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공간의 위계질서

폐쇄된 공간의 위계질서

선내 문화와 MZ 세대의 탈출

외항선원 시리즈 6편 · 바다 · 2026.07.26


육지에서는 들리지 않던 이름

2019년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병역을 대체하는 승선근무예비역 신분으로 외항선을 탔던 한 청년(당시 25세)은 그해 9월 상급자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배에서 내려 군대를 가든가 알아서 해”라는 말을 들으며 3개월을 버티다 결국 배에서 내렸다1. 20여 명 중 나이도 직급도 가장 낮았던 그에게 일상적 초과근무와 술자리 강요는 “그나마 버틸 만한” 축에 속했다1.

이러한 사례는 이 청년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앞선 2018년 3월에는 다른 승선근무예비역이 “괴롭힘을 참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다. 그제야 정부는 인권침해 전수조사와 신고 체계를 마련했다1. 그러나 2019년 시점까지도 그 신고 절차는 선장이 상주하는 브릿지(선교)의 통신망을 거쳐야 했다. 사장 옆에서 사장에 대한 신고를 해야 하는 구조였던 셈이다1. 그해 이 경로로 접수된 제보는 단 1건에 그쳤다1.

신고 채널은 존재했지만, 그 채널이 지나가는 자리 자체가 이미 위계 안에 있었다. 그리고 통계는 조용히 쌓였다. 중도 포기자는 2015년 31명에서 2018년 70명으로 늘었다1. 병역 재입대라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배에서 내리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 흐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승선근무예비역이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한 인원은 2018년 70건에서 2021년 207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2. 같은 기간 병무청에 정식 접수된 인권침해 피해 신고는 2018년 1건, 2019년 6건, 2020년 3건, 2021년 2건, 2022년 2건으로 매년 소수에 그쳤다2. 전환 인원은 세 배로 늘었는데 정식 신고 건수는 한 자릿수에 머무른 셈이다. 신고보다는 이탈로 답하는 쪽을 택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 이후 2023년 노사정 대타협으로 승선 기간이 단축되고 유급휴가가 늘었다는 사실은 앞선 글에서 살펴본 대로다. 다만 처우의 숫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이 기간 내내 쌓여온 위계 문화의 구조까지 함께 바뀌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2022년의 한 해운 전문지 인터뷰에서도 학계·업계 관계자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 해기사들을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3. 이 편에서 다루려는 것은 바로 그 지점, 숫자로는 잘 잡히지 않는 배 위의 서열 그 자체다.

앞선 글 ‘더 오래 타면서 더 적게 쉰다’에서는 승선 주기와 소득, 통신 환경이라는 물리적 조건이 함께 선원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1789년 4월, 남태평양의 그 새벽

폐쇄된 공간에서 위계가 정당성을 잃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오래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짚어볼 수 있다.

1789년 4월 28일 새벽, 영국 해군 함정 바운티호에서 부함장 플레처 크리스천과 선원 다수가 함장 윌리엄 블라이를 소형 보트에 태워 바다로 내보내는 반란을 일으켰다4. 선원들은 타히티에서 몇 달을 머문 뒤, 좁은 배 안의 엄격한 지휘 체계로 다시 복귀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블라이의 통제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이 후대 역사 서술의 공통된 진단이다4.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블라이가 유별나게 잔혹한 함장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4. 문제는 개인의 성정보다, 열린 세계를 잠시 맛본 선원들과 닫힌 위계로 돌아가려는 지휘 체계 사이의 간극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배, 같은 규율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선원들의 기준이 먼저 바뀌어 있었던 셈이다. 위계 자체가 무너졌다기보다는, 위계를 정당하다고 느끼게 하던 암묵적 동의가 먼저 빠져나간 자리에 반란이 뒤따른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바운티호의 선원들은 집단으로 뭉쳐 함장을 배 밖으로 내보내는 저항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오늘의 젊은 해기사들에게는 그런 집단행동의 여지가 없다. 항해 중인 배는 다음 항구에 닿기 전까지는 누구도 마음대로 내릴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5. 저항이 봉쇄된 자리에서 남은 선택은 반란이 아니라, 애초에 승선하지 않거나 계약이 끝나는 대로 조용히 떠나는 것뿐이다. 소리가 작아졌다고 해서, 신호의 무게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닐 수 있다.

형벌과 은덕, 그리고 두려움의 계약

동서양의 사유는 이 폐쇄된 위계의 문제를 각기 다른 자리에서 건드린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이렇게 정리했다.

明主之所導制其臣者,二柄而已矣。二柄者,刑德也。
(명주지소도제기신자,이병이이의。이병자,형덕야。)
“밝은 군주가 신하를 이끌고 통제하는 방법은 두 자루뿐이다. 그 두 자루란 형벌과 은덕이다.”
— 韓非子, 『二柄』6

한비자에게 위계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상과 벌이라는 두 자루가 정확히 작동할 때만 유지되는 장치였다. 승선근무예비역들이 겪은 초과근무와 폭언은 형벌의 자루만 남고 은덕의 자루는 이미 비어 있는 상태로 읽을 수 있다.

서양에서는 홉스가 비슷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다뤘다.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이 서로를 두려워하는 자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절대적 권위에 스스로 복종하는 계약을 맺는다고 보았다7. 다만 그 복종은 무조건적인 굴복이 아니라, 복종함으로써 각자의 생존과 안전이 실제로 보장된다는 계산 위에 세워진 계약이었다7.

한비자의 형덕이든 홉스의 사회계약이든, 위계가 지속되는 조건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그 힘이 무엇을 돌려주는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계약의 대가가 더 이상 체감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계약 자체를 떠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당성을 잃은 위계가 도착하는 곳

한비자와 홉스를 나란히 놓고 보면, 지금 한국 선박 위에서 벌어지는 이탈의 성격이 조금 더 또렷해진다.

국적 선원 수는 2000년 5만 8,818명에서 2023년 3만 1,867명으로 줄었고, 그중 60세 이상 비중은 약 44%에 이른다8. 이 통계에서 빠진 것은 정확히 그 사이 세대다. 배 위의 위계를 견디거나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남아 있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비웠다.

해양수산부는 뒤늦게 선내 인권 교육과 신고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9. 그러나 브릿지를 거쳐야만 신고할 수 있었던 구조가 보여주듯, 제도는 종종 위계 그 자체의 논리 안에서 설계된다. 형벌과 은덕의 자루 중 하나만 서둘러 손보는 방식으로는, 이미 계약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한 세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리가 배 위에 남겨둔 질문

위계는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좁은 배 위에서 수십 명의 생명과 수백만 달러의 화물을 지키려면, 명령이 지체 없이 전달되고 즉시 따라야 하는 구조는 지금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위계의 존재가 아니라, 그 위계가 무엇으로 정당화되는가에 있을 것이다.

성경은 양 무리를 맡은 자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본이 되라”고 권한다10. 형벌과 은덕이든, 생존의 계약이든, 오래된 권위의 언어들이 결국 가리키는 지점은 비슷해 보인다. 위계의 정당성은 위에 선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에서부터 다시 세워지는 것일지 모른다.

한비자의 시대에는 형벌과 은덕이 그 답이었다. 홉스의 시대에는 생존의 보장이 그 답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배 위의 젊은 세대에게 그 자리를 채울 답은 무엇인가. 처우가 몸을 견디게 하는 조건이라면, 위계는 마음을 남게 하는 이유일 수 있다. 승선 주기를 줄이고 소득을 늘리는 일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질문에 아직 뚜렷한 답을 내놓은 선사는 많지 않아 보인다.

바운티호의 반란자들은 결국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숨어 살아야 했다. 오늘의 젊은 해기사들은 그렇게 극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음 채용 공고에 지원하지 않을 뿐이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갑판 위의 서열은 가까이서 보면 그저 관행이지만, 이백 년의 항로를 거슬러 보면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배는 언제나 누군가의 복종 위에서만 항해해 왔다. 그 복종이 더 이상 자발적이지 않게 되는 순간을, 이 나라의 선단은 얼마나 준비하고 있을까.


* 참고할 말씀: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 베드로전서 5:5


1. 한국일보, “[단독] ‘갑질’ 시달리는 승선근무예비역 “배 위는 여전히 지옥”” (2019.10.21) — 승선근무예비역 초과근무·폭언 사례, 구민회씨 사망(2018.3) 이후 대책의 실효성 부재, 브릿지 경유 신고 구조, 중도 포기자 2015년 31명→2018년 70명 증가

2.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언론사, “승선근무예비역의 자의에 의한 편입취소, 일명 “2시” 폐지되나?” (2022.11.28) —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실 해양수산부 국정감사 자료, 사회복무요원 전환 2018년 70건→2021년 207명, 연도별 인권침해 피해 신고 건수(2018~2022)

3. 현대해양, “‘위기의 해기사’ 처우 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 (2022) — 학계·업계 관계자 인터뷰, MZ세대 해기사의 워라밸 중시 경향

4. 바운티호 반란(1789.4.28) 관련 역사적 사실 — 함장 윌리엄 블라이, 부함장 플레처 크리스천 중심의 반란 경과 및 후대 역사 서술의 일반적 평가

5. SEAMAN LIFE, “MZ세대 해기사가 승선을 기피하는 이유” — 항해 중 하선 불가라는 선박 구조의 폐쇄성 묘사

6. 韓非子, 『二柄』

7. Thomas Hobbes, 『Leviathan』(1651) —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을 통한 절대적 권위에의 복종 논의

8. 한국경제, ‘외항상선 승선기간 최대 3개월 단축’ (2023.07.11) — 국적선원 2000년 58,818명 → 2023년 31,867명, 60세 이상 비중 약 44%

9. 해양수산부, “선원 인권 증진을 위해 팔 걷어붙인다” 보도자료 — 선내 인권침해 예방 네트워크 및 선원 인권교육 과정(marinerights.or.kr) 운영

10. 베드로전서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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