 마비됐다. 실업률은 40%를 넘었다. 봉쇄와 고립이 누적되는 동안, 협상의 출구는 하나씩 닫히고 있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전투원 약 3,000명이 새벽 6시 29분 이스라엘 국경 장벽 22곳을 동시에 공격했다. 패러글라이더, 오토바이, 불도저. 1,200명의 이스라엘인이 살해됐다. 250명이 납치됐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단일 공격으로는 최대 민간인 희생이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지상 작전으로 응답했다. 이듬해인 2024년 말 기준으로 가자지구 사망자는 이미 4만 5천 명을 넘어섰다. 아브라함 협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협정이 외면한 것이 돌아왔다. 합의가 외면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모습을 바꾸며 기다린다.

한비자가 읽은 것 — 형세와 대리인의 역설

한비자(韓非子)는 전국시대 말기 법가(法家)를 완성한 사상가였다. 그가 가장 집요하게 파고든 것은 권력이 어디서 오는가의 문제였다. 그의 답은 단호했다.

勢者, 勝衆之資也.
(세자, 승중지자야.)
“형세(勢)란 다중을 이기는 자원이다. 권력자가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덕(德)이 아니라 구조적 위치와 타이밍이다.”
— 한비자(韓非子), 《한비자》 팔경편(八經篇)

한비자에게 권력은 덕도, 명분도 아니었다. 구조적 위치, 곧 형세(形勢)였다. 이 논리를 1987년 이후 중동에 적용하면, 대리전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란이 레바논, 가자지구, 예멘, 이라크에서 동시에 이스라엘과 미국을 압박하는 것은 이념의 전쟁이 아니다. 직접 맞붙는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상대방이 자원과 주의를 사방으로 분산하게 만드는 형세 계산이다. 이스라엘의 반복 공습 역시 마찬가지다. 전면전 없이 이란의 군사 인프라를 소진시키는 형세의 싸움.

그러나 한비자적 형세 계산에는 구조적 맹점이 있다. 대리인은 완전한 대리인이 아니다. 형세를 계산한 자가 형세를 잃는 순간은, 대리인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때다. 2023년 10월 7일 공격은 이란이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7 수니파인 하마스는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이란의 전략적 타이밍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이탈로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하마스의 시각에서 10·7은 수동적 일탈이 아니었다. 아브라함 협정과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으로 자신들이 중동의 판에서 완전히 지워질 위기, 즉 형세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판을 뒤엎어 새로운 형세를 강제한 것이었다. 소외된 자의 역습, 그것 역시 한비자가 말한 세(勢)의 논리다. 형세를 빼앗긴 자가 형세를 되찾으려 할 때, 그 방식은 언제나 기존의 판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형세를 쥐었다고 믿은 자가 형세를 잃은 것은, 상대방도 같은 논리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는 《군주론》에서 이 구조를 15세기 이탈리아의 언어로 경고했다.

“용병과 외인부대는 쓸모없고 위험하다. 그들은 전쟁이 없으면 약탈하고, 전쟁이 있으면 도망친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12장

용병은 고용한 자의 이해에 완전히 복속하지 않는다. 목표가 일치할 때는 함께 싸운다. 목표가 어긋날 때는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21세기의 대리인은 마키아벨리가 경고한 용병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그래서 더 위험하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돈을 보고 움직이는 용병(Mercenary)이 아니다. 강력한 종교적·민족적 신념을 가진 이념적 대리인이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의회 의석을 가지고,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며, 레바논 시아파 공동체의 정치적 대표성을 주장한다. 이란이 원할 때 이란을 위해 싸우지만, 레바논 내부 정치에서는 레바논의 이해를 따른다. 용병은 돈이 끊기면 떠난다. 그러나 신념과 지역적 기반을 가진 이념적 대리인은 고용주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자신의 논리로 방아쇠를 당긴다. 마키아벨리가 경고한 용병의 위험성은 돈의 문제였다. 21세기 대리전의 위험성은 신념의 문제다. 신념은 돈보다 통제하기 어렵다.

회색지대와 한반도 — 보이지 않는 손의 동아시아 버전

중동의 대리전과 한반도의 안보 구조는 형식이 다르다. 중동에서는 국가(이란·사우디)가 비국가 행위자(헤즈볼라·하마스·후티)를 내세워 제3의 영토에서 싸운다. 한반도에서 북한은 직접 비군사적·국지적 수단을 동원하는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을 구사한다. 사이버 공격으로 암호화폐를 탈취하고, 오물 풍선을 날리고, GPS 신호를 교란하고, 국경 인근에서 간헐적 도발을 이어간다.

그러나 구조의 심층에는 중동과 닮은 것이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병력과 포탄을 제공했고, 러시아는 군사 기술과 위성 협력으로 화답했다. 이 북·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는 중동의 이란-헤즈볼라식 비국가 대리 구조와는 성격이 다르다. 북한은 헤즈볼라처럼 후원국의 지시를 받는 민병대가 아니다. 핵을 보유한 주권 국가다. 따라서 이 관계는 일방적 대리가 아니라 상호 도구화(相互 道具化)에 가깝다. 러시아는 북한의 병력과 물자를 활용하고, 북한은 러시아의 묵인과 뒷배를 활용해 더 대담하게 판을 흔든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한 만큼 쓰는 구조다. 그 효과는 중동의 대리전과 유사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러시아라는 거대한 배후를 등에 업은 북한은, 전면전의 문턱 아래에서 한국과 미국을 흔드는 회색지대 전술을 더 대담하게 구사할 수 있는 형세를 손에 넣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공하는 것은 무기만이 아니다.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구조적 위치다.

아브라함 협정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한 채 표면적 안정을 구축했다가 2023년의 폭발을 맞았듯, 구조적 모순을 덮어둔 외교적 합의는 언젠가 더 큰 형태로 귀환한다. 소외된 쪽이 극단적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중동만의 패턴이 아니다.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1987년 자발리야 난민촌의 돌멩이에서 2023년 10월 7일의 총성까지, 3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세계는 오슬로의 악수를 목격했고, 라빈의 암살을 목격했고, 9·11을 목격했고, 이라크 전쟁을 목격했고, 시리아의 폐허를 목격했고, 예멘의 기근을 목격했다.

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은 직접 싸우는 전쟁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끝을 선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는 대리인들이, 그 대리인들이 사는 땅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받는다. 10·7 이후 아브라함 협정은 사실상 무력화됐고, 중동의 대리전은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의 본토를 직접 타격하는 상시적 위기로 진화하고 있다. 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의 문법이, 직접 싸우는 전쟁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는 해석을 배제하기 어렵다.

제1차 인티파다의 돌을 든 소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50대가 된 세계에서, 그들의 손자들이 다시 돌을 들거나 총을 들고 있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사람이 바뀌어도 장면은 반복된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반복을 목격하는 자인가, 아니면 그 구조를 이해하는 자인가.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자리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 참고할 말씀: ‘이는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로마서 8:21


각주 및 출처

1 이스라엘의 하마스 전신 묵인 논란: Andrew Higgins, “How Israel Helped to Spawn Hamas,” Wall Street Journal, 2009년 1월 24일. 역사적 논란이 있는 해석이며, 이스라엘 정부는 공식 부인.

2 이츠하크 라빈 암살: 1995년 11월 4일. 이갈 아미르 진술 및 이스라엘 법원 재판 기록. Dan Ephron, Killing a King (2015).

3 미·중 수교(1979년 1월 1일) 및 아프간 무자헤딘 공동 지원: Robert Gates, From the Shadows (1996). 중국제 무기의 파키스탄 경유 무자헤딘 지원 경위 포함.

4 메카 대성원 점거(1979년 11월): Yaroslav Trofimov, The Siege of Mecca (2007).

5 30년 전쟁 피해: C.V. Wedgwood, The Thirty Years War (1938). 인구 피해 추정치는 학자마다 차이 있음(15~30%).

6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 조건: Barak Ravid, “Saudi Arabia Demands U.S. Security Guarantees, Nuclear Help,” Axios, 2023년 9월; Ronen Bergman·Mark Mazzetti, “The Gaza War Has Stalled the Saudi-Israeli Normalization Deal,” The New York Times, 2023년 10월; Dov Lieber·Laurence Norman, “Saudi Arabia Seeks U.S. Defense Pact and Nuclear Fuel as Price for Israel Deal,” The Wall Street Journal, 2023년 9월. 사우디의 미국에 대한 핵심 요구 조건(상호방위조약·우라늄 농축 권한)은 세 매체 모두 독립적으로 확인 보도.

7 이란의 10·7 사전 인지 여부: The New York Times, Wall Street Journal 복수 보도(2023년 10~11월). 이란 측 공식 부인. 하마스의 수니파 정체성이 이 독자적 행동의 내적 근거 중 하나로 분석됨.

8 한비자 팔경편: 《韓非子》 第48篇 八經. 이근우 역, 《한비자》 (현암사, 2014) 참조.

9 마키아벨리, 《군주론》 12장. 김경희 역 (까치, 2008).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세계사-중동】 이스라엘과 아랍 — 끝나지 않는 전쟁의 뿌리

【세계사-중동】 이스라엘과 아랍 — 끝나지 않는 전쟁의 뿌리

① 땅을 기억하는 자들의 나라 (B.C. 2세기~1948)

② 이긴 자가 잃은 것들 (1948·1956·1967)

③ 속죄의 날, 신화가 무너지다 (1973)

④ 배신자라 불린 평화주의자 (1978·1981)

⑤ 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 (1987~2023) — 현재 글

⑥ 트럼프는 중동을 멈출 수 있는가 (2025~2026) — 예정

⑥ 트럼프는 중동을 멈출 수 있는가 (2025~2026) — 예정

⑤ 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 (1987~2023) — 현재 글

⑥ 트럼프는 중동을 멈출 수 있는가 (2025~2026) — 예정

📢 새 글 알림 받기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