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식탁

제국의 식탁

로마가 무너진 방식으로 무너지고 있는 영국

2026년 6월  ·  정치·외교  ·  Watchman


2024년 가을, 리버풀 페어필드의 피닉스 프라이머리(Phoenix Primary) 교장 테리 청(Terri Cheung)은 B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1

“굶주린 아이들은 수업 중에 잠들기도 합니다. 집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안절부절못합니다.”

학교 복도 한켠에 푸드뱅크(food bank)가 생긴 것은 이미 몇 해 전 일이다. 처음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조용한 배려였다. 지금은 다르다. 영국 전역 학교 안에 설치된 푸드뱅크가 얼마나 되는지, 정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2

잠시 이 장면 앞에 머물러야 한다.

2025년 1월 기준, 영국 국공립학교 학생 넷 중 하나가 무상급식 대상자다.3 2006년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고치. 그리고 푸드뱅크를 찾는 사람의 30%는 현재 취업 상태다. 일하는 부모를 둔 아이가 학교 급식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 지금의 영국이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조용히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한때 세계를 먹여 살렸던 나라가, 어떻게 자국의 아이들을 굶기게 되었는가.


계약의 시작 — 국가는 무엇을 약속했는가

이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의 전제를 깔아야 한다.

홉스가 1651년 리바이어던에서 그린 국가의 첫 번째 의무는 단순하다. 시민이 권리를 위임하는 대가로, 국가는 생존을 보장한다. 그 계약이 살아있는 한 국가는 정당성을 가진다. 그렇다면 400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다는 것은4 — 그것은 정책 실패의 숫자가 아니라, 이 계약의 어느 항목이 파기됐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그 파기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청구서는 항목별로, 수십 년에 걸쳐 조용히 쌓인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식탁이 차려진 방식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식탁을 지배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1880년대, 영국은 전 세계 육지 면적의 약 4분의 1을 식민지로 보유하고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이라는 표현은 수사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 식탁이 어떻게 차려졌는지는 그러나 오랫동안 서사의 뒷면에 가려져 있었다.

인도에서는 면화가 왔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인도산 면직물은 유럽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캘리코(Calico)라 불리던 인도 면직물의 품질이 너무 뛰어나 영국 모직업이 고사할 위기에 처하자, 영국 의회는 1690년대 인도 면직물 수입을 제한하는 법안을 긴급 통과시켜야 했다.5 그리고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인도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한 영국은 그 방향을 뒤집었다. 인도는 이제 원면(原棉)을 관세 없이 영국으로 수출하고, 영국에서 만들어진 면직물을 다시 무관세로 수입해야 했다. 인도의 경제학자 우트사 파트나이크(Utsa Patnaik)는 영국이 약 173년간의 지배 기간 동안 인도에서 빼앗아간 수출 이익이 45조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6

아프리카에서는 노예가 왔다. 역사학자 에릭 윌리엄스(Eric Williams)는 1944년 자본주의와 노예제(Capitalism and Slavery)에서 대서양 삼각무역의 구조를 해부했다. 아프리카의 노예,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 영국의 공장을 잇는 이 구조가 산업혁명의 자본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7

웨일스의 탄광에서는 아이들이 왔다. 8세에서 9세짜리 아이들이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씩 석탄 갱도를 기었다.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밥을 주었고, 기계 안으로 기어 들어가 기름칠을 하다 사고로 죽어도 기록되지 않았다.8 찰스 디킨스가 1837년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고발한 그 장면들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 번영의 다른 얼굴이었다.

제국의 식탁은 언제나 타인의 희생 위에 차려졌다. 그것이 속주의 곡물로 차려진 로마의 식탁이든, 식민지의 면화와 노예로 차려진 영국의 식탁이든, 구조는 같다. 제국의 심장부는 먹고, 변방은 공급한다. 그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제국은 번영하고, 그 구조가 흔들리는 순간 균열이 시작된다.


혁신이 멈춘 순간 — 성공의 덫

1865년 영국 의회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법률 중 하나를 통과시켰다.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반드시 세 명이 탑승해야 한다. 운전사, 기관원, 그리고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걷는 기수(旗手). 최대 속도는 시속 3.2킬로미터. 마차의 보행 속도를 추월해서는 안 된다.

당시 영국은 세계 최고의 산업 국가였다.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철도를 처음 깔고, 세계 최초로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새로운 기술인 자동차를 시속 3킬로미터로 묶어 두는 법을 만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기존 마차 산업과 철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공이 만들어낸 기득권이 다음 혁신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 사이 독일과 미국이 움직였다. 독일에서 화학·염료 산업이 발전하고 디젤 엔진이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석유 산업과 내연기관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860년대에 3.6%였던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1870년대 2.1%, 1880년대 1.6%로 하락 일변도를 달렸다. 19세기 세계 1위 산업국 영국은 1900년에 이르러 그 지위를 독일과 미국에 넘겨주었다.9

그러나 영국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식민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이 약해진 영국은 축적한 자금과 식민지 네트워크를 이용해 인도·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라틴아메리카에 자본을 수출하는 금융 대국으로 전환했다.10 생산하지 않아도 투자 수익이 들어왔다. 식민지는 여전히 원자재를 공급했다. 식탁은 유지됐다.

여기서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도전이 사라지면 응전의 근육도 사라진다. 영국 내부의 자본가 계층은 위험한 제조업 혁신에 투자하는 대신 안전한 식민지 채권과 해외 투자를 선택했다. 독일과 미국은 오히려 영국의 기술과 인재를 적극적으로 흡수하며 추격했다. 제국이 제공하는 안락함이 제국 내부의 혁신 의지를 조용히 잠식한 것이다. 식민지는 영국의 번영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영국이 스스로를 갱신할 이유를 빼앗아갔다.

“문명은 도전에 응전할 때 살아남는다. 도전이 사라졌을 때, 혹은 응전의 능력을 잃었을 때, 문명은 쇠락하기 시작한다.”
—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로마가 속주의 곡물에 기대어 시민들의 정치적 각성을 잠재웠듯, 영국은 식민지의 수익에 기대어 산업적 혁신의 필요를 잠재웠다. 두 제국 모두, 그 구조가 무너질 때까지 자신이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0세기의 청구서들 — 사회계약의 항목별 파기

제국의 청구서는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조용히, 항목별로 도착한다. 그리고 각각의 청구서는 홉스가 말한 사회계약의 한 항목씩을 지워나간다.

1차 청구서: 두 번의 세계대전 (1914~1945년)

영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모두 승전국으로 마쳤다. 그러나 승리는 공허했다. 1차 대전에서 영국은 약 90만 명의 전사자를 냈고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소진했다.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영국은 미국에 막대한 전쟁 차관을 지고 있었다. 그 빚을 완전히 갚은 것은 2006년이었다. 승전국의 이름으로 61년간 빚을 갚은 나라가 영국이다. 국가가 시민에게 안전을 약속하는 데 치른 대가가, 다음 세대의 몫으로 이월됐다.

2차 청구서: 식민지의 독립 (1947년~)

1947년 8월, 인도가 독립했다. ‘왕관의 보석(Jewel in the Crown)’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카리브해의 식민지들이 연이어 독립했다. 1960년대까지 대영제국의 외형은 사실상 해체됐다. 식탁을 채워주던 공급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안락함의 원천이 사라졌다. 그러나 안락함에 익숙해진 내부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3차 청구서: 수에즈의 굴욕 (1956년 11월)

1956년 11월,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군사 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 굴복해 철수해야 했다. 그 순간, 대영제국이 더 이상 독자적인 군사 행동을 취할 수 없는 2등 국가로 전락했음이 세계 앞에 공개됐다. 패권의 상실은 선언이 아니라 철수의 형태로 왔다. 국가가 시민에게 약속한 안보 역량의 첫 번째 항목이 지워졌다.

4차 청구서: 제조업의 공동화와 대처리즘의 그림자 (1970~1990년대)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고수하던 영국 경제는 1970년대 ‘영국병(British Disease)’으로 불리는 구조적 침체에 빠졌다. 마거릿 대처는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금융·서비스업 중심 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탄광이 문을 닫고, 철강 공장이 사라지고, 제조업 도시들이 텅 비어갔다. 성장률은 회복됐지만 빈부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70년대 이후 줄곧 상승했다.11 경제는 살아났지만, 사회계약의 평등 항목이 조용히 지워졌다.

5차 청구서: 2008년 금융위기

생산 기반 없이 금융 수익에 의존하는 구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서 치명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영국 정부는 대형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했고, 그 비용은 이후 긴축 정책으로 돌아왔다. 복지 예산이 삭감됐고, 공공 서비스가 줄었고, 그 부담은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국가가 은행을 구했다. 그리고 그 청구서를 시민에게 넘겼다.


브렉시트 — 퇴각을 위대한 선택으로 포장한 순간

영국의 역사에는 하나의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퇴각이 위대한 결정의 외양을 띠고 온다는 것이다.

1956년 수에즈에서 영국은 군사적으로 후퇴했다. 그 후퇴는 ‘책임 있는 철수’로 포장됐다. 2016년 6월 23일, 영국 국민의 51.9%가 EU 탈퇴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 선택은 ‘주권 회복’과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이라는 언어로 포장됐다.

두 번의 퇴각 사이에는 60년의 간격이 있었다. 그러나 구조는 같다.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외부의 언어로 덮는 방식.

브렉시트 찬성표의 지리적 분포를 보면 그 내부가 보인다. 런던, 에든버러, 맨체스터 같은 대도시는 잔류에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브렉시트를 밀어붙인 것은 영국 북부와 중부의 구(舊) 산업도시들이었다. 1980년대 대처리즘의 구조 개편 과정에서 탄광과 공장이 사라진 도시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긴축의 직격탄을 맞은 지역들. 브렉시트는 이민자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수십 년간 파기된 사회계약에 대한 분노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결과는 어떠했는가.

브렉시트 당시 최대 화두였던 이민자 유입 통제는 오히려 역전됐다. 순이민은 2022년 7월에서 2023년 6월까지 1년간 약 100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12 경제성장률은 유럽 주요국 중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2025년 1월 조사에서 영국 국민의 62%가 브렉시트가 실패에 가깝다고 평가했다.13

퇴각은 퇴각이었다. 다만 선언될 때는 전진처럼 보였을 뿐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제국의 식탁이 비워질 때 — 가장 먼저 도착하는 청구서

맹자는 말했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 백성에게 먹는 것은 하늘과 같다. 통치의 첫 번째 조건은 철학이 아니라 밥상이다. 군주가 백성을 먹이지 못할 때, 그 군주는 하늘의 뜻을 잃은 것이라고 맹자는 경고했다.

로마의 패턴을 마지막으로 대입해보자.

로마 제국이 속주의 곡물로 시민들을 먹이고 콜로세움의 검투사 경기로 그들의 시선을 돌리는 동안, 제국의 내부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속주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곡물 공급이 줄었고, 배급량이 축소됐고, 화폐 가치가 하락했고, 중산층이 무너졌다. 먼저 가난해진 것은 변방이었고, 나중에 가난해진 것은 로마 시민이었다. 그 순서가 역전됐을 때, 제국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있었다.

영국의 순서도 다르지 않다. 먼저 가난해진 것은 식민지의 사람들이었다. 다음으로 가난해진 것은 탄광 도시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마지막으로 비워지고 있는 것은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밥상이다.

제국의 청구서는 언제나 가장 작은 자들에게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무겁게 도착한다.

그리고 여기서 바라보는 자는 하나의 불편한 질문 앞에 멈춘다. 이것이 영국만의 이야기인가. 식민지 수익 대신 수출 호황과 부동산 상승에 기대어 혁신을 유예해온 나라들,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동안 사회계약이 조용히 파기되어온 나라들에서, 다음 세대의 식탁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2025년 5월, 영국 정부는 2026년 새 학기부터 유니버설 크레딧 수급 가정의 모든 아이에게 무상급식을 확대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약 50만 명이 추가 혜택을 받게 된다.14

정책은 발표됐다. 그러나 정책 하나가 수백 년의 구조적 수축을 되돌릴 수 있는가.

해가 지지 않던 나라에, 지금 해가 지고 있다. 그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영국이 — 그리고 패턴을 반복하는 모든 사회가 —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어쩌면 새로운 정책의 목록이 아닐 수 있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식탁이 비워지는 속도가 아니라, 식탁을 비운 구조의 이름을 먼저 읽는 것. 그것이 이 질문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다음 세대의 식탁을 차릴 것인가.


* 참고할 말씀: ‘그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도다.’ — 시편 146:7


1 BBC News, “Hungry children falling asleep in class, says head,” 2024. (Terri Cheung, headteacher, Phoenix Primary, Fairfield, Liverpool)

2 Baker et al., “Food banks in schools in England,” British Educational Research Journal, 2026.

3 House of Commons Library, “Food poverty: Households, food banks and free school meals,” January 2026.

4 Big Issue, “Why are four million children still going hungry in the UK in 2026?”, January 2026.

5 아틀라스뉴스, “영국령 인도 — 수탈경제,” 2023.

6 Utsa Patnaik, Agrarian and Other Histories, Tulika Books, 2018. (45조 달러 추산은 학술적 논쟁이 있음을 병기한다.)

7 Eric Williams, Capitalism and Slavery,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44.

8 이영석, “근대 영국사회와 아동 노동,” 영국연구 43, 2020.

9 브런치, “19세기 후반, 영국과 독일의 패권다툼,” 2017. / 생글생글(한경), “영국에서 시작된 자동차 산업이 미국과 독일에서 발전한 까닭은?”, 2020.

10 같은 글.

11 한경BUSINESS,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지금 — 영국병의 귀환?”, 2023.

12 문화일보, “경제 악화에…영국, 브렉시트 5년만에 유턴,” 2025년 5월.

13 YouGov 여론조사, 2025년 1월.

14 UK Department for Education, “5 things we are doing to tackle child poverty,” March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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