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조가 떠난 자리 — 누가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가
2026년 5월 29일 · 경제·국방 · Watchman
2026년 5월 29일, 코스피가 3.55% 폭등했다.
뉴스는 숫자를 먼저 전했다. 거래대금 73조 원 돌파, 지수 급등. 화면 속 숫자들은 선명했다. 그러나 같은 날 코스닥은 2.68% 폭락했다. 같은 나라, 같은 날, 두 시장이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폭등의 이면을 보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었다.
숫자 뒤의 숫자
매매 동향은 단순하다. 기관이 2조 3,683억 원을 순매수했다. 개인은 1조 4,040억 원을, 외국인은 1조 420억 원을 팔았다.
지수를 밀어올린 것은 기관이었다. 외국인과 개인은 그 위로 팔았다.
이것이 이날 하루의 구조다. 그러나 하루의 구조를 하루로만 읽으면 패턴을 놓친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의 월간 집계를 보면,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는 하루의 사건이 아니다. 2026년 들어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팔아치운 규모는 누적 96조 원을 넘어섰다.¹ 파도가 아니라 조류(潮流)다. 방향이 있고, 속도가 있다.
한국형 공포지수(VKOSPI)는 이 조류 속에서 요동쳤다. 글로벌 자금이 한국 시장을 기피하는 신호는 이미 여러 곳에서 동시에 켜져 있었다.²
연기금이 받아낸 것
그렇다면 96조의 빈자리를 누가 채웠는가.
국민연금이다.
연기금은 정해진 자산 배분 준칙(Rule)에 따라 움직인다. 주가가 폭락하면 비중을 맞추기 위해 사들이고, 폭등하면 덜어낸다. 이날의 기관 매수는 그 기계적 리밸런싱이 작동한 결과로 읽힐 수 있다. 정치적 의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단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이 구조의 위험성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시장의 펀더멘탈과 무관하게, 기계적 자산 배분 준칙에 의해 국민의 노후 자금이 하방을 떠받치는 방어벽으로 소모되고 있는 구조. 외국인이 팔고, 개인도 팔고, 국민연금이 그 물량을 받아내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그것이 설계 의도였든 아니든 결과는 같다. 외국인의 이탈 비용이 국민의 노후 자산에 전가되는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5월 29일의 폭등은 시장 호재로 인한 상승이 아니었다. 주인 없는 폭등이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는 이유다.
주요 언론은 코스피 상승 수치를 보도했다. 거래대금 규모를 전했다. 그러나 외국인의 이탈이 구조적 추세라는 사실, 기관의 매수가 시장의 실질 체력이 아니라 준칙에 따른 완충재라는 사실은 조용히 지나갔다.
외국인이 떠나는 이유 — 반도체, 환율, 그리고 한반도
외국인이 96조 원을 던진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반도체 쏠림 현상이 첫 번째다.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종목 쏠림은 수년째 지속되어왔다.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시장은 글로벌 포트폴리오 투자자 입장에서 섹터 리스크로 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서만 외국인 순매도가 27조 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이 쏠림의 역설을 보여준다.³
거시 환경이 두 번째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넘어 뉴 노멀로 굳어지고 있고, 미·한 금리차는 국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모두에서 외국 자본의 이탈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 논란도 글로벌 투자자들의 기대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그리고 세 번째가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다. 글로벌 투자자에게 한국 시장은 언제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안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 북한 변수, 미·중 패권 경쟁 속 한국의 포지션. 이것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자본이 한국 시장에 상시적으로 부과하는 안보 비용이다. 다른 신흥국과 달리 한국은 반도체라는 전략 산업이 지정학적 긴장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이 비용은 더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96조의 이탈은 이 세 가지 힘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읽힐 수 있다. 어느 하나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오히려 이 구조의 깊이를 말해준다.
1987년 블랙먼데이가 기억하는 것
역사는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기록해두었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 다우지수가 하루에 22.6% 폭락했다. 블랙먼데이(Black Monday)라 불리는 이날의 충격이 시작된 이유 중 하나는, 기관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보험이라는 자동화 매도 프로그램을 통해 일제히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수를 안정시키기 위해 설계된 장치들이 오히려 패닉을 증폭시켰다.⁴
방어 장치가 시장의 자생력을 대체할 때, 그것이 오히려 구조적 취약성의 지표가 된다는 사실을 1987년 월가는 혹독하게 학습했다.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외부 충격이 치명적이었던 것은 충격의 크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시장이 스스로 충격을 흡수할 내부 완충재가 이미 소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이 떠나고, 내부 방어 장치가 그 자리를 채우고, 그 방어 장치의 재원이 국민의 자산에서 나오는 구조. 역사는 그 구조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이미 여러 번 보여주었다.
아렌트가 경고한 맹목성 — 헤드라인이 사유를 대체할 때
한나 아렌트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야기했다. 그의 핵심 논점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었다. 사유하지 않음(thoughtlessness)이 얼마나 큰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고였다.⁵
“사유하지 않는 것 — 그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것은 재앙의 조건이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아렌트에게 ‘사유’는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었다. 눈앞의 사건을 그것이 놓인 맥락에서 읽어내는 능력, 표면의 숫자 너머에 있는 구조를 묻는 능력이었다.
5월 29일 많은 언론의 헤드라인은 이랬다. ‘코스피 3%대 급등’, ‘삼성전자 환호’, ‘거래대금 73조 돌파’. 그 헤드라인들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읽혔다. 단타 매매가 횡행하고, 이면의 구조를 묻지 않고, 기관의 매수를 시장의 건강으로 받아들일 때 — 그 집단적 사유의 부재가 구조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렌트가 경고한 맹목성은 거창한 악의 현장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폭등 헤드라인을 복제하며 이면의 질문을 삼키는 조용한 일상 속에도 깃든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기관이 지수를 지지한다. 연기금이 매수 버튼을 누른다. 지수는 오른다.
이 구조가 지속 가능한가. 연기금의 재원은 무한하지 않다. 외국인이 계속 팔고 나간 자리를 국민의 노후 자금으로 계속 채울 수 있는가. 반도체 쏠림을 넘어 다변화된 산업 생태계를 갖추지 못하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안보 비용을 줄이지 못하는 한, 외국인이 다시 돌아오고 싶어지는 시장의 조건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96조가 떠난 자리에서, 바라보는 자는 지수가 아니라 그 방향을 본다. 외국인이 왜 떠났는지를 묻는 것이, 지수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앞선 글 「세 개의 높은 파도 — 3고(高) 쇼크」에서 우리는 고환율·고유가·고금리가 동시에 맞물릴 때 한국 경제가 얼마나 좁은 공간에 서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편의 풍경은 그 거시 충격의 결과가 자본시장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담고 있다. 또한 「개미들의 빚 잔치, 폭탄은 누가 드는가」에서 살펴보았던 36조 신용융자 잔고의 구조와, 오늘의 기관 방어 매수 구조는 같은 이야기의 두 얼굴이다. 「1,800조의 주인은 누구인가」에서 시작된 국민연금 딜레마의 질문이, 오늘도 답을 얻지 못한 채 시장 안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 참고할 말씀: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 잠언 27:12
¹ 금융감독원, 「외국인 상장주식 투자동향」, 2026년 5월; 한국거래소(KRX), 월간 외국인 순매도 현황. (fss.or.kr / krx.co.kr)
² 인베스팅닷컴, VKOSPI(한국 변동성지수) 추이, 2026년 5월. (investing.com)
³ 한국거래소(KRX), 「투자자별 매매동향」, 2026년 5월. 삼성전자·SK하이닉스 합산 외국인 순매도 27조 원 이상. (krx.co.kr)
⁴ Brady Commission Report(브래디 보고서), 1988. 미국 재무부 위탁 연구.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원인 분석.
⁵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Viking Press,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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