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오가 민주주의를 먹어치울 때
— 바이마르에서 알고리즘까지, 진영 갈등의 세계사
2026년 6월 · 세계사 · Watchman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의 유튜브 정치 채널 상위 목록을 훑어보면, 공통된 문법이 있다. 상대 진영을 ‘악’으로 규정한 섬네일, 분노를 유발하도록 설계된 제목, 그리고 구독자들이 댓글란에서 서로의 확신을 강화하는 구조. 진보 채널과 보수 채널의 포맷은 거울처럼 닮아 있다. 다른 것은 적의 이름뿐이다.
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현상은 유독 빠르고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 토론이 사라진 자리에 정치적 증오가 들어섰다. 상대를 설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내부 배선은 조용히 단락된다.
역사는 이 패턴을 안다. 그것도 반복해서, 그리고 어김없이 같은 결말을 향해 수렴하며 알고 있다. 문제는 선동가가 아니었다. 선동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였다. 그 구조는 인쇄술이 발명되던 16세기에도, 라디오가 보급되던 20세기에도, 알고리즘이 감정을 거래하는 21세기에도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다.
미디어 기술이 증오를 유통할 때
구텐베르크가 1450년대 인쇄기를 완성했을 때(고려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였으나 대중적 복제와 유통을 완성한 것은 유럽이었다), 그것이 한 세기 반 뒤 유럽을 초토화한 30년 전쟁(1618~1648년)의 구조적 토양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인쇄술은 정보의 민주화를 약속했다. 루터의 95개 조항은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그러나 그 속도는 진실이 아닌 분노를 더 빠르게 실어 날랐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를 ‘악마의 앞잡이’로 규정하는 팸플릿 전쟁을 벌였고, 자극적인 팸플릿은 차분한 논문보다 빠르게 팔렸다. 이 구조적 충격이 유럽 사회 전체에 축적되는 데는 170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귀결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30년 전쟁이었다.1
새로운 미디어 기술의 등장은 초기 단계에서 소통을 늘리기보다, 확증 편향과 진영 갈등을 먼저 극대화한다. 이것이 16세기 유럽의 교훈이다.
세기가 바뀌고 매체가 라디오로 전환됐을 때도 패턴은 반복됐다. 1994년 르완다, RTLM(천 개의 언덕 자유 라디오)이라는 방송이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 무엇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이 방송은 투치족을 ‘바퀴벌레(inyenzi)’로 반복 묘사했고, “바퀴벌레를 박멸하라”는 메시지를 매일 내보냈다. 100일 만에 약 50~80만 명이 학살됐다.2 이웃이 이웃을 죽였다. 수십 년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매체 하나가 ‘우리’와 ‘그들’의 경계선을 그었을 때, 그 선은 총기보다 먼저 인간을 죽였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베를린에서, 요제프 괴벨스는 데어 안그리프(Der Angriff, 공격)라는 신문을 창간했다(1927년). 이 신문의 원칙은 하나였다. 진실보다 감정. 정보보다 분노. 헤드라인은 정적을 인신공격했고, 독자들은 사실 여부를 따지기 전에 먼저 분노했다. 괴벨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대중은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은 느낀다. 우리의 임무는 올바른 감정을 공급하는 것이다.”3 당시 바이마르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을 가진 공화국이었다. 그 헌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기술이 정교하게 개발되고 있었다.
도덕이 무기가 될 때, 언어가 오염될 때
이 패턴을 동양의 역사에서 찾으면, 명나라 말기 동림당(東林黨) 논쟁이 눈에 들어온다. 16세기 후반~17세기 초, 조정에서는 도덕성을 내세운 개혁파 사림(동림당)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이 극단적으로 충돌했다. 동림당의 문제는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덕적 선’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대는 자동으로 소인(小人), 즉 악이 되었다. 정책 논쟁이 아니라 선악 투쟁으로 전환된 순간, 타협은 곧 ‘악과의 결탁’이 됐다. 나라는 후금(後金)의 위협 앞에서도 내부의 명분 투쟁을 멈추지 못했고, 결국 1644년 청나라에 멸망했다.4
프랑스 혁명(1789년)의 자코뱅파도 같은 문법을 사용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자코뱅파는 자신들을 ‘혁명의 순수성’으로 규정했다. 조금이라도 타협을 주장하는 지롱드파는 ‘반혁명 분자’가 되었고 단두대로 향했다. 사회적 불신이 극에 달해 이웃이 이웃을 밀고하는 공포정치(la Terreur, 1793~1794년)가 작동했다. 혁명의 이름으로 혁명가들이 숙청당했다.5 숙청의 칼날은 결국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향했다. ‘절대적 선’을 자처하는 정치 세력은 역사상 한 번도 스스로 멈춘 적이 없다.
그리스 아테네는 이 패턴의 가장 이른 기록을 남겼다.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 민회를 장악한 것은 선동가들이었다. 클레온은 분노를 자극하는 웅변으로 시민들을 움직였고, 온건론자들은 ‘나약함’ 혹은 ‘배신’으로 낙인찍혔다. 투키디데스는 이 시절을 기록하며, 말의 의미 자체가 달라졌다고 썼다. “무모한 대담함이 용기로, 신중한 망설임이 비겁함으로 불리게 됐다.”6 언어가 오염되는 순간,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단어가 사실을 지칭하지 않고 적을 지칭하기 시작할 때, 공론장은 이미 파괴된 것이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 손자,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謀攻)〉
적을 안다는 것은 적을 증오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의 논리와 강점을 냉정하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이해의 회로는 닫히고 전략적 사고는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왜 그 냉정한 이해가 그토록 어려운가. 인간이 분노 상태에서는 이성의 회로가 먼저 닫히기 때문이다. 고대의 지혜는 이것도 알고 있었다. “온유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 이것은 도덕적 권면이 아니다. 분노를 소비하는 순간 나의 판단 능력이 먼저 잠식된다는 인지적 경고다. 상대의 논리를 청취하는 능력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증오 경제학과 민주주의의 내부 단락
역사의 모든 사례에서 공통된 구조가 하나 있다. 증오는 언제나 수익이 됐다. 16세기 팸플릿 상인에게도, 르완다의 라디오 방송국에게도, 바이마르의 선동 신문에게도. 그리고 오늘날의 알고리즘 기업에게도.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다. 과거의 증오 미디어는 권력자가 의도적으로 통제했다. 괴벨스는 국가 권력과 결합한 의도적 선동자였다. 르완다의 RTLM은 학살을 기획한 후투 극단주의자들이 운영했다. 반면 현대의 알고리즘은 권력자의 의도가 아니라 기업의 이윤 — 체류 시간의 극대화 — 을 위해 대중의 분노를 유도한다. 분노할수록 더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최적화된다. 증오가 돈이 되는 ‘아웃레이지 이코노미(Outrage Economy)’는 설계된 악이 아니라 설계된 인센티브의 부산물이다.7 이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멈추려는 의지를 가진 악인은 제거할 수 있지만, 수익 구조에 최적화된 시스템은 누구도 의도적으로 멈추지 않는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에서 또 하나의 패턴을 읽어야 한다. 1929년 대공황이 강타하자, 독일 유권자들은 합리적 타협을 주장하던 중도파(사민당, 중앙당)에게서 등을 돌렸다. 표는 극좌(공산당)와 극우(나치당)로 양극화됐다. 모래시계형 정치 구조의 고착화였다. 그러나 이 붕괴는 경제적 충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바이마르 헌법 제48조는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긴급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1932년 한 해에만 긴급명령이 60회 이상 발동됐다. 비례대표제의 극단적 파편화로 연정이 수시로 붕괴되는 상황에서, 제도 자체가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 채 민주주의를 잠식했다. 경제적 고통은 방아쇠였다. 그러나 총은 이미 제도 안에 장전되어 있었다.8
한국은 지금 이 조건을 상당 부분 충족하고 있다. 자산 양극화, 세대 간 기회 불평등, 알고리즘으로 심화된 확증 편향,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 문법. 제도적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상대가 ‘파트너’가 아닌 ‘적’이 되는 순간, 헌법은 껍데기가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증명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 헌법도 심리적 내전을 막지 못했다.
우리가 아직 꺼내지 않은 질문
마오쩌둥이 1966년 홍위병을 동원해 문화대혁명을 시작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표적으로 삼은 것은 지식인과 교사였다. ‘수정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 그들은 광장에서 조리돌림 당했다. 대자보(大字報)가 이름을 공개했고, 군중이 판결을 내렸다. 재판은 없었다. 홍위병은 마오쩌둥의 권위에 종속된 10대~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기성 통제 체제가 해체된 상태에서 최고 권력자의 직접적 교사를 받은, 동원된 군중이었다.9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현대 알고리즘과의 결정적 차이이자 더 깊은 경고점이다. 홍위병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복종했다. 그러나 오늘날 분노를 소비하는 대중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접속하고, 자발적으로 분노하며, 자발적으로 다음 콘텐츠를 클릭한다. 강제된 동원보다 자발적 소비가 더 강력하다. 저항할 명령자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거대한 선동보다, 평범한 시민이 분노를 정당화하는 순간에 더 빠르게 무너진다. 괴벨스가 신문을 만들었지만, 그 신문을 읽고 분노를 소비한 것은 평범한 독일 시민들이었다. RTLM이 방송을 했지만, 이웃을 학살한 것은 평범한 후투족 농부들이었다. 이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진영 갈등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것도 특별한 악인이 아니다.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댓글을 다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리고 그 소비가 알고리즘을 훈련시키고, 알고리즘이 다시 더 강한 분노를 공급하는 피드백 루프를 완성한다.
역사가 이 지점에서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선동을 멈추는 것은 가능한가 — 이 질문은 틀렸다.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다. 분노가 이윤이 되는 구조를 알면서도, 그 분노를 소비하기를 선택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바이마르가 우리에게 남긴 경고는 나치즘이라는 괴물의 등장이 아니다. 그 괴물을 가능하게 한 것이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구조적 조건과 평범한 선택들의 집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선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각자의 스크린 앞에서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멀리서 본다. 멀리서 보면, 지금 이 순간은 역사의 여러 분기점 중 하나다. 어느 방향으로 수렴할지는 —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참고할 말씀: ‘온유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 잠언 15:1
각주 및 출처
1 인쇄술과 종교개혁·30년 전쟁: Andrew Pettegree, Brand Luther: 1517, Printing, and the Making of the Reformation (2015); C.V. Wedgwood, The Thirty Years War (1938). 직지심경(1377년) 금속활자 선행 기록: 청주고인쇄박물관,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01).
2 르완다 RTLM 라디오 및 학살: Alison Des Forges, “Leave None to Tell the Story”: Genocide in Rwanda, Human Rights Watch (1999); 국제형사재판소(ICTR) 판결 — Prosecutor v. Nahimana et al. (미디어 케이스), 2003.
3 괴벨스 일기 및 Der Angriff: Joseph Goebbels, Tagebücher 1924–1945; Toby Thacker, Joseph Goebbels: Life and Death (2009).
4 명나라 동림당 논쟁: 黃仁宇(황런위), 《萬曆十五年》(1981, 한국어판: 《1587,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 Frederick W. Mote, Imperial China 900–1800 (1999).
5 프랑스 혁명 공포정치: Simon Schama, Citizens: A Chronicle of the French Revolution (1989); Ruth Scurr, Fatal Purity: Robespierre and the French Revolution (2006).
6 투키디데스 언어 오염: Thucydides,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Book III, Chap. 82 (코르키라 내전·stasis 기술).
7 아웃레이지 이코노미: Tim Wu, The Attention Merchants (2016); Jonathan Haidt & Greg Lukianoff,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 (2018).
8 바이마르 공화국 붕괴·헌법 제48조: Richard J. Evans, The Coming of the Third Reich (2003); Eric D. Weitz, Weimar Germany: Promise and Tragedy (2007).
9 문화대혁명 홍위병: Frank Dikötter, The Cultural Revolution: A People’s History, 1962–1976 (2016); Jung Chang & Jon Halliday, Mao: The Unknown Story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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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우리는 서구 300년의 압축 성장이 대한민국에 남긴 청구서를 살펴보았다. → 우리는 300년을 50년 만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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