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면 충분했다

3년이면 충분했다

병역 대체복무가 만든 구조적 역설

외항선원 시리즈 4편 · 바다 · 2026.07.21


경쟁률은 최고치, 승선율은 최저치

해양대학교 정시모집 경쟁률이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숫자를 그대로 낙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정작 졸업 후 실제로 배를 타는 비율은 낮다. 한국해양대·목포해양대를 비롯해 부산·인천의 해사고, 오션폴리텍 과정까지 합쳐 매년 1,500여 명 이상의 예비 해기사가 국비로 양성되지만, 실제로 승선하는 인원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1. 병무청이 운영하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를 통해 매년 1,000여 명이 상선에 지원해 왔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1. 지원자는 늘어나는데, 남는 사람은 줄어드는 셈이다.

이 제도는 원래 해기사 인력을 지키기 위해 설계되었다. 항해사·기관사 면허를 가진 이가 졸업 후 5년 이내에 500톤 이상 상선(수산업은 100톤 이상)에서 3년간 승선하면, 현역 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해 준다2. 그런데 이 계산은 처음부터 대등하지 않았다. 일반 현역 복무는 18개월까지 줄어든 반면, 승선근무예비역은 여전히 36개월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 36개월에는 별도의 기초군사훈련 기간조차 산입되지 않는다3. 의무를 이행하는 3년 동안 해기사는 병역을 채우는 것일 뿐, 직업을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3년이 끝나는 순간, 상당수는 배에서 내린다. 제도는 사람을 바다로 불러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사람을 바다에 남겨 두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하늘에서도 같은 셈법이 반복된다

이 역설은 바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 공군 조종석에서도 거의 동일한 구조가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미국 공군은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들인 뒤, 훈련을 마친 조종사에게 의무복무를 부과해 왔다. 이 기간은 과거 항공기 기종에 따라 6년 또는 8년이었으나, 지금은 조종사 전원에게 10년으로 통일되었다4. 문제는 기간을 늘려도 이탈이 줄지 않았다는 데 있다. 10년을 채운 조종사는 정확히 민간 항공사가 요구하는 비행시간 자격을 갖춘 상태가 되고, 상당수가 그 시점에 전역해 민간으로 옮겨간다. 2016년 미 공군 참모총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조종사 부족 규모 1,500명은5, 이후 오히려 더 벌어졌다. 2021년 기준으로는 2,000명 이상이 부족했고, 이를 대체 양성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15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6. 2022 회계연도 말에는 목표 인원 21,000명 대비 1,900명이 부족했다7.

공군은 최근 몇 년간 연간 최대 60만 달러(12년 계약 기준)에 이르는 보너스를 걸고 조종사를 붙잡으려 하고 있다8. 그러나 이 액수는 민간 항공사가 제시하는 연봉과 근무 여건의 격차를 완전히 메우지 못하고 있다. 기간을 늘리고, 돈을 더 얹어도 근본적인 이탈은 멈추지 않는다.

앞선 글 ‘제국은 선원을 영웅으로 불렀다, 그리고 잊었다’에서 국가가 필요할 때 사람을 부르고 필요가 사라지면 잊는 순환을 다뤘다면, 이번 편의 역설은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시작된다. 국가가 사람을 잊기도 전에, 제도 자체가 사람을 붙잡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한비자와 홉스, 계산이 끝나는 자리

이 반복을 이해하는 데는 동서양의 두 사상적 프레임을 대입해 볼 수 있을 듯하다.

한비자는 인간관계를 애정이 아니라 이해타산의 언어로 설명했다. 그는 품을 사서 밭을 갈게 하는 자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다.

夫賣庸而播耕者,非愛庸客也。(부매용이파경자,비애용객야。)
“품을 사서 밭갈이를 시키는 자는, 일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 韓非子, 『韓非子』 外儲說左上9

한비자에게 고용주와 일꾼의 관계는 처음부터 계산으로 맺어진 관계다. 고용주가 일꾼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더 좋은 노동을 끌어내기 위한 계산이고, 일꾼이 성실히 일하는 것도 애정이 아니라 더 나은 대가를 바라는 계산이다. 이 틀로 보면 승선근무예비역 제도 역시 처음부터 애정이나 소명이 아니라 이해타산 위에 설계된 관계였다. 흥미로운 것은 병역 혜택이 목적이 아닌 경우조차 비슷한 균열이 감지된다는 점이다. 승선학과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약 1년 6개월간 국비로 해기사를 양성하는 오션폴리텍 과정은 병역이 아닌 취업 자체가 목적이다10. 그러나 이들 역시 수료 후 현장 처우 문제로 조기에 이탈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병역 혜택이라는 계산조차 없는 자리에서도 같은 이탈이 나타난다면, 문제는 계산의 크기보다 계산 이후에 무엇을 남겨두었는가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서양에서는 홉스가 유사한 결론에 이른다.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주권자에 대한 신민의 복종 의무는, 주권자가 신민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만, 그 이상은 지속되지 않는다고 썼다11. 홉스의 사회계약은 애초에 상호 이익을 위한 계산된 합의이며, 그 이익이 사라지면 의무도 함께 사라진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계산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한비자와 홉스는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제도가 계산을 가르칠 때, 사람도 계산으로 답한다

한비자와 홉스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계산이라 진단했을 뿐, 그것을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승선근무예비역과 미 공군 조종사 제도는 이 진단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두 제도 모두 ‘의무 기간’이라는 숫자로 사람을 묶어두려 했다. 나아가 기간을 늘리거나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숫자를 늘리는 해법은 숫자가 채워지는 순간 관계가 끝난다는 근본 설계를 바꾸지 못한다.

국가가 사람을 순수한 계산의 대상으로 대우하면, 사람도 정확히 그 계산으로 응답한다. 3년, 혹은 10년이라는 숫자가 채워지는 순간 떠나는 것을 개인의 애국심 부족이나 근성 부족으로 읽는 시선이 있다면,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해석일 수 있다. 계산 위에 세워진 관계는 계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정확히 끝난다. 3년을 채운 해기사가 배에서 내리고, 10년을 채운 조종사가 조종석을 떠나는 것은 제도가 예측하지 못한 이상 현상이 아니라, 제도가 스스로 설계한 결말에 가깝다.

우리는 무엇을 갚아야 할 관계로 설계했는가

병역이라는 국가의 필요와, 생계와 미래라는 개인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 제도는 태어났다. 그 만남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국가도 개인도 각자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질문은 남는다. 필요와 필요가 만나 맺어진 관계에, 그 필요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을 만한 무언가를 함께 심어 두었는가.

그 무언가를 심어 두지 못했다면, 사람이 계약 만료와 함께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의 결함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한 쪽이 마지막까지 놓치고 있던 질문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배 위에서, 혹은 조종석에서 남은 의무 기간을 세고 있을 것이다. 그 숫자가 0이 되는 날, 그는 무엇을 이유로 그 자리에 남을 것인가.

* 참고할 말씀: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라” — 요한복음 10:13

주1. 해운산업신문, ‘족한 해기사 문제 해결투수로 나선 조승환 장관’ (2023.07.16) — 매년 해기사 양성 1,500여 명 중 실제 승선 비율 절반 미만, 승선근무예비역 연간 지원 인원 약 1,000명 및 최근 미달 사례
주2. 「병역법 시행령」 제40조의4 — 승선근무예비역 편입 후 5년 이내 3년간 승선근무 요건 (해운 500톤 이상·수산 100톤 이상, 항해사·기관사)
주3. 위키백과, ‘대한민국의 병역 제도’ — 3년 복무자(승선근무예비역 포함) 기초군사교육기간 미산입 기준, 2021년부터 적용
주4. 10 U.S.C. §653; U.S. Air Force 공식 채용 페이지(airforce.com) — 조종사 의무복무 과거 항공기 기종별 6~8년, 현재 10년으로 통일
주5. CSIS, ‘Three Recommendations for Improving Air Force Pilot Retention’ — 2016년 미 공군 참모총장 조종사 1,500명 부족 발언
주6. Defense One, ‘The USAF’s Bad Bets on Pilot Retention Show It Needs Outside Help’ (2021.04.20) — 조종사 2,000명 이상 부족, 대체 양성 비용 150억 달러 추산
주7. Air Force Times, ‘Perennial pilot paucity puts Air Force in precarious position’ (2023.03.16) — 2022 회계연도 목표 21,000명 대비 1,900명 부족
주8. ClearanceJobs, ‘Up to $600K: Inside the Air Force’s Bonus Push to Retain Pilots’ (2026); Task & Purpose (2026) — 최대 12년 계약 시 60만 달러 보너스
주9. 韓非子, 『韓非子』 外儲說左上
주10. 잡포스트, ‘한국해양수산연수원, 2025년 오션폴리텍 과정 187명 입교’ (2025) — 오션폴리텍 과정 개요(승선학과 비전공 일반인 대상, 약 1년 6개월 과정, 전액 국비)
주11. Thomas Hobbes, 『Leviathan』, ‘A Review, and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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