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위는 없었다

퇴위는 없었다

— 146년, 고구려의 은폐된 쿠데타

2026년 6월 · 역사·한국사 · Watchman

앞선 글에서 우리는 태조왕의 책성 순행과 민심 안정 — 6백 리를 걷는 자만이 다스릴 수 있다는 통치의 원형을 살펴보았다. 이번 편은 그 위대한 치세의 마지막 장,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비극으로 이어진다. → 직전 편 읽기

왕위는 넘겨주는 것이 아니다 — 빼앗기는 것이다

서기 146년, 고구려 6대 태조왕(太祖王)이 왕위에서 물러났다.

《삼국사기》는 이것을 간결하게 기록한다. “왕이 동생 수성(遂成)에게 선위(禪位)하였다.” 선위. 스스로 왕위를 넘겨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두 글자 뒤에 이어지는 기록들을 읽기 시작하면, ‘선위’라는 단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선택된 표현인지가 드러난다.

태조왕의 재위 기간은 93년이었다. 즉위 당시 나이를 《삼국사기》는 7세로 기록하고 있어, 퇴위할 때 그는 이미 백 살을 넘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이 숫자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1 퇴위할 당시 태조왕은 노쇠했고, 그의 동생 수성은 오랜 세월 왕위를 노려온 인물이었다.

차대왕(次大王)으로 즉위한 수성은 왕좌에 앉자마자 움직였다.

태조왕의 아들 막근(莫勤)을 처형했다. 또 다른 아들 막덕(莫德)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조왕을 오래 보필했던 우보(右輔) 고복장(高福章)은 항의했고, 그 역시 죽었다.2 차대왕의 즉위 직후 기록에 이름을 올린 고구려의 원로들은 거의 모두 이 시기에 사라진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권력을 스스로 내준 자가 자신의 아들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면 — 그것을 우리는 과연 ‘선위’라고 부를 수 있는가.

노왕(老王)의 퇴위 — 세계사가 반복한 하나의 비극

146년의 고구려만이 이 장면을 연출한 것이 아니다.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쇠한 군주’와 ‘성장한 신진 세력’의 충돌을 놀라울 만큼 동일한 패턴으로 기록해 왔다.

당나라의 무측천(武則天)도 같은 곡선을 그렸다. 705년 정월, 여든한 살의 그녀가 병상에 누운 사이 신하들이 정변을 일으켰다. 15년을 다스린 절대 권력이었으나, 최후는 그녀의 뜻이 아니라 아들과 신하들의 칼끝에서 결정되었다. 측근이었던 장씨(張氏) 형제는 그 자리에서 주살되었고, 무측천 자신은 상왕(上皇)으로 밀려나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455년 조선에서는 그 패턴이 훨씬 어린 나이에 반복되었다. 겨우 열다섯 살, 재위 3년의 단종은 숙부 수양대왕에게 왕위를 내주었다. 태조왕의 93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짧은 치세였지만 구조는 동일했다. 단종은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고, 그를 보필했던 사육신을 비롯한 신하들은 처형대에 올랐다.

바다 건너 잉글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1399년, 스물두 해를 다스린 서른두 살의 리처드 2세는 사촌 헨리 4세에게 왕좌를 내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유폐되었던 폰테프랙트 성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굶주림이었다는 기록도, 암살이었다는 추정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 왕좌를 떠난 왕에게 역사는 조용한 죽음조차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시대도, 대륙도, 문화도 다르다. 그러나 구조는 같다. 권력을 오래 쥔 자가 노년에 이르러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체력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집행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다. 수십 년을 절대 권력으로 통치하는 동안, 그 권력에 기대어 성장한 세력들이 서서히 군주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난다. 군주가 노쇠하는 속도와 신진 세력이 성장하는 속도는 반비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힘의 균형이 역전된다.

태조왕의 경우도 같은 구조였다. 그의 93년 재위는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강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팽창을 가능하게 한 군사력의 핵심은, 전장을 누비며 성장한 수성(遂成)의 세력이었다. 특히 서기 121년부터 146년에 이르는 기간, 수성은 대형(大兄)의 신분으로 대(對)한나라 전선을 직접 지휘하여 유주(幽州) 격퇴와 현도·요동 공략을 이끌었다.3 군부는 이미 태조왕이 아니라 수성의 전공(戰功) 앞에 서 있었다. 전쟁에서 이겨온 자들이 평화의 조정(朝廷)보다 더 강해지는 시점 — 그것이 146년 고구려가 도달한 임계점이었다.

퇴위한 왕의 말년은 거의 언제나 비극이었다. 왕좌를 떠난 자에게 역사는 예외 없이 잔혹했다. 이것이 ‘선위’라는 미사여구 뒤에 숨은, 권력 이양의 실제 문법이다. 세계사는 146년의 고구려를 반복해서 썼다. 그것도, 같은 잉크로.

권력은 넘겨줄 수 없다 — 한비자와 마키아벨리가 같은 것을 읽었다

한비자(韓非子)는 권력에 관해 어느 누구보다 냉정한 언어를 남겼다.

明主之所導制其臣者,二柄而已矣。二柄者,刑德也。殺戮之謂刑,慶賞之謂德。
(명주지소도제기신자,이병이이의。이병자,형덕야。살륙지위형,경상지위덕。)
“명철한 군주가 신하를 인도하고 통제하는 것은 두 개의 자루뿐이다. 두 자루란 형(刑)과 덕(德)이다.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상을 주는 것을 덕이라 한다.”
— 한비자(韓非子), 《한비자》 〈이병(二柄)〉편4

형벌과 포상 — 이 두 자루를 손에 쥔 자가 진짜 군주다. 한비자의 논리는 단순하고 냉혹하다. 군주가 이 두 권한을 신하에게 빼앗기는 순간, 왕좌는 형식만 남은 빈 껍데기가 된다. 한비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이 원리가 매일 증명되던 시대였다. 형식의 왕좌보다 실질의 두 자루를 쥐고 있는 자가 진짜 군주다.

태조왕이 재위 말년에 처한 상황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왕위는 여전히 그의 것이었지만, 실질적 군사력과 인적 네트워크는 이미 수성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한비자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는 형식은 있으나 실질을 잃어버린 군주였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15세기 피렌체에서 같은 것을 보았다.

“군주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자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성장한 자들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군주론(Il Principe)》5

처음에는 군주를 돕기 위해 곁에 선 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군주를 대체할 세력으로 성장한다. 그 전환점을 읽지 못한 군주는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의 왕좌를 준비한 셈이 된다. 차대왕 수성은 오랜 세월 고구려의 전쟁을 수행하며 군부의 신뢰를 얻었고, 독자적인 정치 기반을 구축했다. 수성은 왕좌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저울 위에 마지막 추 하나를 얹었을 뿐이다.

그러나 피로 왕좌를 차지한 자는 피로 그것을 잃는 법이다. 즉위 후 20여 년이 지난 서기 165년, 차대왕 역시 명림답부(明臨答夫)가 일으킨 정변에 의해 살해당했다. 역사는 이 패턴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는 사람이 죽는다

146년 고구려의 비극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것이다. 왕위 계승의 명확한 헌정 원칙이 없었다.

고구려 초기는 왕위가 반드시 아들에게 이어진다는 법칙이 확립되지 않은 시대였다. 형제 상속과 부자 상속의 명분이 혼재했고, 어떤 것이 정통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 물론 당시 고구려에도 좌보·우보 등의 관직 체계와 조정의 합의 구조가 존재했다. 그러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명확한 헌정 원칙은 확립되지 않았고, 합의 체계는 결국 힘의 논리 앞에 무력화되었다. 관습이 있어도 그것을 강제할 원칙이 없을 때, 권력의 공백은 언제나 가장 강한 자의 것이 된다.

로마가 3세기 위기(Crisis of the Third Century, 235~284년)에 빠져든 것도 같은 구조적 결함에서 시작되었다. 원로원과 군대 사이에 황제 선출의 원칙이 무너지자, 50년간 26명의 황제가 난립했고 대다수가 암살당했다. 제국의 쇠퇴는 외적(外敵) 때문이 아니었다. 후계를 정하는 시스템의 공백이 제국을 내부에서 갉아먹었다.6

이 관점에서 지금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바라보면 매서운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2024년 12월의 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 그리고 이어진 2025년의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이라는 헌정사적 혼란을 통과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비극과 달리, 대한민국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라는 명문화된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무겁게 기억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더 깊은 곳을 향한다. 시스템이라는 정교한 브레이크가 존재하더라도, 헌정 시스템과 통치 권력이 극단적으로 충돌할 때 공동체는 얼마나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가. 제도라는 형식 이전에 존재해야 할 무언가 — 권력의 절제와 헌정적 가치에 대한 내면의 합의 — 가 얼마나 취약하게 서 있는지가 이번 혼란에서 드러났다.

시스템이 성숙한 사회는 제도만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 제도를 운용하는 이들이 선을 넘지 않는 무형의 규칙을 공유하는 사회다. 차대왕은 146년 고구려에 존재하던 합의 체계를 힘으로 무력화했다. 그 공백이 막근과 막덕과 고복장의 죽음을 만들었다. 한국이 지금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 무형의 합의를 얼마나 단단하게 다졌는가.

146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

태조왕은 퇴위 후 별궁에서 여생을 보냈다. 기록은 그의 말년에 대해 침묵한다. 그는 차대왕이 자신의 아들들을 처형하는 것을 살아서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이 때로 기록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역사가들은 흔히 태조왕을 고구려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왕’이라 부른다. 영토를 넓히고, 관제를 정비하고, 변방의 민심을 직접 챙긴 93년의 치세.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완성하지 못했다. 자신의 뒤를 평화롭게 잇는 시스템. 그것이 그의 93년 치세를 반쪽짜리 유산으로 만들었다.

위대한 통치자들도 이 문제 앞에서 무너진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도, 당의 무측천도, 조선의 세조도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권력을 안정적으로 이양하는 법을 제도화하는 데는 고전했거나 실패했다. 남긴 것의 크기와, 다음을 준비한 것의 밀도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치세의 위대함이 다음 세대의 안녕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 오늘 우리가 공들여 쌓는 유산의 그다음 장은 누가 집필하고 있는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정확히 세우려 한다. 146년 고구려의 비극이 오늘의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 그 질문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 참고할 말씀: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 신명기 16:19


각주 및 출처

1 김부식, 《삼국사기》 권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조. — 태조왕의 즉위 연령(7세)과 재위 기간(93년)에 관해 학계에서는 ‘두 명의 태조왕 합산설’ 등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 본문은 《삼국사기》 기록을 그대로 기준으로 삼되, 이 숫자가 논쟁 중임을 밝혀둔다.

2 김부식, 《삼국사기》 권15 고구려본기 제3, 차대왕 즉위년 조. — 막근 처형, 막덕 자결, 고복장 처형 관련 기록.

3 김부식, 《삼국사기》 권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69년·72년·94년 조. — 수성의 대한나라 군사 활동 기록. 서기 121년 한나라 유주자사 풍환(馮煥)·현도태수 姚光(요광)의 침공 격퇴 및 이후 요동·현도 지역 공세 지휘.

4 韓非子, 《韓非子》 〈二柄(이병)〉편. — 군주가 형(刑, 상벌 중 처벌)과 덕(德, 상벌 중 포상)이라는 두 권한을 손에 쥐어야만 신하를 통제할 수 있다는 법가 권력론의 핵심 구절.

5 Niccolò Machiavelli, Il Principe (1532). — 군주가 내부의 협력자에게서 권력을 잠식당하는 메커니즘에 관한 분석. 본문 인용은 원저의 취지를 요약한 것이다.

6 Edward Gibbon,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1789), Vol. I. — 3세기 위기(235~284년) 및 군인 황제 시대(26명의 황제 난립)에 관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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