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보다 오래가는 것

정복보다 오래가는 것 — 한강, 화친으로 넓어지다

[2부] 팽창기 — 백제 기루왕과 한강 유역, 그리고 로마의 국경

2026.07.22 · 역사·한국사


다시 그어지는 경계선

2026년 7월,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가 하나로 합쳐지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출범이 구체화되었다. 강원도와 전북은 이미 특별자치도로 개편되었고, 국회에서는 수도 이전과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행정구역이 다시 그려지고, 권한의 경계가 다시 협상되는 시간이다.

경계를 새로 긋는 일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그러나 역사를 멀리서 보면, 가장 오래 남은 경계는 대부분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어지곤 했다.

서기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한강 유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패배 이후, 기루왕이 선택한 것

앞선 글에서 우리는 백제와 신라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반복적으로 충돌했던 사정을 살펴보았다. (물려받은 국경 — 신라와의 반복되는 충돌, 왜 싸우는가)

그 충돌의 다음 장을 이끈 인물이 백제 제3대 왕 기루왕이다. 다루왕의 장남으로 77년에 즉위한 그는, 즉위 초만 해도 선왕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85년, 기루왕은 신라의 변경을 공격했으나 패배했다.

이 지점에서 기루왕의 선택은 갈렸다. 그는 패배한 전쟁을 다시 벌이는 대신, 20년 뒤 완전히 다른 카드를 꺼냈다. 105년, 신라가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자 기루왕은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평화조약을 청했다. 그리고 이 조약은 곧바로 깨지지 않았다. 113년에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 관계를 다시 다졌다.

이 시기 동아시아의 정세도 단순하지 않았다. 후한은 안제의 즉위(106년)를 전후해 외척과 환관 사이의 권력 다툼이 이어지고 있었고, 북방에서는 말갈이 한반도 동북방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었다. 105년의 화친이 이런 다자구도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20년 뒤인 125년, 말갈이 신라를 침입하자 백제가 지원군과 다섯 명의 장군을 보내 도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화친이 문서상의 약속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협력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힐 수 있다.

《삼국사기》 기루왕조의 기록 자체는 소략하다. 지진·가뭄·태풍 같은 천재지변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고,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서술은 드물다. 그러나 그 소략함 자체가 하나의 증거로 읽힐 수 있다. 전쟁의 기록이 사라진 자리에, 국경이 조용히 굳어졌다는 사실이다. 정복으로 얻지 못한 한강 유역의 안정을, 기루왕은 화친으로 얻어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같은 시간, 로마의 국경

기루왕만 이런 선택 앞에 섰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정복으로 넓힌 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은 대륙을 가리지 않고 통치자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98년부터 117년까지 재위한 트라야누스 황제는 다키아를 정복하고(101~106년), 로마 제국의 영토를 역사상 최대로 넓혔다. 정복은 화려했고, 트라야누스 원주는 지금도 그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117년, 후계자 하드리아누스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트라야누스가 넓혀놓은 동방의 영토 상당 부분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방어하기 어려운 국경은 포기했다. 122년부터는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는 단순한 후퇴라기보다 제국 재정을 내실화하고 관리 가능한 국경을 설계하려는 통치 철학의 전환으로 볼 여지가 있다.

두 방식 중 어느 쪽이 로마를 더 오래 지탱했는가에 대해, 역사는 정복이 아니라 경계를 정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능력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팽창을 스파르타가 두려워한 데서 전쟁의 근본 원인을 찾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힘의 확장은 그 자체로 상대의 공포를 부르고, 공포는 다시 충돌을 부른다. 기루왕이 85년의 패배 이후 화친으로 방향을 튼 것과, 하드리아누스가 트라야누스의 정복 노선에서 벗어나 장벽을 택한 것은, 시대도 문명도 다르지만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던 것으로 읽힌다 — 넓힌 땅을 지킬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복이 아니라 유지

한강 유역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백제의 중심지로 남았다. 그 안정의 시작점을 무력의 승리가 아니라 105년의 화친과 113년의 사신 파견에서 찾을 수 있다면, 팽창의 본질은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그 영토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밀도에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루왕의 시대는 화려하지 않다. 왕의 치세를 채운 것은 정복 서사가 아니라 지진과 가뭄, 그리고 몇 줄의 외교 기록뿐이다. 큰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큰 위기 없이 유지되었다는 뜻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역시 정복자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그은 장벽은 정복지보다 오래 남았다.

소리 없는 확장이 가장 견고한 확장이라는 역설은, 국경이든 조직이든 관계든 똑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행정구역 통합과 지방분권 논의 역시, 외형적인 덩치를 키우는 트라야누스식 확장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주민 간의 제도적 신뢰와 협력의 밀도를 채우는 기루왕·하드리아누스식 내실로 나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넓히고 있는가

최근 한국 사회가 겪은 격심한 정치적 진통과 정권 교체, 그리고 뒤이어 수면 위로 오른 개헌과 지방분권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 지금 우리가 넓히려는 것은 영토가 아니라 신뢰와 제도라는 점에서, 그 확장은 트라야누스의 방식일 것인가, 하드리아누스의 방식일 것인가.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큰 소리로 넓힌 것과 조용히 다져놓은 것 중, 다음 세대까지 남는 것은 어느 쪽인가.

신명기 구절 속 “지경을 넓히시리라”는 약속 역시, 물리적인 정복으로 얻는 영토라기보다 약조와 규범을 지킴으로써 확보되는 안정과 신뢰의 테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진정한 지경의 확장은 결국 물리적 영토가 아니라, 신뢰와 법의 테두리를 얼마나 단단히 세우는가에 있을지 모른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다만 멀리서, 오래 지켜볼 뿐이다.

* 참고할 말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시리니’ — 신명기 19장 8절


¹ 기루왕의 즉위·85년 패배·105년 화친·113년 사신 파견·125년 말갈 침입 시 신라 원조 기록: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루왕조 (위키백과 「기루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루왕」 항목 참조)
² 후한 안제 즉위(106년) 전후 외척·환관 권력 다툼: 후한사 일반 기록
³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정복(101~106년)과 하드리아누스의 국경 재조정·브리타니아 장벽 축조(122년~): 로마사 일반 기록
⁴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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