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한 방울 없는 나라가 유조선을 만든다는 것

기름 한 방울 없는 나라가 유조선을 만든다는 것

오일쇼크와 한국 조선업의 역설

2026.06.23  ·  바다 — 한국 조선해양 시리즈 3편  ·  Watchman


석유가 없는 나라에 석유를 싣는 배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욤 키푸르 전쟁이었다.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이스라엘을 지원한 서방에 대해 석유 수출 금지령을 내렸고, 원유 가격은 한 달 만에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세계 경제는 충격에 빠졌다. 일본은 패닉에 가까운 사재기 대란이 벌어졌고, 서유럽은 차량 운행을 제한했다. 미국은 주유소 앞에 수 킬로미터의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은 — 조선소를 짓고 있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세계가 석유 때문에 무릎을 꿇는 그 순간, 석유를 운반하는 배를 완성해냈다. 이미 1971년, 정주영은 미포만 조선소 예정 부지의 백사장 사진과 500원짜리 거북선 지폐 한 장으로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George Livanos)를 설득해 26만 톤급 VLCC(초대형 유조선) ‘어틀랜틱 배런(Atlantic Baron)’ 수주를 따냈다. 그렇게 시작된 무모한 도전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오일쇼크라는 거대한 포르투나가 들이닥쳤다. 선가가 폭락하고 리바노스 측마저 인수를 주저하던 그 순간, 정주영은 직접 국아해운(國亞海運, 현대상선의 전신)을 설립해 그 배를 떠안았다. 1974년 6월, 어틀랜틱 배런은 마침내 바다로 나아갔다. 퇴로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간 것이었다.1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세계가 석유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던 그 시절, 왜 한국은 반대 방향을 향했는가. 공포가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 때, 한국의 도크는 오히려 뜨거워졌다. 그 역설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일달러가 만든 바다 — 위기의 두 얼굴

오일쇼크는 두 가지 세계를 동시에 만들었다. 석유를 수입하는 나라들에게는 재앙이었고, 석유를 파는 나라들에게는 전례 없는 부(富)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의 오일달러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 돈으로 그들은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항만, 도로, 플랜트, 건물. 중동은 거대한 건설 시장이 되었다.

한국은 그 시장을 읽었다. 박정희 정부가 그 시장을 전략적으로 포착해 중동 건설 진출을 독려하는 지침을 내린 것은 맞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은 정부의 탑다운(Top-down) 명령만의 산물이 아니었다. 국내 경기 침체와 유가 상승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돌파구를 찾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1973년 삼환기업의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수주가 그 선례였다. 국가의 전략적 혜안과 기업가의 생존 본능이 결합한 것 — 그것이 한국 중동 진출의 실제 구조였다.2

1976년 한국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24억 달러를 넘어섰다. 오일달러가 한국으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흐름에서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세계의 물류는 바다를 통해 움직였고, 바다를 움직이는 것은 선박이었다. 석유를 운반하는 VLCC든, 건설 자재를 나르는 벌크 캐리어든 — 중동 건설 붐은 해운 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경제력이 군사력을 뒷받침하고, 해상 무역 능력이 경제력을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오일쇼크 이후 세계 해운 물동량의 재편은 어느 나라가 그 무역 능력을 선점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세계사에서 위기는 늘 두 얼굴을 가진다. 기존 패권이 흔들릴 때, 도전자에게는 틈이 열린다. 영국 조선업이 쇠락한 것도, 일본이 그 자리를 채운 것도 — 모두 세계 경제의 충격이 빚어낸 구조 변동이었다.

그 구체적인 궤적은 이렇다. 영국은 19세기 후반 한때 세계 신조선 물량의 80%를 장악한 절대 강자였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강성 노조, 설비 노후화로 경쟁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를 파고든 것이 일본이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정부는 ‘계획조선’ 제도를 도입해 매년 건조 목표와 자금을 국가가 직접 설계했다. 그 결과 1956년, 일본은 세계 신조선 진수량 점유율 26.2%로 영국(20.7%)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수에즈 운하 국유화로 해운 수요가 폭발한 바로 그 해였다. 위기가 만들어낸 수요가 도전자의 등판 시점과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이후 일본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세계 조선업을 독주했다. 그리고 1970년대 오일쇼크가 덮쳤을 때 —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자가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출현했다.

노자의 역설, 투키디데스의 바다

노자(老子)는 말했다. 禍兮,福之所倚;福兮,禍之所伏(화혜,복지소의;복혜,화지소복) — “재앙이여, 복이 그 안에 기대어 있다. 복이여, 재앙이 그 안에 숨어 있다.”3 오일쇼크는 재앙이었다. 그러나 그 재앙의 안에 기회가 기대어 있었다. 무위(無爲)가 허무의 철학이 아니라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의 철학이라는 것을, 한국 조선업의 궤적은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흐름을 읽는 자는 거스르지 않는다. 다만 그 흐름을 탄다.

그러나 노자의 언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흐름을 읽는 것과 흐름 속에서 실제로 배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2,400년 전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남긴 문장이 필요해진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멜로스 대화를 통해 이렇게 기록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수해야 할 것을 감수한다.4 오일쇼크 직후의 세계 해운 질서가 정확히 이 구조였다. 영국 조선업이 무너진 자리를 일본이 채웠고, 일본이 주춤하는 자리를 한국이 노렸다. 강자가 된 자만이 바다를 설계한다 — 1971년의 정주영은 그 자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수해야 할 것을 감수한다.”4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5권 「멜로스 대화」

현재의 능력이 없을 때, 인간은 역사를 담보로 미래를 산다. 거북선은 현대조선의 기술력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造船)의 유전자’를 한국인이 가지고 있다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 서사가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의 판단을 흔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도전이 오일쇼크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 — 정주영은 국아해운을 직접 세워 배를 떠안았다.5 약자가 감수하는 대신 강자의 자리를 향해 나아간 것이었다. 퇴로를 스스로 없애는 방식으로.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일쇼크가 세계 경제를 흔들 때, 어떤 나라는 공황에 빠졌고 어떤 나라는 그 공황 위에서 배를 만들었다. 투키디데스의 언어로 읽으면 — 강자의 자리로 올라선 자만이 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자원의 차이가 아니었다. 위기를 읽는 방식의 차이였다.

그러나 투키디데스의 논리는 냉정한 이면을 품는다.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때, 그 과감함이 언제나 정당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정주영의 결단은 개인의 야성적 충동만이 아니었다. 그 무모한 리스크를 최종적으로 떠안을 국가라는 거대한 제방 — 실패해도 국가가 수습할 것이라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확신 위에서 춤출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오일쇼크 속에서 배를 떠안기 위해 만들어진 그 구조가 훗날 한국 해운업의 과잉 팽창으로 이어진 경로도 역사의 청구서로 남아 있다. 강자의 논리가 만들어낸 기회와, 그 논리가 남긴 청구서 — 역사의 아이러니는 늘 이렇게 작동한다.

페르시아만이 흔들릴 때 — 역사는 반복되는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페르시아만을 통과하는 유조선들이 공격받기 시작했다. ‘탱커 전쟁(Tanker War)’이라 불린 이 국면에서 약 500척의 상선이 피격되었고, 그 중 상당수가 격침되었다. 격침된 선박을 대체해야 했다.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초대형 유조선 수요가 다시 올라왔다. 한국의 도크는 그 수요를 받았다.

페르시아만의 분쟁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2024년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 항로가 위협받았고,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6년 2월 28일 — 역사는 또 한 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과 군사 수뇌부를 향해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을 감행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고, 이란 혁명수비대는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1%, LNG의 약 20%가 지나는 그 좁은 수로 — 폭 55킬로미터 — 가 닫혔다. 봉쇄 첫날 하루 50척이던 유조선 통항이 0~1척으로 급감했고, WTI 유가 선물은 60달러 후반에서 한때 배럴당 111달러를 돌파했다. 유조선 운임은 보름 만에 3.3배 폭등했다.6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봉쇄 직후 한국 정부는 청해부대를 비상 대기시켰고, 한국 유조선들은 홍해를 우회하는 새 항로를 개척했다. 4월 8일 미·이란 간 협상이 타결되며 호르무즈 해협 완전 개방을 전제로 한 휴전이 성사됐고, 6월 19일 종전이 최종 합의되었다. 그러나 핵 프로그램, 제재 해제 등 핵심 쟁점에서 여전히 간극이 남아 있어 중동의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7

1973년 오일쇼크, 1980년 탱커 전쟁, 2024년 홍해 위기, 2026년 호르무즈 봉쇄 — 페르시아만과 그 주변 바다가 흔들릴 때마다 세계의 해운 질서가 재편되었고, 그 재편의 수혜는 배를 만들 수 있는 나라에게 돌아갔다. 50년 전 한국이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한국은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자리가 영원히 보장되지는 않는다. 역사의 패턴은 위기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도전자의 등장도 반복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세계 조선시장 수주량 점유율은 약 34%다. 중국은 약 56%를 넘어섰다.8 50년 전 한국이 일본을 추격했던 방식으로, 지금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그 추격은 이제 저가(低價) 공세를 넘어 기술의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호르무즈 봉쇄 국면에서 한국이 목격한 것은 아이러니다. 기름 한 방울 없는 나라가 만든 유조선이, 기름이 막힌 바다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1974년과 2026년 —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다음 오일쇼크는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유조선을 만든다는 것.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자원이 없으면 기술을 만들어야 하고, 기술로 자원의 이동 자체를 장악해야 한다. 한국 조선업의 역사는 이 논리의 50년짜리 실증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질문이 있다. 오일쇼크 세대가 유조선을 만들었다면, 탈탄소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배를 만들 것인가. LNG선, 암모니아 추진선, 수소 연료전지선 — 친환경 선박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 교체가 아니다. 1973년의 오일쇼크처럼, 2030년대의 탄소 규제는 세계 해운 질서를 다시 한번 뒤흔들 것이다. 그 충격 앞에서 다시 한번 ‘석유 없는 나라가 친환경 선박을 만든다’는 역설을 써낼 수 있는가.

기름 없는 나라가 유조선을 만든 것은 — 공포를 동력으로 바꿨기 때문이었다. 오일쇼크로 선주가 배를 거부할 때, 정주영은 그 배를 스스로 떠안았다. 퇴로를 없애는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역사는 이 문법을 반복해왔다. 다음 전환의 공포 앞에서, 한국 조선업은 같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번에는 — 누가 먼저 그 배를 떠안을 것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보이는 것을 기록한다.

역사는 늘 변주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인간의 문법은 변하지 않는다. 오일쇼크 세대는 공포를 도크로 가져갔다. 다음 세대의 도크는 어디인가.

한국 조선해양 시리즈

1편 ·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 정주영과 울산, 1970년대 2편 · 불가능을 명령한 자 — 박정희, 바다, 그리고 중화학공업 드라이브의 기원

3편 · 기름 한 방울 없는 나라가 유조선을 만든다는 것 — 오일쇼크와 한국 조선업의 역설

4편 · 일본을 추월한 날 — 한·일 조선업 역전의 구조적 이유

5편 · 조선소 노동자들의 울산 — 신화 뒤의 땀과 피

6편 · 세계 1위가 된다는 것의 의미 — 한국 조선업의 전성기와 그 이면

7편 · 중국이 온다 — 저가 공세와 한국 조선업의 위기

8편 · 친환경 선박이라는 새 백사장 — LNG·암모니아·수소 추진선의 시대

9편 · 자율운항선박과 디지털 전환 — 다음 세대의 울산은 어디인가

10편 · 바다의 패권 — 한국 조선업과 한국 해군력의 교차점

11편 · 바다로 읽는 한국 — 조선해양 100년의 패턴과 다음 항로


바다로 나아간 자들이 품었을 법한 문장 하나를 남긴다.
* 참고할 말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 이사야 43:2


1 어틀랜틱 배런(Atlantic Baron) — 26만 톤급 VLCC. 리바노스(George Livanos)와의 계약은 오일쇼크 이전인 1971년 성사되었으며 조선소 착공(1972년 3월 기공식) 이전에 이루어진 수주였다. 오일쇼크로 선가가 폭락하고 인수 기피 움직임이 있자 현대는 국아해운(國亞海運, 1976년 3월 설립 후 동년 6월 아세아상선으로 상호 변경, 훗날 현대상선 → 현 HMM)을 설립해 직접 배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 현대그룹 사사(社史) 및 정주영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참조.

2 한국 기업의 중동 건설 진출 — 정부 지침과 기업의 자발적 생존 전략이 결합된 구조. 삼환기업은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기업 중동 진출의 선례를 만들었다. 1976년 해외건설 수주 24억 달러 돌파 — 해외건설협회 연감 참조.

3 禍兮,福之所倚;福兮,禍之所伏(화혜,복지소의;복혜,화지소복) — 『노자(老子)』 제58장. “재앙이여, 복이 그 안에 기대어 있다. 복이여, 재앙이 그 안에 숨어 있다.”

4 투키디데스(Thucydides), 『펠로폰네소스 전쟁사(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제5권 89절, 「멜로스 대화(Melian Dialogue)」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사절단이 멜로스인들에게 한 말로, 원문(그리스어)의 의미는 “강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약자는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이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논리를 가장 냉정하게 명문화한 고전 구절로 꼽힌다.

5 정주영의 거북선 지폐 일화 — 현대그룹 사사 및 정주영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수록. 리바노스와의 협상 과정에서 전해진 것으로 다수 경영서와 현대 창업 서술에 기록.

6 2026년 미·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 개시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사망.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하며 통항 선박 수가 평시 하루 50척에서 0~1척으로 급감. WTI 유가 선물은 한때 배럴당 111달러를 돌파했으며 유조선 운임은 보름 만에 3.3배 폭등.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1%, LNG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초크 포인트다. 미·이란 전쟁은 약 5주 후인 2026년 4월 7일 휴전 합의로 일단 마무리되었으나 해협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 UN Trade and Development 2026년 2·3월 호르무즈 통과 선박 수 통계; 클락슨리서치 2026년 해운 시장 보고서 참조.

7 한국의 호르무즈 의존도 및 미·이란 전쟁 종전 —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봉쇄 직후 한국 정부는 청해부대를 비상 대기시키고 우회 항로를 개척해 원유 수송을 지속했다. 4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 직전 미·이란 협상이 타결되며 호르무즈 해협 완전 개방을 전제로 한 휴전이 성사됐고, 6월 14일 종전 협의가 이루어진 뒤 6월 19일 공식 종전이 합의되었다. 핵 프로그램·제재 해제 등 핵심 쟁점에서 간극이 남아 있어 중동 긴장은 지속 중이다 — 나무위키 「미국-이란 전쟁/전망」; 한겨레·조선일보 등 국내 언론 보도 종합.

8 2023년 세계 조선시장 수주량 점유율 — 클락슨리서치(Clarkson Research) 통계 기준. 중국 약 56~57%, 한국 약 34~35%, 일본 약 7~8% 내외. 연도 말 집계치는 소폭 변동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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