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버린 나라의 미래

부산항에서 시험 운항 중인 미래형 자율운항 컨테이너선
부산항을 배경으로 운항 중인 자율운항선박. 기술의 발전이 선원의 공백을 메우는 시대, 바다와 국가의 미래를 묻는다.

바다를 버린 나라의 미래

자율운항선박 시대, 선원은 사라지는가

2026.08.06 · 바다

누구도 배를 몰지 않는 항구

부산항의 한 컨테이너선이 최근 선원을 최소화하고 육상에서 원격 관제하는 자율운항 시험을 마쳤다는 소식이 조용히 지나갔다. 선원 없이도 태평양을 건널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실험은, 몇 해 전이었다면 단지 기술의 승리로만 평가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뉴스를 접하는 사람은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술이 선원을 대체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비어 있던 자리를 기술이 뒤늦게 채우는 것인가.

앞선 글에서 우리는 해양수산부의 정책이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간극을 살펴보았다. (정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간극의 다음 단계가 바로 자율운항선박이다.

사람이 오지 않는 자리를, 국가는 결국 기계로 메우기로 결정한 셈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결정이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는 데 있다.


1433년 7월, 정화의 마지막 귀항

1405년 7월, 명나라의 환관 정화(鄭和)는 240여 척의 함대를 이끌고 첫 항해에 나섰다. 이후 28년에 걸쳐 일곱 차례 원정을 통해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명의 깃발을 새겼다. 당시 세계 어느 해군도 명의 보선(寶船) 함대에 견줄 수 없었다.

그러나 1433년 7월, 일곱 번째 항해에서 돌아온 함대를 끝으로 원정은 사실상 막을 내린 듯하다. 정화 자신은 귀항 도중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조정의 중심은 곧 보수적인 유가 관료들로 넘어갔고, 원양 항해는 국고 낭비이자 오랑캐와의 불필요한 접촉으로 규정되었다. 이후 조선소는 방치되었고, 1525년에는 가정제의 명으로 원양 항해가 가능한 대형 선박을 파괴하라는 명령까지 내려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1

세계 최강의 함대를 가졌던 나라가, 스스로 그 함대를 지웠다. 반세기 뒤, 유럽의 작은 배들이 그 빈자리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이 물러난 바다를,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채워 넣은 셈이다. 오늘날 한국의 항구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비슷한 궤적으로 읽힐 수 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자율운항 기술이 채우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물러남의 방식만 다를 뿐 물러남 자체는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아가는 것이 道의 움직임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40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反者道之動,弱者道之用。(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되돌아가는 것이 도(道)의 움직임이며, 약함은 도의 쓰임이다.”

이 문장은 흔히 순환의 철학으로 읽히지만, 국가의 흥망에 적용하면 다른 결을 드러낸다. 강함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선택도 결국 도의 움직임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명의 후퇴를 자연스러운 도의 회귀로만 읽기는 어렵다. 그것은 이치를 따라 스스로 돌아간 흐름이라기보다, 스스로 쌓아온 동력을 조정이 인위적으로 끊어낸 후퇴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렇게 끊어낸 자리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채우는가에 있다.

서양에서는 알렉시 드 토크빌이 다른 각도에서 비슷한 경고를 남겼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안락함을 누리게 된 사회일수록 공동체의 힘든 일에서 조용히 물러나 사적인 삶으로 침잠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840).2 그가 말한 개인주의는 게으름이 아니라, 편리함이 제공하는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는 후퇴였다. 바다라는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서 국가와 개인 모두가 점차 발을 빼는 지금의 흐름도, 토크빌의 언어로 보면 낯설지 않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편리함이 지운 것들

정화의 함대가 사라진 이유와, 오늘 한국 선원이 사라지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정치적 결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처우와 노동 조건의 누적된 결과다. 그러나 두 사건이 공유하는 패턴은 뚜렷하다. 바다를 지키는 일은 언제나 힘들고, 눈에 잘 띄지 않으며, 당장의 손익 계산으로는 남는 것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편리함이나 명분이 주어지는 순간, 국가는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발을 빼곤 하는 듯하다.

자율운항선박은 분명 효율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효율은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선원의 자리를 기계와 육상 관제로 채운 선박이 늘어나는 흐름은,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다 위에서 국가를 대신해 즉각 판단을 내릴 인력이 줄어듦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 편에서 확인했듯, 외항선원의 공백은 유사시 물자 수송과 안보의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술이 그 공백을 메운다 해도, 판단과 책임의 영역까지 완벽히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명나라가 함대를 포기했을 당시, 이를 안보의 문제로 인식한 이는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저 재정을 아끼는 합리적 선택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반세기 뒤 유럽 함대가 아시아 바다를 오갈 때, 그 합리성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가 뒤늦게 드러났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합리성도 반세기 뒤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우리가 아직 던지지 않은 질문

이 시리즈는 나라가 바다를 필요로 했던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 필요가 잊혀 가는 과정을 따라왔다. 열두 편에 걸쳐 우리가 따라간 것은 결국 하나의 질문이었다. 한 나라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때 스스로의 얼굴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번 편에서 자율운항선박이라는 기술이 그 마지막 페이지처럼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기술은 언제나 공백이 생긴 뒤에야 그 자리를 채우러 온다.

그러나 기술이 채우는 것은 언제나 절반뿐인 것으로 보인다. 배는 다시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겠지만, 그 배 위에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던 사람의 자리까지 기술이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시리즈에서 만난 선원들 — 영웅으로 불렸다가 잊힌 이들, 폐쇄된 배 안에서 고독을 견딘 이들, 낯선 언어로 위기를 감당해야 했던 이들 — 은 모두 그 절반을 몸으로 채워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500년 전, 같은 갈림길에서 유럽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물러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다로 더 깊이 나아갔다. 그 선택이 이후 세계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는, 다음 항해에서 다시 물어야 할 질문으로 남겨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바다로 나아가는 쪽을 선택하고 있을 것이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선택과 우리의 선택이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시 배를 띄운다.


※ 참고할 말씀: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 시편 107:23-24


1. 정화의 원정(1405~1433)과 명 가정제 시기 해금령(1525) 관련 서술은 통용되는 역사 기록에 근거함.
2. Alexis de Tocqueville,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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