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인들이 맞붙는 사이, 신라는 조용히 넓어졌다
위·고구려 결전과 로마 위기 속, 신라가 진한을 삼킨 시간
2026.08.26 · 역사·한국사
전쟁이 뉴스를 삼킬 때
2026년 여름, 세계의 시선은 여전히 몇 개의 거대한 충돌에 묶여 있다.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국경 너머의 장기전, 동맹의 재편 — 이런 소식이 매일 헤드라인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 그늘 아래서, 아무도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 작은 행위자들이 조용히 자기 몫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기사가 되지 않는다. 거인들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동안, 그 발밑에서는 다른 셈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800년 전 한반도의 동남쪽 구석에서도 같은 장면이 있었다. 이번 글에서 살펴볼 인물은 신라 제11대 임금, 조분 이사금(助賁尼師今, 재위 230~247년)이다.
감문국에서 골벌국까지 — 231년에서 236년
조분왕은 벌휴왕의 손자였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나해왕 시대, 신라가 포상팔국의 연합 공세와 백제·가야 사이의 삼각 충돌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과정을 살펴보았다. 나해왕이 세상을 떠난 뒤, 왕위는 다시 벌휴왕의 직계로 돌아와 조분에게 이어졌다.
즉위 이듬해인 231년 7월, 조분왕은 대장군 석우로(昔于老)를 보내 지금의 김천 개령 일대에 있던 감문국(甘文國)을 정벌했다. 이어 232년과 233년에는 두 차례에 걸친 왜군의 침입을 막아냈고, 236년에는 지금의 영천 지역에 자리했던 골벌국(骨伐國)의 왕이 스스로 항복해 왔다. 이로써 신라는 경상북도 내륙 일대를 거의 장악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242년에는 지금의 안동에 해당하는 고타군(古陀郡)에서 진귀한 벼이삭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 무렵 안동 지역까지 신라의 영향권이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31년 감문국, 236년 골벌국 — 이 두 사건은 단순한 정복 기사가 아니라, 진한(辰韓)의 여러 소국이 신라라는 하나의 중심으로 흡수되어 가는 과정의 이정표다. 245년 10월에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입했다는 기록도 있어, 조분왕은 석우로를 보내 막게 했으나 패해 마두책(馬頭柵)으로 물러나 방어했다고 전한다. 다만 같은 시기 위나라는 요동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을 보내 동예 일대까지 동시에 공략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중심부가 환도성 함락과 국왕의 피신이라는 존립의 위기에 몰려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이 기사를 고구려 조정 차원의 계획된 남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고구려가 같은 시기 신라 방면으로까지 시선을 돌릴 여력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신중하게 살펴볼 대목이며, 오히려 위나라 원정의 여파가 옥저·동예 방면을 거쳐 신라 북쪽 변경까지 미쳤을 가능성이 더 유력하게 거론된다.
위나라가, 로마가 무너지던 시간
이 카테고리에서는 철학자의 목소리 대신, 같은 시대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나란히 놓는다.
244년부터 247년 사이, 고구려는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毌丘儉)의 침공을 받아 수도 환도성이 함락되는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동천왕은 수도를 버리고 옥저 방면으로 피신해야 했다.
거의 같은 시간,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의 로마 제국도 붕괴 직전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235년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암살된 이후, 로마는 이른바 ‘군인 황제 시대’로 불리는 반세기의 혼돈에 들어섰다. 황제가 몇 년 단위로 교체되고, 게르만 부족들이 북쪽 국경을 압박하는 사이, 동쪽에서는 224년 건국된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르다시르 1세를 이어 등장한 샤푸르 1세 아래에서 세력을 키워 로마의 동방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동아시아 북방에서는 위나라와 고구려가 서로의 존립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유라시아 서쪽에서는 로마 제국 자체가 내부 붕괴와 외부 압박을 동시에 견디고 있었다. 이 시기의 세계사는 곳곳에서 거인들이 서로를 소모시키고 있던 시간으로 요약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변경이 자라나는 시간
여기서 하나의 역사적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위나라와 고구려가 사활을 건 결전을 치르고, 로마가 안팎으로 무너지고 있던 바로 그 5년(231~236년, 그리고 이후 242년까지) 사이, 신라는 감문국과 골벌국을 흡수하고 안동까지 세력을 뻗쳤다. 어느 역사서도 이 두 사건을 나란히 다루지 않는다. 관구검의 원정도, 로마의 군인 황제 시대도, 신라의 진한 병합도 각자의 지역사 안에 갇혀 서술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턴으로 보면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진다. 거인들이 서로의 목을 조르는 동안, 그 어느 쪽의 관심 밖에 있던 변경은 조용히, 그러나 착실히 자기 몸집을 키운다. 감문국과 골벌국의 왕들에게는 비극이었겠지만, 신라라는 중심의 입장에서 이 시기는 외부의 개입 없이 진한을 정리할 수 있었던 드문 창(窓)이었다. 강대국의 전면전은 흔히 주변부를 얼어붙게 만든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 — 중심부가 서로를 향해 총력을 쏟는 동안, 감시가 사라진 자리에서 제3의 세력은 몸집을 불린다. 역사가 여러 차례 되풀이해 보여준, 의심할 이유가 없는 흐름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이 패턴을 오늘의 눈으로 옮겨보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거인들이 서로에게 모든 힘을 쏟고 있고, 그 그늘 아래 누군가는 조용히 몸집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대개 그 사실을 사건이 다 지나간 뒤에야, 역사서를 통해서만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밖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2026년 현재 한국 정치를 돌아보면, 계엄 사태의 여파 속에서 여당의 당권 경쟁이 뉴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견제 축으로서 야당의 존재감이 약화된 가운데, 개헌 논의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시선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제도와 권력은 그늘에서 자리를 바꾼다. 3세기의 진한과 오늘의 한국이 겹치는 지점은 거기다. 방향과 옳고 그름은 묻지 않는다. 다만 되돌려 묻는다 — 지금 당신은 어디를 보고 있는가.
* 참고할 말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 전도서 3:1
1. 『삼국사기』 권제2, 신라본기 제2, 조분 이사금 (231년 감문국 정벌, 236년 골벌국 항복, 245년 고구려 관련 기사)
2. 『삼국사기』 권제17, 고구려본기 제5, 동천왕 (245년 환도성 함락 및 옥저·동예 방면 공략)
3. 『삼국지』 권28, 위서28, 관구검전
4. 로마 군인 황제 시대(235~284년) 및 사산조 페르시아 샤푸르 1세 치세 — 서양고대사 개설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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