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한국현대-행복 ⑨ · 2010년대
2026.08.04 · 역사·철학 > 한국현대사
새벽 인력시장에 서 있는 얼굴들
경기도의 한 새벽 인력시장.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인데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트럭 한 대가 서면 몇 사람이 올라타고, 나머지는 다시 발을 구르며 다음 트럭을 기다린다.
그 줄 안에는 이제 한국어 억양이 서로 다른 얼굴들이 절반 넘게 섞여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우즈베키스탄 — 국적은 다르지만 새벽의 표정은 똑같다. 졸음과 긴장, 그리고 오늘 하루를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
앞선 글에서 우리는 2000년대 재래시장 상인이 이름 모를 손님과 나눈 단골의 정(情)을 살펴보았다. 그 관계는 같은 언어, 같은 시장통 안에서 오가는 내국인 간의 정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그 정의 대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시장통의 온기가 이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얼굴에게로 확장되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시리즈의 더 앞선 편들에서 우리는 1960~8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 구로공단의 여공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땅으로 떠나 몸으로 벌어 가족을 먹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정확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이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떠나던 나라가 받아들이는 나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한 세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용허가제 이후, 낯선 얼굴이 익숙해지기까지
2004년 8월, 정부는 산업연수생제도의 폐해를 정리하고 고용허가제(EPS)를 도입했다. 이전까지 외국인 노동자는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일했고, 사업장 이탈이나 임금 체불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관계법을 적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이 인정에는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3년의 취업 기간 중 3회를 넘길 수 없도록 규정했다(외국인고용법 제25조).1 근로계약 해지, 임금 체불, 부당한 처우처럼 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가 아니면 이 횟수를 넘기는 순간 출국해야 하는 구조였다. 법은 이들을 ‘근로자’라 불렀지만, 근로자에게 당연한 ‘떠날 자유’는 세 번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2010년대 들어 외국인 근로자 수는 지방 중소 제조업체와 농어촌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2012~2013년 무렵, 지방 도시의 산업단지에서는 야간 근무조의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지는 곳도 생겨났다. 그리고 이 시기의 이주 노동은 결코 공장의 남성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농촌의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정을 지키며 마을 공동체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고, 병원과 요양시설의 돌봄 노동자들은 늙어가는 한국 사회의 가장 은밀한 영역을 채워갔다. 지방 초등학교 한 학급에 다문화가정 학생이 두세 명씩 섞이는 풍경도 이 무렵부터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통계와 현실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었다. 임금은 계약서대로 지급되었지만 기숙사는 컨테이너였고, 언어 교육은 형식적이었으며, 지역 주민과의 접촉은 최소한이었다. 공존은 단지 법만으로 완성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공존은 매일 아침 같은 트럭에 오르고, 같은 국밥집에서 마주치고, 같은 명절 연휴를 견디는 반복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졌다.
독일의 손님, 일본의 실습생 — 반복되는 이주노동의 패턴
이 패턴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1955년, 서독은 이탈리아와 노동자 파견 협정을 맺으며 손님노동자(Gastarbeiter) 제도를 시작했다.2 처음에는 몇 년만 일하고 돌아갈 ‘손님’으로 여겨졌던 이들은 결국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렸고, 오늘날 독일 인구의 상당수는 그 후손들이다. 1973년 오일쇼크로 모집이 중단된 뒤에도 이미 정착한 이주노동자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 국가가 ‘임시’라고 부른 노동은 결국 ‘영구’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일본은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1993년 도입된 외국인기능실습제도는 ‘기술 이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값싼 노동력 수급 창구로 기능했다는 비판을 오래도록 받아왔다. 실습생의 최저임금 미달 지급, 사업장 변경 제한 등의 문제는 2010년대 내내 국제사회의 지적 대상이 되었고, 일본 정부는 결국 2019년 특정기능비자라는 새 체계로 제도를 전환해야 했다.3
독일은 ‘손님’을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데 반세기가 걸렸고, 일본은 ‘실습생’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문제를 인정하는 데 20여 년이 걸렸다. 한국의 ‘3회’와 독일의 ‘임시’, 일본의 ‘실습’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구조를 가리킨다 — 노동력은 국경을 넘어오지만, 그 노동력이 ‘사람’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언제나 국가가 원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역사는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말보다 먼저 통하는 것
한국의 인력시장, 독일의 손님노동자 마을, 일본의 실습생 기숙사 — 이 세 풍경은 국경도 언어도 다르지만 하나의 구조를 공유한다. 국가는 노동을 원했고, 사람은 그 노동을 따라왔다. 그리고 언제나 그 다음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노동은 계약할 수 있어도, 공존은 계약할 수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패턴이 한국 안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이다. 1960년대 파독 광부들이 낯선 독일어 속에서 몸짓으로 소통을 배웠듯, 2010년대 한국의 인력시장에서도 소통은 말이 아니라 손짓과 표정, 그리고 반복되는 노동의 리듬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떠났던 사람과 들어온 사람이 겪는 것은 어쩌면 같은 종류의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언어가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외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지가 문제였다.
지방의 한 국밥집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말은 안 통해도, 뭘 먹고 싶은지는 눈빛 보면 알아.” 이 한 문장 안에 어쩌면 이주노동의 역사가 가장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제도는 사람을 이동시키지만, 결국 사람을 붙잡아두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국밥 한 그릇, 눈빛 하나, 낯을 익힌 얼굴 하나였다.
우리는 무엇을 다시 배우고 있는가
2026년 현재 한국 사회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이민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논의하는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출입국·이민관리를 전담할 이민청 설립 논의는 2022년 이후 계속 이어지고 있고, 법무부는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를 확대 운영하며 외국인의 지역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4 한때 ‘떠나야 살 수 있던 나라’가 이제는 ‘누군가를 받아들여야 유지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난 반세기 한국의 궤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 전환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역 사회의 반발, 문화적 마찰, 임금과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 문제는 정책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다. 성경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남겨두었다 —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떠났던 우리가 지금은 그 시절의 우리와 닮은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구절보다 잘 보여주는 문장은 찾아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 노동력을 관리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보는 시선으로의 전환이다. 제도는 사람을 데려올 수 있지만, 그 사람을 이웃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지역 공동체의 몫이다. 인력시장의 새벽 줄에 서 있던 얼굴들이 언젠가 이 사회의 평범한 이웃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그 답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우리가 반세기 전 낯선 땅에서 배운 것을 지금 낯선 얼굴들에게 어떻게 되돌려줄 것인가 — 이것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참고할 말씀: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 레위기 19:34
1. 고용허가제(EPS) 도입 및 사업장 변경 제한(원칙 3회) —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 고용노동부
2. 서독 손님노동자(Gastarbeiter) 제도 — 1955년 이탈리아와의 협정 이후 확대
3. 일본 외국인기능실습제도 — 1993년 도입, 2019년 특정기능비자 체계로 전환
4.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 — 법무부, 2022년 시범 도입 후 2025년 확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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