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오래 타면서 더 적게 쉰다
한국 선원과 유럽 선원의 처우 격차
외항선원 시리즈 5편 · 바다 · 2026.07.23
같은 항해사, 다른 달력
2016년, 주니어 사관이었던 한국인 항해사 김태원 씨는 싱가포르에서 정기 입거(Dry Docking)를 앞둔 배를 타고 있었다. 도크 정문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우연히 만난 것은 Teekay 소속 인도 국적 2등 항해사였다.
몇 마디를 나누다 그가 “4개월 승선을 마치고 이제 3개월 휴가를 받는다”고 말했을 때, 김 씨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고 훗날 회고했다1. 김 씨가 타는 배에서는 6개월 이상 승선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1.
두 사람은 같은 항로를 오가는 같은 직무의 항해사였다. 다만 계약서에 적힌 승선-휴가 주기가 달랐을 뿐이다.
한국 — 외항상선 통상 6개월 승선 + 2개월 휴가 (2023년 개혁 이전 관행)2
유럽계 선사 — 통상 3개월 승선 원칙, 4개월 초과 시 계약 위반1
같은 바다, 같은 배, 같은 자격증을 두고 쉬는 리듬만 두 배 가까이 벌어져 있었던 셈이다. 이 격차를 개인의 인내심이나 국민성의 문제로 돌리기는 어렵다. 격차는 협상 테이블과 법 조문 위에서 지어진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세계가 선원의 쉼을 법으로 새기기까지
이 격차를 이해하려면 국제사회가 선원의 휴식을 언제, 어떻게 법으로 명문화했는지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창설된 이래로 선원의 근로조건을 개별 협약으로 하나씩 다뤄왔다. 그러나 협약이 너무 많고 산발적이어서 국가마다 비준 여부와 이행 수준이 제각각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LO는 1920년부터 1996년까지 축적된 기존 해사노동 협약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그 결과물이 2006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채택된 해사노동협약(MLC, 2006)이다3. 이 협약은 흔히 “선원의 권리장전”으로 불리며, 2013년 8월 20일 국제법으로서 발효되었다3.
한국의 선원법 제60조 역시 이 국제기준을 문언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임의의 24시간 중 10시간 이상, 임의의 1주간 77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선박소유자가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이다4. 숫자만 보면 유럽 선사들이 따르는 국제기준과 다르지 않다.
다만 같은 조항은 인명·선박·화물의 안전이나 해양오염 방지, 인명 구조처럼 본래 비상상황을 염두에 둔 예외도 함께 두고 있다4. 문제는 이 예외를 발동한 뒤의 사후 통제 장치나 처벌 규정이 마땅히 없다는 데 있으며, 학계에서는 이 여백이 비상상황을 넘어 일상적 업무 부담으로까지 남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5.
국제사회가 반세기 가까이 선원의 쉼을 법전 안으로 끌어들이는 동안, 한국의 법 조문 역시 같은 숫자를 확보해냈다. 그러나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숫자가 같다고 해서, 그 숫자가 실제로 지켜지는 방식까지 같아지는가.
앞선 글 ‘3년이면 충분했다’에서 우리는 제도가 사람을 계산으로 붙잡으려 할 때 결국 사람도 계산으로 응답한다는 역설을 다뤘다. 이번 역설은 그보다 한 단계 앞서 있다. 법 조문은 국제기준과 같은데, 그 법이 실제로 지켜지는 방식은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동서양의 두 사유를 나란히 놓아볼 수 있을 듯하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인위적으로 밀어붙이는 무리함이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고 말했다.
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孰爲此者?天地。天地尚不能久,而況於人乎?
(표풍부종조,취우부종일。숙위차자?천지。천지상불능구,이황어인호?)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도 오래 지속시킬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 老子, 『道德經』 第23章6
여기서 표풍(飄風)과 취우(驟雨)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인위적 강요를 가리키는 비유로 읽힌다. 하늘과 땅의 극단조차 스스로 오래 버티지 못하는데, 사람이 만든 제도가 인간에게 그보다 더 긴 지속을 강요한다면, 해당 제도는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6개월 승선이 관행으로 굳어질 만큼 무리하게 밀어붙여진 자리에서, 결국 사람이 먼저 떠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 비유와 정확히 겹친다.
서양에서는 토크빌이 비슷한 우려를 다른 각도에서 남겼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극도로 정교해진 분업이 소유주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 옛 귀족제와는 다른 새로운 위계, 이른바 산업 귀족제(Industrial Aristocracy)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경계한 지점은 이 새로운 위계가 전통적 귀족이 신민에게 지녔던 최소한의 상호 의무감마저 결여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계약과 숫자로만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예외 조항을 사후 통제 없이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구조 역시, 이 산업 귀족제가 책임을 계약서 바깥으로 미뤄두는 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법이 같아도 결과가 다른 이유
노자와 토크빌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국 선원법과 유럽 선사의 실제 격차가 어디에서 벌어지는지 조금 더 선명해진다.
업계에서는 선사 측의 인력 교체 비용 부담과 국내 해기사 수급 난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온 것으로 본다. 교체 비용을 줄이고자 승선 기간을 늘리는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분석이다. 그 부담이 선원 개인의 휴식 시간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격차는 승선 주기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소득에 대한 국가의 보상 방식도 함께 갈라진다. 한국의 외항상선·원양어선 선원 소득세 비과세 한도는 2013년 이래 월 300만원으로 묶여 있다가, 2024년에 이르러서야 월 500만원으로 확대되었다9. 선원노련은 그 이전부터 임금 전액 비과세를 요구해 왔으나, 정부는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확대 폭을 제한해 왔다9.
유럽 주요 해운국들은 국적 선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오래전부터 더 적극적인 세제 지원을 운용해 왔다. 영국은 연간 365일 이상 해외를 항해하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선원에게 소득세를 100% 면제하는 ‘선원소득공제(Seafarers’ Earnings Deduction)’ 제도를 두고 있다10. 덴마크는 1988년부터 국제선박등록제(DIS)에 등록된 선박에 승선하는 선원의 소득세를 선주가 원천 면제하는 순임금제를 운용해 왔으며, 네덜란드는 EU·EEA 거주 선원에 대해 선주가 임금세의 40%를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10.
쉼의 격차는 접속의 격차로도 이어진다. 오랫동안 국적선 다수는 정지궤도 위성통신에 의존해 문자 중심의 제한적인 소통만 가능했다11. 다만 이 부분은 최근 빠르게 좁혀지는 중이다. 2023년 노사정이 선내 초고속 인터넷 도입에 합의한 뒤12, 정부와 선사들은 저궤도 위성 인터넷 보급을 서둘렀다. 2026년 5월 기준 국적 외항선 569척에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되었고, 선원기금재단은 해당 선박에 매월 이용료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12,13. 쉼을 일하지 않는 시간으로만 좁혀 읽는다면 이 변화는 부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고립된 채 지내야 하는 선원에게는 가족과 연결될 수 있는 통신 환경 자체가 또 다른 쉼의 조건으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승선 주기의 구조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오래 타고 적게 쉬는 관행은 젊은 해기사들의 승선 기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남아 있는 선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인다.
국적선원 수는 2000년 5만 8,818명에서 2023년 3만 1,867명으로 줄었고, 그중 60세 이상 비중은 약 44%에 이른다7. 실제로 한 해기사협회 설문에서 청년 해기사들이 장기 승선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꼽은 요소는 승선 기간 단축과 휴가 확대, 통신 환경 개선, 임금 인상 순이었다14. 쉼과 소득, 연결이라는 세 축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이탈을 부르고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다행히 이 흐름에 변화의 조짐도 있다. 2023년 7월 정부가 선원 일자리 혁신방안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노사정은 15년 만에 대타협을 이루어 외항상선 승선기간을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하고 유급휴가 일수를 2일 가산하는 데 합의했다8. 그러나 이 합의를 실제 조항으로 담은 한국인 선원 단체협약은 2024년 8월에야 체결되었다15. 발표에서 협약 체결까지 1년 이상의 시차가 있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명암도 함께 드러났다. 외항 위주로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내항 선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고, 촉탁직 부원들의 경우 일자리가 일부 줄어드는 부작용도 함께 보고되었다15. 2026년 현재까지도 선원노련은 장시간 노동 관행 개선을 정책 과제로 계속 제시하고 있다16. 제도가 방향을 튼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방향이 현장 구석구석까지 고르게 닿았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쉼을 무엇이라 불러왔는가
숫자는 바뀌고 있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노자가 말한 것처럼 하늘과 땅조차 인위적 극단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다면, 사람이 만든 제도가 그보다 더 오래 사람을 밀어붙일 근거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토크빌이 경계한 산업 귀족제처럼 계약과 숫자로만 맺어진 관계라면, 숫자가 개선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 관계에 최소한의 상호 존중이 함께 심어졌는지는 다시 물어야 할 문제로 남는다.
이 질문에는 이 바다가 놓인 위치도 함께 얹힌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 육로가 막힌 이 나라에서, 외항상선은 무역량의 99.7%를 책임지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다8.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봉쇄가 벌어질 때도 그 항로를 지키는 것은 결국 이 선원들이다. 선원의 쉼을 다루는 문제는 한 직역의 처우를 넘어, 국가가 스스로의 생명선을 얼마나 돌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 당장의 처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적선원의 감소와 고령화가 이어진다면, 사라지는 것은 인원수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야 하는 항해와 정비의 감각일 수 있다. 그 감각이 한 세대 끊기고 나면, 되찾는 데는 잃어버린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6개월이 4개월로 줄어들고, 비과세 한도가 오르고, 위성 안테나가 갑판 위에 하나둘 세워지는 것은 모두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그 진전이 비상상황을 위해 열어 둔 예외 조항 자체를 다시 비상상황으로 되돌리는 데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옛적 누군가는 엿새를 일하고 이렛날은 쉬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계율로 남기기도 했다. 그 계율은 노동에 짓눌린 사람이 스스로의 존엄을 되찾는 하루이기도 했을 것이다. 거대한 공급망의 톱니바퀴 한 칸으로 소외되기 쉬운 이 바다 위에서, 그 쉼은 지금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 참고할 말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이렛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아무 일도 하지 말라” — 출애굽기 20:9-10
주1. 마리너스(한국해기사협회), 김태원(Seapeak 일등항해사) 인터뷰 — 2016년 싱가포르 도크에서의 인도 국적 이등항해사와의 대화, 해외선사 3개월 승선 원칙(4개월 초과 시 계약 위반) 및 한국 외항상선 6개월 이상 승선 관행
주2. 한국경제, ‘외항상선 승선기간 최대 3개월 단축’ (2023.07.11) — 기존 6개월 승선·2개월 휴가 관행 및 정부 개혁 발표
주3. ILO, “MLC, 2006: What it is and what it does” — 1920~1996년 기존 해사노동 협약 통합, 2006년 2월 제네바 채택, 2013년 8월 20일 발효
주4. 「선원법」 제60조 — 임의의 24시간 중 10시간 이상, 1주간 77시간 이상 휴식시간 보장 규정 및 부득이한 사유(인명·선박·화물 안전, 해양오염·해상보안 확보, 인명·선박 구조 등)에 의한 시간외근로 예외
주5. 전영우, ‘선원법상 근로시간 규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원광법학』 37(3), 2021 — 부득이한 사유 조항의 남용 여지 및 사후통제·처벌 규정 부재 지적
주6. 老子, 『道德經』 第23章
주7. 한국경제 (2023.07.11) — 국적선원 2000년 58,818명 → 2023년 31,867명, 60세 이상 비중 약 44%
주8. 해양수산부, ‘청년 선원 이탈 막자, 노·사·정 대타협’ 보도자료 (2023.11) — 승선기간 6→4개월 단축, 유급휴가 2일 가산 합의, 외항상선 선원이 우리나라 무역량의 99.7%를 담당한다고 명시
주9. 해사신문, ‘원양 선원들 비과세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확대’ (2023.07.27) — 외항상선·원양어선 선원 소득세 비과세 한도 2013년 300만원→2024년 500만원 확대, 선원노련 임금 전액비과세 요구
주10. 영국 국세청(HMRC), ‘HS205 Seafarers’ Earnings Deduction'(GOV.UK);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Denmark DIS 관련 결정문(2009); 네덜란드 해운협회(KVNR), ‘Maritime tax schemes’ — 영국 선원소득 100% 면제, 덴마크 DIS 순임금제(1988~), 네덜란드 임금세 40% 감면(EU·EEA 거주자)
주11. 헤럴드경제, ‘현대글로비스, 보유 선박에 저궤도 위성통신 스타링크 도입’ (2026.01) — 국적선 다수의 기존 정지궤도 위성통신 의존 및 텍스트 중심 제한적 통신 환경
주12. 우리일보, ‘선원들, 망망대해에서도 LTE급 인터넷 사용한다’ (2026.02.11) — 2023년 노사정 선내 초고속 인터넷 도입 합의, 선원기금재단 척당 월 80만원 지원 개시
주13. 헤럴드경제, ‘국적 외항선 569척 초고속 인터넷 도입…선원 통신환경 개선’ (2026.05.19)
주14. 한국해운신문, ‘”내항 중심으로 해기인력 공급 집중해야”‘ (2024.10.31) — 해기사협회 설문, 청년 해기사 장기승선 도움 요소 1순위 승선기간단축·휴가확대, 2순위 통신환경개선, 3순위 임금인상
주15. 한국해운신문 (2024.10.31) — 2023년 7월 선원일자리혁신대책 발표 → 2023년 11월 노사정 대타협 → 2024년 8월 한국인 선원 단체협약 체결, 내항 상대적 박탈감 및 촉탁직 부원 일자리 감소 보고
주16. 부산일보, ‘선원노련·與, 외국인선원 제도·장시간 노동 개선 힘 모은다’ (2026) — 2026년 현재도 선원노련이 선원 장시간 노동 관행 개선을 정책과제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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