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의 패권
한국 조선업과 한국 해군력의 교차점
한국 조선해양 시리즈 10편 · 바다 · 2026.07.09
0.5867점이 가른 것
2026년 7월, 방위사업청은 7조 8천억 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 KDDX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을 최종 선정했다. HD현대중공업과의 점수 차는 단 0.5867점. 그 간극을 메운 것은 함정 설계 기술도, 건조 실적도 아니었다. 과거 군사기밀 유출 사건으로 부과된 1.2점의 보안 감점이었다.
숫자 하나가 7000톤급 이지스 구축함 6척, 2032년 해군 인도라는 국가 프로젝트의 향방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조선소의 도크 위에서 결정되는 것이 늘 강판의 두께나 용접의 정밀도만은 아니었다.
누가 바다를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은, 오래전부터 누가 배를 더 빨리, 더 많이 지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자율운항선박 시대, 다음 세대의 울산이 강철이 아니라 코드 위에 세워질 수도 있다는 질문을 살펴보았다. 이번 편에서는 그 조선업이 어떻게 해군력과 한 몸으로 얽혀 있는지, 그리고 그 얽힘이 왜 지금 국제 질서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1906년 2월, 드레드노트가 진수되던 날
1906년 2월, 영국 포츠머스 조선소에서 전함 HMS 드레드노트가 진수되었다. 단일 구경의 거포(All-Big-Gun)와 증기터빈을 최초로 채택해, 화력과 속도 모두에서 이전의 모든 전함을 구식으로 만든 배였다. 이 배 한 척을 기점으로 해군력의 척도는 함선의 숫자가 아니라, 그 함선을 얼마나 빨리 새로 지어낼 수 있는 산업 능력으로 옮겨갔다고 평가된다. 독일과 영국 사이의 건함 경쟁은 곧바로 조선소 증설 경쟁이 되었다. 국가의 패권이 함포의 사거리가 아니라 도크의 개수에서 갈리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 공식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2026년 미 해군 함정은 290척에 머물러 있는 반면, 중국은 2030년까지 435척 체제를 목표로 증강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스스로의 조선 산업 기반이 이 격차를 메우기에는 이미 역부족이라는 진단이 미 의회조사국(CRS)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나온 지 오래다.
그 공백을 메우는 자리에 한국이 있다. 2026년 1분기 동안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각 2건씩, 총 4건의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했는데, 이는 지난해 한 해 실적을 석 달 만에 넘어선 속도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3월 말에는 한화필리조선소·한화디펜스USA가 미국 설계사 VARD와, 삼성중공업이 제너럴다이내믹스 나스코(NASSCO)·디섹과 각각 협력계약을 맺어 미 해군의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개념설계 사업에 나란히 참여했다. 미 해군이 두 회사와 직접 계약한 것은 아니지만, 복수 설계안을 비교하는 이 프로그램에 한국 조선 3사가 모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은 정비를 넘어 신조 설계의 문턱까지 다가섰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1906년 영국이 자국의 산업 능력으로 패권을 지켰다면, 2026년의 미국은 동맹국의 산업 능력을 빌려 패권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같은 방정식이지만 주어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법가의 저울과 마키아벨리의 경고
내부에서는 ‘규칙의 저울’이 승부를 갈랐지만, 바깥에서는 ‘생산성의 저울’이 동맹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KDDX의 0.5867점 차이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한비자가 「유도(有度)」편에서 남긴 원칙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刑過不避大臣,賞善不遺匹夫。
(형과불피대신, 상선불유필부)
“형벌은 대신이라 해서 피하지 않고, 상은 필부라 해서 빠뜨리지 않는다.”
—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법가는 감정이나 관례가 아니라 명문화된 규칙이 상과 벌을 가른다고 보았다. 보안 감점 1.2점은 기술력의 우열과 무관하게, 사전에 정해진 규칙이 승부를 결정한 사례였다.
두 조선사의 기술능력평가 차이가 0.6점 안팎이었다는 후속 보도를 고려하면, 이 경쟁을 완성한 것은 함정 설계도가 아니라 법의 저울이었다고 읽힐 수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13장에서 더 근본적인 경고를 남겼다. 그는 용병과 원군은 무익하고 위험하며, 자신의 군대를 갖지 못한 군주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국방의 근간을 타국에 맡기는 순간, 그 국가의 자립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미 해군이 함정 정비와 설계의 일부를 한국 조선소에 의탁하는 흐름은 마키아벨리의 경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선택일 수 있다.
다만 이것을 단순한 위험 신호로만 볼 수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미국은 여전히 발주 권한과 최종 설계 선택권을 쥐고 있으며, 한국은 그 권한 아래에서 생산 능력을 제공하는 위치에 있다.
자립의 포기인지, 동맹 구조 안에서의 합리적 분업인지는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도크가 곧 함대다
결국 KDDX의 0.5867점과 미 해군의 MRO·NGLS 행보는 하나의 패턴으로 겹쳐진다. 국가 안보의 무게중심이 병력의 숫자에서 산업 생산능력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산업 생산능력이 곧 병력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증명되는 과정일 수 있다. 1906년 드레드노트가 그것을 증명했고, 2026년 KDDX와 미 해군의 선택이 같은 문장을 다른 언어로 반복하고 있다.
이 흐름은 미국과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조선업은 페루 해군과의 수상함 공동 건조·기술이전 계약을 시작으로, 폴란드 오르카(Orka) 프로젝트, 사우디아라비아·태국 수상함 수출 경쟁까지 무대를 넓히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논의되는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한미 조선 협력(MASGA) 역시, 한국 조선업을 자국 함대 재건의 파트너로 공식화하려는 흐름으로 읽힐 수 있다.
한국 내부에서는 한비자의 저울이 두 거대 조선사 중 누가 국가의 미래 함대를 지을지를 결정한 모양새다. 그 바깥에서는 마키아벨리가 경고했던 자립의 원칙이 미국에 의해 조용히 재조정되는 국면인 것으로 보인다.
패권은 이제 누가 더 많은 배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빨리 배를 지을 수 있는가로 판가름 나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읽힐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쥔 도크 중 상당수가, 지금 울산과 거제에 있다.
이것이 곧 한국이 안전한 위치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 인수 등을 통해 미국의 조선·방산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되자, 지난해 10월 중국 상무부는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 다섯 곳을 대상으로 중국 기업·개인과의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제재를 발동한 바 있다. 이러한 선례는 한국 조선업이 미 해군의 도크 역할을 자처할 때, 동시에 다른 강대국의 직접적인 경제·지정학적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신호일 수 있다.
같은 기류는 바다 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6월 27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10여 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가 이탈했다. 2019년부터 반복돼 온 연합 초계비행의 일환이라 새삼스러운 사건은 아니었지만, 이런 긴장이 상시화된 바다 위에서 해군력을 얼마나 빨리 조달하고 그 조달을 누구에게 맡기는가는 더 이상 산업 정책만의 문제로 남아 있기 어렵다. 한반도가 강대국 사이의 지정학적 요충지였던 것은 산업 능력과 무관하게 오래된 사실이다. 새로운 것은 표적이 되느냐가 아니라, 압박이 지나가는 통로다. 이전에는 영토와 외교 노선이 그 통로였다면, 지금은 조선소의 도크와 그 자회사 명단 자체가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산업 능력이 안보 자산이 되는 순간, 그 자산은 압박이 지나가는 통로가 하나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직 짓지 않은 질문
도크 위에서 강판이 잘리고 용접선이 그어질 때, 그것이 상선인지 구축함인지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 수 있다. 그 종이 한 장, 즉 설계도와 발주서를 누가 쥐고 있는가가 결국 패권의 실체에 가깝다. 한국은 지금 그 종이의 일부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 종이가 완전히 한국의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다른 이의 이름으로 서명된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2천 년 전 한 사람은, 망대를 세우려는 자라면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해 능히 완공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바다의 패권이라는 망대를 세우기에 앞서, 그것을 완공할 진정한 역량과 비용을 얼마나 철저히 계산하고 있는가.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조선소의 도크가 곧 함대라면, 그 도크를 채우는 설계도의 주인은 결국 누구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답을 아직 짓지 않았다.
* 참고할 말씀: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여 능히 이것을 완공할 수 있는지 보지 아니하겠느냐’ — 누가복음 14:28
주1. 방위사업청 공시 및 제안서 평가 결과, 각사 공시자료 (2026.07)
주2. 미국 해상수송사령부(MSC) 및 각 사 수주 공시, 조선·해운 전문지 (2026.01~04)
주3. 한화그룹·삼성중공업 NGLS 개념설계 협력계약 관련 보도 (2026.03~04)
주4. 미국 의회조사국(CRS) 리포트 및 미 해군연구소(USNI) 동향 보고서 (2025~2026)
주5. HMS 드레드노트 진수(1906.02.10) 및 영·독 건함 경쟁 관련 역사 기록
주6. 韓非子, 「有度」篇 (형과불피대신, 상선불유필부)
주7. Niccolò Machiavelli, 『Il Principe』 13장 (용병과 원군에 대한 논의)
주8. 중국 상무부의 한화오션 미국 내 자회사 제재 관련 보도 (2025.10)
주9. 합동참모본부·국방부, 중·러 군용기 KADIZ 진입 관련 발표 (2026.06.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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