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사-중동】 이스라엘과 아랍 — 끝나지 않는 전쟁의 뿌리 ⑥ / 6편
총성은 멈출 수 있다, 원한은 멈추지 않는다
— 2025~2026년, 트럼프는 중동을 멈출 수 있는가
2026년 6월 · 세계사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어떻게 ‘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의 문법을 완성했는지, 그리고 그 문법이 2023년 10월 7일 어떻게 봉합을 잃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라는 이념적 대리인들은 이란의 전략적 타이밍을 넘어 독자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형세(形勢)를 잃은 자가 판을 뒤엎으려 할 때, 역사는 언제나 더 파괴적인 형태로 귀환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은 그 귀환 이후의 세계를 바라본다. 2025년에서 2026년으로 이어지는 중동의 지각변동,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한 인물. 2026년 6월 21일, 루체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미·이란 후속 협상이 열렸다. 1년 전 우크라이나 평화회의가 열렸던 바로 그 자리였다. 트럼프는 중동을 멈출 수 있는가. 아니, 더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거래의 언어가 원한의 역사를 잠재울 수 있는가.
협상 전날 밤의 공습 — ‘장대한 분노 작전’
2026년 2월 27일, 오만 외무장관이 테헤란과 워싱턴 사이를 오가며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핵 협상의 불씨가 살아 있었다. 바로 그 다음 날 새벽, 미국과 이스라엘은 합동 공습을 개시했다. 미국은 이를 ‘장대한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 이스라엘은 ‘포효하는 사자 작전(Operation Roaring Lion)’이라 명명했다.1
공격 수개월 전부터 CIA는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이동 패턴을 추적했다. 그가 고위 보좌진과 정기 회의를 갖는 특정 시간대가 파악됐고, 그 순간을 노린 정밀 타격이 준비됐다. 더블 탭(Double Tap) 공습 방식이 사용됐다. 첫 타격 후 구조 인력이 집결하는 순간 추가 공격을 가하는 방식이다. 알리 하메네이,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 IRGC 사령관 모하마드 파크푸르, 총참모장 압돌라힘 무사비를 포함해 수뇌부 다수가 사망 확인됐다.2 트럼프는 공습 직후 이란 국민을 향해 “우리가 끝내면 여러분이 정부를 접수하라”고 공개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권 교체 의지를 사실상 명시한 것이었다.3
이 공습에는 긴 서막이 있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26년 2월 11일 백악관을 방문해 “몇 주 안에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파괴할 수 있다”, “하메네이만 제거하면 이란 정권은 호르무즈를 봉쇄할 능력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CIA 국장, 루비오 국무장관, 밴스 부통령, 합참의장 모두 회의적이었다.4 그러나 결정은 달랐다. 이란은 즉각 반격했다. 바레인·UAE·쿠웨이트의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3월 초 기준,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하루 15척으로 급감했다.5
그러나 네타냐후의 예측과 달리 이란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3월 최고지도자직에 추대됐다. 수뇌부를 제거하면 체제가 붕괴된다는 논리는, 이라크와 리비아가 이미 방증(傍證)한 오판이었다.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자리에서 IS가 자랐고, 카다피가 없어진 자리에서 내전이 계속됐다. 이번에는 신정(神政)이라는 구조 자체가 더 깊은 뿌리를 갖고 있었다.
거래의 기술 — 트럼프 외교의 해부
개전 106일.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한 동안 국제 유가가 폭등했고, 세계 경제에 충격이 누적됐다. 2026년 6월 14일, 미국과 이란은 전자 서명 방식으로 종전 양해각서(MOU)에 공식 서명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 해체·핵시설 폐쇄·핵물질 폐기 및 반출을 약속했다. 미국은 각 단계별로 동결자금 지급, 제재 해제, 약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 조성을 약속했다.6
협상 막판에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MOU 서명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또다시 공습하자 이란이 협상 중단을 시사했다. 그 순간 트럼프가 “미군의 이란 항구 봉쇄를 즉각 해제하겠다”고 양보했다. 30일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던 기존 입장을 단숨에 거둔 것이었다. 이란 국영TV는 “미국은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7 양측이 서로 다른 승리를 주장한 합의였다.
이 협상의 구조는 트럼프 외교의 DNA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국제 관계를 이념이나 규범이 아닌 비용-편익 계산으로 접근한다. 위협으로 상대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고, 경제적 인센티브로 서명을 받아낸다. 국무부의 전통적 외교 채널을 우회한 탑다운 밀실 협상, 동맹과 적을 거래 파트너로 동일하게 취급하는 방식. 이것이 그가 말한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이다. 그리고 MOU 서명 하루 만에 후속 협상은 삐걱댔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습을 멈추지 않자 이란은 이를 MOU 핵심 조건의 위반으로 규정했다. 트럼프는 네타냐후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며 욕설을 섞어 격노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감옥에 있었을 당신이 은혜도 모른다”, “지금 모두가 이스라엘을 증오한다”는 말까지 나왔다.8 분노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스라엘 지원을 완전히 끊겠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전쟁의 핵심적인 구조적 역설이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상호 인질 관계에 있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에서 유대계 표심과 복음주의 기독교 지지층을 이스라엘 지지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완전한 압력을 가하는 순간 그 연합이 흔들린다. 반대로 네타냐후는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예산안 부결 시 내각 해산·조기 총선이 이루어지는 구조에서, 전쟁은 그의 정치적 생명 연장 장치였고 종전은 그의 정치적 사망 신호가 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이란과 거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내부 정치는 그 거래의 외부에 있었다. 동맹이 종합 전략의 최대 걸림돌이 되는 아이러니다.
테헤란의 딜레마 — 새 지도자, 오래된 균열
종전 MOU는 이란 내부에서도 균열을 촉발했다. 강경파 세력인 ‘제브헤예 파이다리(인내전선)’는 MOU를 “혁명 원칙의 후퇴”로 규정하며 수석 협상가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과 갈리바프 의회 의장을 향한 ‘죽음’ 구호를 외쳤다. 강경 보수 일간지 카이한 편집장은 공개서한에서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수많은 군 지휘관과 과학자들이 희생됐는데, 고작 선박 통행료 몇 푼에 적들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것이냐”고 개탄했다.9
신임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면 성명으로만 통치하고 있다. 그는 MOU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면서도 조건부 승인을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대면 협상이 적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10 강경파를 향해 60일 협상에서 원칙을 지키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 결과 스위스 협상은 출발부터 삐걱댔다. 6월 19일 예정됐던 첫 실무 협상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이유로 연기됐다. 6월 21일 양측 대표단이 다시 집결해 협상이 재개됐지만, 우라늄 처리 방식,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 처리, 1차 제재 완화 시점이라는 세 개의 절벽이 여전히 협상장 안에 버티고 있다. MOU를 새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이행 첫 발걸음을 떼는 자리에서 이미 이렇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의 JCPOA 타결에 2년이 걸렸다. 60일이라는 시한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숫자가 말해준다. 이 숫자 자체가 트럼프의 국내 정치 논리를 반영한다. 미 의회의 자동 심의 시한을 피하고, 가시적 외교 성과를 임기 안에 확정짓겠다는 압박이 협상 테이블의 시계를 억지로 앞당긴 것이다. 중동의 원한이 쌓이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트럼프의 시계는 60일이었다.11
이란이 결국 북한의 핵개발 전철을 밟을 것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는 답을 피했다.12 이 침묵은 하나의 고백이다. 핵을 완전히 포기한 리비아의 카다피는 NATO 공습 속에 사망했다. 핵 개발 중에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란은 공습을 받았다. 핵을 완성한 북한은 협상 파트너가 됐다. 이 패턴이 이란의 강경파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60일의 협상이 끝나기 전에 이미 답은 보인다.
역사가 이미 알고 있던 것 — 로마의 분할 통치와 영국의 이중 약속
거대한 힘이 중동에 들어와 거래로 질서를 재편하려 한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역사는 이 구조를 이미 알고 있었다.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후 로마는 이 지역에서 ‘분할 통치(Divide and Rule)’를 반복했다. 헤롯 왕조 같은 현지 협력 세력을 내세우고, 종교와 민족 감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합리적 거래라고 여겼다. 그러나 로마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땅과 신앙이 결합된 집단 기억이었다. 기원후 66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유대 독립 전쟁)이 벌어졌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불탔다. 기원후 135년 바르 코크바 반란으로 유대인들은 땅에서 뿌리 뽑혔다.13 로마의 군단은 성전을 불태울 수 있었지만, 성전에 대한 기억을 불태우지 못했다. 그 기억은 2,000년을 살아남아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을 불렀다.
근현대사에서 더 직접적인 거울은 영국의 이중 약속이다. 이 시리즈의 첫 편에서 살펴보았듯, 1915년 맥마흔 선언은 아랍인들에게 독립 국가를 약속했고, 1917년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민족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두 약속은 동일한 땅을 대상으로 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랍의 힘이 필요했고, 동시에 유대인 자본과 미국 여론이 필요했다. 두 거래를 동시에 성사시켰다. 두 약속이 동시에 이행될 수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명백했다.
100년이 지나 스위스 협상장의 구조는 이 이중 약속을 닮았다. 트럼프는 이란에게 경제 재건을 약속하고 이스라엘에게 안보를 약속한다. 두 약속이 동시에 이행될 수 있는가. 레바논 전선이 그 대답을 먼저 내놓았다.
동양의 역사도 같은 구조를 증언한다. 한(漢)나라는 강력한 군사력과 비단길의 경제력으로 서역(西域)을 일시적으로 통제했다. 도호부(都護府)라는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이이제이(以夷制夷) —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한다 — 의 전략으로 현지 세력들을 관리했다. 현지 지배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대신 중원의 권위를 명목상 인정하게 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체제는 현지 세력의 종교적·민족적 정체성을 바꾸지 않았다. 경제적 이익이 흐르는 동안에는 유지됐다. 내부 재정이 고갈되거나 외부 개입의 비용이 누적될 때, 서역은 한나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당(唐)나라도 같은 방식으로 중앙아시아 영향권을 구축했고,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아랍 이슬람 세력에 패한 이후 급속히 영향력을 잃었다.14
외부 패권국이 현지의 종교적·역사적 원한을 배제한 채 정치적·경제적 거래 구조만으로 평화를 강제할 때, 그 평화의 유효기간은 제한적이다. 불씨는 꺼진 것이 아니라 잠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협정의 그림자 — 합의가 외면한 것의 귀환
2020년의 아브라함 협정은 이 패턴의 가장 선명한 현대적 선례였다. 이스라엘과 UAE·바레인·수단·모로코가 서명했다. 이란이라는 공동의 위협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협상 테이블 밖으로 밀어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중동의 의제에서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실존적 위기감이 가자지구에 축적됐다. 2023년 10월 7일은 그 구조에 대한 극단적 반응이었다. 합의가 외면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모습을 바꾸며 기다린다.
2026년의 미-이란 MOU를 들여다보면 같은 빈칸이 다시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지위가 없다. 가자지구의 전후 통치 구조가 없다. 이란의 이행 목록에는 “모든 전선에서의 군사 작전 종료, 해상 봉쇄 해제, 석유 수출 제재 면제, 동결 자산 해제”가 있다. 팔레스타인은 없다. MOU가 외면한 것은 아브라함 협정이 외면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트럼프가 팔레스타인을 왜 의도적으로 배제할 수밖에 없는지의 구조가 드러난다. 팔레스타인은 트럼프가 원하는 ‘거래 파트너’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미국에 줄 수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도,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도 없다. 거래 외교는 등가(等價)의 파트너 사이에서만 작동한다. 등가성이 없는 곳에서 트럼프의 거래 논리는 침묵한다. 그 침묵이 쌓이는 자리에서, 역사는 또 다른 10·7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 구조는 이스라엘에게도 부메랑이 된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영구히 우회하는 합의는 이스라엘의 단기 안보를 확보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더 강한 저항의 토양을 키운다. 트럼프와 네타냐후 모두 거래의 언어에 취해, 거래가 외면한 곳에서 자라는 위협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헤겔, 토크빌, 노자 — 세 개의 렌즈로 읽다
이 구조를 세 사상가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응시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역사철학강의》에서 역설적 통찰을 남겼다.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은, 인간이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 헤겔(G.W.F. Hegel),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이 말은 냉소가 아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정신(Geist)은 자유의 실현을 향해 자기 전개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직선이 아니라 모순과 충돌의 반복이다. 구조적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한, 표면적 평화는 다음 폭발의 준비 기간에 불과하다. 1916년 사이크스-피코가 중동의 지도를 그었고, 그 모순은 1948년·1967년·1973년·1987년·1993년·2003년·2023년·2026년으로 이어졌다. 모순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며 귀환한다. 2026년의 MOU는 이 긴 사슬의 최신 고리일 수 있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국가 외교의 구조적 약점을 진단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외교정책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그들은 세밀한 목표를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비밀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충동적인 열정을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제1권
트럼프의 외교는 토크빌이 묘사한 민주주의 국가 외교의 약점을 역설적으로 집약한다. 그는 장기적이고 세밀한 협상 대신 즉각적인 거래를 선호한다. 전통적 국무부 채널을 우회해 쿠슈너와 윗코프 같은 비공식 채널로 협상한다. 네타냐후에게 욕설을 퍼붓지만 관계를 끊지 못한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 문제만이 아니다. 4년 임기의 선거 정치에 묶인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가 수십 년의 역사적 원한을 다루는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爲學日益,爲道日損。
(위학일익,위도일손。)
“배움의 길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요, 도(道)의 길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48장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은 끊임없이 더하는 협상의 언어다. 더 많은 인센티브, 더 큰 위협, 더 빠른 타결. 그러나 중동의 원한은 덜어내는 과정을 요구한다.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불신과 공포와 명예의 상처를 조금씩 해소하는 지난한 과정. 60일 안에 핵 협상을 타결한다는 발상은 이 속성을 무시한다. 노자의 언어로 말하면, 트럼프는 爲學(위학)의 방식으로 爲道(위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다극 체제의 빈자리 — 중국과 러시아가 채운 것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중동에서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미국이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자리에 권력의 진공이 생겼고, 그 진공을 다른 행위자들이 채웠다. 중국은 2023년 사우디-이란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며 중동 외교의 핵심 행위자로 부상했다. 미국이 수십 년간 공들인 지역 구도를 베이징이 한 번의 외교 이벤트로 흔든 것이었다.
트럼프는 미-이란 협상 과정에서 “시진핑에게 이란에 관여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그가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고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15 이 발언은 두 가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중국이 이란 협상의 핵심 외부 변수였다는 것, 그리고 미국이 그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중국에 감사를 표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중국의 중동 개입은 단순한 중재가 아니다. 이란 원유 수입 확대와 위안화 결제 확산을 통한 페트로달러 체계 잠식 시도가 병행되고 있다. 지정학적 아웃소싱을 통해 미국의 패권 비용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공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조용히 확장된다.
MOU 제5항은 60일 무상 통항 이후 이란이 “국제법과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을 관리할 권리를 남겨두었다. 이란 의회는 이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확립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통행료 부과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이 호르무즈를 통제하던 시대와는 다른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전쟁으로 얻은 것보다 전쟁이 바꿔놓은 구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비극의 씨앗은 뽑히지 않았다
1916년 사이크스-피코가 중동의 지도를 그었다. 1917년 이중 약속이 심겼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1973년 욤 키푸르. 1978년 캠프 데이비드. 1993년 오슬로. 2003년 이라크. 2020년 아브라함 협정. 2023년 10월 7일. 2026년 스위스.
각각의 합의는 그 순간의 총성을 멈추었다. 그러나 어떤 합의도 비극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 땅에 대한 기억, 신앙에 대한 믿음, 조상의 원한에 대한 의무감, 이것들은 계약서의 서명보다 오래 산다. 거래로 얻은 것은 거래가 끊길 때 반환된다. 60일의 협상이 끝난 뒤, 그 씨앗은 다시 발아할 조건을 기다릴 것이다.
트럼프는 일시적으로 총성을 멈출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 자체가 하찮은 일은 아니다. 멈춰진 총성의 자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의 씨앗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총성은 멈출 수 있다. 원한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중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동의 총성은 한국의 주유소 가격으로 먼저 도착한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는 중동산이고, 그 수입 원유의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다.16 이란의 해협 봉쇄 석 달이 한국에 남긴 것은 유가 충격만이 아니었다. 산업연구원은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한국 제조업 생산비용이 최대 11.8%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이 곧바로 기초유분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이 해협의 운명은 한국 산업 전체의 비용 구조와 직결된다. 유가 상승은 전기요금·운송비·생산원가를 통해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끌어올리고, 에너지 수입 비용 급등은 무역수지를 단기간에 적자로 밀어낸다. 호르무즈가 막힌 석 달, 한국의 주유소 앞에는 사재기 줄이 섰고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는 중동의 총성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러나 에너지보다 더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있다. 핵을 완성한 북한은 협상 파트너가 되고, 핵 개발 중에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란은 공습을 받았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핵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뒤 NATO의 공습 속에 사망했다. 이 세 사례가 같은 시대에 나란히 존재한다. 이란의 강경파가 이 패턴에서 무엇을 읽어낼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그리고 그 답은 한반도의 비핵화 방정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근거가 2026년에 다시 한 번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가는 나라에게 중동의 역사는 추상적 교훈이 아니다. 외부 패권국의 거래가 내부 모순을 덮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소외된 행위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때 그 충격이 어디로 전이되는지를 우리는 이 시리즈 내내 목격했다. 중동이 반복하는 ‘구조적 맹점’을 한반도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외교적 합의가 핵심 모순을 외면할 때, 그 대가는 반드시 더 큰 형태로 돌아온다는 것. 그 구조를 먼저 읽어내는 것이 바라보는 자의 몫이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합의를 서명하고 나서야, 합의가 외면한 것들을 마침내 들여다보기 시작할 것인가.
거래상이 떠난 자리, 역사를 바라보는 지성의 시선은 그 빈칸에서 눈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 참고할 말씀: ‘평화를 이루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9
각주 및 출처
1 개전 및 작전명: 위키백과 〈2026년 이란 전쟁〉; 법률신문 지평 로펌 뉴스레터 〈2026년 미국-이란 분쟁 관련 제재 & 에너지 안보 스페셜〉, 2026년 4월 20일.
2 하메네이 암살 작전 상세 및 더블 탭 공습: 위키백과 〈알리 하메네이 암살 사건〉; Reuters 복수 보도 인용.
3 트럼프의 이란 국민 향한 정권 교체 발언: Jacob Magid, “Trump indicates goal of Iran strikes is to topple regime,” The Times of Israel, 2026년 2월 28일.
4 네타냐후의 백악관 전쟁 로비 및 미국 관료들의 회의적 반응: 나무위키 〈미국-이란 전쟁〉; NYT 〈How Trump Decided to Go to War〉 인용.
5 호르무즈 봉쇄 물동량 급감: 법률신문 지평 뉴스레터, 같은 글.
6 종전 MOU 내용: 파이낸셜뉴스 〈미 “이란, 무기한 핵포기 약속…이행 단계별로 보상”〉, 2026년 6월 13일.
7 협상 막판 트럼프 양보 및 이란 국영TV 보도: MBC뉴스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 2026년 6월.
8 트럼프-네타냐후 욕설 통화: MBC뉴스 〈네타냐후에 격노한 트럼프〉, 2026년 6월; Axios 원보도 인용.
9 이란 강경파 반발: 파이낸셜뉴스 〈이란 강경파, 美와 합의한 MOU에 격분〉, 2026년 6월 15일.
10 모즈타바 하메네이 조건부 승인 성명: 파이낸셜뉴스 〈강경파 의식했나…종전 MOU에 첫 입장 낸 하메네이〉, 2026년 6월 19일.
11 JCPOA 협상 기간 비교: 파이낸셜뉴스 〈MOU 넘어 평화정착 아직 먼길〉, 2026년 6월 15일.
12 이란·북한 핵 전철 질문에 대한 트럼프 침묵: 파이낸셜뉴스 〈핵보유 않겠단 이란, 北 전철 밟을까〉, 2026년 6월 19일; NYT 데이비드 생어 기자 문답 인용.
13 유대-로마 전쟁 및 바르 코크바 반란: Josephus Flavius, The Jewish War; Martin Goodman, Rome and Jerusalem (2007).
14 한나라 서역 도호부 및 당나라 탈라스 전투(751년): 余太山, 《西域通史》; 탈라스 전투 관련 표준 동양사 자료.
15 트럼프 시진핑 감사 발언: 파이낸셜뉴스 〈트럼프 “60일 내 합의를…아니면 이란 마음에 안드는 일 할 것”〉, 2026년 6월 20일.
16 한국 원유 호르무즈 의존도: 나무위키 〈호르무즈 해협〉(수입 원유 95% 호르무즈 통과); 한국무역협회 통계 인용.
17 헤겔 인용: G.W.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임석진 역, 《역사철학강의》 (지식산업사, 1996).
18 토크빌 인용: Alexis de Tocqueville, 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Vol. I, Pt. II, Ch. 5; 임효선·박지동 역, 《미국의 민주주의》 (한길사, 1997).
19 노자 인용: 《道德經》 第48章; 최진석 역, 《도덕경》 (소나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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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중동】 이스라엘과 아랍 — 끝나지 않는 전쟁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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