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이 빠져나간 자리
시장, 안보, 입법, 언론, 산업 — 같은 계절에 갈라진 신뢰의 지도
2026.08.03 · 경제·국방
전쟁 중인 나라보다 못한 한 달
지난 6월 18일, 코스피는 9,063.84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지나기 전, 지수는 6,500선까지 밀려났다.
낙폭은 -28%에 가까웠다.
세계 주요 지수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4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의 RTSI지수(-24.21%)보다도 나쁜 결과였다¹.
홍콩계 투자사 CLSA의 한 전략가는 “우려스러운 것은 개인투자자들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점”이라며, 신용거래에 의존한 국내 수급 구조를 지적했다.
정부는 그동안 밸류업과 코스피 5000 담론을 성과로 앞세워 왔다.
그러나 시장이 가장 크게 흔들리던 순간, 정부의 언어는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과 AI 버블 우려 같은 대외 변수가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 낙폭이 정책 신뢰의 균열에서 비롯되었다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다.
체감 경제도 심상치 않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 1월 한 달간 누적 8.48% 뛰어올라, 2006년(23.46%) 이후 19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서울 평균 매매가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8년 이래 처음으로 15억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뒤늦게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로 재확대하고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를 15%에서 20%로 올렸지만, 3월까지도 상승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같은 시기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1만700원, 3.7% 인상, 월 220만원대)을 두고는 노·사 양측 모두 이의를 제기했고, 소상공인연합회는 “790만 소상공인을 옥죄는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집을 구하기도, 가게를 지키기도 버거워진 체감 경제 위에서, 정책의 언어는 또 한 번 국민의 불안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지표의 풍요, 삶의 빈곤을 살펴본 바 있다.
버블이 터진 자리에서, 정부는 무엇을 증명해야 했는가
1989년 12월, 일본 닛케이 지수는 38,915라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듬해 초부터 지수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일본 대장성은 초기에 “일시적 조정”이라는 언어로 시장을 달래려 했다.
그 낙관적 언어는 신뢰를 회복시키지 못했고, 일본은 이후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국면으로 들어섰다.
시장이 무너질 때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화려한 담론이 아니라,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구체적 증명이었다.
그 증명에 실패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세계사는 이미 한 번 보여준 바 있다.
믿음을 잃은 명령은 명령이 아니다
한비자는 말했다.
信賞必罰신상필벌 — “믿을 만하게 상을 주고, 반드시 벌해야 한다.”
상벌이 미덥지 못하면, 아무리 정교한 법과 제도도 명령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였다.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가 비슷한 통찰을 남겼다.
군주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요새를 잃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신뢰를 잃는 것이라고 그는 썼다.
제도는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제도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존재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신뢰
시장의 불안이 숫자로 나타난다면, 국가 안보 시스템의 흔들림은 국가의 근간을 위협한다.
국방부는 지난 6월, 49년간 유지돼 온 국군방첩사령부를 해체하고 방첩·보안·안보수사 기능을 여러 기관으로 분산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반발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동의자 5만 명을 넘겼고, 청원인들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물론 이 개편이 12·3 비상계엄 이후 군 지휘체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반론도 있어, 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개혁이 과연 충분한 설득과 신뢰 위에서 추진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입법 절차에서도 비슷한 균열이 드러났다.
지난 7월 31일, 검사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반대 토론을 이어갔지만 임시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처리됐다.
재석 178명 중 찬성 175명이라는 절대다수였지만, 여당 내에서도 반대 1표와 기권 1표가 나와 완전한 일치는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을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방탄입법”이라 규정하며,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요구했다.
국민을 앞세운 절차가 실제로는 특정인의 사법 리스크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이 법안을 둘러싼 여론도 간단치 않았다.
한국갤럽이 7월 중순 실시한 조사에서는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61%로, “폐지해야 한다”(23%)를 크게 앞섰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도 반대 55.3%, 찬성 27.4%로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권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호남이다.
갤럽 조사에서는 호남에서조차 유지 응답(55%)이 폐지(28%)를 앞섰다.
다만 다른 조사(미디어토마토)에서는 호남 응답자 사이에서 폐지 응답이 근소하게 더 높게 나오기도 해, 지역 여론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전국 단위로는 복수의 조사기관에서 반대 여론이 뚜렷한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70여 년간 이어진 사법 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꾼 이 절차를, 개혁의 완성으로 볼지 다수의 힘으로 여론을 지나쳐 간 사례로 볼지는 보는 자리에 따라 갈릴 수 있다.
경제와 안보가 신뢰로 움직인다면, 민주주의는 비판의 자유로 숨을 쉰다.
지난 7월 시행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을 두고도 여야는 정반대의 언어로 충돌했다.
한쪽에서는 이를 “온라인 입틀막법”으로 규정하며 시행 유예를 요구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짓 확성기를 끄는 법”이라 맞섰다.
같은 시기 국경없는기자회의 2026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47위로 상승했지만, 해당 보고서조차 이 법이 “언론자유단체의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명시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 역시 한국 정부의 법 개정이 ‘미국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지표상의 순위 상승 뒤편에서, 개별 입법을 둘러싼 신뢰의 균열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셈이다.
정부는 같은 시기 온라인플랫폼법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대형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갑을관계를 규율하는 ‘거래공정화법’을 우선 과제로 삼아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그러나 산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플랫폼 기업의 손발을 묶는 사이 알리·테무·구글 같은 해외 빅테크에 시장을 내주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밸류업을 외치며 증시 부양을 약속한 정부가, 정작 국내 대표 IT 기업들에는 규제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갑을관계 규율 자체는 소상공인 보호라는 별도의 정당성을 갖고 있어, 이를 단순히 ‘통제’로만 단정하는 것 역시 성급할 수 있다.
시장에서든, 안보 기구에서든, 입법 절차에서든, 표현과 산업을 둘러싼 법에서든 — 제도가 흔들릴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은 같다.
“이 결정을, 나는 믿을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하는 국면이 여러 갈래에서 동시에 겹칠 때, 그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하나의 패턴인지는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는 무엇을 다시 믿어야 하는가
그 사이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와 몽골 국빈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 13일 만에, 취임 후 최장 일정인 7박 11일간의 미국·남미·독일 순방길에 다시 올라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빅테크 최고경영자들과 AI 협력을 논의했고, 브라질에서는 국빈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경제·안보·정치 현안이 동시에 흔들리는 위기 앞에서 외유만 이어진다는 질타가 이어지자, 대통령은 현지에서 직접 “임기 초 해외 순방을 좀 많이 다니는 편”이라며 정상외교의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위기 앞에서 나온 그 해명이 정작 위기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는 코스피가 세계 최악의 낙폭을 새로 썼고,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제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방첩사는 문을 닫았고, 형사소송법은 야당 없는 본회의를 통과했다.
두 개의 시간이 같은 달력 위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흘렀다.
두 개의 시간이 같은 달력 위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흘렀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는 코스피가 세계 최악의 낙폭을 새로 썼고,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제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방첩사는 문을 닫았고, 형사소송법은 야당 없는 본회의를 통과했다.
두 개의 시간이 같은 달력 위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흘렀다.
시장은 숫자로 흔들리고, 안보 기구는 조직도로 흔들리고, 언론과 기업은 법 조문 하나로 흔들린다.
그러나 그 밑에서 흔들리는 것은 결국 같은 것 — 국민이 국가의 결정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옛 경구는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고,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고 했다.
신뢰와 지혜를 잃은 개혁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역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이 질문에 아직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계속 묻는다.
* 참고할 말씀: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 잠언 11:14
¹ 코스피 낙폭·세계 지수 비교 (출처: 인베스팅닷컴 집계, 2026년 7월 파이낸셜뉴스 보도)
²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안 및 국회 국민동의청원 (출처: 2026년 6월 뉴데일리 보도)
³ 정보통신망법 개정(허위조작정보 근절법) 여야 공방 및 미 국무부 성명 (출처: 2026년 7월 경기신문 보도, 나무위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문서)
⁴ 국경없는기자회 2026 세계 언론자유지수 (출처: 2026년 4월 RSF 발표)
⁵ 온라인플랫폼법 추진 현황 (출처: 2026년 1월 전자신문 보도)
⁶ 일본 버블경제 붕괴 개요 (일반 역사적 사실)
⁷ 서울 아파트값 급등 및 정부 대응 (출처: 한국부동산원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2026년 1월 네이트뉴스·2026년 3월 부동산 시장 전망 보도)
⁸ 2027년 적용 최저임금 결정 및 소상공인 반발 (출처: 2026년 7월 파이낸셜뉴스·이코노미톡뉴스 보도)
⁹ 형사소송법 개정안(검사 보완수사권 폐지) 국회 통과 경위 및 국민의힘 ‘방탄입법’ 비판 (출처: 2026년 7월 30~31일 한국일보·경향신문·이데일리·아주경제 보도)
¹⁰ 보완수사권 폐지 여론조사 (출처: 한국갤럽 2026년 7월 14~16일 조사,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2026년 7월 20~21일 조사, 미디어토마토 193차 정기 여론조사)
¹¹ 대통령 미국·남미·독일 순방 일정 및 현지 발언 (출처: 2026년 7월 뉴스핌·경향신문·오마이뉴스 보도)
¹²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경제라인 교체 요구 (출처: 2026년 7월 한국연합신문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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