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의 방패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의 방패

권력이 자신의 실수를 시민의 죄로 바꿀 때 — 역사가 알고 있는 패턴

2026년 6월 15일 · 역사·한국 현대사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번영의 지표 이면에서 지워지고 있는 청년들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번영의 스크린, 지워지는 청년

“황당하다”는 말 다음에 나온 것들

2026년 6월 14일, 이탈리아 로마.

유럽 순방 중이던 이재명 대통령은 현지 시각 오후 2시, 화상으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다. 의제의 상당 시간은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할애됐다. 대통령의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자꾸 들여다볼 때마다 문제다 싶은 게 있다. 참으로 황당하다. 당황스럽다.”

그는 이어 국회 국정조사와 검경 합수본 수사를 촉구했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청년들의 “정의로운 분노”에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발언의 후반부에서 문장의 무게가 이동했다.

“이걸 악용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선동하는 세력들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부정선거론을 퍼뜨리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고 국민의 귀한 목소리를 모욕하는 반사회적 행태”라고 했다. 현장 경찰관에 위해를 가하고 출입을 막는 행위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¹

한 번의 발언에서, 대통령은 행정의 피해자인 시민을 먼저 인정했고, 그다음 행정의 실패를 문제 삼는 자들을 ‘반사회적 세력’으로 규정했다. 이 두 문장의 순서와 무게 배분 — 역사는 이 구조를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권력이 실수했을 때, 그 실수보다 그 실수를 문제 삼는 자들을 더 강하게 응징하려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 패턴의 끝을 역사는 이미 알고 있다.

실책을 음모로 덮은 자들 — 역사의 세 장면

A.D. 64년 7월, 로마 대화재.

사흘 밤낮을 탄 대화재가 로마 시내 14개 구역 중 10개를 태웠다. 네로 황제는 즉시 구호 활동을 펼쳤고, 재건 계획을 발표했으며, 개인 재산을 내놓았다. 그러나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황제가 방화를 명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타키투스(Tacitus)는 《연대기(Annales)》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어떤 인간적 노력도, 황제의 하사금도, 신들에 대한 속죄도 그 불명예스러운 소문을 잠재우지 못했다.”
— Tacitus, 《Annales》, XV.44²

네로는 소문의 방향을 돌렸다.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는 당시 로마 주류 사회가 ‘폐쇄적이고 기이한 소수 종파’로 바라보던 기독교도들을 지목했다. 그들이 방화범이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기독교인들이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대화재라는 재난 앞에서 로마의 행정·사법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 불능에 빠졌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법 제도 자체가 낙인을 공식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타키투스는 기록했다. “그들은 인류에 대한 혐오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³ 화재의 원인은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대신 처형이 이루어졌다.

1950년대 미국, 매카시즘(McCarthyism)의 시대.

1950년 2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국무부에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있다”고 선언했다.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공포, 소련의 핵실험 성공, 중국의 공산화라는 불안의 배경 위에서 그 선언은 폭발적인 위력을 가졌다. 이후 4년간 할리우드 감독, 대학 교수, 외교관, 언론인 수백 명이 ‘공산주의 동조자’로 낙인찍혔다. 청문회는 재판이 아니었다. 증거보다 의심이 먼저였고, 혐의보다 낙인이 먼저였다.⁴

매카시즘의 본질은 공산주의 색출이 아니었다. 전후 미국 사회의 불안과 제도적 실패 — 중국을 잃었다, 소련을 막지 못했다 — 를 ‘내부의 적’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책임의 방향을 체제 내부에서 ‘반사회적 세력’으로 돌리는 전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법과 제도는 시민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낙인을 공식화하는 도구가 됐다.

1789년 직전 프랑스, 베르사유.

루이 16세의 재정 위기는 수십 년에 걸쳐 쌓였다. 전쟁 부채, 귀족 면세, 왕실 낭비. 그 구조적 실패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백성의 분노는 빵 가격을 향했다. 왕실은 그 분노를 ‘선동꾼들의 선동’으로 규정했다. 경찰을 동원해 팸플릿 배포자들을 검거했다. 진짜 문제인 제도의 부패 대신,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들을 체제 전복 세력으로 처리하려 했다. 그 결과는 역사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찾아왔다.⁵

세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다. 권력의 실책이 드러났을 때, 그 실책을 직시하고 구조를 바꾸는 대신, 실책을 문제 삼는 자들을 ‘반사회적 세력’으로 규정하고 법으로 응징했다. 그 응징의 명분은 언제나 ‘법과 원칙’이었다.

명분의 언어와 권력의 언어 — 철학이 이 균열을 읽는 방식

권력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폭력을 휘두를 때가 아니다. 도덕의 언어를 독점할 때다.

한비자(韓非子)는 기원전 3세기, 법(法)·술(術)·세(勢)의 철학으로 권력의 작동 방식을 해부했다. 그가 가장 집요하게 경계한 것은 군주가 법을 사사로이 운용하는 것이었다.

法不阿貴,繩不撓曲。
(법불아귀,승불요곡。)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에 휘지 않는다.”
— 韓非子, 《韓非子》, 〈有度〉편, 기원전 3세기⁶

한비자의 법치(法治)는 오늘날의 법치와 결이 다르다. 그것은 군주조차 법 앞에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이다. 법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기 시작하는 순간 — 즉, 법의 적용 범위와 기준을 권력자가 자신의 편의에 따라 조율하기 시작하는 순간 — 법은 더 이상 중립적 기준이 아니라 권력의 외피가 된다. 견제가 사라진 자리에서 명분의 언어는 통제의 언어로 전화(轉化)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Politics)》에서 민주정의 타락 형태를 논하며 이렇게 썼다.

“선동가(demagogue)는 군주와 다르지 않다. 선동가는 군중을 이용해 법 위에 서고, 군중의 이름으로 법을 무력화한다.”
— Aristotle, 《Politics》, Book IV, 기원전 4세기⁷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은 이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독재자가 아니다. 다수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도덕의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지도자다. 그는 군중의 정의로운 분노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분노를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표현하는 자들을 ‘반사회적 세력’으로 규정한다. 이 두 동작이 한 발언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때, 시민은 자신이 보호받고 있는 것인지 통제당하고 있는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번 대통령 발언의 구조를 다시 보자. “참정권 침해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인정한다”와 “부정선거론을 퍼뜨리는 것은 반사회적 행태”는 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발언의 맥락에서 이 두 문장은 하나의 효과를 만든다. 정당한 분노의 경계를 권력이 설정하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문제 제기’이고, 어디서부터가 ‘반사회적 행태’인지를 규정하는 권한이 행정부에 귀속된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행정의 실패로 참정권이 침해됐을 때, 그 침해의 범위와 책임을 규명하는 권한이 피해를 준 쪽에 남아 있어도 되는가.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제도 신뢰가 무너지는 방식 — 패턴의 끝에서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구조적 위험은 투표지가 모자랐다는 사실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은 행정의 실수다.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위험은 그 실수에 대한 권력의 대응 방식에 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플로리다.

‘버터플라이 투표용지’의 디자인 오류와 불완전하게 천공된 투표용지(hanging chads)가 발단이었다.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의 표 차이는 537표. 재검표를 둘러싼 법적 공방은 연방대법원까지 갔다. 그 과정에서 미국 민주주의는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이것이다. 고어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다음 날, 패배를 인정하고 제도의 결정을 수용했다.⁸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논쟁이 격렬했음에도,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 — 법원 — 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양쪽 모두에 남아 있었다. 제도가 불완전하더라도, 제도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공유된 믿음이 체제를 지탱했다.

지금 한국에서 그 공유된 믿음은 어느 수준에 있는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이미 임계 수준 아래로 내려가 있는 상태에서, 행정의 실수가 발생했다. 시민들 일부는 그것을 우연이 아닌 의도로 읽었다. 그 독해가 음모론인지 아닌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 독해가 가능해졌는가 — 즉 제도의 신뢰가 왜 그 수준까지 내려갔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은 그 질문 대신, 그 질문을 ‘잘못된 방식으로’ 던지는 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원인 진단 대신 현상 응징. 제도 개혁 대신 이탈자 처벌. 이 문법은 제도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이 아니다. 역사의 사례들에서 이 문법은 신뢰의 잔여분마저 소진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이 그 예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에서 탄생한 이 민주 체제의 붕괴 원인을 연구한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것은 히틀러의 등장 이전, 공화국 자체가 이미 자신의 제도를 신뢰하는 시민들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거로 구성된 의회가 정쟁만 반복하고, 행정부가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며, 사법부가 정치에 종속되는 것을 목격한 시민들은 체제 밖의 해결사를 찾기 시작했다.⁹ 제도가 스스로를 신뢰하게 만들지 못할 때, 시민은 제도 밖에서 신뢰를 찾는다. 그 끝은 역사가 기록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투표용지가 모자랐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둘러싼 권력의 언어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이 글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을 판단하지 않는다. 부정선거론의 시비를 가리지도 않는다. 그것은 국정조사와 사법 절차가 해야 할 일이다.

이 글이 묻는 것은 하나다.

권력이 실수했을 때, 그 실수를 비판하는 방식을 권력이 규정할 수 있는가.

“정당한 문제 제기”와 “반사회적 행태”의 경계선이 행정부의 손에 쥐어질 때, 법과 원칙은 본래의 중립성을 잃고 권력의 외피로 전락하기 쉽다. 네로의 시대에도, 매카시즘의 시대에도, 루이 16세의 베르사유에서도 — 그 경계선은 권력자의 언어로 그어졌고, 결과는 제도 신뢰의 가속적 붕괴로 귀결됐다.

법과 원칙은 시민을 보호할 때 법과 원칙이다. 권력의 실책에 항거하는 시민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일 때, 그것은 법과 원칙의 이름을 빌린 무언가 다른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참정권이 침해됐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침해에 분노하는 방식까지 규정하려 하는 것 —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바로 거기 있다.

2,000년의 역사가 이 패턴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지금 어떻게 읽는가가 남은 질문이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멈추지 않는 이유다.


행정이 실패했을 때 제도는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한다. 실패의 원인을 직시하고 구조를 고치거나, 실패를 문제 삼는 자들을 ‘반사회적 세력’으로 규정하고 법으로 응징하거나.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어느 쪽을 선택했는가이고, 시민이 기억하는 것은 그 선택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는가이다.

* 참고할 말씀: ‘재판장을 뇌물로 굽게 하지 말며,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고아의 것을 빼앗지 말라.’ — 신명기 24:17


¹ 이재명 대통령 수석보좌관 회의 발언, 조선일보 보도, 2026년 6월 15일.

² Tacitus, Annales, XV.44 (A.D. 117년경). “neque ope humana, non largitionibus principis aut deum placamentis decedebat infamia…”

³ Tacitus, Annales, XV.44. “haud proinde in crimine incendii quam odio humani generis convicti sunt.”

⁴ Ellen Schrecker, Many Are the Crimes: McCarthyism in America,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 Richard H. Rovere, Senator Joe McCarthy, Harcourt Brace, 1959.

⁵ Georges Lefebvre, The Coming of the French Revolu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47, pp. 33–52.

⁶ 韓非子, 《韓非子》, 〈有度〉편 (기원전 3세기). “법불아귀(法不阿貴), 승불요곡(繩不撓曲).”

⁷ Aristotle, Politics, Book IV, Chapter 4 (기원전 4세기). 민주정의 타락 형태로서 선동정치(demagogy) 논의.

⁸ Jeffrey Toobin, Too Close to Call: The Thirty-Six-Day Battle to Decide the 2000 Election, Random House, 2001.

⁹ Richard J. Evans, The Coming of the Third Reich, Penguin Press, 2004, pp. 6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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