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호가 바뀌는 날, 무엇이 바뀌는가

왕호가 바뀌는 날

이사금(尼師今) · A.D. 32 · 한국사 시리즈 제4편

2026년 6월 · 역사·철학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차차웅이라는 칭호가 어떻게 신성한 정당성의 언어로 작동했는지, 그리고 왜 단 한 번 쓰이고 사라져야 했는지를 살펴보았다. → 전편: 제사장이 왕이 되다 — 차차웅 · A.D. 4


칭호가 바뀌는 날, 무엇이 바뀌는가

기원후 32년. 신라 3대 왕 유리(儒理)가 즉위했다.

즉위의 경위부터 예사롭지 않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전한다. 2대 남해왕이 죽으며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脫解) 가운데 능력 있는 자를 왕으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두 사람이 왕위를 놓고 승강이를 벌이다가, 결국 떡을 깨물어 잇금(齒痕)이 많은 쪽이 연장자이므로 왕이 된다는 방법으로 왕위가 결정되었다. 잇금이 더 많았던 유리가 왕이 되었다.¹

이 장면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고개를 갸웃한다. 떡으로 왕위를 결정한다? 신화적 과장이거나 후대의 편의적 기록이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 장면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왕위 계승의 원칙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부자 세습도, 형제 계승도, 선거도 아닌 — 공동체가 납득할 수 있는 어떤 기준도 아직 합의되지 않은 상태. 사로국은 남해왕의 죽음 앞에서 그 공백을 직면했다.

그리고 유리왕은 즉위하면서 전임왕이 사용한 칭호 ‘차차웅(次次雄)’을 버렸다. 새로운 이름을 택했다. 이사금(尼師今).

《삼국사기》는 이사금의 뜻을 ‘잇금(齒理)’, 즉 치아의 자국이라 전한다. 그러나 더 넓게 읽히는 해석은 ‘웃어른’, ‘연장자’다.² 신과 소통하는 자에서 가장 오래된 자로 — 정당성의 언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름 하나가 바뀌었다. 그러나 그 이름 안에서 신라 권력의 문법 전체가 재편되고 있었다.


이름이 권력이 된 세계들 — 로마에서 고구려까지

이름이 바뀔 때 체제가 바뀐다. 이것은 신라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기원전 27년, 로마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전까지 그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였고, 내전의 승자였으며, 군사적 실력자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 ‘존엄자’, ‘신성한 자’ — 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그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군사적 강자에서 로마 공화정의 전통과 신성함을 계승한 존재로. 이 칭호 하나가 로마 원수정(元首政, Principate)의 출범을 선언했다.³

칭호는 현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 낸다.

중국의 사례는 더 직접적이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름 짓기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각각 한 글자씩 취해 ‘황제(皇帝)’라는 새 칭호를 만들었다. 기존의 어떤 왕도 사용하지 않은 이름. 그리고 스스로를 ‘시(始) — 최초’라 불렀다. 자신이 역사의 제로점임을 언어로 선포한 것이다.⁴

한반도에서는 고구려가 비슷한 전환점을 경유했다. 고구려 6대 태조왕(太祖王, 재위 53~146년 추정)의 왕호 ‘태조(太祖)’는 의미심장하다. 건국 시조 동명성왕이 아닌, 6대 왕에게 ‘태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 이것은 5부족 연맹체였던 고구려가 이 시기부터 계루부 고씨의 독점적·안정적 왕위 세습을 확립하며 실질적 중앙집권 국가 구조를 완성했기 때문이다.⁵ 이름은 기억을 재편한다. 재편된 기억이 역사가 된다.

신라 유리왕이 ‘이사금’을 택한 순간도 같은 구조다. 그 선택은 단순히 새 왕의 취향이 아니었다. 차차웅이라는 신성한 언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집단적 합의였다. 더 정확히는 — 그 언어가 너무 위험해졌다는 지배 집단의 판단이었다.


언어는 사건 이후에 도착한다 — 순자와 비트겐슈타인 사이에서

유교 전통에서 칭호와 이름의 문제를 정치 철학으로 체계화한 이는 순자(荀子)였다. 그는 〈정명편(正名篇)〉에서 이렇게 말한다.

名無固宜,約之以命,約定俗成謂之宜,異於約則謂之不宜。
(명무고의,약지이명,약정속성위지의,이어약즉위지불의.)

“이름에는 본래 고정된 적합함이 없다. 약속으로 정하고, 그 약속이 굳어 관습이 되면 적합한 것이라 하고, 약속과 다르면 적합하지 않다 한다.”⁶

이름은 사물의 본질을 담은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합의가 굳어진 것이다. 순자의 통찰이 날카로운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이름이 합의의 산물이라면,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합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합의를 강제하는 정치 행위다.

유리왕이 이사금을 택한 것은 새 이름에 담긴 어떤 본질적 진리 때문이 아니었다. 박씨·석씨·김씨 세 성씨가 각축하던 취약한 연맹체의 현실 속에서, 지배 집단이 합의할 수 있는 정당성의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사금이라는 칭호는 그 현실을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던 삼성 교대의 혼란한 현실을 봉합하기 위한 언어적 타협물이었다. ‘연장자에게 왕위를’이라는 합의는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세 성씨 간의 끝없는 다툼을 일시적으로 덮어 두는 방식이었다. 그 언어가 굳어 ‘약정속성(約定俗成)’, 즉 관습이 되면 그것이 곧 현실이 된다.

20세기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이것을 다른 언어로 말했다.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⁷

차차웅이라는 언어가 사라졌을 때, 그 언어가 허용했던 세계도 함께 사라졌다. 신과 소통하는 왕의 세계, 카리스마적 개인이 공동체의 두려움과 공경을 독점할 수 있었던 세계. 이사금이라는 언어가 등장했을 때, 새로운 세계의 한계가 설정되었다. 연장자, 연륜, 집단의 지혜 — 이 언어 안에서는 혈통보다 경험이, 신비보다 합의가 우선한다.

그러나 이 전환은 해방이 아니었다. 봉합은 치유가 아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름 하나가 천 년 왕국의 계승 원칙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 그것이 A.D. 32년의 교훈이다.


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 비극의 씨앗이 뿌려지다

신라의 왕호는 네 번 바뀐다. 차차웅(1회) → 이사금(16대까지) → 마립간(5대간) → 왕(王, 이후 지속). 이 계보를 단순한 칭호 변천사로 읽으면 사건을 놓친다.

이것은 정당성 위기의 역사다.

차차웅에서 이사금으로의 전환은 앞서 살폈듯 신성한 카리스마에서 연장자 합의로의 이동이었다. 그러나 ‘연장자’라는 기준은 세 성씨가 경쟁하는 구조에서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 박씨→석씨→박씨→석씨→김씨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의 혼란은 이사금이라는 언어가 제공한 타협의 틈새 안에서 자라났다. 칭호는 갈등을 해소한 것이 아니었다. 갈등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마립간(麻立干, 17대 내물왕부터)으로의 전환은 더 노골적이다. ‘마립간’은 ‘우두머리 중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알타이계 언어 기원으로 추정된다.⁸ 이 칭호가 등장하는 시점은 김씨 왕통이 확립되는 시점과 정확히 겹친다. 박씨·석씨와의 칭호 공유를 끝내고 김씨가 독점 왕권을 선언하는 언어적 결단이었다. 이름이 바뀌는 것은 언제나 권력 지형이 재편되는 신호다.

그리고 22대 지증왕(智證王) 503년, 신라는 마침내 중국식 왕호 ‘왕(王)’을 채택했다.⁹ 동시에 국호를 ‘신라(新羅)’로 확정했다. ‘새롭게 덕업을 펼쳐 사방을 아우른다(德業日新 網羅四方)’는 뜻이었다. 이전까지 사로, 사라, 서라벌, 계림 등으로 불리던 나라가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대내적으로는 분명한 자주적 개혁이었다. 마립간 시기 유력 귀족 집단인 ‘간(干)’들이 누리던 분권적 권력을 왕 중심의 단일 체제로 수렴하는 중앙집권화의 선언이었다. ‘왕’이라는 보편 언어를 획득함으로써 신라는 내부 결속의 언어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택은 양날의 검이었다. 보편 언어를 쓰는 자는 그 언어가 속한 보편 질서에 귀속된다. ‘왕’이라는 칭호를 채택하는 순간, 신라는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천하관(天下觀)이 요구하는 조공·책봉 체제의 문법 안으로 스스로 들어선 것이기도 했다. 지증왕은 물론 그 이후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편 질서의 언어를 선택하는 행위에는, 그 언어가 훗날 어떤 구조적 제약으로 돌아오더라도 감당해야 한다는 역사의 논리가 이미 내포되어 있었다.⁰

이름을 확정하는 순간, 그 이름이 요구하는 세계도 함께 확정된다. 이름 하나를 바꾸는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세계가 자신을 집어삼킨다.


오늘, 이름을 바꾸는 자들의 전장

신라의 왕호 변천이 이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 패턴이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 역사는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2024년 겨울, 대한민국은 짧고 격렬한 헌정 위기를 통과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국회가 해제를 의결했으며, 탄핵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했다. 절차는 작동했다. 그러나 절차가 끝난 자리에서 언어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나의 사건이 수십 개의 이름을 얻었다. 같은 결정을 두고 한쪽은 헌정의 복원이라 불렀고 다른 쪽은 절차의 왜곡이라 불렀다. 어떤 이름도 상대의 언어를 설득하지 못했다. 사건이 끝난 뒤에도 그 사건을 부르는 방식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이것이 더 긴 위기였다.

2025년 여름, 대선이 치러졌다. 결과가 확정된 그 밤에도 대한민국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언어 안에서 살고 있었다. 승자는 정당성을 선언했고, 패자는 절차를 문제 삼았다. 선거는 끝났으나 그 선거를 규정하는 언어의 경합은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꼭 1년 후인 2026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대선의 언어 전쟁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유권자들은 다시 투표소로 향했다. 지방선거는 본래 지역의 현안을 묻는 자리다. 그러나 개표가 끝난 그 밤, 잠실 일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태극기를 든 손들이 광장을 채웠다. 젊은이들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다 지친 이, 집값 앞에서 멈춰 선 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이들. 학교를 마치고 온 고등학생과 대학생, 퇴근 후 곧장 달려온 평범한 회사원도 있었다. 그들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공유한 주장은 하나였다 — 시스템이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지도자들의 반응은 빠르게 나왔다. 청년의 고통을 이해한다 했고, 구조적 문제를 인정하는 듯한 말들이 이어졌다. 공감의 언어는 유창했다. 그러나 그 언어가 어떤 제도로, 어떤 예산으로, 어떤 법으로 이어졌는지를 묻는 순간 — 대답은 흐려졌다. 공감은 선언되었으나 행동은 유예되었다. 이름은 붙었으나 실체는 뒤따르지 않았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조용히 메모한다. 이름과 실체가 분리될 때, 그 간극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언제나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었다고. 지역이 스스로의 언어로 말할 자리가 중앙의 언어 전쟁에 덮일 때, 지방선거는 지방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은 득표율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것이 낯선 풍경인가. 신라의 박씨·석씨·김씨가 ‘연장자’라는 하나의 언어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왕위를 다투었듯, 오늘의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그 언어 안에서 전혀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사금이라는 칭호가 세 성씨 모두에게 공유되면서 오히려 다툼을 봉합하지 못했듯,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쓸 때 그 언어는 결속이 아닌 전장이 된다. 공유된 이름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 더 강한 이름을 찾을 것인가, 이름 너머의 원칙을 복원할 것인가.

신라의 선택은 더 강한 이름이었다. 마립간이 등장했고, 김씨가 왕권을 독점했다. 결속은 이루어졌다 — 그러나 그것은 합의가 아니라 배제를 통한 결속이었다. 그 이름이 더 강할수록, 지워질 때의 충격도 더 크다는 사실을 — 신라 천 년의 역사는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떡을 깨무는 자들의 나라에서

A.D. 32년, 유리왕이 떡을 깨물었다. 2,0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장면을 우스꽝스럽다고 말한다. 원칙이 없던 자리를 즉흥이 채웠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 원칙 위에 서 있는가.

신라의 왕호 변천은 정당성의 언어가 어떻게 이동하는가의 지도다. 그 지도의 끝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하나다 — 이름이 원칙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 원칙 없는 이름은 반드시 다음 이름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 요청이 반복되는 한,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유리왕은 떡을 깨물어 왕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깨물고 있는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질문 앞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 참고할 말씀

‘이름이 좋은 것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 전도서 7:1


¹ 김부식,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권 유리이사금 즉위조.

² ‘이사금’의 어원에 대해서는 잇금(齒理)설 외에 ‘웃어른·연장자’를 뜻하는 고유어설이 병존한다. 《삼국유사》 기이편 제2대 남해왕 조 참조.

³ Ronald Syme, The Roman Revolu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939), pp. 313–330.

⁴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⁵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1999), 3장.

⁶ 순자(荀子), 〈정명편(正名篇)〉.

⁷ Ludwig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 5.6절.

⁸ 이기동, 《신라 골품제 사회와 화랑도》 (한국연구원, 1984).

⁹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권 지증마립간 4년조.

⁰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9), 7~8장.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 새 글 알림 받기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