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위에서 단절된다는 것
고독·가족 해체·심리적 비용
외항선원 시리즈 7편 · 바다 · 2026.07.28
카카오톡 하나 보내는 데 필요했던 인내심
2026년 1월, 현대글로비스가 보유 선박에 스타링크 도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해운업계에 전해졌다1. 저궤도 위성인터넷이 배 위로 올라오면서 선원들이 유튜브를 보고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일이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2.
이 소식이 반가운 진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이 보도의 행간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사가 무심코 던진 "과거 선박에서는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데도 인내심이 필요했다"는 문장이야말로, 이 편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의 정확한 출발점일 수 있다2.
메시지 하나에 인내심이 필요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 시간 동안 가족의 안부도, 자녀의 성장도, 배우자의 하루도 실시간으로 전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통신 환경은 최근까지도 예외가 아니라 표준에 가까웠다.
2026년 1월 시점에도 국내 스타링크 상용 서비스는 해상·항공·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제한적 도입 단계였다3. 즉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개선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예전 방식으로 단절되어 있는 배가 훨씬 더 많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선박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되는 직업적 특성을 지닌다. 대인 접촉 범위가 제한적이고 육상과의 교류가 적어, 선내 인간관계마저 수동적으로 변하고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4. 폐쇄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근무 시간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데, 애초에 그 시간 동안 갈 수 있는 곳이 바다 위 갑판을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다4.
통신 기술은 거리를 좁혔지만, 단절이라는 조건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
앞선 글 ‘폐쇄된 공간의 위계질서’에서는 선내 위계 문화가 젊은 해기사들을 조용히 떠나보내고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이번 편에서는 그들이 배 위에 남아 있는 동안 겪는 또 다른 비용, 곧 고독과 가족 해체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대가를 짚어보려 한다.
46개월, 케이프혼의 아내들
폐쇄된 공간에서의 장기 격리가 가족과 정신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19세기 미국의 포경산업에서 오래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19세기 뉴잉글랜드의 포경선은 고래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점점 더 먼바다로 나가야 했고, 항해 기간도 계속 늘어났다. 1851년 무렵에는 항해 하나의 평균 기간이 46개월에 달했다5. 3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남편이자 아버지인 선원은 바다 위에 있었고, 그 사이 편지 한 통이 오가는 데에도 몇 달이 걸렸다.
이 시기 뉴잉글랜드에서는 이들 여성을 가리키는 별도의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래스 위도(grass widow)", 남편이 살아있음에도 기약 없이 떠나 있어 사실상 과부처럼 지내야 했던 여성을 부르던 말이다6. 특히 포경선 선장의 아내들은 "케이프혼의 과부"라 불리며,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가정과 사업, 때로는 농장 운영까지 홀로 떠맡아야 했다7.
역사학자 리사 놀링은 이 여성들의 편지와 일기, 교회 기록을 추적하며 이렇게 정리한다. 남편의 부재는 여성에게 경제적 자립과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으나, 그로 인해 가정 내에 생긴 균열은 쉽게 봉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8. 오랜 별거 끝에 재혼이나 파경으로 이어진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고 후대 연구는 전한다8.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은, 이 별거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고, 아내는 그 부양을 지키기 위해 뭍에 남았다. 산업의 구조 자체가 가족을 갈라놓는 조건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이 점은 오늘의 외항선원 가족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올 수 있다.
폴리스 밖의 인간, 홀로 남겨진 자
동서양의 사유는 이 단절과 고독의 문제를 각기 다른 언어로 짚어왔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과 공동체의 관계를 이렇게 규정했다.
Ho anthrōpos physei politikon zōon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폴리스) 안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 Aristoteles, 『Politika』9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어서, 스스로 공동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짐승이거나 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9. 인간은 본래 혼자 완결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몇 달씩 육지의 관계망에서 격리되는 선원의 위치는, 이 정의가 단적으로 시험받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동양에서는 노자가 비슷한 감각을 다른 각도에서 남겼다.
眾人皆有餘,而我獨若遺。
(중인개유여,이아독약유。)
"뭇사람은 다 여유가 있는 듯한데, 나만 홀로 잃은 것 같다."
— 老子, 『道德經』 20章10
노자의 이 구절은 본래 세속의 기준과 다른 길을 걷는 자의 외로움을 가리킨 말이지만, 항해 중인 선원이 육지의 시간과 어긋난 채 홀로 떠 있는 감각과도 겹쳐 읽을 수 있다. 가족은 저마다의 하루를 채워가는데, 자신만 그 흐름 바깥에 남겨진 듯한 감각이다.
연결의 기술이 도착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와 노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 스타링크 이후에도 남는 문제가 조금 더 또렷해진다.
국제운수노련(ITF) 선원신탁과 예일대학교가 2019년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20%가 조사 시점 이전 2주 이내에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11. 같은 해 세일러스 소사이어티가 전 세계 선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26%가 바다 위에서 "지속적인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4분의 1가량이 우울 증상을 보였다12. 우울 증상을 겪은 이들 중 45%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12.
이러한 고독은 통계상으로도 가정의 균열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국제선원노련(Nautilus Federation)이 2014년 실시한 설문에서는 응답 선원의 3분의 1가량이 장기간의 부재로 인한 심각한 관계 파탄을 겪었다고 답했다14. 영국 상선 선원을 대상으로 한 이전 조사들에서도 이혼율이 영국 전체 평균보다 20~30% 높게 나타난 바 있다14. 2021년 다국적 탱커선 승조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기혼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정신질환 선별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고, 승선 계약 기간이 길수록 우울 위험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되었다15.
19세기 케이프혼의 과부들을 만들어낸 구조와, 오늘날 이 이혼율 통계 뒤에 있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읽을 수 있다. 산업이 요구하는 부재의 길이가 가정을 시험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2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여기서 스타링크 이후의 문제도 함께 짚을 필요가 있다. 영국 카디프대학교가 산업안전보건연구소(IOSH)의 의뢰로 1,500명 이상의 선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는, 인터넷 접근성 부족과 가족·친구로부터의 장기간 격리가 선원들이 꼽은 가장 큰 우려 요인에 속한다고 밝혔다13. 그런데 해운업계 전문지들은 연결성이 확보된 이후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스트레스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한다. 육지의 가정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을 실시간으로 전해 듣게 되지만, 배 위에서는 그 무엇도 직접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16.
육지의 나쁜 소식을 접하고도 갑판 위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차라리 단절되어 있는 편이 심리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역설적인 진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17.
스타링크가 해결하는 것은 통신 속도이지, 이 산업이 구조적으로 요구해온 격리 그 자체는 아닐 수 있다. 케이프혼의 아내들이 남편의 생사조차 몇 달씩 알 수 없었던 시대에서, 영상통화로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시대로 통신 기술은 분명히 진보했다. 그러나 6개월, 때로 그 이상을 배 위에서 보내야 하는 노동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정의 위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무력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화면 속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과 그 곁에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은, 어쩌면 기술이 메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얼굴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주로 숫자와 제도였다. 승선근무예비역의 갑질 실태, 유럽 선원과의 처우 격차, 선내 위계 문화의 역사. 그런데 그 통계 하나하나의 이면에는, 몇 달씩 화면 밖에서 자녀의 얼굴을 놓치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있다.
성경은 함께 있는 것의 가치를 이렇게 말한다. 넘어져도 일으켜줄 사람이 곁에 없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이 말은 종교적 위로를 넘어, 인간이 구조적으로 혼자여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오래된 통찰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국적선원의 절반 가까이가 이미 60세 이상이라는 사실을, 앞선 글에서 살펴본 바 있다. 다음 세대가 이 자리를 이어받을지 여부는 임금과 처우뿐만 아니라, 고독이라는 심리적 비용에 해운 산업이 어떤 답을 내놓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승선 주기를 짧게 나누거나, 선내 심리 상담 체계를 상시화하거나, 일부 해외 선사가 시도하는 것처럼 가족 동승 제도를 확대하는 방향들이 이미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이 나라의 표준이 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화면 속에서 웃는 가족의 얼굴은 가까이서 보면 반가운 위안이지만, 그 화면이 놓인 자리 전체를 거리를 두고 보면 여전히 답해지지 않은 질문 하나가 떠 있다. 연결의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 발전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나라의 선단 위에서 얼마나 많은 얼굴이 조용히 단절을 견디고 있는지를, 우리는 아직 제대로 묻지 않았다.
* 참고할 말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전도서 4:9-10
1. 해운업계 보도(2026.01.21) — 현대글로비스, 보유 선박 대상 스타링크 도입 시작(2026.01.19)
2. 매일신문, "하늘에서 내려온 인터넷… 스타링크, 통신 산업 판 흔드나" (2026.01.04) — 스타링크 도입 후 선원의 영상통화·유튜브 시청 가능, 이전 통신환경에서 메신저 발신 지연 묘사
3. 위 보도 — 국내 스타링크 상용 서비스가 해상·항공·도서 지역 중심의 제한적 도입 단계임을 명시
4. 박유진·이윤형·류기탁·정유진·안종갑, "인터넷을 이용한 선원의 여가 활동이 선박 내 문화에 미치는 영향", 「한국항해항만학회지」 47권 4호 (2023), 191–201쪽 — Lee et al.(2012), Shin et al.(2017), Jin and Kim(2019) 선행연구 재정리, 선박 조직의 폐쇄성과 소외감
5. National Park Service, 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 "Life onboard a Whaleship" — 1851년경 항해 평균 기간 46개월
6. Ancestral Findings, "Weird Genealogy Terms: What is a Grass Widow?" — 19세기 해양·어업 종사자 아내를 가리키던 "grass widow" 용례
7. National Park Service, "Women’s History in New Bedford" — 포경선원 아내들의 가정·사업 단독 운영 실태
8. Lisa Norling, 『Captain Ahab Had a Wife: New England Women and the Whalefishery, 1720-1870』 — "케이프혼의 과부(Cape Horn widows)" 개념 및 장기 별거가 가정에 남긴 영향
9. Aristoteles, 『Politika』(정치학) 1권
10. 老子, 『道德經』 20章
11. ITF Seafarers’ Trust & Yale University, Seafarer Mental Health Study(2019) — 응답자 중 최근 2주 이내 자살 생각 경험 20%
12. Sailors’ Society, 전 세계 선원 1,000명 대상 조사(2019) — 지속적 외로움 26%, 우울 증상자 중 45% 도움 요청 안 함
13. Cardiff University·Seafarers International Research Centre(Sampson & Ellis), IOSH 의뢰 연구 "Seafarers’ Mental Health and Wellbeing" — 인터넷 접근성 부족·가족 격리, 응답 선사 55% 10년간 정책 미도입
14. IndexBox, "Family Separation and Relationship Strain: A Growing Structural Risk for the Shipping Industry" (2026) — Nautilus Federation 2014년 설문(응답자 약 1/3 심각한 관계 파탄 경험), 영국 상선 선원 이혼율 국가 평균 대비 20~30% 상회 조사 재인용
15. 위 보도 — 2021년 다국적 탱커선 승조원 대상 연구, 기혼 응답자 약 절반 정신질환 선별검사 양성, 계약 기간과 우울 위험의 상관관계
16. Seatrade Maritime News(Marcus Hand), "Why does shipping have a problem trusting seafarers with the internet?" — 연결성 확대 이후 가족 문제에 대한 실시간 노출과 무력감 문제 제기
17. SAFETY4SEA, "The hidden traps of connectivity onboard" — 나쁜 소식을 접했을 때의 무력감·고립감, 연결 부재가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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