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할 수 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100만 폐업의 시대, 우리는 왜 같은 문을 두드리는가

2026년 5월 17일 · 사회·문화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분배를 둘러싼 내부의 소음이 외부 경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찻잔의 태풍) 오늘은 같은 질문을 더 작은 단위로 내려앉힌다. 대기업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골목 안 작은 가게 앞에 서서.

[ 광고 ]

1억의 문을 열기 전에

2024년, 한국에서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100만 8,282명.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폐업률은 9.04%로 2020년 이후 최고치였다. 폐업 사유 1위는 ‘사업부진’ —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그런데 이 수치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더 불편한 장면이 나온다. 같은 해, 창업한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고용원이 없는 나홀로 자영업자는 2024년 422만 5,000명으로 여전히 40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소폭 줄었지만, 가족이 임금도 받지 않고 함께 일하는 무급가족종사자는 같은 기간 되레 늘어나는 지역도 나타났다. 사업은 줄이되, 가족을 불러들여 버티는 구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 경기체감지수(BSI)는 수년간 기준선인 100을 하회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025년 9월 기준 76.6으로 집계됐다. BSI가 100 아래라는 의미는,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보는 사업자보다 나빠질 것으로 보는 사업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이 숫자는 수년째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수치가 이렇게 누적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왜 계속 창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일까.

역사는 이 장면을 알고 있다

1870년대 미국 남북전쟁 직후의 재건 시기. 남부의 소작농과 북부에서 밀려 내려온 노동자들이 너도나도 소규모 상점을 열었다. 철도망이 확장되고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들불처럼 퍼졌다. 그러나 1873년 9월, 금융 공황이 닥쳤다. ‘1873년 공황(Panic of 1873)’은 미국 역사상 그 시점까지 가장 긴 불황으로 이어졌고, 막 문을 연 수만 개의 소규모 상점이 5년 안에 사라졌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이렇게 기록한다.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 시장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달렸다고.

한국의 자영업 구조는 이 장면과 닮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2년 기준 창업기업실태조사(2024년 조사 발표)에 따르면, 창업자의 83.3%는 직장 경험을 활용해 창업에 나선다고 답했다. ‘나는 이 분야를 안다’는 자신감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창업 후 손익분기점 도달까지 평균 29.8개월이 걸렸다. 반면 폐업까지의 평균 영업 기간은 생계형 소상공인 기준 3년 이내가 가장 많다. 준비한 체력과 실제 소요 시간 사이의 간극이 폐업의 구조적 원인으로 읽힐 수 있다.

외식업의 3년 생존율은 40% 미만. 매달 1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개인사업자는 전체의 75.7%에 달한다. 이 숫자들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내는 반복적 패턴에 가깝다.

공자와 토크빌이 읽은 패턴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이렇게 말했다.

“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 공자(孔子), 『논어(論語)』, 「옹야(雍也)」편

이 문장은 흔히 열정의 찬사로 인용된다. 그러나 다른 방향에서 읽으면 경고가 된다. 좋아하는 것과 그것으로 생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시장이 그 확신을 검증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보다 앞설 때, 공자의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맹점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된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에서 평등한 조건의 사회가 낳는 역설을 관찰했다.

“모두가 출발점에서 평등하다고 믿을 때, 실패는 운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으로 귀결된다.”
—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1835

그는 평등한 사회일수록 개인이 집단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커진다고 썼다. 한국의 자영업 구조에 이 시선을 놓으면, 100만 폐업의 고통이 100만 개의 개인적 실패로 분절되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구조의 문제인지, 선택의 문제인지를 묻는 일이 사라진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 광고 ]

왜 우리는 같은 문을 두드리는가

‘생계형 창업’이라는 말은 이미 구조를 담고 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달리 선택지가 없어서 문을 여는 것이다. 고용원이 없는 나홀로 자영업자가 400만 명을 넘기는 이 나라에서, 취업이 막힌 중장년이 퇴직금을 들고 창업 전선으로 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동선(動線)에 가깝다.

준비 기간이 짧을수록, 생존 기간도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1인 창조기업 실태조사에서 창업 준비 기간은 평균 13.1개월이었다. 그러나 생계형 소상공인의 준비 기간은 이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 현장의 관찰이다. ‘나는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준비 기간을 압축한다. 그 압축이 생존 기간을 단축시킨다.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시장이 포화되었다는 신호가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그 신호를 읽는 사람보다 ‘나만은 다를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을 때, 폐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합적 착시의 결과로 읽힐 수 있다. 커피 전문점은 2024년 하루 평균 34곳이 문을 닫았다. 같은 해 하루 평균 몇 곳이 새로 열었는지는,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나는 다르다

100만 폐업은 100만 개의 ‘나는 잘 할 수 있다’가 시장 앞에서 검증받은 결과다. 그 확신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확신보다 준비가, 열정보다 시간이 먼저였어야 했다는 뜻에 가깝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같은 문을 두드리는 손이 매년 100만 개 늘어나는 사회에서, 문제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두드릴 문이 그것밖에 없는 구조인가.

멀리서 바라보는 자는 그 질문의 방향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 광고 ]

* 참고할 말씀: ‘지식이 없으면 열심도 위험하고, 준비 없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잠언 19:2


¹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2024년 폐업 신고 사업자 100만 8,282명 (2025년 발표) — 세계일보 2025년 7월 6일 보도 참조
²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24년 연간 자영업자 현황 — 경향신문 2025년 2월 5일 보도 참조
³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2025년 9월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BSI) 조사 — 체감 BSI 76.6 (전월 대비 4.3p 상승)
⁴ 중소벤처기업부, 2022년 기준 창업기업실태조사 (2024년 1월 발표)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수록
⁵ 국세청·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현대경제연구원, 자영업자 생존율 및 소득 현황 자료 종합 — 세계일보 2025년 7월 6일 보도
⁶ 공자, 『논어(論語)』, 「옹야(雍也)」편, 약 기원전 5세기경
⁷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1835
⁸ 중소벤처기업부, 2025년 1인 창조기업 실태조사 (2026년 4월 발표) — 창업 준비 기간 평균 13.1개월, 손익분기점 도달 평균 29.8개월

“나는 잘 할 수 있다”에 대한 1개의 생각

  1. 핑백: 공단의 침묵 - 바라보는 자의 기록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