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식 팽창의 시작 — 서기 108년, 흉년이 낳은 정복
2-신라-⑦ · 팽창기: 태조왕의 세기
2026.07.17 발행 · 한국사 시리즈
지도가 바뀌는 날
2026년 7월 1일, 대한민국의 행정지도 한 귀퉁이가 다시 그려졌다.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는 40년 만에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합쳐지며 인구 320만, 지역내총생산 159조 원 규모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출범했다4. 같은 날 인천은 중구와 동구를 합쳐 제물포구를 만들고 영종도를 따로 떼어 영종구로 독립시켰다. 작은 단위가 더 큰 단위로 흡수되거나, 이름을 바꾸어 재편입되었다. 지도 위의 선이 움직인다는 것은 언제나 권력의 무게중심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재편이 특별히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작은 단위가 큰 단위에 흡수되는 장면은 한반도에서 이미 2천 년 가까이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 서기 108년 여름, 신라 5대 임금 파사이사금이 다스리던 시절, 낙동강 유역의 세 작은 나라가 지도에서 지워졌다. 나라가 지워진 방식은 지금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통합’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적나라했을지도 모른다.
홍수와 병합 — 서기 108년 5월의 기록
“29년(108) 여름 5월,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10도(十道)에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구제토록 하였다. 병사를 보내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정벌하여 병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29년 조1
세 나라의 위치는 정확히 확정되지 않았지만, 학계는 대체로 다벌국을 지금의 대구, 비지국을 창녕 혹은 안강 일대, 초팔국을 합천 초계 지역으로 추정되곤 한다2. 세 나라 모두 낙동강 중류 유역, 즉 사로국(경주)이 가야 세력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길목에 있었다. 학계에서는 이 시기, 파사이사금의 재위기를 신라가 경주 바깥으로 실질적인 영토를 얻기 시작한 시점, 즉 고대국가로서 신라의 실질적 시초로 바라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목할 것은 순서다. 굶주림을 구제한 조치와 정벌 명령이 같은 해, 같은 문장 안에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재해로 흔들린 나라 안쪽을 창고를 열어 다독인 왕이, 같은 해에 바깥으로 군사를 내보냈다. 이를 우연으로 넘길 수도 있겠으나, 내부의 위기를 수습하며 다진 결속력이 곧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팽창의 원동력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홍수로 무너진 내부 식량 기반을 구휼 창고만으로는 메우기 어려웠던 탓일 수도 있다. 낙동강 건너 소국들의 곡창과 노동력을 확보해야만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고대 국가 특유의 생존 투쟁이었을 개연성이 존재한다. 구휼과 정벌은 어쩌면 같은 위기에 대한 두 개의 답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서기 101년, 파사이사금이 월성 자리에 새 도읍을 세우려 했던 장면을 살펴보았다. 궁을 옮기려는 시도와, 7년 뒤 세 나라를 병합하는 이 사건은 하나의 흐름 안에 있다. 안을 정비한 왕이, 밖으로 손을 뻗은 것이다.
같은 시대, 다른 대륙 — 트라야누스의 로마
같은 시기, 유라시아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로 같은 문법이 쓰이고 있었다. 서기 105년 무렵, 오랜 동맹국이었던 나바테아 왕국의 마지막 왕 라벨 2세가 세상을 떠났다.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그의 후계자를 인정하지 않은 채, 이듬해인 106년 시리아 총독 코르넬리우스 팔마에게 나바테아 병합을 명령했다. 나바테아 왕국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 채 로마 제국 속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곧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속주로 재편되었다. 명분은 국경의 안정이었지만, 학계는 이를 대체로 ‘동맹국의 왕위 공백을 놓치지 않은 기회주의적 병합’으로 읽는다 — 다만 사료가 많지 않아 트라야누스의 정확한 의도는 지금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3.
로마와 신라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팽창의 순간에 ‘질서를 회복한다’는 언어를 사용했다. 로마는 동맹국의 내부 권력 공백(위기)을 틈타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군대를 보냈고, 신라는 재해라는 내부 결핍(위기) 속에서 낙동강으로 칼끝을 돌렸다. 위기 뒤에 오는 확장은 우연이 아니라 반복되는 문법에 가깝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위기가 정당화하는 확장
병합된 세 나라의 이후 운명은 갈라진다. 초팔국은 완전히 흡수되어 ‘초팔혜현’이라는 신라의 지방 행정단위가 되었고, 훗날 경덕왕 대에는 ‘팔계현’으로, 고려에 이르러 ‘초계’로 이름을 바꾸며 신라·고려의 행정체계 안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반면 이보다 앞서, 서기 102년에 자진 항복했던 실직국·압독국은 처음엔 형식상의 속국으로만 남았다가, 실직국은 불과 2년 뒤인 104년 반기를 들었고 결국 진압되어 주민이 강제로 남쪽으로 이주되는 결말을 맞았다. 108년의 병합과는 6년의 시차가 있는, 별개의 두 사례다.
같은 ‘병합’이라는 단어 안에, 완전한 동화와 형식적 종속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결말이 함께 있었던 셈이다. 정복하는 쪽은 늘 같은 말을 쓰지만, 정복당한 쪽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백 년 뒤의 결말은 달라진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흡수인가, 종속인가.
다시, 지도를 보다
2026년의 대한민국은 지방행정체제를 다시 짜고 있다. 전남과 광주는 40년 만에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합쳐지며 통합특별시가 되었고,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자체를 손보자는 데까지 나아가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특검과 재판, 진영 간 대립으로 정치권 내부는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중이다.
내부의 분열과 결핍을 덮고자 거대 담론을 펼치며 영역을 재편하는 권력의 속성은 흔히 목격된다. 이는 1,900여 년 전, 안으로는 굶주린 백성을 진휼하고 밖으로는 정벌을 감행했던 파사이사금의 모순적 행보와 기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한다. 신라의 세 소국은 병합된 뒤 완전히 지워지거나, 이름만 남긴 채 흡수되거나, 끝내 반기를 들다 사라졌다. 오늘 다시 그려지는 지도 위의 통합이 어느 쪽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지도가 바뀌는 순간마다, 그 안에서 무엇이 실제로 하나가 되었는지를 묻는 일은, 언제나 뒤늦게야 시작된다.
[신라 팽창기 시리즈 — A.D. 53~146, 태조왕의 세기]
2-신라-① (62년) 최초의 신라-백제 충돌
2-신라-② (65년) 금궤의 정치학
2-신라-③ (77년) 낙동강 주도권 결전
2-신라-④ (80년) 검소한 왕이 민심을 얻는 방식
2-신라-⑤ (87년) 성을 쌓는다는 것
2-신라-⑥ (101년) 수도를 옮긴다는 것
2-신라-⑦ (108년) 신라식 팽창의 시작 ← 이번 편
(다음 회부터는 백제 편으로 이어집니다.)
※ 참고할 말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 잠언 14:31
1.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23년(102)·25년(104)·29년(108) 조.
2. 다벌국·비지국·초팔국의 위치 비정은 이병도·천관우 등 학설에 따름. 정확한 위치는 미확정.
3. 나바테아 병합(106년)과 라벨 2세 사망 시점은 카시우스 디오 등 고전 사료 및 명문·고고학 연구에 근거하나, 병합의 정확한 동기는 학계에서도 이견이 있다.
4.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2026.7.1) 관련 수치는 특별법 및 언론 보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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