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선원을 영웅으로 불렀다. 그리고 잊었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 — 코드 미리보기

제국은 선원을 영웅으로 불렀다, 그리고 잊었다

필요가 끝나면 국가는 무엇을 버리는가

외항선원 시리즈 3편 · 바다 · 2026.07.19

선원의 절반이 사라진 나라에서

2026년 7월, 해양수산부는 ‘2026 한국선원통계연보’를 발간했다. 소리 없는 통계 수치 뒤에는 한 시대의 소멸을 알리는 경고음이 숨어 있었다. 2025년 말 기준 국내 취업선원 6만 543명 가운데 한국인은 2만 7,372명, 45.2%에 그쳤다. 외국인 선원은 3만 3,171명으로 처음 절반을 넘어섰다. 2021년만 해도 한국인 비중은 54.3%였다. 4년 만에 9%포인트 넘게 빠졌다9.

임금은 오히려 올랐다. 월평균 655만 원, 10년 전보다 48% 상승했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배를 타지 않는다. 남은 한국인 선원 중 43.9%는 60세 이상이다. 돈을 올릴수록 사람이 돌아온다는 산업의 상식이 이 직업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셈이다. 세계 1위 조선 수주국이라는 나라가 정작 자국의 배를 몰 사람을 잃어가고 있다. 이 현상을 단순한 인력난의 문제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임금이 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나라는 한때 선원을 국가의 영웅으로 불렀던 나라다. 그 부름은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그 부름이 사라진 자리를, 지금 이 나라는 돈으로 메우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977년, 바다에 처음 국경이 그어졌을 때

앞선 글 ‘달러를 실어 나른 사람들‘에서 우리는 1957년 지남호의 출항으로 시작된 원양어업이 어떻게 산업화 초기 외화의 숨은 축이 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1976년, 한국의 원양어선은 319척에 달했고 57만 톤을 어획했다1. 국가가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이었다.

균열은 1977년에 시작되었다. 미국과 소련이 나란히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을 선포했고2, 뒤이어 세계 각국의 연안국들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 한국 원양어선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공해(公海)가 하나둘 남의 바다로 바뀌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자 논리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기술을 배우겠다며 합작을 맺어주던 연안국들은, 자국 어민이 그 기술을 흡수하고 나자 더 이상 한국 어선을 반기지 않았다3. 필요가 다한 관계는 정중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패턴이 대양 건너편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상선원(Merchant Mariner)은 나치 잠수함의 어뢰를 뚫고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다. 이들은 미 해군을 비롯한 정규군의 어느 병과보다 높은 전사율을 기록했다. 상선원 26명 중 1명이 전사했다(약 3.8%). 이는 미 해군의 114명 중 1명(약 0.9%)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였다4.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들의 임무를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 중 하나로 공개 평가했다5.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의회는 이들을 재향군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육해공군은 1944년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으로 학자금과 주택자금을 받았지만, 상선원은 그 명단에서 빠졌다. 생존 선원들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끈질긴 소송 끝에, 1988년에야 재향군인 지위를 인정받았다. 종전으로부터 43년이 지난 뒤였다6. 그때는 이미 혜택을 쓸 나이도, 그 혜택을 받을 대상자의 상당수도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1977년의 한국 원양어선과 1945년의 미국 상선원 사이에는 태평양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 앞에서 사람을 부르고, 위기가 지나가면 그 부름을 조용히 거두어들이는 순서만큼은 정확히 겹친다.


마키아벨리와 맹자, 필요와 은혜 사이

이 반복을 이해하는 데는 동서양의 두 사상적 프레임을 대입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의 결정을 도덕이 아니라 필연성(necessità)의 언어로 설명했다7. 그에게 necessità란 군주가 미덕을 벗어나서라도 냉혹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외적 제약, 곧 생존과 국익의 압박이다. 이 틀로 보면 국가가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생존과 국익이라는 더 큰 필연성 앞에서는, 어제 가치 있게 여겼던 수단도 오늘은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적 현실론이다. 국가가 선원을 영웅으로 호명한 것은 애국심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외화와 전쟁 물자가 절박했던 그 순간의 계산이었을 수 있다. 계산이 바뀌면 호명도 바뀐다.

반면 맹자는 다른 저울을 들이댄다.

民爲貴,社稷次之,君爲輕。(민위귀,사직차지,군위경。)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 맹자, 『맹자』 진심장구 하8

맹자에게 사직(社稷), 곧 국가라는 제도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필요에 따라 선원을 도구로 삼았다가 효용이 다하자 잊는 행위는 주객전도에 가깝다.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할 수단인 사직이 도리어 목적으로 군림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국가가 냉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한다면, 맹자의 국가는 그 현실이 마땅히 그래서는 안 된다고 되묻는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영웅이 잉여가 되는 순간

마키아벨리와 맹자는 정반대의 출발선에 서 있지만, 결국 동일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국가가 사람을 부르는 언어와 사람을 잊는 언어는 대개 같은 문법을 쓴다는 점이다. 부를 때는 ‘영웅’, ‘애국’, ‘국가대표’라는 말이 쓰이고, 잊을 때는 침묵이 쓰인다. 1976년 319척의 배 위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1945년 대서양을 건너던 미국 상선원들은 각자의 시대에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정확히 그 필요가 해소된 순간부터, 두 나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통계 뒤편으로 밀어냈다.

이 지점에서 처음의 역설로 돌아갈 수 있다. 1976년, 국가는 선원을 ‘명예’로 대우했다. 임금이 아니라 애국과 영웅이라는 언어로 사람을 바다로 불러냈다. 그러나 1977년 이후 필요가 사그라들며 국가가 조용히 거두어들인 것은 결국 그 명예였다. 남은 것은 임금 체계뿐이었다. 지금 이 나라가 655만 원이라는 숫자로 사람을 다시 부르려 하는 것은, 한때 명예로 채웠던 자리를 돈으로 대신 채우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돈은 명예가 아니다. 명예가 빠져나간 자리를 돈이 완전히 메우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임금이 오를수록 사람이 오히려 줄어드는 지금의 역설을 설명하는 하나의 실마리일 수 있다.

2026년의 한국은 그 순환의 또 다른 국면에 서 있을 수 있다. 선원이 부족한 지금, 정부는 다시 ‘청년 선원’과 ‘일자리 매력도’를 말한다. 그러나 필요가 다시 사람을 부르는 것과, 그 부름이 끝난 뒤에도 책임을 남겨두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국가가 잊었던 이들을 다시 부르려 할 때, 그 부름의 언어가 예전과 같다면 반복될 결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다음 선원으로 부를 것인가

45.2%라는 숫자는 인력 통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세대가 국가의 부름에 응답하기를 그친 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 세대는 부모나 조부모가 1960~70년대에 바다에서 벌어온 달러 위에 세워진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의 번영 속에서 자라난 이들이다. 그런데도 정작 그 바다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다면, 그것은 젊은 세대의 나약함이 아니다. 명예가 빠져나가고 임금만 남은 자리를, 그 임금의 크기와 무관하게 알아본 것에 가깝다. 국가가 거두어들인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정작 그 세대가 가장 먼저 감지했을 수 있다.

제국이든 국가든, 필요가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필요의 소멸이 그 영웅을 잊게 만드는 순환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질문은 이 순환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느냐가 아니라, 다음번 부름 앞에서 우리가 같은 실수를 알아볼 수 있느냐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국가가 다시 누군가를 절박하게 부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훗날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 참고할 말씀: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구원하였으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 전도서 9:15


주1. Encyves Wiki, ‘원양어업’ — 1976년 319척, 57만 톤 어획 기록
주2. Encyves Wiki, ‘원양어업’ — 1977년 미국·소련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
주3. 부산일보, ‘[기억해야 할 역사, 원양어업 60년] 1부 흔적찾기 ⑭’ (2017), 1980년대 후반 연안국의 어장 폐쇄 정황 인용
주4. Wikipedia, “World War II United States Merchant Navy” — 상선원 전사율 1/26, 미 해군 1/114 비교
주5. Congressional Record, 2009년 5월 12일자, 루스벨트 대통령 평가 발언 취지 인용
주6. CRS Report R44162 (2017), gcaptain.com — Schumacher v. Aldridge 소송 및 1988년 재향군인 지위 인정 경위
주7. Niccolò Machiavelli, 『군주론(Il Principe)』 중 necessità 개념
주8. 孟子, 『孟子』 盡心章句 下
주9. 해양수산부, ‘2026 한국선원통계연보’ (2026.07.05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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