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해수부 정책의 의지와 현실의 간극
바다 · 외항선원 시리즈 11편
2026년 봄, 해양수산부는 어김없이 ‘한국선원통계연보’를 냈다. 숫자는 낯설지 않았다. 한국인 선원은 또 줄었고, 외국인 선원은 또 늘었다. 이제 배 위에서 태극기를 보고 일하는 사람 둘 중 하나 이상이 외국인이다.1
놀라운 것은 이 숫자가 아니다. 놀라운 것은, 이 숫자를 해수부가 누구보다 정확히,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매년 통계를 낸다. 매년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매년, 계획이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로 숫자는 더 나빠진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외국인 선원이 한국 배를 채우면서 생기는 언어 장벽과 위기 대응의 공백을 살펴보았다. 그 공백은 오늘 우리가 짚어보아야 할 본질적인 문제의 또 다른 단면일지 모른다.
이것은 무지의 문제가 아니다. 안다는 것과 고친다는 것 사이의 거리, 그 간극의 문제로 읽힐 수 있다.
로마가 국경을 열었던 그 밤
376년 여름, 로마 제국은 사태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뉴브강 너머에서 훈족에게 밀려난 고트족 수만 명이 몰려들었을 때, 로마 시민 중에서 군단병을 채우는 일은 이미 수십 년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발렌스 황제는 병력 공백을 채우는 구조 자체를 고치는 대신, 고트족을 통째로 받아들여 병력으로 흡수하는 쪽을 택했다.
당장의 국경은 메워졌다.
그러나 2년 뒤인 378년 8월, 아드리아노플에서 로마군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바로 그 고트족에게 참패했고 황제는 전사했다.
후임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382년, 고트족을 진압하는 대신 그들을 로마 영토 안에 자치 집단으로 정착시키는 강화를 택했다. 이후 로마 군의 요직은 점점 더 게르만계 장군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결국 476년 게르만 출신 사령관 오도아케르가 마지막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면서 제국은 끝났다.
힘의 뿌리를 외부에 내준 구조는, 백 년 뒤 그 외부의 손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발렌스 역시 이 위험을 온전히 알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병력이 준다는 것을 알았고, 대안이 임시방편이라는 것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구조를 고치는 일보다 구멍을 메우는 일이 언제나 더 빠르고, 더 눈에 보이는 성과였을 뿐이다.
아는 것과 고치는 것 사이
過而不改,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잘못이다.” — 논어
잘못 자체보다, 잘못을 알고도 방치하는 쪽을 더 큰 잘못으로 지목하는 문장이다.
몰랐다면 용서의 여지가 있다. 알면서 고치지 않았다면, 그것은 선택이다.
성경 야고보서는 이 선택의 문제를 더 날카롭게 찌른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과 같다는 구절은, 정확히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 사이의 간극을 겨눈다.
아는 것을 넘어 행함으로 옮기지 않는 지식은, 결국 자신을 향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용병에 의존하는 군주를 반복해서 경고했다. 용병은 위기의 순간에 충성하지 않으며, 군주가 자신의 힘으로 지키는 역량을 기르지 않는 한 그 나라는 남의 힘 위에 서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군사력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핵심 기능을 외부의 손에 넘기는 순간 위기 때 그 기능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데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기술이라는 이름의 임시방편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로마의 고트족 수용과 오늘의 외국인 선원 확대는 본질적으로 같은 궤를 그린다. 핵심 인력을 외부에 의존함으로써 생기는 통제력과 충성의 문제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해수부가 힘을 싣고 있는 완전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2 이것은 외부 의존이 아닌, 국내 기술로 사람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기술적 자립의 방향에 가깝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완성되기까지 이어질 긴 공백일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IMO) 기준의 완전무인 운항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아 있고, 그 사이의 빈자리는 결국 외국인 선원으로 채워지는 실정이다.
기술이라는 미래지향적 명분 뒤에서, 당장의 구멍은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메워지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자율운항 기술 역시 통신망 장애나 사이버 공격에 노출되었을 때 사람이 즉각 개입하기 어렵다는 새로운 취약점을 품고 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
선원 감소는 해수부 단독으로 풀기 어려운 복합적 과제다. 대한민국 전체의 인구 절벽, 장기간 가족과 격리되는 승선 환경에 대한 젊은 세대의 기피, 육상 산업과의 임금 및 복지 격차가 얽히고설킨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예산권과 입법권을 함께 쥐지 못한 부처 하나가 이 톱니바퀴 전체를 되돌리기는 애초에 벅찬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안다는 사실과, 그 앎에 걸맞은 속도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고, 무역 물동량의 99% 이상을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사실상의 섬나라다.
전쟁이나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질 경우, 외국인 선원이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승선을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순간 안보 물자를 실어 나를 국적선을 움직일 사람이 이 나라에 얼마나 남아 있을지, 그 안전성을 장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해운을 흔히 ‘제4군’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수부는 이 사실을 모를 수 없다. 매년 연보를 내는 부처가 이 흐름을 모를 리 만무하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계획이 있다는 것과 그 계획이 구조를 실제로 바꾼다는 것 사이의 거리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가.
* 참고할 말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야고보서 1:22
¹ 해양수산부, 「2026 한국선원통계연보」 — 2025년 말 기준 한국인 선원 27,372명(전년 대비 1,359명 감소), 외국인 선원 33,171명(전년 대비 650명 증가, 전체의 54.8%)
² 해양수산부, 2026년도 예산안 — 완전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R&D) 63억 원 등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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