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대군은 어떻게 이천칠백 명이 되었나

7세기 초 고구려 수나라 전쟁 중 살수대첩을 묘사한 영화 같은 스틸컷으로, 이른 새벽 안개 낀 강물 속에 대열을 잃고 흩어진 수나라 보병들과 강물에 떠다니는 버려진 보급품 가마니 및 부러진 창, 그리고 오른쪽 위 언덕 위에서 그들을 조용히 내려다보는 고구려 철갑 기병(개마무사)들의 대치 장면.
612년 살수대첩의 새벽, 패퇴하는 수나라 백만 대군과 이를 지켜보는 고구려 철갑 기병들의 역동적인 대치

백만 대군은 어떻게 이천칠백 명이 되었나

영양왕, 살수대첩, 그리고 제국이 스스로 무너지는 방식

2026.10.14 · 역사 · 한국사 · Watchman


숫자가 먼저 말을 거는 자리

612년, 수나라 양제는 고구려를 치기 위해 지금의 베이징 일대인 탁군에 군대를 모았다. 『삼국사기』는 이 출정군을 113만 3천 8백 명으로 적고, 수 측이 스스로 이백만이라 불렀다고 전한다.¹ 고대 사료의 병력 숫자는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늘 따라붙는다. 그래도 이 숫자가 당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압도적인 규모로 각인되었는지는 읽힌다.

그 가운데 평양을 곧장 노린 별동대가 30만 5천 명이었다. 살수(지금의 청천강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에서 무너진 뒤 요동으로 돌아간 사람은 2,700명이었다고 한다.² 백 명 중 한 명도 채 되지 않는 숫자다.

살수대첩은 흔히 “약소국이 대제국을 꺾은 이야기”로 소비된다. 그러나 이 숫자가 정말로 묻는 것은 다른 데 있다. 어떻게 이겼는가가 아니라, 그만한 제국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었는가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수의 등장과 평원왕이 쌓은 장안성이 만든 긴장을 살펴보았다. 이번 글은 그 긴장이 어떤 결말에 이르렀는지를 따라간다.

이기려 하지 않고 지치게 만든 전쟁

590년 즉위한 영양왕은 곧바로 시험대에 올랐다. 581년 건국한 수가 589년 진(陳)을 멸하고 수백 년의 분열을 끝낸 직후였다. 대륙에 다시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서자, 동북쪽의 고구려는 그 제국이 가장 먼저 계산할 대상이 되었다.

598년, 영양왕은 말갈 기병 1만을 이끌고 요서를 먼저 쳤다. 수 문제는 30만 대군으로 응했으나 장마와 보급난, 역병과 바다의 풍랑이 겹쳤다. 『삼국사기』는 돌아간 사람이 열에 여덟아홉은 죽었다고 전한다.³ 영양왕이 곧 사죄하는 표문을 올리자 수 문제도 군대를 거두었다. 선제 타격으로 상대의 계산을 흔든 뒤 전쟁이 커지기 전에 문을 닫는, 영양왕의 절제된 감각으로 읽을 수 있다.

604년 즉위한 양제는 문제와 결이 달랐다. 그는 대운하를 파 강남과 북방을 하나의 물길로 이었고, 그 물길 위로 거대한 군수 체계를 움직이는 황제였다. 운하를 파는 일 자체가 이미 거대한 동원이었다. 그런데 양제는 같은 물길로 다시 대군의 식량을 실어 나르려 했다. 힘을 과시하는 도구가 곧 동원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구가 되는 구조가 여기서 시작된다.

612년 정월에 출정한 수의 대군은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에워쌌다. 성은 여름이 되어도 함락되지 않았다. 그사이 우중문과 우문술이 이끄는 별동대가 요동성을 우회해 평양으로 직행했다.

『수서』와 『자치통감』에 따르면 이 병사들은 100일 치 식량과 무기, 장막까지 지고 있었다. 그 무게가 한 사람당 세 섬을 넘어 견디기 어려웠고, 병사들이 몰래 식량을 묻어 버렸다고 한다.⁴ 군령으로 막으려 했지만 진군은 이미 몸이 먼저 지쳐 가고 있었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은 항복을 가장해 적진에 들어가 내부 사정을 살폈다. 이후 고구려군은 하루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지는 척하며 물러났다고 전한다. 수의 장수들은 연전연승에 취해 평양 가까이까지 끌려왔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시 한 수를 보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⁵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만족할 줄 알았으면 이제 그치기를 바란다.”

칭찬의 모양을 한 조롱이었다. 이긴다고 믿는 사람에게 건넨 이 말이 실은 이 전쟁 전체의 요약이었다.

식량이 바닥나고 평양성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수군이 퇴각을 결정했을 때 고구려군은 살수에서 후미를 쳤다. 사서는 그들이 하루 낮밤 만에 압록수에 이르렀고 그 길이 사백오십 리였다고 적는다.⁶

613년, 양제는 다시 요동을 공격했다. 그러나 후방에서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급히 철군했다. 614년에는 세 번째 원정이 이어졌다. 이때는 고구려 역시 적지 않게 지쳐 있었을 것으로 읽힌다. 고구려는 수에서 도망쳐 온 곡사정을 돌려보내며 화의를 청했고, 양제는 이를 받아들였다.

618년, 양제는 강도에서 부하의 쿠데타로 죽고 수는 멸망한다. 같은 해 당이 건국되었고, 같은 해 영양왕도 세상을 떠났다.

지구 반대편의 같은 시간표

같은 시기 서쪽에서도 거대한 두 제국이 서로를 소진시키고 있었다. 하나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로마의 유산을 이어 간 동로마 제국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이란 일대를 지배한 사산조 페르시아였다.

602년 동로마에서 군인 출신의 포카스가 반란을 일으켜 황제 마우리키우스를 죽이고 제위를 차지했다. 페르시아 왕 호스로 2세는 마우리키우스가 자신의 왕위 회복을 도와준 인물이었다며, 그의 복수를 내세워 동로마를 공격했다. 이 전쟁은 이후 26년을 끌게 된다.

전쟁은 처음에 페르시아 쪽으로 기울었다. 614년 페르시아군은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했고, 예수가 못 박혔다고 전해지는 십자가 유물까지 가져갔다. 이집트도 차지했고, 626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의 성벽 앞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동로마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페르시아 본토로 반격에 나서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628년 호스로 2세는 패전 속에서 아들 카바드 2세가 일으킨 정변으로 쫓겨나 살해되었고, 전쟁은 곧 끝났다. 두 제국은 26년을 싸우고도 전쟁 전의 국경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국고와 병력, 땅이 크게 닳은 채였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⁷

바로 그 지친 틈에서 아라비아 반도의 새 세력이 일어났다. 무함마드가 이끄는 이슬람 공동체는 622년 메디나로 근거지를 옮겨 결속을 다졌고, 그가 죽은 632년 뒤 아랍군이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동로마는 시리아를 잃었고 이집트도 곧 넘어갔다. 사산조는 642년 무렵 니하반드 전투 이후 사실상 무너졌고, 651년 마지막 왕이 죽으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물론 이 확장을 두 제국의 소진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랍군의 기동력, 새 신앙이 만든 결속, 오랜 전쟁과 세금에 지친 점령지 주민의 반응 같은 여러 조건이 겹쳤다는 해석이 있다. 다만 26년의 전쟁이 두 제국의 방어 능력을 갉아먹은 것도 그 조건 가운데 하나로 읽힐 수 있다. 이긴 쪽도 진 쪽도 다음 도전자를 맞을 힘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았다.

고구려와 수가 부딪친 612년에서 614년, 동로마와 페르시아가 부딪친 602년에서 628년. 동서의 두 질서가 거의 같은 시기에 대규모 동원이라는 같은 계산서를 받아 든 것이다.

이 계산서를 가장 먼저 문장으로 적은 사람들은 동아시아의 병법가와 사상가였다.

“兵貴勝, 不貴久。” (병귀승, 불귀구。)
“전쟁은 이기는 것을 귀히 여기고, 오래 끄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⁸

“大軍之後, 必有凶年。” (대군지후, 필유흉년。)
“큰 군대가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⁹

“知足不辱, 知止不殆。” (지족불욕, 지지불태。)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¹⁰

손자는 오래 끄는 전쟁이 나라의 재정을 갉아먹는다고 했고, 노자는 대군이 쓸고 간 땅에 흉년이 따라오며, 그칠 줄 아는 것이 위태로움을 피하는 길이라고 했다. 셋 모두 승패 이전의 계산을 말한다. 이기는 법보다, 이기려다 무엇이 닳는지를 먼저 보라는 요청이다. 을지문덕의 시구와 노자의 문장은 같은 결의 말을 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제국은 적에게 지기 전에 자기 계산에 진다

살수에서 일어난 일을 한 번의 전투로 환원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별동대는 길고 가는 보급선 끝에서 이미 지쳐 있었고, 고구려는 그 지쳐 가는 시간을 무기로 삼았다. 약한 쪽이 크기의 경쟁을 거부하고 시간과 거리를 상대의 비용으로 바꿀 때, 강한 쪽의 덩치는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된다.

양제의 원정이 실패한 이유를 한 사람의 오판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대운하, 대규모 징발, 세 차례의 원정은 한 방향으로 이어진 구조였다. 거대한 제국은 한 번 시작한 동원을 멈추기 어렵고, 멈추면 지금까지 쓴 비용이 모두 손실로 확정된다. 그래서 더 밀어붙이고, 밀어붙일수록 후방이 흔들린다. 양현감의 반란이 정확히 그 지점에서 터졌다.

제국은 적에게 지기 전에, 자기가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의 한계에 먼저 도달한다. 서쪽의 두 제국이 같은 길을 걸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구조가 승자를 지켜 주지는 않는다. 고구려 또한 이 시기에 이미 소진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614년의 화의는 승리의 여유가 아니라 계산이 맞지 않는 상태를 서로 알아본 결과로도 읽힌다. 되돌아보면 고구려는 이 승리로부터 반세기 뒤인 668년, 당과의 긴 전쟁 끝에 무너진다.

승리 한 번이 체제의 수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긴 쪽에게도 계산서는 다음 세대에 다시 온다.

승리의 언어가 공론장을 채울수록, 그 비용이 누구의 장부로 이월되는지는 묻히기 쉽다. 지금 한국의 정치와 사회도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6곳 가운데 12곳을, 국민의힘은 4곳을 차지했다.¹¹ 이긴 쪽은 개혁의 완수를, 진 쪽은 견제의 필요를 말한다. 방향은 정반대이지만 문법은 같다. 상대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만 부르는 문법이다.

10월 6일 시작된 국정감사는 첫 주부터 대법원장 증인 채택과 피켓 문구, 자료 공개 경위를 둘러싼 충돌과 지연이 이어졌다.¹² 여당은 야당의 반대를 발목잡기로, 야당은 여당의 의사 진행을 다수의 힘에 의한 압박으로 규정한다. 사안은 위원회마다 다르지만, 어느 쟁점이든 싸움은 곧 “누가 이겼는가”라는 문장으로 번역된다.

그동안 비용의 장부는 조용히 두꺼워진다. 9월 초 정부가 확정한 2027년 예산안은 총지출이 820조 9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12.8% 늘었고, 국가채무는 약 106조 원 불어난 1,519조 8천억 원으로 잡혔다.¹³ 정부와 여당은 경제 규모 대비 채무 비율이 51.6%에서 48.3%로 낮아진다고 설명하고, 야당은 미래대응기금을 문제 삼는다. 비율이 내려가도 빚의 절대액은 늘고, 국고채 이자 상환 예산도 올해 29조 원대에서 내년 35조 원으로 늘 것으로 보도되었다. 어느 설명이 옳은지는 이 글이 가릴 일이 아니다. 다만 두 설명 모두에서 그 청구서를 누가, 언제 받는지는 문장의 주어가 되지 않는다.

이긴 쪽과 진 쪽이 같은 문법으로 말할 때, 비용은 아직 투표권이 없는 쪽의 장부로 흘러간다.

이긴 뒤에 남는 계산서

살수의 이야기는 대체로 영웅의 이야기로 남는다. 그것은 틀리지 않지만, 거기서 멈추면 절반만 읽은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이름 없는 2,700명의 귀환과, 돌아오지 못한 30만 명이 제국의 장부에 남긴 숫자다.

우리는 지금 어떤 승리를 위해, 누구의 장부에 무엇을 적어 넣고 있을까. 그 비용이 청구되는 날 우리는 그 계산서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질문을 먼저 적어 두는 데서 시작한다.


* 참고할 말씀: ‘많은 군대로 구원을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 시편 33:16

¹ 『삼국사기』 권20 고구려본기 영양왕 23년 조; 『수서』 양제기(권3~4); 『자치통감』 권181 (병력 수치는 사료마다 다르며 과장 가능성이 있다)

² 『삼국사기』 권44 열전 을지문덕; 『수서』 권61 열전 우문술 (살수 위치는 청천강설이 통설이다)

³ 『삼국사기』 권20 영양왕 9년 조; 『수서』 문제기

⁴ 『수서』 권61 열전 우문술; 『자치통감』 권181

⁵ 『삼국사기』 권44 열전 을지문덕 (시의 전승 여부와 작자 귀속에는 논의가 있다)

⁶ 『삼국사기』 권44 열전 을지문덕

⁷ J. Howard-Johnston, Witnesses to a World Crisis (Oxford UP, 2010); W. Kaegi, Heraclius: Emperor of Byzantium (Cambridge UP, 2003); H. Kennedy, The Great Arab Conquests (Da Capo, 2007)

⁸ 『손자병법』 작전편

⁹ 『도덕경』 30장

¹⁰ 『도덕경』 44장

¹¹ 『뉴시스』 2026.06.04, 6·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결과 보도

¹² 『파이낸셜뉴스』(뉴시스 제공) 2026.10.09; 『머니투데이』 2026.09.27

¹³ 『파이낸셜뉴스』(뉴스1 제공) 2026.09.06; 『시대』 2026.09.02 (채무비율은 정부·여당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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